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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브라함의 하나님 선교의 하나님 (창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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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덕 목사 (내일교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성공적인 사람은 하나님의 부르심대로 사는 사람입니다. 그 어느 누구도 부름받은 사람만큼 행복할 수 없고
부름받은 대로 사는 사람만큼 성공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부르셨고 왜 부르셨는가에 대해 아는 것만큼 복된 것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부르심을 통해 이 놀라운 복된 삶에 눈이 뜨여지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에 아브라함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창11:10절에 나오는 족보에 의하면
아브라함은 노아의 12대 손으로 그 아버지 이름은 데라요,
아우의 이름은 나훌과 하란 입니다.(창11:26)
그리고 아버지 데라를 따라 갈대아 우르에서 화란으로 이사와서 살았고 나홀과 하란이라는 형제가 있었는데 맏내 하란은 먼저 죽고
사래라는 여자에게 장가들었는데 자식이 없더라고 합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에 대한 전부입니다.
그러니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기 전에는
너무나 평범한 사람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도 보면 하나님이 들어 쓰신 인물 가운데
하나님이 들어 쓰시기 전에 평범한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이건 무얼 말하는고 하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기 전에는 그가 어떤 인물이고 무엇을 했는가가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말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부르셨다는 말씀입니다.
서론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인생에 있어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새의 여덟 아들이 있었지마는
하나님이 말째 다윗을 부르시어 당신의 그릇으로 사용하시듯이
이 세상 많은 사람들 가운데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가 가장 행복한 자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부르심도 중요하지만
그 부르심에 순종하는 사람은 반드시 성공하는 사람이 됩니다.
여기서 한가지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31절에 <2>
아버지 데라와 함께 갈대아 우르를 떠나 하란에 거했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본래 역사를 기록할 때
인명이나 지명은 상당히 중요한 의미가 있을 때 기록을 합니다.
그렇다면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왔더라고 기록해도 좋은데 왜 여기 하란에 머문 일을 기록하고 있을 까요?
여기에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데라가 갈대아 우르에 있을 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가나안 땅으로 오는 과정 속에서
그 중간 지점인 하란이라는 곳에 머물게 됩니다.

이것은 오늘 교회 안에도 그대로 일어나고 있는 현상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일단은 교회에 나옵니다만
그러나 교회 안에 들어오지 못하고 교회 주변에 머뭅니다.
그러다가 32절에 데라 같이 생을 마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으면 교회 안까지 들어와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해나가는
행복한 삶 성공한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 되시기 바랍니다.

