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다윗의 일생(6) : 목적이 있는 삶 (삼상 18:6~16)

  • 잡초 잡초
  • 524
  • 0

첨부 1


-  홍문수 목사 (신반포교회)

시골 청년이 서울에 올라와 공부하다 잠시 고향에 내려갔습니다. 이제 철이 든 그는 고생하시는 아버지 농사일을 돕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쟁기질을 해봅니다. 그런데 이리 삐뚤 저리 삐뚤거립니다. 밭두렁에 앉아 지켜보던 아버지가 소리칩니다. “얘야, 그냥 무작정 하지 말고 기준이 될 만한 목표물을 보면서 해야지.” 그 말은 듣고 청년은 건너편에 서 있는 소를 보면서 쟁기질을 합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여전히 삐뚤거립니다. 그러자 아버지가 껄껄 웃으면서 말씀합니다. “소는 움직이잖아.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면서 해야지. 저쪽 느티나무 보면서 해 보거라.” 그 말을 듣고 그대로 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신기하게도 똑바로 밭을 갈 수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생에는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인생의 목적과 관련하여 세 종류의 인생을 상정해 볼 수 있을 겁니다. 첫째 스타일은 아무런 목적도 없이 살아가는 인생입니다. 그 날 그 날 되는 대로 살아가는 인생으로 가장 어리석은 모습이죠. 둘째 스타일은 목적이 있으되 잘못된 목적을 갖고 살아가는 인생입니다. 이 경우는 그 목적을 설사 이룬다 하더라도 후회스럽고 허무한 인생이 되고 맙니다. 셋째 스타일은 올바른 목적을 갖고 살아가는 인생입니다. 이런 사람은 인생을 바르게 살아갈 수 있고, 마침내 승리하게 됩니다. 그 결과 영원히 후회 없는 인생, 의미 있는 인생이 됩니다. 이 세 가지 가운데 바람직한 인생의 모습은 무엇일까요? 두말 할 것이 세 번째겠죠. 우리가 함께 살펴보고 있는 다윗의 인생이 바로 세 번째 스타일에 속합니다. 그래서 그의 인생을 가리켜 ‘목적이 있는 삶’이라고 규정할 수 있습니다. 이 시간 다윗의 인생에 관해 살펴보면서 저와 여러분도 목적이 있는 삶으로 후회 없는 인생, 의미 있는 인생, 영원히 아름다운 인생을 만들어 가시기 바랍니다.

[1] 사울의 인생 목적 vs. 다윗의 인생 목적 : 눈앞의 세속적인 성공 vs. 하나님의 영광

많은 사람들은 인생의 목적을 세속적인 성공에 두고 살아갑니다. 사울 왕이 그 전형적인 인물입니다. 반면에 다윗은 인생의 목적을 하나님의 영광에 두고 살았습니다. 사무엘上 의 기록을 보면 이 두 사람의 인생이 대조적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① 사울의 인생 목적 : 맨 처음 그가 왕이 될 때는 이스라엘에 왕도 없었고, 그 역시 왕이 되는 것은 꿈도 못 꿨습니다. 그런데 일단 왕이 되고 난 후에는 날이 갈수록 세속적인 욕망에 집착하게 됩니다. 성경을 살펴보면 그는 권력욕, 명예욕, 그리고 물질욕에 사로잡힌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i) 권력욕 - 일단 권력의 맛을 본 사람은 그것은 놓기 힘들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울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가 계속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자 하나님이 그를 폐위시키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미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차기 왕으로 예비해 두셨습니다. 동시에 다윗이 왕이 되는 과정을 하나하나 밟아 가십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사울 왕에게 불려가 궁중 악사 겸 왕의 비서관이 됩니다.(삼상16:14~23) 그러던 중 전쟁터에 갔다가 골리앗을 만나 승리합니다.(삼상17:1~54) 이 일을 계기로 백성들에게 크게 인정받게 됩니다. 사울 왕은 그를 군대의 장(고급 장교)으로 임명했고, 계속 성과를 보임으로 백성들과 신하들 사이에 인기가 높아갔습니다.

