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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낭케 전도 (눅 14:15 -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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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덕 목사 (내일교회)

한동대 총장 김영길 박사의 간증입니다.
NASA 연구원이 될 때까지는 한인교회에 출석하여 한국말도 하고 교제를 나누는 재미로 교회에 다녔는데 하루는 동료 가운데 한 명이 자기가 교회 나가는 줄 알고는 느닷없이 <화요일 마다 낮12시에 크리스쳔 기도 모임이 있소. 거기에 꼭 나오시오> 얼마나 당부를 하든지 다음 화요일 기도 모임 장소를 찾아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김박사는 그곳에서 충격을 받았습니다.
1백 50여명의 박사들이 찬송을 부르며 기도하고 있었는데
그렇게 감격과 기쁨이 넘치는 모습이었습니다.
<첨단 과학을 연구하는, 내노라 하는 그들이 이렇게 열렬한 신앙을 갖고 감격하고 있다니….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이렇게 만들었을까?>
불쑥 의문이 솟았습니다.
그와 동시에 그들 모두의 얼굴에 기쁨과 평안이 넘치고 있는 것을 여실히 느꼈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왜 저런 기쁨을 소유하지 못하고 있을까? 하고 참여한 화요일의 기도 모임이 그의 신앙에 큰 전환점이 되었다고 합니다.
<세계 최고의 석학들이 이토록 열성적인 모임을 갖고 있는 것은 기독교에 무엇인가가 있다는 증거다. 내가 그것을 찾아보자>
그래서 처음으로 성경을 펼쳤고 그때부터 자기도 넘치는 평안과 기쁨을 소유하게 되었다는 간증입니다.

오늘 본문말씀은 예수님께서 사람들이 구원 얻기 위하여는
교회가 전도해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시면서 잔칫집을 비유로 하고 있습니다.
먼저 우리 내일교회가 잔치집 교회가 되기를 바라며
2003년 11월 7-9일까지 3210 아낭케 전도 대회를 앞두고
우리의 전도의 헌신의 자세가 어떻해야 하는가? 를 깨닫는
귀한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을 우리는 복이라 합니다.
그런데 가장 귀한 복은 다 공짜로 준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준 가장 귀한 복이 나옵니다. 무엇이라 말합니까?

15절 [ 무릇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는 복되도다 ]
이 말씀의 배경을 살펴보면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바리세인의 두령의 집에 떡을 먹으려 들어갔습니다.
거기서 고창병
즉 심장, 신장 이상으로 몸이 부은 사람을 고쳤 주었을 때에
율법사와 바리새인들은 안식일 날 병 고치는 것이 합당하냐? 고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의 거만함을 빗대어
잔치집에 청함을 받거든 상좌에 앉지 말라 하시며
잔치를 배설하려거든 부자들보다 가난한 사람과 불쌍한 사람들을 청하라
그래야 만이 하나님 앞에서 상이 있다고 합니다.
이 말을 듣던 사람 중에서 하나가
[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는 복되도다 ] 하니
예수님께서 잔치집 비유를 하신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의 비유의 주제는
바로 잔치집에 청함을 받고 떡을 먹는 자가 복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 모두는 바로 복된 사람들입니다. 믿습니까?