그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어 무어라고 명령하십니까?
1절 [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한 땅으로 가라]오늘 본문말씀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살고 있는 땅에서 떠나라는 명령으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신앙생활에 기본이면서도 굉장히 중요한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이 살던 갈대아 우르는
아브라함의 아비 데라의 집이 있는 곳. 아비의 친척들이 있는 곳입니다. 그곳은 곧 하나님을 대적하는 바벨문명의 대명사인 바벨론의 중심 지역입니다. 그리고 31절에 중간 기착지 하란은 그 바벨론 지역의 변방 도시입니다.
참으로 의미심장한 비유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곳은 비옥한 땅입니다.
그리고 4대 인류문명의 발상지이고, 문명이 매우 발달한 곳입니다.
그 대도시는 사람들이 자기의 이름을 믿고 살아가기에 좋은 곳입니다.
그곳은 인류의 욕심을 반영한 우상을 만들어 세우고
섬기는 우상종교, 세속문화가 발달한 곳입니다.
그런 곳에서는 웬만한 사람이라도 곧 물들고 함께 썩어지게 마련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곳을 떠나서
저 메마른 촌구석으로 이리저리 유랑길을 떠나가라고 하십니다.
왜? 하나님이 아비 집을 떠나라고 합니까? <3>
이 말은 [ 네가 이 세상에서 붙들고 의지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은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갈 수 없기 ] 때문에
지금 까지 삶의 습관에서 떠나라고 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이 무엇입니까? 새 생활입니다.
나 중심 물질 중심 세상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아비 집을 떠나라고 하겠습니까?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후회가 없느니라 는 롬11:29절 말씀 같이
여기에는 하나님의 놀라운 약속이 있기 때문입니다.
2절에
하나님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놀라운 약속을 하셨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이 되게 하리라.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라.
복의 근원이 되게 하리라.
모든 족속이 너로 인하여 복을 얻게 하리라.
사람은 참 까다로운 존재입니다.
사람보다 더 다루기 힘든 존재는 없습니다.
어려울 때 먹고 살 것이 없을 때는 정말 겸손합니다.
그러나 직장이 생기거나 혹은 사업이 조금 잘 되면
그 사람이 달라지는 것 있지요.
고시에라도 합격하면 그 합격증 한 장을 들고
생각이 온갖 것에 다 미칩니다.
그 종이 한 장에 아파트도 있고 고급 승용차도 있고
심지어는 행복까지 그려 넣습니다.
그리고 언제 내가 하나님 앞에 그렇게 빌었나 했을 정도로
생각이 하늘까지 높아져 눈에 보이는 것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마침내는 하나님의 간섭마저도 귀찮아하며 자기 맘대로 살아갑니다.
문제가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너무 위대하게 만들었다는데 있습니다.
여건이 안 맞아서 그렇지 우리 안에 능력은 엄청나게 숨겨져 있습니다. 맞습니다. 엄청난 능력이 우리 속에 있습니다.
그런데 착각하면 안 됩니다.
이 능력을 발휘하자면 본래 만드신 작가의 손에 붙들려져야 합니다.
사람은 사람을 만드신 하나님 손에 붙들려지면 엄청난 능력이 나타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무명의 존재 아브라함을 불러서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이름을 창대케 하고
모든 족속이 복을 얻을 수 있는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십니다.
저는 특히 복의 근원이란 말과 <4>
모든 족속이 복을 얻으리라는 이 말이 너무 실감이 나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에
아브라함 자손과 자기 집만 복 주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는 사람된다고 약속합니다.
현대 선교의 아버지 <허버트 케인>은
성경은 선교의 책이고 하나님은 선교의 하나님이다.
아브라함을 보라 !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너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이 복을 받도록 불렀다는 것입니다.
미국 갈보리 채플 <척 스미스> 목사는
[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하나님이 의도하지 않는 어떤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
이 말은 개인이든 교회이든
성도는 선교지향적인 삶을 배제하고는 결코 행복도 성공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캐나다 토론토의 피플스 교회 <오스왈드 J 스미스> 목사는
[ 교회의 주된 목적은 세계를 복음화 하는 것이다 ] 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하나님은 선교의 하나님이심을 아셔야 합니다.
아니 우리 하나님은 선교의 하나님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외국인 형제 자매들 보세요
고향 떠나 이곳까지 하나님이 인도해 주었습니다.
하나님이 왜 나를 불러썼나?
복의 근원 삼으시려고 부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문제는 오늘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과 나와 무슨 상관이 있냐는 거지요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갈3:9절 말씀에
[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
이 말씀은 예수님을 믿게 되면 아브라함의 복을 받은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요는 중요한 것은 복을 누릴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복을 누리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즉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에 어떤 반응을 나타냅니까?

