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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당신은 성숙한 신앙인입니까? (엡 4: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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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주철 목사 (영신교회)

사오정이 어느 날 영어 캠프 학원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하루는 영어 캠프 학원에서 집으로 돌아오던 사오정이 길목에서 저팔계를 만났습니다. 팔계를 만나자 마자 오정이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아, 팔계야. 너 어금니가 영어로 뭐라고 하는 줄 알아?"
영어 실력이 짧은 저팔계가 알리가 없습니다. "아니" 사오정이 아주 당당하게 대답을 합니다. "몰라다. 몰라∼."
순간 어금니가 영어로 뭔지는 모르지만 '몰라'는 절대 아니라고 생각한 저팔계가 말했습니다. "웃기네. 어금니가 무슨 몰라냐?"
"아냐, 몰라 맞아. 내가 어제 할머니한테 어금니가 영어로 뭐냐고 물어 보니까 '몰라'라구 그랬어."
그러자 답답해하던 저팔계가 갑자기 옆에 있던 손오공에게 물었습니다. "오공아, 어금니가 영어로 몰라야? 아니지? 뭐야?"
아무 생각 없이 둘 사이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손오공이 당황스러워 하면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몰라!"
손오공의 말에 의기양양해진 사오정이 이렇게 말합니다.
"거봐! 몰라 맞잖아!"

그런데 여러분, 사실은 어금니를 영어로 말하면 '몰라'가 맞습니다. 영어로 'molar'를 어금니라고 합니다. 한번 웃자고 한 이야기입니다. 사실 웃을 수 있다는 것은 우리 인간에게 주신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사람이 소유하고 있는 가장 큰 가치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준 가장 큰 보배요, 선물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데에는 천재도 없고 둔재도 없습니다. 가난한 자도 없고 부자도 없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면 이 각박한 세상에서 삶의 여유를 찾을 수가 있습니다. 영혼의 여유를 찾는 자가 이 땅에서 귀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이 땅에는 영혼의 기갈에 걸린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심령에 기근이 왔습니다. 그 얼굴에 생기가 말랐습니다. 마음에 기쁨이 없습니다. 생활에 행복이 없습니다. 늘 불안과 염려와 근심과 초조 속에서 삶의 보람도 의미도 없이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왜 그럴까? 그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없는 한, 하나님의 생기가 없는 한 향기 없는 꽃과 같습니다. 기억하십시오. 내 인생이 하나님의 손에 붙잡히기까지는 내 인생의 의미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화초도 햇빛을 보지 못하면 시들시들해 집니다. 마찬가지로 사람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면 시들시들해집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사랑의 하나님께서 나를 만져주시기를 기도하십시오. 독생자를 주신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오늘 이 시간 온 몸으로 느끼고 경험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어느 시대에나 하나님은 사람을 필요로 하십니다. 홍수가 났을 때에 마실 물이 더 없습니다. 사람이 많다고 해서 하나님이 쓸 사람이 많은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을 필요로 하십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일어나 하나님의 세계에 대한 이상과 희망과 포부를 안고 내 영혼에 믿음의 캠프를 치십시오.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이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예배를 드릴 때에 나를 통해서 만들어 가실 하나님의 도성을 그리십시오. 하나님의 손길에 붙잡혀서 순종하는 나를 통하여 이루고자 하시는 축복의 새 땅을 그리십시오. 다시 말씀합니다.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이 나타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위대한 계획을 저지르십시오. 하나님을 위하여 위대한 꿈의 실행자가 되십시오. 하나님과 함께 위대한 삶의 발걸음을 옮겨 보십시오. 꿈이 없으면 백성이 망합니다. 꿈이 없으면 생명이 초라해 집니다.

성공이라고 하는 것은 항상 가능성을 믿는 사람들 편에 서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항상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사람들 편에 서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이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십시오. 하나님으로부터 축복 받을 일을 하십시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할 수 있는 열정을 마음에 품으십시오. 내 마음에 이 열정도 없다면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이여, 내 마음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할 수 있는 열정을 주옵소서."