이렇게 교회 나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구원받고
하나님 말씀을 통해 은혜 받을 수 있다는 것
축복 중에 축복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그토록 복 주시고 은혜 베푸시고 평강 주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앞에 나아온 것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예수님의 말씀은 잔치의 진정한 기쁨 맛보지 못하면 남의 허물을 찾게되고 자리에 신경을 쓰고, 친한 사람끼리 좋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적어도 외관상 보기에는 잔치집 분위기가 하등에 이상이 없습니다만
그러나 예수님이 보시기에는 이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건 위선적 신앙이란 것입니다.
오늘 우리교회는 어떻습니까? 나는 어떻습니까?
교회는 늘 잔치집이 되어야 합니다.
성도들이 교회 와서 하늘나라의 떡을 먹고 하늘의 기쁨을 맛보아야 합니다.
하늘의 기쁨을 맛보지 못한 교회는
꼭 신앙이 율법적이 되어서 남을 판단하게 되고 자리에 신경을 쓰게 되고 친한 사람끼리만 모이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이건 아니야~!」「하늘나라 떡을 먹는 자가 되어야 해!」
하늘나라 떡을 먹어야
은혜의 사람이 되어 자기를 낮출 줄도 알고 봉사할 줄도 알고
소외된 자들의 친구가 되어 남을 구원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전도하는 교회의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1) 잔치집 분위기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말씀은 예수님께서 잔치집을 배경으로 해서 비유로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교회는 무엇보다도 잔치집이 되어야 합니다.
잔치집의 특징은 밝다는 것입니다. 웃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이 다 열려있습니다.
교회는 이와 같이 잔치집이 되어야 사람들을 구원할 수 있고.
구원의 즐거움을 맛보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초상집 같은 교회가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교회에 오는 것을 부담스러워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해타산이 빠릅니다. 교회에 나가서 덕되겠나 손해나겠나?
그래서 잔치집 같은 교회에 나오려고 하지
초상집 같은 교회에 나오려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 내일교회 잔치집 같은 교회가 되시기 바랍니다.
잔치집 같은 교회 - 이것은 부흥하는 교회의 특징입니다.
그리고 성숙해 가고 축복 받는 성도의 특징입니다.

신약성경에는 다 잔치집입니다.
예수님이 길을 갈 때도 어떤 왕이 잔치를 하더니 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탕자가 돌아왔을 때도 잔치를 했다고 했습니다.
잃은 양을 찾았을 때도 드라크마 한 닢을 때도 잔치를 했다고 했습니다.
모든 복음서에 나오는 모든 세계는 잔치의 세계고,
주님 안에 거하는 세계는 잔치의 인생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바로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신 교회가 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교인들이 모인 교회는
항상 잔치집 같은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2) 전도하여 영혼을 구원하는 교회가 되자면 준비된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전도하는 교회는 소문만 나고 먹을 것이 없는 잔치집이 아니라
먹을 것이 넘치는 잔치집이라는 것입니다.
17절 [ 잔치할 시간에 그 청하였던 자들에게 종을 보내어 가로되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 하매 ]
영혼을 구원하는 교회는 준비된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에 나가서 문제있는 사람들을 초청할 준비를 다 갖추어야 합니다.
가난하고 병들고 실패하고 낙심한 자들 모두 오라고 외칠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에 오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 외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것을 기복신앙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그건 몰라서 그렇습니다.
" 다 준비되었다 "는 말이 무슨 의미입니까?
이 뜻을 잘 알아야 기복신앙이라는 말을 하지 않게 됩니다.


교회 오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말은 <4> 교회 오면 무엇이든지 내 소원대로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만나서 하나님 말씀을 들으면 살 길이 열린다는 말입니다.
믿습니까?
그래서 15절에
[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는 복되도다 ]하고 말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교회 나와서 은혜 받으면 다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은 우리가 다 준비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에 의해서 세워진 교회이기 때문에 예수님은 십자가에 운명하시면서 하신 말씀 [ 다 이루었다 ]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다 준비되었다는 말로 대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도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마11:28절에 [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
예수님은 결코 만병통치를 외치며
엉터리 약을 파는 시골장터 돌팔이 약장수 같은 분이 아니십니다.
예수님은 얼마든지 자기를 따르는 자에게
삶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분이십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창조 주시오 생명의 주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분명히 세상사람들에게 이렇게 외쳐야 합니다.
[ 다 준비되었으니 내일교회로 오십시오 ! ]

