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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착한 종이 누릴 행복 (마 25:21, 딤전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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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김명혁 목사 (강변교회)

  지난 한 주간 동안 새벽마다 여러분들과 함께 디모데전서를 읽으며 그 말씀을 묵상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쓴 11개의 편지 중 마지막으로 쓴 편지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 편지에서 교회의 감독과 목사와 장로와 권사와 집사들에게 권면하면서 “선한 일군”이 되라고 했습니다. “선한 일을 사모하라”고 했고 “선한 일을 좇으라”고 했고 “선한 일을 행하라”고 했고 “선한 사업에 부하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사도 바울이 마지막으로 부탁한 유언과 같은 부탁이었습니다. 지난 며칠동안 이 말씀들을 묵상하다가 오늘 아침 설교 제목을 “착한 종이 누릴 행복”으로 정했습니다. 예수님이 마지막 날 성도들을 칭찬하시며 하실 말씀도 “착한 종”이란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한 평생을 살고 나서 확실하게 배운 것이 하나 있습니다. 제일 좋은 사람이 착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예쁜 사람보다도 머리 좋은 사람보다도 돈 있는 사람보다도 제일 좋은 사람이 착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제일 좋은 남편과 아내는 착한 남편과 아내이고, 제일 좋은 부모와 자녀는 착한 부모와 자녀이고, 제일 좋은 목회자와 성도는 착한 목회자와 성도라는 것입니다. 여기 착한 이란 말이나 선한 이란 말은 같은 뜻의 말입니다. 착함과 선함은 윤리적인 차원의 특성이지만 사실은 영적인 차원의 특성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선하신 분이시고 예수님이 선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시136: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요10:11). 그러므로 착한 사람은 하나님을 닮은 사람이고 착한 사람은 예수님을 닮은 사람입니다. 두루 다니며 착한 일을 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닮은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셨다”고 사도 베드로가 말했기 때문입니다(행10:38). 이제 선한 사람, 착한 사람의 모습을 세 가지로 나누어 말씀 드리겠습니다.

  첫째 착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잘못을 들추어내어 비난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잘못을 들추어내기를 좋아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잘못을 들추어 내어 비난 하기를 좋아합니다. 단점은 물론 장점까지도 들추어내어 비난 합니다. 저는 최근에 “얄미운 여자” 시리즈에 대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었습니다. 10대들의 얄미운 여자는 예쁘고 공부 잘하는 여자라고 합니다. 예쁘고 공부 잘하는 여자는 얄미움의 대상이 된다고 합니다. 20대들의 얄미운 여자는 다 같이 성형 수술을 했는데 티 하나 없는 여자라고 합니다. 성형 수술을 하고서도 티 하나 없는 여자는 얄미움의 대상이 된다고 합니다. 30대와 40대들의 얄미운 여자도 있지만 말하기가 조금 거북해서 말을 하지 않겠습니다. 50대들의 얄미운 여자는 아무리 많이 먹어도 배가 나오지 않는 여자라고 합니다. 아무리 많이 먹어도 배가 나오지 않는 여자는 얄미움의 대상이 된다고 합니다. 60대들의 얄미운 여자는 남편이 돈 많이 벌어놓고 먼저 죽은 여자라고 합니다. 남편이 돈 많이 벌어놓고 먼저 죽은 여자는 얄미움의 대상이 된다고 합니다. “얄미운 여자” 시리즈가 담고 있는 것은 사람들은 누구나 다른 사람들을 얄미워 하고 비난하기를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아마 우리 교회에도 다른 사람들을 얄미워 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릅니다. 아주 예쁜 여자가 교회에 나오면 얄미워 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릅니다. “머 저렇게 이쁜 기지배가 다 왔어” 라고 얄미워 하며 인사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지 모릅니다. 물론 새 가족반의 조경애 권사님은 착하기 때문에 예쁜 여자가 오면 아주 반갑게 맞으면서 “어쩌면 그렇게 예쁘세요”라고 친절하게 인사를 하고 새 가족반으로 데려옵니다. 노오현 집사님도 착하기 때문에 예쁜 여자들이 오면 너무 좋아하면서 반갑게 맞곤 합니다. 새신자가 저녁예배는 물론 새벽기도회까지 열심히 나오면 얄미워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새신자가 담임 목사의 칭찬까지 들으면 더욱 더 얄미워 할지 모르겠습니다. “머 저게 잘났다고 저렇게 열심을 내지, 우리도 옛날에는 새벽기도회도 열심히 나왔고 담임 목사님의 칭찬도 다 들었어. 이제 새로 나온 것이 무엇이 잘났다고 저래?” 라고 말하며 얄미워 할 지도 모릅니다.

