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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미담의 주인공 (삼하 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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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김창인 목사 (광성교회)

미담의 주인공이란 아름다운 이야기, 아름다운 사건이 전개되는 역사적 사건의 주역을 의미합니다. 역사가 계속되는 것은 여러 사건이 연속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지해야 할 것은 '역사의 주인' 과 '역사의 주인공' 이라는 말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역사의 주인은 언제나 하나님 한 분뿐입니다. 그러나 역사 속에서 사건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반드시 사람입니다.

예를 들면 영화에는 돈을 투자해서 영화를 만들어서 돈을 버는 주인이 있고, 그 다음에는 영화에 등장하는 이야기의 주연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주연을 돕는 조연이 있고, 엑스트라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의 영화 줄거리가 전개되어 나가려면 이 모든 사람이 다 필요합니다. 그러나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주인공입니다. 본문을 보면 아름다운 사건이 전개되는데 그 주인공이 누구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의 제목을 『미담의 주인공』이라 청하고 본문 가운데서 찾아보고자 합니다.


I. 보답의 주인공(1-3절)

첫째, 은혜의 보답

다윗이 가로되 사울의 집에 오히려 남은 사람이 있느냐 내가 요나 단을 인하여 그 사람에게 은총을 베풀리라 하니라(1절)

여러분! 사람들이 살아가다 보면 열 번 잘 해주다가 한 번 서운하게 해주면 열 번 잘 해 준 것은 전혀 기억하지 않고 한 번 서운하게 해준 것만 기억하고 그것만 되풀이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은혜는 쉽게 잊어버리고 원한은 오래 두고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면 다윗은 한 집안을 두고 원한도 많았고, 은혜도 많았습니다. 사울 왕은 다윗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잘못한 것이 없었지만 정치적인 이유로 다윗을 찾아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집에도 못 들어가고 들로 산으로 헤매다가 끝내는 외국으로 망명을 하고 맙니다. 그런 연고로 다윗이 사울 왕을 생각하면 원한이 사무치고도 남을 만큼 깊게 배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울의 아들 요나단은 다윗을 자기의 생명처럼 아끼며 사랑했던 은인이었습니다. 그래서 요나단은 다윗의 둘도 없는 친구요 생명의 은인입니다. 이렇게 한 집안에 원수와 은인이 함께 있었습니다. 다윗이 사울왕 때문에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당할 때마다 요나단이 감싸고 빼내고 도와주어 죽음을 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다윗은 '내가 이 은혜는 죽어도 잊지 않겠다. 내가 언제고 갚을 기회가 오면 꼭 갚으리라' 고 다짐했습니다.

그런데 사울 왕과 그 아들 요나단이 전쟁터에 나갔다가 길보아 산에서 함께 죽었습니다. 그래서 사울의 왕가는 망하였고 왕손들은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쫓겨서 외국에 가있던 다윗을 백성들이 불러들여 두 번째 왕으로 세웠습니다. 다윗이 왕이 될 때에 처음 칠년 반 동안은 유다지파 만의 왕이 됩니다. 그 후에 이스라엘 12지파를 전부 통일하는 이스라엘 왕국의 임금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20여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갔습니다. 그럴 때 다윗은 전에 몇 번이고 은혜를 입어 신세진 친구 요나단이 생각났습니다. 잊어버릴 수가 없지요. 언제고 기회만 온다면 은혜를 갚겠다고 하던 요나단이 죽었으니 이제 그 남은 식구들을 찾아 은혜를 갚겠다고 다짐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윗은 은혜를 잊지 않고 오래 기억하면서 보답할 줄 아는 보답의 주인공인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혜를 생각해보면 너무나 고마운 은혜가 많이 있지만 너무 쉽게 잊어버립니다. 그렇지만 그 때 그 감격을 잊지 말고 은혜를 오래 오래 기억하면서 하나님께 은혜를 보답하는 충성이 있어야 되겠습니다. 은혜를 망각하고 배반하는 일은 절대 있어서는 안됩니다.