그런데 결정적인 사건이 생깁니다. 오늘 읽은 본문 6절에도 보면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혁혁한 전과를 올린 후 개선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때 문제가 생긴 겁니다. 다윗의 인기가 치솟고, 백성들은 그를 높이 칭송합니다. 7절 보면, 사울에게는 천천(수천)이요 하고, 다윗에게는 만만(수만)이요 하면서 환호합니다. 그러자 사울의 반응이 어떻게 나타납니까? 8절 보니까, 그는 심히 불쾌하게 생각하며 분노했습니다. 물론 백성들이 지혜롭지 못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질서라는 게 있는데 말이죠. 하지만 다윗 본인의 태도가 중요하잖아요. 다윗은 지금 하나님께, 국가에 충성하는 동시에 사울 왕에게 충성을 다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샅샅이 읽어봐도 그가 왕권을 미리 탐낸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그는 아주 순수한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사울이 혹 기분이 언짢았어도 다윗을 직접 해쳐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천부당만부당한 일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는 권력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무리수를 둡니다. 10절~11절 보면, 악신에 들려서 다윗에게 창을 던져 죽이려 합니다. 다행히 미수에 그치고 맙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갈수록 여러 가지 교활한 방법으로 다윗을 죽이려 합니다.

13절 보면, 사울은 다윗을 천부장으로 발령을 냅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왕궁에서 전방 사단장으로 방출한 겁니다. 겉으로 보면 승진이지만 내막으로는 전쟁을 치루다 적군의 칼에 맞아 죽으라는 거죠. 그러나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오히려 승승장구합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미인계를 씁니다.(17절~21절) 장녀 메랍을 줄 테니 열심히 싸워 전과를 올리라고 말합니다. 다윗이 “내가 감히 어떻게 왕의 사위 부마(駙馬)가 됩니까?” 하면서 사양하자 메랍을 다른 데로 시집보냅니다. 그런데 마침 차녀 미갈이 다윗을 좋아하는 기미가 보이자 이번에는 미갈을 주겠다고 말합니다. 당시 결혼 풍습으로는 폐백(신부 집에 보내는 예물)을 마련해야 하는데 다윗은 가난하고 비천한 집안 출신이라 못한다고 하니까 신하들을 시켜 집요하게 설득합니다. 순진한 다윗에게 블레셋 사람 양피 100개를 가져오면 사위 삼는다고 제안합니다. 다윗은 왕의 말씀이고, 굳이 거절할 이유도 없고, 나라에 충성하는 것도 되고 ... 이래저래 전투에 나갑니다. 그러나 이것이 사울의 계략이었습니다. 블레셋과 싸워 군사들의 양피 100개를 가져오려면 치열한 전투를 벌여야 합니다. 그 와중에 다윗이 적군의 손에 죽기를 바랐던 겁니다. 그런데 다윗이 기한 전에 그 두 배인 양피 200개를 가져옵니다. 사울은 이도 저도 여의치 않자 나중에는 공개적으로 다윗을 죽이려고 작심하고 나섭니다.(19장 이하) 결국 다윗은 핍박을 피해 망명길을 떠났고, 그 후 10여 년간 고난의 세월이 시작됩니다. 이런 과정을 보면서 사울이 얼마나 권력에 집착이 강한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ii) 명예욕 - 사울은 권세욕과 더불어 명예욕이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에게 환호하는 것을 보고 시기한 것은 그의 명예욕의 일단을 보여줍니다. 특히 사무엘上 15장을 보면, 아말렉과 싸울 때 진멸하라고 했는데 아각 왕을 생포합니다. 그 이유는 백성들에게 과시하려고 한 겁니다. 그리고 전쟁 후 자기를 위해 기념비를 세우기도 했습니다.(삼상15:12) 살아생전에 자기 동상 세운 사람치고 잘 되는 사람이 없는데 정말 한심한 일입니다. 승리케 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지는 못할망정 ... 그는 그마만큼 명예욕이 강했던 사람입니다.

iii) 물질욕 - 사울이 아멜렉과 싸울 때 하나님은 모든 물품을 다 태워버리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우상 숭배에 물들지 않도록 하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그런데 좋은 양과 염소 등은 남겨두었습니다.(삼상15:9) 나중에 사무엘이 책망하자 제사용으로 남겨두었다고 핑계대지만 사실은 욕심이 났던 겁니다. 장녀 메랍을 다윗에게 준다고 해놓고 중간에 다른 데 시집보낸 것도 사실은 고액의 폐백 때문이 아닌가 짐작됩니다.