4절 [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그 나이 칠십오 세였더라 ]
아브라함의 위대한 생애가 언제 시작됩니까?
나이 칠십오 세 때입니다.
지금 우리 형편으로 표현하자면 아브라함이 175세까지 살았으니
절반이 못되는 나이입니다.
그러니 지금 우리의 기력으로 말하자면 약 35세 정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전까지는 아브라함에게 이렇다할 만한 경력도 업적도 없습니다<5>
그러나 75세 때에 아브라함에게 위대한 생애가 주어집니다.
사실 75세 라는 나이가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여호와의 부름을 받아 말씀을 좇아간 때가 중요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 우리는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남들 학교 다니니 학교 다니고 남들 직장 다니니 직장 다니고
남들 결혼하니 나도 결혼하고
그렇다면 아직 나의 달력은 첫 장도 못 넘겼습니다.
언제 나의 의미 있는 삶이 시작됩니까?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붙들려질 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붙들려져 그 말씀을 좇아갈 때
나의 무명한 삶이 위대한 삶으로 바뀌어지는 것입니다.
세상 욕망에 붙들려져 있던 삶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하나님의 말씀에 붙들려져 그 말씀을 좇아갈 때 하나님은 전혀 새로운 삶을 내게 안겨다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들려 말씀을 좇아갈 때
아브라함뿐만이 아니라 조카 롯까지도 함께 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종살이하는, 감옥살이하는 요셉에게 하나님이 함께하니
주인 보디발이 은혜를 입게 되고 간수장이 은혜를 입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으면
꼭 말씀을 좇아가는 순종의 발걸음이 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좇아갔다는 말은 말씀에 즉각적으로 순종했다는 표현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제사가 아니라 순종이라고 말합니다.
특히 믿음의 순종의 사람 하나님은 반드시 그를 들어 사용하십니다.

주전 300여년 전 알렉산더 대왕은
그의 군사력 당시 세계의 거의 모든 나라들을 정복하였습니다.
어느 날 알렉산더는 작은 군단의 병사들을 이끌고
강력한 방어벽을 쌓은 한 성을 정복하려고 하였습니다.
알렉산더는 성벽 밖에 서서 큰소리로 성주를 만나겠다고 소리쳤습니다. [ 당장 항복하시오. ]
[ 내가 왜 당신에게 항복하는가? 우리의 군대가 너희들보다 훨씬 많다! ] [ 당신들이 왜 항복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보여 주겠다! ]
알렉산더는 비웃는 성주들의 뒤로하고, 군사들을 한 줄로 서게 했습니다. 그리고는 곧바로 행진을 시켰습니다.
그 앞에는 30미터가 넘는 절벽이 있었습니다. <6>
성주는 알렉산더의 행동을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았습니다.
그런데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병사들 중 가장 앞줄의 사람들이 주저하지
않고 절벽 앞에서 곧바로 벼랑 끝 바위로 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줄의 사람들 열 사람이 또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알렉산더는 나머지 군인들을 잠시 멈추게 한 뒤,
성주를 향해 뒤를 돌아섰습니다.
그리고 알렉산더는 성벽 문을 열고 항복을 하러 나오는
성주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아브라함은 바로 왕되신 하나님께 이런 순종의 사람이었습니다.

물론 우리가 하나님 말씀에 붙들린다고 해서 당장 어떻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5-6절에 보니 <6>
[ 아브라함이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는데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니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하였더라 ] 고 합니다.
마침내 하는 것은 아브라함의 결단이 대단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좇기로 결단하고
하란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들어갔는데 바로 형통하였더라 가 아닙니다. 여기에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니 라는 기록이 나오는데
날씨가 더운 사막 가운데 상수리나무 같은 푸른 나무는 아주 신성하게 여겼습니다.
그리고 모레 라는 말은 <선생 또는 예언자> 란 말로
모레 상수리나무란 예언하는 신성한 나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가나안 땅이라고 해서 갈대아 우리보다 나을 것이 하나도 없는 곳입니다.
아마 더 우상을 섬기는 땅이요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하면
하나님이 약속하신 복이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것은 아닙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내가 하루아침에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변한 것 한가지는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살아가는 부름 받은 사람은
비록 환경이 달라지지 아니한다 하더라도 변한 것 한 가지는 있어야 합니다. 뭡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따른 아브라함의 삶은 변화의 역사가 있게 되었는데 바로 여호와께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라 고 합니다.
즉 예배를 드리게 된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세겜 땅 모레 상수리 나무 아래서 단을 쌓고 <7>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는 사실은 아주 신앙적 의미가 깊은 일입니다.
그 당시는 어떤 땅이 있을 때 그것이 누구의 것이냐 하면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섬기고 있는 신의 것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땅은 바알신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그 땅을 네 자식에게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 이 땅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 하고
그곳에다 단을 쌓았던 것입니다.