토레이라는 미국의 유명한 부흥사가 어느 날 로스엔젤레스에서 부흥 집회를 하다가 예화를 하나 들었습니다. 미국과 카나다 접경 지대에 가면 미시간호라는 큰 호수가 있는데 바다처럼 끝도 보이지 않는 넓은 호수입니다. 그 호수를 왕래하던 연락선이 하루는 사람을 많이 태우고 가다가 가라앉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배에 탔던 사람들은 꼼짝없이 다 죽게 되었는데 용케도 스물 세 사람이 살아 남았습니다.

그 이유를 알아보았더니 바로 때마침 노스웨스트 대학에 다니는 수영 선수가 그 부근에 있다가 배가 침몰하는 현장을 보고는 뛰어들어 한 사람, 두 사람 건져내다 보니 스물 세 사람을 건져 낸 것이었습니다.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많은 사람들 구한 이 사람의 갸륵한 정신을 본받자고 설교하면서 예화를 들었던 것입니다. 그 예화가 끝나자마자 설교를 듣고 있던 교인 중의 한 사람이 손을 들고 '목사님!' 하고 외쳤습니다.

"목사님! 바로 그때 그 수영 선수가 접니다." 그러자 토레이 목사가 그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이 23명을 구하고 20여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 느낀 점이 무엇입니까?" 그랬더니 그 사람이 하는 말이 "20여년 세월이 지나는 동안에 단 한 사람도 고맙다 하며 찾아와 인사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느낀 점이 많았다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감사할 줄 모릅니다. 죽을 사람을 살려준 내 생명의 은인인데 평생에 한번도 감사하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마음으로는 감사했겠지요. 그러나 행함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다윗을 보십시오. 위험할 때 자신의 생명을 돌보고 감싸준 그 은혜를 잊지 않고 기억하면서 기어이 그 자식을 찾아내어 보답하며 감사하려는 것입니다. 오늘날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베풀어주신 은혜를 우리는 너무 쉽게 잊어버립니다. 그러나 오래오래 기억하면서 보답하는 감사와 충성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둘째, 실제적인 보답

본문의 말씀을 보면 다윗이 자기 신하에게 잊을 수 없는 친구요 은인인 요나단의 자손 중 살아남은 자가 없는가 알아보라고 했습니다. 신하들이 여기저기 수소문해서 알아 본 결과 사울의 종 한 사람을 찾아내었는데 그 이름은 시바라고 보고하였습니다. 다윗이 물었습니다.

"네가 정녕 사울의 종 시바가 맞느냐?" "그렇습니다." "그러면 네가 섬기던 주인의 아들 요나단의 자녀가 아무도 없느냐?" 그러자 시바가 대답하기를 "네, 한 사람이 있는데 두 다리를 절고 있는 절뚝발이입니다." "그래 지금 어디에 살고 있느냐?" "네, 요단강 건너 로드발이라는 곳에 있는 암미엘의 아들 마길의 집에서 숨어 지내고 있습니다." 그러자 다윗이 사람을 보내어 찾아 데려 옵니다.

이 내용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은혜를 입었으면 끝까지 찾아내어서 보답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집 구석구석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은혜를 찾아서 감사하고자 하면 끝이 없습니다. 얼마든지 찾아서 하나님 앞에 감사로서 충성하여 보답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 집 구석구석에서, 내 손이 닿고 발이 닿는 곳에서 하나님이 나에게 베풀어주신 은혜를 한 번 찾아보십시오. 그러면 얼마든지 감사하며 기쁨으로 하나님 앞에 충성하게 될 것입니다. 은혜를 보답하는 데는 적극적이어야 합니다.


셋째, 계속적인 보답

본문의 말씀을 보면 항상 보답하는 것이 나타납니다. 시바에게 소식을 들은 다윗은 사람을 보내어 요단강을 건너 암미엘의 아들 마길의 집에 숨어있던 생명의 은인이요 친구의 아들인 므비보셋을 데려 왔습니다. 므비보셋은 두 다리를 심하게 절고 있었기 때문에 도저히 자기 힘으로는 살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두려워 떨고 있는 므비보셋을 보면서 철천지원수인 사울을 생각할 수 있었지만 그러나 다윗은 요나단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측은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므비보셋에게 다윗은 "무서워 말라, 내가 반드시 네 아비 요나단을 인하여 네게 은총을 베풀리라. 내가 네 조부 사울의 밭을 다 네게 주겠고 또 너는 항상 내 상에게 먹을지니라" 고 하였던 것입니다. 즉 옛날 왕손의 영광을 다시 회복시켜 준 것입니다. 하루만으로 끝내자는 것이 아닙니다. 죽을 때까지 계속 은혜를 잊지 않고 보답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 같으면 한 밑천 떼서 살든지 죽든지, 망하든지 흥하든지 알아서 해라. 이렇게 한 번으로 보답을 끝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끝까지 은혜를 보답한 사람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하나님께 언제든지 변함 없이 끝까지 은혜를 감사하며 보답할 줄 아는 다윗 같은 자세를 가져야 하겠습니다.

