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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소원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 (빌 2: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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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택 목사 (종로교회)

행동심리학자들에 의하면 사람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것 몇 중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소원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소원이 있습니다.
성공과 실패는 우리의 불타는 소원을 어떻게 성취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대개 다 소원을 가지고 살지만, 종종 어떤 사람은 소원 없이 살기도 합니다. 소원이 없는 사람은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이들은 세상의 흐름을 따라 아무런 죄책감 없이 죄악 가운데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방탕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반면 소원이 있는 사람은 목표를 정하고 열심히 삽니다. 목표를 위해 희생하며 삽니다. 이들은 때가 되면 소원이 성취되는 복을 받습니다.

중고등부 학생들은 좋은 대학 진학하는 것이 소원일 것입니다.
청년에게 물어보면 좋은 배우자를 만나는 것일 수 있을 것입니다.
보통 어른들에게 물으면 재물과 명예를 갖는 것이 소원이라고 할 것입니다.
질병으로 고생하는 사람은 ‘건강’이 소원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행복한 가정’이 소원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좋은 직장을 갖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1. 소원을 다시 붙잡으십시오.

벌써 2004년도 후반기를 맞았습니다. 우리의 소원이 살아 있는지, 그 소원을 향하여 달려가고 있는지, 아니면 포기했는지 생각 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하나님의 소원을 두시길 원하십니다.

그리고 그 소원이 우리의 마음 속에서 불타올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불가능에 도전하는 창조적인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소원과 믿음을 가지고 나아가면 때가 되면 반드시 응답을 받고 목표를 달성할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 성공한 백만장자 4천 명을 대상으로 그들이 성공하고 존경받는 인물이 된 비결을 조사했더니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공통점이 나왔습니다. 첫째, 그들에게는 분명한 목표가 있었습니다. 둘째, 열정적인 소원이 있었습니다. 셋째, 참고 또 참는 인내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소원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을 사랑하십니다.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13절).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우리에게 소원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부모가 아기를 낳으면 그 아무것도 모르는 애기를 바라보면서 삽니다. 거기에 소원을 두고 삽니다. 그와같이 하나님은 우리 속에 소원을 심고 일하시고 계십니다. 무엇보다 소원이 가득한 사람 속에서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국민일보에 “꼴찌서 교수가 된 성공비결”이라는 글이 실렸는데 그 주인공은 현재 상지대 자연과학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류종원 박사입니다. 그는 시골 중학교를 졸업했고 고등학교 때도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대학도 충북대 농학과에 예비합격자로 합격되어 꼴찌로 입학을 했습니다. 그는 가난했고, 공부도 그리 잘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그에게 한 가지 큰 변화가 생겼습니다. 교회에 나가면서 시도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나님, 내 인생을 인도해 주시옵소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하옵소서” 그때부터 그는 공부를 열심히 하여 장학생이 되었습니다. 국비장학생으로 독일로 유학을 떠나 박사 학위를 받고 고국에 돌아와 대학 교수까지 되었습니다. 그는 지나온 인생을 돌이켜 보고, 모두가 하나님의 축복이었던 것입니다.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는 소원으로 채우시기를 바랍니다.

성공하는 사람은 분명한 삶의 목표를 정하고 불타는 소원을 안고 살아갑니다.
특히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뜻을 향하여 그 소원이 불탈 때 어떤 조건과 환경에 있을 지라도 하나님은 가능하게 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꼴찌를 교수로 만드십니다. 감옥에 있던 사람을 총리가 되게 하십니다.

2.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품으라

그런데 문제는 소원이 막연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소원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소원인가가 제일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소원이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되는지를 확인하십시오
“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나의 죽기 전에 주시옵소서 곧 허탄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적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잠30:7-9)

아굴이 구한 것, 소원이 무엇입니까? “진실하게 살기를 원합니다”라고 소원을 아뢰었습니다.
유태인의 탈무드에 보면 도를 넘으면 안되는 몇가지를 지적하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 중에 몇가지를 소개합니다.

① 사람들이 여행을 좋아하지만 여행을 계속 즐기다보면 바람이 나니 조심하시오.
② 남녀친구가 많으면 실수하기가 쉽다.
③ 일을 좋다고 일을 계속하다가는 과로로 병나기 쉽다.
④ 술을 좋아하지만 만병의 원인인 것을 잊지 마시오.
⑤ 돈을 사랑하고 좋아하지만, 분수에 맞게 가지지 않으면 죄를 범하기 쉽다.

만약, 여러분의 마음에 있는 소원이 인간적인 정욕이나 세상의 자랑을 위한 것이라면 그 소원은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입니다.