  오늘 아침 쓸데 없는 말을 너무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 착한 사람이란 남의 흉을 보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말씀 드리려고 이렇게 쓸데 없는 말을 너무 많이 했습니다. 착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잘못을 들추어내지 않고 흉을 보지 않고 수군수군하지 않습니다. 착한 사람은 또한 다른 사람들의 장점을 보고서 그들을 얄미워 하지도 않습니다. 착한 사람이란 다른 사람들의 잘못을 덮어주고 감싸 주고 괜찮다고 말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부도덕한 죄인인 한 여자가 자기에게 나와서 울면서 자기의 죄를 뉘우쳤을 때 그녀의 죄를 덮어주고 감싸주며 괜찮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를 칭찬까지 해주셨습니다. 물론 시몬이라는 집 주인은 그녀의 잘못을 들추어내고 비난하며 정죄했지요. 예수님은 또한 남편 다섯을 두었던 불행한 여자와 대화를 하면서 그 여자가 자기의 모든 것을 들어내며 고백했을 때 그녀의 죄를 덮어주고 감싸주며 괜찮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를 칭찬까지 해주었습니다. “네 말이 옳도다 네 말이 참되도다.” 물론 제자들은 그 여자를 못마땅하게 여겼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또한 부정 축재한 세리장 삭개오가 자기의 불의를 뉘우치면서 주님 앞에 무릎을 꿇었을 때 삭개오의 불의의 죄를 덮어주고 감싸주며 괜찮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를 칭찬까지 해주셨습니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제일 좋은 사람은 착한 사람입니다. 착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잘못을 들추어내어 비난하지 않고 오히려 덮어주고 감싸주는 사람입니다. 


  둘째 착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 좋게 합니다.

  사람들은 본성적으로 자기에게는 좋게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나쁘게 합니다. 사람들은 본성적으로 이기적이기 때문입니다. 맛이 있는 음식을 보면 자기가 먼저 많이 먹으려고 합니다. 다른 사람이 먹기 전에 자기가 먼저 잽싸게 낚아챕니다. 어느 신앙이 아주 좋은 가정이 가훈을 이렇게 정했다고 합니다. “집에서는 적게 먹고 나가서는 많이 먹는다.” 별로 좋은 가훈 같지는 않지요. 경제 원리로는 좋은 가훈 같지만 신앙 원리로는 별로 좋은 가훈 같지 않습니다.
  제가 미국에서 공부할 때 굴비가 먹고 싶어서 이모님에게 굴비를 좀 보내달라고 편지를 썼습니다. 얼마 후 굴비가 왔습니다. 너무 반가웠습니다. 그 때 제가 아주 좋아하던 형님 뻘 되는 정석산 목사님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굴비 한 두 마리를 다시 포장해서 소포로 정석산 목사님에게 보냈습니다. 정 목사님이 너무 고마워 하고 좋아했습니다. 제 이야기를 해서 안됐지만, 맛이 있는 것이 생길 때 혼자 먹지 않고 다른 사람과 나누어 먹는 것이 착한 것이지요. 언젠가 하이야트 호텔에서 몇몇 목사님들과 회의를 마치고 아침 식사를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제 앞에 제가 좋아하는 맛있는 프랑스식 빵이 한 개 놓여 있었습니다. 그 빵이 먹고 싶어서 가져다 먹으려고 하다가 칼로 잘라서 둘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반개를 제 앞에 앉아 있던 이중표 목사님에게 건네 주었습니다. 그 때 이중표 목사님이 “아하!” 라고 감탄을 하면서 고마워했습니다. 그리고 따뜻한 정을 느낀다고 말했습니다. 제 이야기를 해서 안됐지만, 맛이 있는 것이 생길 때 혼자 먹지 않고 다른 사람과 나누어 먹는 것이 착한 것이지요.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던 한 아이는 그것을 혼자서 먹지 않고 예수님에게 다 드렸습니다. 그 아이는 참으로 착한 아이였습니다. 밭을 가지고 있던 바나바는 그 밭을 자기의 노후를 위해서 혼자서 가지고 있지 않았고 그것을 팔아 그 값을 예루살렘 교회에 가져다 바쳤습니다.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은 모두 물건들과 재물들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물건들과 재물들을 자기들을 위해서만 쓰지 않고 다른 성도들과 나누어 썼다고 했습니다.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행4:32).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은 모두 착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지금 한국교회의 문제는 믿음이 뜨겁고 믿음이 좋은 듯한 사람들은 많은데 착한 사람들이 적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날에 착한 사람들을 칭찬하시겠다고 말씀했습니다. 설교 잘 한 사람이나 이적을 많이 행한 사람을 칭찬하지 않고 착한 일을 많이 한 사람을 칭찬하시겠다고 말씀했습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을 칭찬하시겠다고 말씀했습니다. 착한 종들은 달란트를 잘 사용한 사람들이고 주리고 목마른 자들을 먹이고 마시게 한 사람들입니다. 여기 달란트는 오병 이어가 될 수도 있고 밭이 될 수도 있고 물건이 될 수도 있고 재물이 될 수도 있고 음식이 될 수도 있고 식수가 될 수도 있고 약품이 될 수도 있고 재능과 생명이 되 수도 있을 것입니다. 주린 자에게 먹을 것을 주며 좋게 하고, 목마른 자에게 마실 것을 주며 좋게 하고, 병든 자들을 돌아보며 좋게 하는 사람들이 착한 사람들인데 주님께서 마지막 날에 이런 착한 사람들을 칭찬하시겠다고 말씀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편지를 쓰면서 착한 사람은 자기를 위해서 부하려는 사람이 아니라고 지적했고 자기를 위해서 돈을 사랑하는 사람도 아니라고 지적했습니다. 자기를 위해서는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족한 줄로 아는 소박한 사람이라고 설명을 했습니다. 착한 사람은 자기에게 좋게 하는 사람이 아니고 다른 사람들에게 좋게 하는 사람입니다. 디모데는 자기에게 좋게 하는 사람이 아니고 다른 사람들에게 좋게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는 뜻을 같이 하여 너희[빌립보교회 성도들] 사정을 깊이 생각할 자가 이[디모데]밖에 내게 없음이라”(빌2:20). 제일 좋은 사람은 착한 사람입니다. 착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 좋게 하는 사람입니다.