가만히 보면, 오늘 이 땅에는 하나님 앞에 버림받은 심정으로 광야같은 인생을 허우적거리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믿고 교회에 다니며 신앙생활을 한다지만 그러나 허탈한 신앙의 길을 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싫어하시고 미워하는 행동을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래서 술에 취하여 비틀거리며 거리를 방황합니다. 눈의 정욕에 이끌려서 쾌락을 쫓아 불나방처럼 발버둥을 칩니다. 인생의 진정한 목적도 잃어버린 채 이리 갈까, 저리 갈까 방황합니다. 모두가 병든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내 믿음을 더욱 철저하게 관리하시기 바랍니다. 내 마음을 더욱 굳세게 붙잡아서 주님께로만 향하시기 바랍니다. 패역한 이 세대를 이길 수 있는 힘은 믿음 밖에는 없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십시오. 이 썩고 무너지는 세상을 바로 고치고, 바로 세울 수 있는 힘은 성령의 능력 밖에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서 이 썩어져 가는 패역한 세대에 등불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믿음의 사람은 성령의 능력을 받아서 교회에 영적인 역사를 일으킵니다. 살아있는 그의 믿음이 가정을 세우고 교회를 일으킵니다. 오늘 저는 우리 모두가 매일 결심만 하다가 끝나는 어리석은 인생이 아니라 행동하여 변화 받는 믿음의 승리자가 되어 주시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고민을 좀 해 보십시오. 내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을까? 내가 어떻게 살아야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감화를 줄 수 있을까? 내가 어떻게 해야 내 가정이 복을 받고, 내 교회를 부흥시킬 수 있을까?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 이 아름다운 고민을 좀 해 보십시오. 시시콜콜한 세상적인 고민을 하지 말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행복한 고민을 좀 해 보십시오.

일반적으로 화학 작용이 있는데 거기에 화학의 원소 하나를 바꾸었더니 100여 가지의 원소가 완전히 싹 바뀌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한 두 사람이 들어오면 그 전체가 바뀝니다. 가슴이 뜨거운 사람이 들어오면 전체가 뜨거워집니다. 그러나 썰렁한 사람이 들어오면 전체가 썰렁해 집니다. 성령이 충만한 사명자가 들어오면 전체가 성령이 충만해 지고 모두가 사명을 붙잡습니다. 그러나 세상적인 쾌락에 젖어 있는 사람이 들어오면 전체도 그렇고 그런 사람들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여러분은 어떤 부류의 사람입니까? 저는 여러분 한 사람이 백을 당하고, 백이 천을 당하는 거룩한 성령의 불씨가 되어주시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이 들어가는 곳마다, 여러분이 머무는 곳마다 사명의 불길이 뜨겁게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구원의 불씨가 강하게 타오르기를 축복합니다.

지난 수요일 예배 시간에도 말씀을 드렸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은 시시하다고 안 합니다. 할 수 없는 일은 못해서 못합니다. 그래서 다 못해요. 그러면서도 남이 잘 되는 것을 보면 배가 아파서 못 견딥니다. 다른 교회가 잘 되는 것을 보면서 부러워만 하다가 끝납니다. 정작 자신은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말입니다. 이런 사람은 매일 결심만 하다가 끝납니다. 부러워만 하다가 끝납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은 극대화해서 합니다. 할 수 없는 일은 어떻게든 할 수 있기 위해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다른 사람들을 모으고 그 일을 하도록 합니다. 육신이 피곤하지만 그러나 내 약한 곳에서 강하여지는 성령의 능력이 임할 것을 믿고 더 열심히 사명을 감당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바로 이런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그가 바로 하나님의 사람이요, 믿음의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바로 오늘 저와 여러분이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고자 찾으시는 그 한 사람이 바로 여러분이시기를 축복합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연약한 자를 들어서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십니다. 미련한 자들을 들어서 배운 자들을 부끄럽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이루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불확실한 상태에서 불완전한 인간들을 통해서 그 분의 뜻을 무섭게 정말 무섭게 이루어 간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완벽한 조건이 갖추어지기를 기다리면서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하나님도 개입하지 않습니다. 생각만 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도 어쩌지를 못합니다.