이처럼 사울은 온통 세속적인 것을 삶의 목적으로 삼았습니다. 그것들에 집착했고, 수단과 방법도 가리지 않고 그것들을 얻으려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 인생은 갈수록 망가져 갔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교훈을 얻게 됩니다. 잘못된 목적, 세속적인 것들을 인생 목적으로 삼으면 반드시 인생이 요동하고 망가져버린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그런 것들은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런 것들은 단지 수단이나 도구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을 인생의 목적으로 잘못 설정하면 여러 가지 부작용이 생깁니다. 인간성도 버립니다. 시기, 질투, 증오, ... 그리고 결국은 모든 것을 잃고 맙니다. 설사 다 얻는다고 해도 결국은 허무해집니다. 인간의 영혼은 세속적인 욕망을 채운다고 만족해지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성경에서 사울의 말로를 보잖아요? 악신에 들어 우울증과 정신착란증에 빠져 살다가 마지막에는 비참하게 전사합니다.

약1:14~15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잘못된 목적을 놓고 욕심을 부리다 보면 시험에 빠지고 범죄하고 결국은 멸망하는 게 당연한 인생의 이치라는 겁니다. 마치 낚시질과 같습니다. 낚시꾼이 바늘에 미끼를 끼우고 낚시질을 합니다. 물고기는 어리석게도 눈앞의 미끼만 보일 뿐, 그 이후에 관해서는 전혀 생각질 않습니다. 어리석인 인생도 그런 식으로 살아갑니다.

이솝 우화 가운데 「파리와 나방」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배가 고픈 파리가 맛있고 향기로운 꿀단지를 발견합니다. 처음에는 꿀단지의 언저리를 돌면서 조심스레 꿀을 빨아먹다가 나중에는 아예 꿀단지 속으로 들어갑니다. 한참 먹다 보니까 날개가 꿀 속에 처박혀 꼼짝을 못하게 됐습니다. 안간힘을 쓰고 있는 파리를 보고서 날아가던 나방이 조롱을 합니다. “야, 이 바보야! 꿀이 그렇게 좋냐?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꿀을 먹다 빠져서 죽을 줄도 모르고 ... ” 파리는 아무런 할 말이 없었습니다. 이윽고 밤이 됩니다. 나방이 촛불을 보자 그 주위를 빙빙 돌면서 불빛의 화려함에 취해 점점 더 가까이 나아갑니다. 마침내 촛불에 타서 죽어갑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파리가 조롱합니다. “야, 이놈아! 내가 바보면 너는 바보하고도 멍청이다!” 사람들도 다 이렇습니다. 남이 잘못 가는 건 옆에서 잘 봅니다, 그런데 정작 자기 자신이 잘못 가는 건 모르고 살다가 결국 망하곤 합니다.

② 다윗의 인생 목적 : 다윗은 하나님이 왕으로 예비해 두셨지만 자기 스스로는 왕이 되겠다고 야심을 갖고 달려들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보다 본질적으로 인생의 바른 목적을 갖고 살았습니다. 그는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았던 것입니다.

이것은 비단 다윗 개인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닙니다. 모든 인생의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에 맞춰져야 합니다. 사43:7 보면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인생을 창조하신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는 겁니다. 그리고 범죄하고 타락하여 죽을 인생을 십자가 보배피로 구속한 목적 역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입니다. 고전6:19~20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우리 인생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도구입니다. 롬6:13 보면 인생이 ‘의의 병기’ 혹은 ‘불의의 병기’로 사용된다고 말씀합니다. 병기는 ‘무기’라는 말이지만, 영어 성경을 보면 instrument 곧 ‘도구’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악기’라는 뜻도 있는데 악기 비유로 설명하면 이해가 빠릅니다. 예를 들어 아무리 고가품 명품 바이올린이라도 연주자가 중요합니다. 철부지 아이가 장난삼아 연주하면 듣기 싫은 소음을 내는 깽깽이가 됩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살아갈 때 가장 아름다운 인생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삶의 모든 게 하나님의 영광에 초점 맞춰져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심지어 뭐라고 말씀합니까? 롬14: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고전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다윗이 그랬습니다. 그는 무엇을 하든 그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이었습니다. 골리앗과 싸우게 된 이유도 바로 이겁니다. 사람에게 인기를 끌기 위함도 아니고, 무슨 관직을 얻기 위함도 아니었습니다. 삼상17:26,46 보면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의 말을 들어 봅시다. “ ... 이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이 누구관대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겠느냐 ...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붙이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로 오늘날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 ”