제 친구의 이야기를 하나 하겠습니다. 이 친구에게는 누님이 한 분 계셨는데 그 누님이 결혼해서 여러 해가 지나도록 애기를 낳지 못하자 남편과 상의해서 병원에서 양자를 들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병원에 갔더니 마침 한 어머니가 애기를 낳다가 죽었다는 것입니다. 애기 아버지는 키울 수 없는 입장이라 누구에게 줄 수 없나 걱정하며 누군가가 데려가 키워주길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내외는 이 아이를 데려다 잘 키웠습니다. 공부를 마치고 장가들 때쯤 되었을 때 지방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이 청년이 자기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었는데 그 밤에 기른 어머니를 찾아 왔습니다.

어머니는 늘 살아오는 동안 아이가 이 사실을 알까봐 마음 조이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밤에 찾아온 이 청년은 생모가 아니라고 시비를 걸거나 어미니를 안 모시겠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가 하는 말이 자기 출생의 비밀을 듣는 순간 어머니가 너무 고맙고 자랑스러워서 밤길을 달려왔다는 것입니다. 다음 날 아침에 얘기해도 되지만 너무 고맙고 좋아서 찾아 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낳아 주신 어머니보다 갑절이나 더 잘 모시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장가가고 그 아내와 어머니를 잘 섬기며 재미있게 살아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낳아주신 어머니라 하면 고맙고, 길러주신 어머니라 생각하면 더 고마와서 끝까지 아들 노릇을 더욱 잘 하였습니다. 이 얼마나 귀한 일입니까? 그는 끝까지 은혜를 보답하였습니다. 우리도 끝까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이런 경우에나 저런 경우에나 늘 감사와 충성이 있어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II. 봉사의 주인공(4-5절)

첫째, 있는 것으로 봉사

사무엘하 17장 27-29절의 말씀을 보면 '다윗이 마하나임에 이르렀을 때에 암몬 족속에게 속한 랍바 사람 나하스의 아들 소비와 로데발 사람 암미엘의 아들 마길과 로글림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가 침상과 대야와 질그릇과 밀과 보리와 밀가루와 볶은 곡식과 콩과 팥과 볶은 녹두와 꿀과 버터와 양과 치즈를 가져다가 다윗과 그 함께 한 백성으로 먹게 하였으니 이는 저희 생각에 백성이 들에서 시장하고 곤하고 목마르겠다 함이더라'고 하였습니다.

로드발은 마하나임 지방에 속해 있고 요단강 건너 압복강 나루터를 건너가기 전에 있는 지역인데 예루살렘에서는 상당히 먼 거리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압살롬의 반란을 피해 요단강 건너 마하나임 지방으로 피난을 갔을 때 세 사람이 함께 다윗을 도와 주었다는 것입니다.

이 때는 압살롭의 반란이 거의 성공하여 승리가 눈앞에 보일 때였습니다. 그런데 마길은 자기 지역으로 도망온 다윗 왕을 도와주었습니다. 이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며 패자를 돕다가 어떻게 되리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마길은 다윗을 잘 섬겼습니다. 또 마길에게는 달리 가진 것은 없지만 농사를 지어 얻은 곡식이 있었는데 이것을 가지고 다윗 왕과 그 일행이 반란을 평정하고 왕궁으로 돌아가기까지 잘 섬겼습니다.