본문 13절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본문 13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여기에서 온전한 이라는 말은 '완전'이라는 의미보다는 '성숙'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공동번역에서는 성숙한 인간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도 바울은 우리들에게 성숙한 신앙인이 되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저는 여러분에게 이 질문을 드리고자 합니다. 여러분은 성숙한 신앙인입니까, 아니면 어린아이와 같은 미성숙한 신앙인입니까?

우리들 주위에 보면 예수를 오래 믿었어도 여전히 유치한 어린아이의 신앙에 머무르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교회 생활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때로 교회의 중직을 맡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수동적입니다. 자기 혼자 일어서지를 못합니다. 조금만 힘들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주저앉아 버립니다. 그리고 방황합니다. 우리는 이런 사람을 가리켜서 미성숙한 신앙인이라고 말합니다. 그가 신앙 생활하는 모습을 보면 온전한 신앙인의 모습이 아니라 제대로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미숙한 어린아이의 신앙과 같습니다. 이런 사람은 언제나 자기 감정에 의존합니다. 그래서 기분이 좋을 때에는 열심히 봉사합니다. 그러나 기분이 나쁠 때에는 예배고, 헌신이고 다 없습니다. 건강하지 못한 신앙의 모습이요, 결코 바람직한 신앙인의 삶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결국 이러한 미성숙한 신앙인들 때문에 오늘 이 땅의 한국 교회는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염려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의 백성인 그리스도인들이 비난을 들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사회로부터 조롱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핍박을 받아 순교를 당할지언정 욕먹을 짓을 해서는 안됩니다. 이제 우리는 미성숙한 신앙의 모습을 벗어나서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보다 성숙한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다시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여러분은 성숙한 신앙인입니까, 아니면 미성숙한 신앙인입니까?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우리들에게 제발 성숙한 신앙인이 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끊임없이 성장하라고 말합니다. 어느 수준까지 성장해야 하느냐?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신앙의 모델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신앙적 수준이, 인격이, 그리고 삶의 목표가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것이어야 합니다. 이것이 성숙한 신앙인의 자세라고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성숙한 신앙인이 될 수 있을까요? 우리가 봉독한 본문에서는 그 해답을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숙한 신앙인이 되기 위해서는 한마디로 어린아이의 일을 버려야 합니다.
이것이 본문 14절의 말씀입니다. 14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고린도전서 13장 11절에서는 이 부분을 보다 정확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장성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려야 합니다. 어린 시절에 하던 짓을 버려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린아이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고린도전서 3장 1절 이하에 보면, 육신에 속한 자가 어린아이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시기하고 분쟁하고 다투는 사람들이 영적으로 어린아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어린아이는 유혹이나 악한 꾀임에 잘 넘어 갑니다. 늘 마음이 흔들립니다. 가만히 보십시오. 유괴범들이 어른들을 유괴했다는 말을 들어보았습니까? 유괴범들은 어른들을 유괴하지 않습니다. 어른은 납치되었으면 되었지 유괴는 되지 않습니다. 유괴는 어린아이들에게 해당하는 것인데 대부분 유괴를 할 때는 미끼를 던집니다. 왜냐하면 어린아이는 분별력이 약하기 때문에 쉽게 넘어가고 끌려갑니다. 마찬가지로 사단이 어린 성도들을 미혹하는 방법도 다양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사단이 성숙하지 못한 성도들을 유혹하는 방법을 세 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사람의 궤술이요, 둘째는 간사한 유혹이요, 셋째는 세상적인 풍조와 교훈이라고 했습니다.