문제는 먼저 믿는 우리들이
하나님 나라의 떡을 먹고 그 맛을 본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내가 먼저 은혜를 체험해야 자신 있게
[ 다 준비되었으니 우리 교회로 오세요 ] 라고 외칠 수 있습니다.
교회는 모든 것이 다 준비되어 있습니다.
내가 먼저 말씀에 은혜 받고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느끼는 4가지 기본적인 맛은 단맛, 신맛, 짠맛, 쓴맛입니다.
4가지 기본적인 맛의 조화로 약 10,000개의 맛을 느낄 수 있다고도 합니다.
우리 얼굴에 오만가지 상이 있듯이(?) 우리 인생에게도 각각의 맛이 있습니다.
우리의 몸이 건강하지 않으면 혀가 제일 민감하게 상태를 반영하기도 합니다.
바이러스, 박테리아 감염이 되면 흰색, 노란색으로
구강과 혀에 백태가 끼게 되고 맛을 잃어버립니다.
맛과 멋은 어원이 같습니다.
그러기에 맛을 아는 사람은 멋진 사람입니다.
진정 맛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은 건강한 사람이요 멋진 사람입니다.
반대로 맛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병든 사람입니다.
교회 와서 잔치집 맛을 느끼는 건강한 교인 멋진 교인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들을 부르신 것은 우리들의 삶이 잔치 집의 삶이 되기를 바라시고 부르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이 잔치집 삶을 살지 못하면, 이상한 것입니다.
잔치집에 와서 초상집 사람처럼 지낸다면 그 사람은 정말로 이상한 사람입니다.
교회 와서 잔치집 맛을 아는 멋진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준비된 교회라는 점에서 한가지 꼭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은 다 준비하셨지마는 우리가 준비되지 못하면 붙여주지 않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준비해야 합니까?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은 바로 기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통하여 역사를 나타내기 때문에
기도하는 교회가 될 때에 하나님은 준비하신 모든 것을 나타내실 줄 믿습니다.

저는 근간에 <다섯 평 창고의 기적의 주인공>
정문식 집사의 간증을 통해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40대 초반 이레전자 정문식 집사가 자본금 50만원으로 사업을 시작해 년간 1000억 원의 매출을 올리는 기업으로 성장시킨 이야기가
‘다섯 평 창고의 기적’이란 책으로 출간됐습니다.
한양공고 전자과 졸업의 최종 학력으로 산업자원부가 주관하는 ‘신지식인’과 벤처기업 대상 수상자로 선정된 그의 삶은
가난과 눈물, 노력과 기도로 이어진 [ 현대판 요셉의 드라마 ] 입니다.
그의 성공스토리는 드라마 ‘신화’의 소재로 이용 됐고,
다큐멘타리 ‘성공시대’를 통해 TV에 방영되기도 했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 아버지를 여의고 지독한 가난 속에서 사환 공원 이발사 등을 마다하지 않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던 소년 가장이었지만 학교 공부를 병행했고 교회 출석과 교회 활동에 열심이었다.