본문에서도 보면 그는 다른 의도나 목적이 전혀 없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주어진 위치에서 묵묵히 충성을 다할 뿐 전혀 욕심 부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뒤에 보면 망명 생활 중 피신하다 사울 왕과 마주쳐 결정적으로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있을 때 번번이 그를 살려준 것을 봐도 알 수 있습니다. 그가 욕심을 부렸다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다윗을 심히 기뻐하셨습니다. 마침내 그는 승리했고 하나님의 뜻대로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신정적(神政的) 왕이 된 것입니다. 왕이지만 자기 마음대로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그 영광을 위해 순종했습니다. 그러니까 그에게 있어 왕권이나 기타 세상 것들은 그저 도구에 불과했습니다. 그것을 갖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게 그의 인생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왕이 되든 말든 그것은 상관없었습니다. 성경을 잘 보면 다윗이 왕이 되기 전이나 왕이 된 후에나 같은 모습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2]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사람의 축복 : 하나님의 동행과 승리, 그리고 기쁨

다윗이 이처럼 하나님의 영광에 인생의 목적을 두고 살아갈 때 하나님은 그를 심히 기뻐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축복하십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축복이었나요?

① 하나님의 동행 : 본문 12절. “여호와께서 사울을 떠나 다윗과 함께 계시므로 ... ” 14절. “ ...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시니라” 28절. “여호와께서 다윗과 함께 계심을 사울이 보고 알았고 ... ” 가장 큰 축복이 이겁니다. 하나님이 동행하면 모든 게 다 있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② 승리의 삶 : 본문에 보면 다윗이 지혜롭게 행했다는 말이 반복되는데(5절, 14절, 15절, 30절), 이 말은 히브리어로 ‘샤칼’입니다. 그 뜻은 성공적으로 처신한다는 것으로 다윗이 번번이 성공을 거두며 살았다는 겁니다. 마6:33 보면 예수님도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하나님의 나라와 의, 이것이 곧 하나님의 영광 아니겠습니까? 매사를 하나님의 통치 가운데,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더하신다고 했습니다.

얼마 전 신문을 보니까 멜 깁슨(영화 「Passion of the Christ」의 감독)에 관한 기사가 낫습니다. 미국의 잡지 「포브스」에서 금년에 영행을 가장 많이 끼친 세계적 명사 100명을 선정했는데, 그 중에 1위가 바로 ‘멜 깁슨’입니다. 그는 이 영화로 2억 1천만 달러의 수입(2,400억원)을 올렸다고 합니다. 돈 많이 벌었다고 이야기하는 게 아닙니다. 그는 본래 영화를 제작하면서 투자자도 없어 사재를 털었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수난을 사람들에게 알림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를 얼마나 기뻐하셨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목적 삼고 사는 인생을 반드시 승리합니다.

그리고 혹시 고난을 당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동행하심으로 승리합니다. 사무엘상 19장 이하 마지막 장까지 다윗의 망명 생활 기록을 보면 영화로 만들어도 스릴 만점일 겁니다. 온갖 위기가 닥쳤지만 하나님은 그를 보호하시고 건져내셨습니다. 따라서 아무 염려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에 초점을 맞추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승리는 여러분의 것이 될 줄로 믿습니다.

③ 기쁨 :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은 늘 기뻐하며 삽니다. 그 기쁨은 보람을 느끼는 데서 나옵니다. 이것은 세상의 쾌락이나 즐거움과 다른 겁니다. 세상 것은 일시적입니다. 조건이 충족되면 잠시 즐겁지만 잠시 후면 또 다시 지루해지고 곤고해집니다.

다윗은 왕궁에서만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망명 생활 중에 온갖 고난을 당하면서도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그도 사람인지라 괴로워하기도 했겠죠. 그러나 그 가운데 하나님이 주시는 참 기쁨을 맛보았던 것입니다. 그 증거가 무엇입니까? 다윗의 많은 시편들 중에 명명 생활 중 고난 가운데 쓴 게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혹자는 기쁨이 좋은 조건이 갖춰지면 얻어지는 줄 압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광에 초점을 맞추면 기쁘고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인생은 아주 짧습니다. 우물쭈물하면 헛되어 지나가 버립니다. 시103:15~16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 그것은 바람이 지나면 없어지나니 ... ” 오직 영원한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겁니다. 요일2:15~17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분주한 일상 속에서 살다보면 엄벙덤벙 세월이 지나갑니다. 벌써 금년도 절반 이상 훌쩍 흘러가지 않았습니까? 금년 여름 휴가철이 들도 산으로 강으로 바다로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잠시 멈추어 인생의 목적에 관해 묵상하는 기회를 가져보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정말 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왔는가? 다시 한번 인생의 목적을 잘 조율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우리가 꼭 해야 할 영적 조율(Spiritual Tuning)입니다. 그래서 모쪼록 다윗처럼 ‘목적이 있는 삶’을 사셔서 진정으로 후회 없는 인생,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인생을 가꾸어 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