먼저, 우리는 사람의 궤술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여기에서 궤술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노름'이나 '술책', 또는 사람을 속이는 행위를 말합니다. 따라서 사람의 궤술이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바른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사람들의 꼬임을 말합니다. 그리고 세상과 세상에 속한 것들에게 마음을 빼앗기게 하는 세상 사람들의 술책을 말합니다. 사실, 가만히 보십시오. 오늘 우리가 바른 신앙생활을 하려고 하면 세상으로부터 방해하려는 간교한 속임수들이 얼마나 집요하게 따라붙습니까?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정말로 성숙한 신앙인의 삶을 살려면 이러한 사람들의 간교한 속임수에 넘어가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성숙한 신앙인은 이러한 속임수에 넘어가지도 않습니다. 성숙하지 못한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쉽게 넘어갈 뿐입니다. 저는 우리 모두가 성숙한 신앙인이 되어서 악한 어둠의 세력들의 간교한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기를 축복합니다.

둘째로, 간사한 유혹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여기에서 간사하다는 말은 창세기 3장 1절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라는 말과 같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간사한 유혹이라는 말은 나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서 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없도록 구체적인 방법과 계획을 가지고 다가오는 사단의 교활한 속임수를 말합니다. 간사한 유혹은 믿음의 사람을 넘어뜨리기 위한 사단의 고유한 방법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간사한 유혹에 넘어가서는 안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면서 성숙한 신앙인으로 자라가야 할 것입니다.

셋째로,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말아야 합니다. 여기에서 교훈의 풍조라는 말은 세상의 사상과 이념들을 말합니다. 바람에 따라 출렁이는 바다 물결과 같이 정함이 없는 모든 세상의 교훈을 가리킵니다. 어린아이의 신앙은 이런 세상 풍조에 잘 넘어 갑니다. 그래서 성숙하지 못한 신앙인은 정함이 없이 세상의 풍조에 따라서 이리 저리 흔들립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 풍조에 민감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세상 풍조에 마음을 두지도 마십시오. 우리가 세상 풍조에 밀리지 않고 요동하지 않아야 보다 성숙한 신앙의 삶을 살아갈 수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 사람들의 그 어떤 궤술과 간사한 유혹과 교훈의 풍조에도 흔들리지 않을 때에 우리의 신앙은 성숙되어 갈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것은 우리의 성숙한 신앙생활을 위해서 해야 할 수동적인 자세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단순히 수동적인 자세보다는 보다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닮아가기 위한 구체적이고도 확실한 행동이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성숙한 신앙적 생활을 위해서 우리가 구체적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그리스도를 닮아서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본문 13절에서 그 해답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13절을 다시 같이 읽겠습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우리가 성숙한 신앙인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한 마디로 믿는 것과 아는 일에 열심을 다해야 합니다. 이 말씀에는 세 가지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첫째로, 신앙의 대상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내가 섬기는 그분이 누구냐 하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의 대상이 분명하지 못하면 우리의 신앙도 분명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오늘 우리의 믿음의 대상이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내가 믿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내 죄를 인하여 이 땅에 오셔서 고난을 받으셨고, 나를 의롭게 하시고자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우리를 영화롭게 하시고자 역사의 마지막 날에 영광의 주로 다시 오실 것입니다. 우리는 부활이요 생명이 되시는 그분,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의 대상을 분명히 하시기 바랍니다. 솔직히 그가 교회에 나오지만, 그래서 직분을 받았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믿음의 대상이 아닌 사람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명예가 믿음의 대상인 사람도 있습니다. 물질이 믿음의 대상인 사람도 있습니다. 자기 자신이 믿음의 대상인 사람도 있어요. 이런 사람은 쉽게 넘어집니다. 어린아이처럼 쉽게 감정이 상하고, 불평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대상을 분명히 할 때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오직 감사와 찬양만 있습니다. 그럴 때에 우리의 신앙은 성숙되어져 갈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둘째로, 아는 것으로 그치면 안됩니다. 그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아는 것과 믿는 것은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알기는 많이 아는데 그 사실을 믿지 않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믿기는 믿는데 무엇을 믿는지 모르는 맹목적인 사람도 있습니다. 모두가 위험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성숙한 신앙생활을 위해서는 많이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열심히 읽어야 합니다. 그리고 설교 말씀을 열심히 들어야 합니다. 말씀을 들을 때는 사람의 말로 받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야 합니다.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믿으십시오. 믿지 않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오직 믿을 때에만 하나님의 역사를 보게 될 것입니다.