그는 두 가지를 감사하고 있습니다.
1) 항상 잠자리 들기 전 자녀들 위해 기도하는 어머니가 있다는 것 감사하고
2) 결혼 후 공장에 다니면서 주일성수를 할 수 없어
[ 하나님 만날 수 없는 삶은 무의미하다 ] 고 생각되어
사표를 던지고 다섯 평 창고에서 사업을 시작하면서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이 준비하셨다는 뜻에서 이레전자라는 회사명을 걸었는 것
감사한다는 것입니다.
정문식 사장은 “하나님이 준비해 주셨기에 가능했던 일이지 결코
나의 지혜가 아니다”라고 겸손한 말을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다 준비하시고 계십니다.
그러니 우리는 기도함으로
여호와 이레 하나님의 축복을 누릴 줄 아는 성도들 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가 전도를 해 보면 사람들이 잘 먹혀들어 가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본문에도 보니 잔치를 다 준비해 놓고 종들을 보내어 사람들을 청하니
18절 [ 다 일치하게 사양하여 ] 라고 합니다.
그러니 전도를 받고 바로 교회 나오려는 사람 잘 없다는 것입니다.
마22:14절에
[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받은 자는 적으니라 ] 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 와서 말씀에 은혜 받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전도해 보면 또 하나님이 예비한 영혼들 있지요
거절하는 사람들 때문에 전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예비해 놓은 영혼들 때문에 전도하는 줄 믿습니다.
전도를 해 보면 확실히 하나님이
준비해 놓으시고 예비해 놓은 영혼이 있습니다.
그러니 거절하는 사람 때문에 전도하는 것이 아니라
예비한 영혼 때문에 전도해야 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왜 청함에 거절합니까?
1) 물질적인 욕망에 붙들려 있기 때문입니다.
18절 [다 일치하여 사양하여 하나는 가로되 나는 밭을 샀으매
불가불 나가 보아야 하겠으니 청컨데 나를 용서하도록 하라 ]
밭을 샀다는 말은 바로 물질에 붙들려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물질이 꼭 필요하지만
물질에 붙들리면 신앙생활 바로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물질에 마음이 빼앗기면 하나님의 말씀이 귀에 듣기지 않습니다.
우리 주변에 보면 유독 물질에 붙들린 사람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 특징은 입만 벙긋하면 돈 돈입니다.
우리가 돈, 돈 한다고 돈을 붙드는 것이 아니라
너무 돈, 돈 하다보면 사람이 살짝 돌아 버립니다.
그러면 그 눈에는 하나님도, 사람도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물질에 사로잡힌 사람은 전도도 잘 안될 뿐만이 아니라
혹 전도되어 교회에 나왔다 할지라도 돈에 실망하지 않고는
열매 맺기가 참 힘드는 것 있지요.
이런 사람들은 나중에 사업이나 장사에 실패해야 교회에 나옵니다.
2)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9절 [ 또 하나는 가로되 나는 소 다섯 겨리를 샀으매 시험하러 가니
청컨데 나를 용서하도록 하라 ]
소 다섯 겨리 즉 소 열 마리를 샀다는 것은 대단한 능력입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시험하러 간다는 것 아주 철저한 사람입니다.
즉 이 사람은 세상 살아가는데 아주 자신이 넘치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능력과 기술을 과신하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이 세상 살아가려면 남다른 지식 기술 경험 나아가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여기에 붙들려서도 안됩니다.
교인들 가운데 보면 소위 직분자들 중에서도
자녀들이 고등학교 들어가면 교회에 안 보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대학에 들어가면 교회에 보내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아이가 하나님 없는 지식과 능력에 붙들리면
이 아이의 남다른 재능 때문에 눈물 흘릴 날이 온다는 것 꼭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전도를 해보면
소위 세상에서 말하는 능력 있다고 말하는 지식인 또는 엘리트들
역시 예수 잘 믿지 않습니다.

3) 너무 가정적인 사람들도 청함에 거절합니다.
20절 [ 또 하나는 가로되 나는 장가들었으니 그러므로 가지 못하겠노라 ]
하나님의 뜻 안에서 배우자를 만나게 되고 선택하고 결혼하는 것
하나님의 은혜요 복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없는 가정의 행복은 되려 큰 불행이 될 수 있습니다.
마10:37절
[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합니다.
이 말은 가정이나 가족을 사랑하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가정이나 가족이 하나님의 은혜의 차단기 역할을 해서는 안된다는 말입니다.

이런 사람의 특징은 자신의 일 외에는 다른 것을 둘러볼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거절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우리가 어떠해야 합니까?
교인들 가운데는 몇 번 전도를 시도해 보다가 잘 안되니
마음으로 포기한 분들이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는고 하면
강권해야할 대상을 모르고 강권하다가 자신이 먼저 탈진하여 그렇습니다.
즉 강권하지 말아야 할 대상이 누구인지 바로 알아야 합니다.
나의 주변에 지금은 강권해야할 대상이 아닌 사람이 있다면
때가 될 때까지 기도하고 기다려야 합니다.