여러분! 이 사실이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은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고, 우리의 왕 되신 여호와를 섬길 때에도 우리에게 있는 그것을 가지고 섬기면 된다는 것입니다. 재물이 있는 사람은 재물로 섬기고, 건강한 몸이 있으면 그 몸으로, 성대가 좋은 사람은 찬양으로, 손재간이 좋은 사람은 그 재능으로, 또 머리가 총명한 사람이면 그 아이디어로 봉사하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나에게는 없고 타인에게 있는 것을 가지고 봉사하려고 하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원하지도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있는 것을 가지고 봉사하였던 마길의 이 점을 오늘 우리들도 배워야 할 것입니다.


둘째, 기회를 따라 하는 봉사

본문의 말씀을 보면 "왕이 저에게 묻되 그가 어디 있느냐 시바가 왕에게 고하되 로드발 암미엘의 아들 마길의 집에 있나이다." 이것은 사울의 종인 시바가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이 숨어 있는 곳을 말하는 내용입니다. 사울과 요나단이 한 전투에서 죽게되자 그 자손들은 흩어지고 쫓겨가서 발 붙일 곳이 없게 된 므비보셋이 로드발까지 도망쳐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므비보셋은 불구자였기 때문에 제 힘으로는 살아갈 수가 없는 불쌍한 처지였습니다. 그럼에도 마길은 므비보셋을 끝까지 잘 돌보아 주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마길은 도움을 청하는 므비보셋을 도왔고, 그 후에는 다윗이 도망쳐 왔을 때도 도왔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봉사하는 곳에는 반드시 마길이 등장했습니다. 봉사를 하는데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으며 기회를 따라 봉사했던 것입니다.

헬라의 전설 중에 "그리스도를 업은 사람" 이란 별명을 가진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힘이 무척 강했기 때문에 유명한 스승 밑에 가서 잘 배워 크게 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장사를 찾아갔습니다. 그 장사가 자기를 부하 삼아 휩쓸고 다니니 신이 났습니다. 그런데 그 장사가 한번은 악마란 말을 들으니까 깜짝 놀라며 두려워 떨었습니다. 그러자 '아! 내 스승보다도 힘이 센 놈이 있구나. 그렇다면 악마의 제자가 되어야겠다.' 하고 자기 스승한테 사표를 냈어요. 그리고 악마와 함께 못된 짓을 골라 하면서 천지를 휩쓸고 다니니 또 신이 났습니다. 그런데 악마가 지나가다가 십자가를 보기만 하면 벌벌 떨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아! 우리 악마 선생보다 더 강한 것이 십자가로구나'라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주인이 누구인가 알아보니 바로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이것을 안 장사는 악마한테도 "나 당신 제자 안 하겠오" 하고 예수를 찾아 다녔어요. 그런데 그 예수가 어디 있어야지요. 천지 방방곡곡을 다녀봐도 예수 그리스도는 못 찾겠으니 까 사람이 많이 지나다니는 곳에 막을 치고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그곳은 큰 강가 나루터인데 막을 치고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살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강은 배를 타고 건너는 것이 아니라 업어 건너는 강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아침이든 점심이든 저녁이든 밤중이든 강 건너 사람이 소리치면 달려갔습니다. 그저 하루 종일 사람만 건네주며 혹시 그리스도가 아닌가 하고 그렇게 세월을 보내고 있는데 예수님을 만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비가 오고 바람 부는 어느 날 밤중에 한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급해서 그러니 업어서 강을 건너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업어서 건너는데 처음에는 가벼웠어요. 그런데 강 가운데로 갈수록 점점 무거워 지는데 태산을 업은 것 같이 무거워 졌습니다. 그러자 장사는 "여보시오! 당신은 처음에는 가벼웠는데 왜 이렇게 점점 무거워지는 겁니까?" 하고 물으니 그 업힌 사람이 "내가 만민의 죄를 다 지고 있으니 얼마나 무겁겠나 생각해 보아라" 하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럼 당신은 누구요?" 하고 물으니 "나는 그리스도다." 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가르칩니까? 필요로 하는 사람, 봉사하는 사람에게 그리스도는 나타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봉사하는 시간, 봉사하는 장소에서 그리스도를 만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봉사의 주인공을 보십시오. 마길이라는 사람은 봉사하는 자리에는 꼭 참여합니다. 봉사하는 기회는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마길의 봉사는 우리가 배워야 하는 봉사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셋째, 조건 없는 봉사