셋째로, 중요한 것은 믿는 것과 아는 일이 일치가 되어야 합니다. 신앙과 생활이 일치를 이루어야 합니다. 우리 성도가 교회에서 덕을 세우고 하나되지 못한다면 이것은 분명히 바른 신앙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믿음으로 말씀을 받았다면 한 주간 동안 여러분의 삶의 현장에서 그 말씀대로 살려고 몸부림을 쳐야 합니다. 그것이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누가 행복한 사람입니까? 내가 믿는 대로 행하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누가 하나님으로부터 복 받을 사람입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그 말씀을 붙잡고 살려고 몸부림치는 그 사람이 복 받을 사람입니다.

사실, 우리가 성숙한 신앙 생활을 하려고 하면 방해하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옛말에 좋은 일에는 방해가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믿음 생활에는 사단이 주는 온갖 방해가 있습니다. 이 방해물들을 극복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린아이의 모습을 던져버려야 합니다. 어린아이가 태어나면 어머니 배속에서 뒤집어썼던 것을 벗어야 합니다. 탯줄도 잘라야 합니다. 그래야 자유롭게 숨도 쉬고, 움직이면서 건강한 인격체로 성장하게 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옛 사람과의 관계를 끊어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가야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가 계속해서 어린아이로 살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믿었으면 어린아이의 때를 벗어나야 합니다. 믿음에 장성한 사람이 되어야 하고 그리스도를 닮아가야 합니다. 이 도전이 우리 앞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신앙 생활에서 보다 성숙한 사람이 되십시오. 성숙한 사람은 쉽게 흔들리지 않습니다. 비가 와도 눈보라가 몰아쳐도 폭풍이 휘몰아 쳐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한여름의 뜨거운 태양이 작열해도 쉽게 요동치 않습니다. 이 지상에 있는 교회에도 때로는 바람이 붑니다. 폭풍이 일어납니다. 눈보라가 있습니다. 이것이 지상 교회의 모습입니다. 어느 교회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어떤 바람에도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뿌리를 깊이 내리지 못하면 요동하기가 쉽습니다. 성장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씀을 붙잡고 그 말씀대로 살려는 몸부림을 치십시오. 세상의 환경이 내 신앙을 어떻게 할 수 없도록 성숙한 믿음의 사람이 되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신앙생활의 장애물을 자꾸 걷어야 합니다. 이 장애물 때문에 서로의 관계를 등지거나 그리스도를 등지면 안됩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일수록 더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에서 "믿음의 주요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고 했습니다. 베드로전서 1장 20절에서 "그리스도의 자취를 따라가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 갈등이 있고 고통이 있을 때에 그 고통과 고통을 주는 사람을 따라가지 말고 그리스도를 따라가십시오. 그것이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마지막으로 생각해야 할 것은 우리가 성숙한 신앙인이 되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본문 16절에 보면 아주 중요한 말씀으로 우리에게 교훈하고 있습니다. 16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신앙의 성장은 개인적으로 자라는 측면과 교회 공동체 안에서 자라는 두 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성경은 이 두 가지를 다 요구합니다. 믿음의 성장은 교회 공동체 안에서 한 지체를 이루고 서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그리스도의 몸이 자라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에서 연락하다는 말은 밀접하게 서로 연결한다는 말이고, 상합한다는 말은 함께 결합한다, 마음을 모은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교회의 영적 성장과 성도의 영적 성장이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말입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약속은 한 개인의 성장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와 그의 나라도 함께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연락하고 상합해야 된다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믿는 자끼리 지체가 되어 마음을 같이 하여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아무리 친한 사람도 10년만 안보면 멀어집니다. 사촌도 10년만 안보면 남이 됩니다. 믿는 성도끼리는 서로 결합되고 연결되어야 합니다.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받아들일 줄도 알아야 합니다. 서로가 동역해야 하고 도와주어야 합니다. 거기에서 성숙한 신앙인으로 자라나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교회 안에서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믿음이 자라 가는 원리를 우리가 중요시해야 합니다. 벽돌 하나 하나가 참여함으로 아름다운 건물이 세워집니다. 마찬가지로 교회도 그렇습니다. 성도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서 하나가 될 때에 건강한 교회가 세워집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 가는 여기에는 '나'라는 지체가 제외되어서는 안됩니다. 나도 이 교회의 지체로 포함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의 교회가 성장할 것입니다. 나 자신의 신앙도 보다 성숙한 신앙인으로 자라가게 될 것입니다.