그럼 어떤 사람이 강권의 대상입니까?
21절 [ 종이 돌아와 주인에게 그대로 고하니
이에 집주인이 노하여 그 종에게 이르되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소경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 오라 하니라]
주님이 가르쳐 주신 강권의 대상은 누구입니까?
그들은 본문에서 말한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 소경들, 저는 자들입니다.
즉 이 세상에서 소외감을 가지고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이 세상에서 도저히 살아갈 자신들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참여하는 자들은
세상잔치를 끝낸 사람들이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 세상에서 물질에 붙들리고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며
자기 가정 밖에 모르는 사람들은 좀처럼 교회에 나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에서 잔치가 더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상 잔치가 끝난 사람들은 청하기만 하면 교회에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전도를 못하는 이유는
우리 주변의 너무 잘나고 똑똑한 사람을 전도하려고 하기 때문에 안됩니다.
외적 신분은 어떻든 간에 자신이 죄인인 줄 알고
부족하고 무능한 존재인 것을 깨달을 때 하나님을 찾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강권의 대상이 누구인지 바로 알아야 합니다.
마9:12-13절에 [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야 쓸데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 하십니다.
우리는 자신이 똑똑하고 능력있는 자보다
병들고 부족한 사람을 찾아 전도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럼 전도에 있어서 우리가 해야할 몫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사람들을 강권하여 데리고 와야 합니다.
강권하다 라는 말은 헬라어에 <아낭카손>이라 해서
Twist Arms 라고 번역한 영어성경도 있습니다.
팔을 비틀어서라도 데리고 오라는 것입니다.
안 오려고 해도 포기하지 말고 잘 설득하여 데리고 오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강권한다는 말은
물리적인 힘을 사용하여 강제라도 데리고 오라는 의미가 아니고
초청에 거절할지라도 친절한 자세로 끈질기게 권하여 설득시켜라 는 말입니다.
그래서 엑셀주석에는 강권하다라는 말 - 친절한 강요라 합니다.
그러나 교인들은 강권하는 전도가 아니라 권해보는 정도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신이 확실히 하나님 나라의 떡 맛을 맛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먼저 나 자신이 말씀에 은혜 받고 믿지 않는 사람들을
강권하여 교회에 데리고 나오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서라도 잃어버린 영혼을 주님 앞으로 데리고 와야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강권하기 위하여 먼저 해야할 일이 있습니다.
길과 산울가로 나가야 합니다.
여기에 길은 「호도스」라는 말로서 공용도로를 가리킵니다.
산울은 울타리를 말하고 있는데 산울가는 바로 울타리 밖을 말합니다.
그러니 21절의 거리와 골목은 성안을 말한다면
길과 산울 가는 바로 성밖을 말합니다.
성밖으로 나가서 사람들을 강권하여 데려오라고 합니다.
전도는 먼저 나가야 합니다. 찾아가야 합니다.
찾아가지 아니하고는 전도할 수 없습니다.
전도는 찾아 나서지 않고는 할 수 없습니다.
자기가 알아서 오겠다는 사람, 참 약속을 지키는 경우가 드뭅니다.
왜냐하면 마귀가 방해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강권해서 데리고 와야 합니다.

< 결론 >

중요한 것은 아낭케 전도 대해에 대한 나의 헌신입니다.
전도는 그리스도인의 궁극적인 삶의 목표요 사명입니다.
이 사명을 완수하려면 우리의 목표를 버리고
우리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의 권리, 기대, 꿈을 그분에게 양보해야 합니다.
" 하나님 제가하는 일들이 잘 되게 해 주세요 " 라는 이기적인 기도보다는 "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도록 도와 주세요 "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서명이 있는 백지를 하나님께 내밀고
나머지 구체적인 것들을 채워달라고 말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우리의 사명을 완수하는 데 헌신한다면 우리는 사람들이 거의 경험하지 못하는 방법으로 하나님의 복을 누릴 것입니다. 하나님의 왕국을 섬기는 일에 헌신된 사람들을 위해서 하나님이 해주시지 않을 일은 거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약속하십니다.
"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6:33절>
아낭케 전도헌신주일을 맞이하여
강권하는 전도에 헌신된 일군들이 많이 일어나는 내일교회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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