  셋째 착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기쁨이 됩니다.

  사람들은 착한 사람들을 좋아합니다. 착한 사람들을 기뻐합니다. 자식들도 그렇고 성도들도 그렇습니다. 착한 자식들과 착한 성도들을 좋아하고 기뻐합니다. 하나님도 착한 사람들을 좋아하시고 기뻐하십니다. 선행과 구제가 심히 많았던 도르가를 하나님이 좋아하시고 기뻐하셨습니다. 백성을 많이 구제했던 고넬료를 하나님이 좋아하시고 기뻐하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착한 사람들을 좋아하고 기뻐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가 온 것을 기뻐했다고 했습니다. “… 온 것을 기뻐하노니”(고전16:17). 저들이 자기와 성도들의 부족한 것을 보충했고 자기와 성도들의 마음을 시원케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누구보다도 믿음의 아들 디모데를 좋아하고 기뻐했습니다. 보고 싶어했습니다. 그가 착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너 보기를 원함은 내 기쁨이 가득하게 하려 함이니”(딤후1:4). “너는 어서 속이 내게로 오라”(딤후4:9). “겨울 전에 너는 어서 오라”(딤후4:21). 사도 바울이 마지막 편지 마지막 장 마지막 부분에 한 말이 바로 “어서 오라”는 말이었습니다. 착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기쁨이 됩니다. 다른 사람들의 위로가 되고 보고픔이 되고 기쁨이 됩니다. 우리는 때때로 “나 주님의 기쁨이 되기 원하네” 라고 노래합니다. 아무나 주님의 기쁨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착한 사람만이 주님의 기쁨이 될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사람들의 기쁨이 되기를 원한다고 합니다. 아무나 사람들의 기쁨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착한 사람만이 사람들의 기쁨이 될 수가 있습니다. 착한 사람이 되면 자기도 기뻐지고 자기도 행복해 집니다. 행복은 착함에 있습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좋은 사람은 착한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마지막 편지를 써 보내면서 목사와 장로와 권사와 집사들은 모두 착해야 된다고 말씀했습니다. 선한 일을 사모해야 하고 선한 일을 좇아야 하고 선한 일을 행하여야 한다고 말씀했습니다. 착한 사람이 마지막 날 주님으로부터 칭찬을 받게 된다고 예수님이 말씀했습니다. 착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잘못을 들추어내어 비난하지 않습니다. 착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 좋게 합니다. 착한 사람은 모든 사람들의 기쁨이 됩니다. 제가 이프리카도 가고 방글라데시도 가고 북한도 가고 아프가니스탄도 가고 러시아도 가고 중국도 가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여러분들을 대신해서 착한 일들을 조금이라도 하기위해서 입니다. 여러분들이 소망의 집과 광야교회와 외국인 노동자의 집을 방문하는 것도 착한 일을 하기 위해서 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착한 사람들이 되라고 분부했습니다.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6). 착한 사람들이 다 되십시다. 착한 성도들이 다 되십시다. 착한 목사님들 착한 장로님들 착한 권사님들 착한 집사님들이 다 되십시다. 그래서 마지막 날 주님으로부터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칭찬을 다 듣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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