삼국지를 보면 유비와 관우와 장비가 나옵니다. 삼대영웅인데 이 세 사람은 개인적으로 보면 별 볼일 없습니다. 유비는 돗자리 장사하는 사람이었고, 관우는 서당의 훈장이었습니다. 그리고 장비는 백정이었습니다. 이들이 혼자서 살 때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세 사람이 뭉치니까 그 시대를 정복하는 영웅이 된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모두 주안에서 서로 결합되고 연결되어서 서로가 맡은 분량대로 헌신할 때에 그 안에서 능력의 역사가 나타날 것입니다. 나 한 사람이 교회의 일에 소홀히 하고, 내게 신앙의 갈등이 있다고 해서 데마처럼 세상으로 가 버리면 우리는 아무런 힘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성숙한 신앙인이 되어야 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서로를 세워주고자 함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보다 성숙한 신앙인이 되기 위해서는 교회의 일에 구체적으로 참여하셔야 합니다. 참여가 기적을 낳습니다. 참여가 상급을 줍니다. 참여가 없으면 헌신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에 모두가 참여하십시오. 이제 다음 주일부터는 연속해서 성숙한 신앙인에게서 볼 수 있는 구체적인 삶의 모습들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성숙한 신앙인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그리고 성숙한 신앙인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살펴볼 것입니다. 한 마디로 성숙한 신앙인은 스스로가 하나님의 일에 구체적으로 참여하는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자녀를 길러보면 제대로 자라지 못하는 자녀가 있을 경우에 부모는 근심합니다. 마찬가지로 교회는 오래 다니고 세례까지 받았는데 그의 신앙의 모습이 성숙되지 않으면 목사가 근심합니다. 성도가 염려합니다. 하나님께서 근심하십니다. 우리의 신앙이 자라지 못하면 성령께서 근심하신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육신이 성장하듯이 그리스도인들은 날마다 신앙적으로 성장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는 그만 어린아이의 일을 벗어버리고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다 되어서 하나님의 귀한 역사를 이루어 드리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히브리서 12장 1절 이하에 보면,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모든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서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자"고 했습니다. 우리가 보다 성숙한 신앙인이 되기 위해서 중요한 것은 얽매이기 쉬운 것을 끊어야 합니다. 믿음으로 인내하셔야 합니다. 이 고비를 넘어가야 성장이 있고 승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할 수 있는 대로 부지런히 주의 일에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성공과 실패의 모든 것은 바로 내 안에 있습니다. 신앙에는 머무는 신앙과 내딛는 신앙이 있습니다. 열두명의 정탐꾼이 가나안에 들어갔지만 열명의 정탐꾼은 과거에 머무는 신앙이었습니다. 그들은 추억이라는 성에 갇혀서 환난이 있을 때마다 과거로 환원되기를 바라는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내딛는 신앙이었습니다. 그들의 신앙은 진취적이었고, 긍정적이었습니다. 오늘 저는 우리 모두가 머무는 신앙이 아니라 내딛는 신앙의 사람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절대로 과거의 추억에 머물러 있는 머무는 신앙인이 되지 마십시오. 적극적인 신앙을 가지고 목표를 향하여 앞으로 나아가는 내딛는 신앙인이 되십시오. 그러기 위해서는 내 안에 있는 것을 끊어야 합니다. 그리고 바른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은 다 자란 믿음이 아닙니다. 이 땅에서는 계속해서 자라가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목표로 우리의 신앙생활이 날로 성숙해 가야 합니다. 이런 성숙한 신앙의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성장해 가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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