5절 말씀을 보면 "다윗 왕이 사람을 보내어 로드발 암미엘의 아들 마길의 집에서 저를 데려오니" 하였습니다. 마길은 10여년 가까운 세월 동안 그 절름발이 므비보셋을 숨겨주고 섬겼던 것입니다. 그리고 다윗이 이 사람을 데려갈 때에도 수고했다고 하여 어떤 다른 보답을 바라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마길은 아무 조건 없이 도와야 할 사람을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가지고 돌보며 묵묵히 섬겼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고, 우리가 주님께 봉사할 때에도 조건과 까닭 없이 봉사해야 됩니다. 우리도 마길처럼 어떤 조건과 대가를 바라지 않는 순수한 봉사를 배우라는 성경의 가르침인 줄 믿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마길은 봉사의 주인공인 것입니다. 봉사의 주인공은 있는 것으로 봉사, 기회를 따라 봉사, 조건 없이 봉사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런 봉사의 주인공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III. 은혜의 주인공(6-8절)

첫째, 아버지의 은혜

은혜의 주인공은 므비보셋, 즉 요나단의 아들인 절뚝발이 므비보셋입니다. 이 사람의 은혜는 아버지를 잘 만난 은혜입니다. 6, 7절을 보면 "사울의 손자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이 다윗에게 나아와서 엎드려 절하매 다윗이 가로되 므비보셋이여 하니 대답하되 주의 종이 여기 있나이다 다윗이 가로되 무서워 말라 내가 반드시 네 아비 요나단을 인하여 네게 은총을 베풀리라" 고 하였습니다. 므비보셋은 절뚝발이인 지라 제 힘으로는 살아갈 수가 없는 사람인데 아버지 요나단 때문에 다윗에게 은혜를 얻게 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아버지의 덕을 톡톡히 본 것입니다.

우리가 신령한 하나님 아버지를 잘 만난 은혜 또한 얼마나 크고 귀한 일입니까? 만일 석가모니를 만났으면 어떻게 될 뻔했습니까? 하나님을 만나 하나님의 아들 딸이 된 것이 얼마나 귀한 지 모르겠습니다. 므비보셋처럼 우리도 하나님 아버지를 만난 것이 큰 은혜라는 것을 언제나 명심해야 합니다.

둘째, 왕의 은혜

은총이란 왕이 백성에게 베푸는 사랑을 말합니다. 7절 말씀을 보면 "네 아비 요나단을 인하여 네게 은총을 베풀리라 내가 네 조부 사울의 밭을 다 네게 도로 주겠고," 이것이 왕이 베푸는 은총입니다. 왕이 나에게 은총을 베풀어준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받을 수 있는 최상의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왕의 은총을 입었고 덕과 낙을 입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본문의 내용은 우리에게 영적으로 어떤 교훈을 주는 것이겠습니까? 이 말씀은 우리의 신령한 왕,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천지간에 우리들에게 베풀어주시는 은혜를 우리가 힘입는다는 것을 예표로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영원한 은총이요,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겠습니다.


셋째, 영원한 은혜

7, 8절을 보면 "또 너는 항상 내 상에서 먹을지니라 저가 절하여 가로되 이 종이 무엇이관대 왕께서 죽은 개 같은 나를 돌아보시나이까" 하였습니다. 므비보셋이 평생을 왕과 함께 왕궁에 거하며 왕의 즐거움과 왕의 영화를 함께 누리는 엄청난 은혜를 받은 것은 어떠한 대가로 된 것이 아닙니다. 므비보셋에게 있다면 그것은 오직 아버지 요나단 때문에 받은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에게 영적으로 주는 교훈이 있습니다. 만왕의 왕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영원한 하늘나라 왕궁에서 왕의 즐거움에 우리를 참여시켜 그 즐거움과 영화를 영원히 누리게 한다는 하나님의 약속인 줄 믿어야 합니다. 이 므비보셋의 은혜가 바로 우리가 받고있는, 또 앞으로 받을 은혜입니다. 즉 은혜의 주인공이 바로 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은혜의 주인공은 아버지의 은혜, 왕의 은혜, 영원한 은혜를 받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아름다운 이야기가 주인공들은 보답의 주인공, 봉사의 주인공, 은혜의 주인공들이었습니다. 오늘에는 여러분들이 미담의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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