이명박 서울시장이 지난 5월 31일 한 기독교단체 행사에 참석
[ 수도 서울을 하나님께 봉헌한다 ] 는 내용의 봉헌사를 낭독함으로
온 나라가 벌컥 했지요.
아직도 불교계에서는 화가 가라앉지를 않고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기독교 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있어서 안도지만
그러나 저는 목사로서 개인적으로는 이명박 시장에게 찬사를 보내고 싶습니다.
아직 까지 정치 지도자 가운데 많은 크리스천이 있지만
공적으로 하나님 운운하는 것 보지 못하였거든요.
성경적으로 보면 사실은 맞는 말인데요,

이명박 서울 시장의 '서울을 하나님께 드리는 봉헌서' 파문으로 시민들의 비판이 빗발치고 종교계가 술렁이는 상황에서 지난해 순천시의회가 순천시 기독교 성지화 조례를 통과 시켰습니다.
이 조례안을 발의한 박병선 의회의원은 인터뷰에서
[ 순천을 알리는 좋은 계기가 되지 않을까
또 관광객 유치에도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취지에서 가슴 뿌듯합니다 ] 라며 [ 이 모든 영광을 하느님께 돌립니다 ] 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진돗개 전도왕 박의원은 순천 순동교회에서 집사로 봉사하고 있으며 22명의 의회의원중 20명을 전도했다고 합니다.
그러니 순천을 하나님께 봉헌하자는 것이지요.
대구도 이런 일이 일어나야 합니다. 사실은 이 땅의 주인이 하나님 아닙니까?

아브라함은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 부근에 제단을 쌓았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그곳에 터를 정하고 살지 않았습니다.
8절 말씀을 보면 벧엘 동편으로 옮겨가 그곳에서도 또 단을 쌓았습니다.
벧엘 동편의 그곳 역시 비어 있는 공터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8절 하반절에 보면
[ 그가 그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 했습니다.
그리고 9절 말씀을 보면 [ 점점 남방으로 옮겨 갔더라 ] 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나 <8>[ 마침내 가나안에 들어갔더라 ] 했으면 이제 그곳에서 살아야 할 건데
9절 말씀은 점점 남방으로 옮겨갔더라고 합니다.
왜 점점 남방으로 옮겨갔을까?
세겜에서 단을 쌓은 아브라함은
그냥 한 곳에 머물러 살면 편했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피곤하고 번거로웠지만 벧엘 동편으로 옮겨가
그곳에서도 하나님께 단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가나안 땅 남방까지 내려갔습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이 그 땅을 영적으로 정복해 간 것입니다.
단을 쌓은 것은 지금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하나님의 땅이 되고
자기 후손들이 차지하는 땅이 될 것이라는 믿음의 표현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이 점점 남방으로 내려갔던 것은
그냥 막연히 내려갔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힘이 들었지만 하나님의 영역을 넓히기 위해 영적으로 계속 전진해 갔던 것입니다.

이라크 전쟁으로 말미암아 미국의 부시 대통령이 곤혹을 치루고 있습니다.
거기에다가 아직 한국군 파병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문제에 대해서 두 가지 견해를 말하고자 합니다.
1) 파병문제 - 미국과 우호적인 관계에서는 파병할 수 밖에 없는 정부 입장을 이해해야 합니다.
2) 그러나 미국의 부시 대통령이 세계를 지배하려는 패권주의에서
이라크 전쟁을 했다면 분명히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부시 대통령이 진정한 기독교 신자라면
무력이 아니라 복음으로서 영적 정복이 있으면
반드시 승리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왜? 그 부르심에 순종을 명하시는지 아십니까?

1) 너로 복의 근원 삼아 모든 족속이 복을 얻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2) 나중에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의 사자가 하는 말이 창18:18-19절에
[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를 인하여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 ]
아브라함을 통하여 천하만민이 복을 받게 되는 것이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신 계획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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