어느 날 어느 성도가 목사님에게 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저는 이제 도무지 결혼 생활을 못하겠습니다. 이혼하겠습니다.”
목사님은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라 즉시 말했습니다.
“무엇 때문에 그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까?”
그러자 그 성도는 자기가 다른 여자와 사귀고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기도할 때 성령님께서 ‘지금의 아내는 제게 맞는 상대가 아니라’고 하시더군요. 제가 지금, 사귀고 있는 그 여자야말로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진짜 아내라고 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때 목사님은 “그런 생각을 단호히 버리십시오. 그 소원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소원이 아닙니다. 악한 사단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목사님의 권면에도 불구하고 끝내 아내와 이혼한 뒤 그 여자와 결혼했습니다.
그 결과 그는 가장 비참한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가 그렇게 원했던 두 번째 아내가 처음 아내보다 더 맞지 않음을 나중에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소원은 자기만 좋으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에 맞아야 합니다.

3. 우리의 소원을 하나님께 맡겨버립시다.

우리의 마음속에 하나님이 행하신다고 했는데 어떻게 그럴수가 있습니까? 하나님을 믿을 때 하나님은 우리속에 들어오셔서 역사하십니다. 믿음이 있는자에게 하나님이 들어오십니다.

히브리서 11:1에 믿음은 바라는 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했습니다. 지금 아직 눈에 안보인다 할지라도 믿음이 있으면 바라는 것이 언젠가는 실상으로 나타납니다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시37:5-6) 잠16:3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맡기는 것이 믿음입니다. 우리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힘이 되시고 지혜가 되시고 능력이 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요즘 사람들은 맡기기를 싫어합니다. 자기 인생은 자기가 알아서 하겠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 맡기지 않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하셔도 하나님께 안나옵니다. 걱정, 근심을 해도 하나님께 맡기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교만하고 도도한지 모릅니다. 그렇게 살다가 죽겠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렇게 살다가 힘들면 죽어버립니다. 참, 기가막힌 일입니다. 막가는 인생들입니다. 하나님 앞에 설 때 댓가를 치루게 될 것입니다.

삶의 목표도 하나님께 맡기고, 인생의 짐도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하나님만 의지하고 충성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짐을 가볍게 해 주시고 모든 소원을 다 이루어 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정오의 빛같이, 가장 빛나는 인생을 살게 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한시대의 훌륭한 인물, 존경받는 사람, 출세한 사람, 유명한 사람, 성공한 사람, 존귀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맡기는 것이 믿음입니다. 소원을 이루는 무기는 믿음입니다. 예수님은 가나안 여인의 믿음을 칭찬하십니다.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시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마 15:28) 가나안 여인이 자기를 낮추고 겸손한 모습을 보이자, 예수님께서는 “네 믿음이 크도다!” 하고 . .

마태복음 8장에는 믿음 좋은 한 백부장은 사랑하는 하인이 중풍병에 걸려 죽게 되었을 때, 예수님께 나와 그 하인의 병을 고쳐달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가서 고쳐주시겠다고 하자,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습니다.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습니다.”(마8:8)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겸손한 마음과 믿음을 보시고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다”(마8:10)고 칭찬하시면서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라고 말씀하실 그 때 하인이 낫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 여러분의 인생을 맡기시기 바랍니다. 소원을 맡기시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르시기 바랍니다.

4. 그 소원을 품은 사람은 기도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복 주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소원을 주신다는 것은 기도의 제목도 함게 주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내가 가진 소원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확신이 섰으면 그다음에는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반드시 기도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요일 5:14)
불신자들도 소원을 품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의 소원이 저들과 다른 것은 우리의 소원은 기도제목이라는 것입니다. 불신자들도 소원을 가집니다. 그러나 저들은 절대로 하나님께 기도하지 못합니다. 우리의 소원은 기도입니다. 간구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속에 소원을 두신다고 했는데 이 말의 의미는 우리 마음에 기도제목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삼하7:27) “주의 종이 이 기도로 구할 마음이 생겼나이다.” 다윗의 고백입니다. 나단 선지자로부터 다윗을 위하여 집을 세우리라는 말씀을 듣고 기도로 구할 마음이 생겼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소원을 기도와 더불어 그의 마음속에 넣어주신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마음의 소원이 주님안에서 이루어지려면 기도로 그 소원을 하나님께 아뢰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소원이 성취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33:3에서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고 하셨습니다.
소원이 있는 사람은 기도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품고 기도한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5. 그 소원이 있는 사람은 열심히 삽니다.

롬12:에 바울은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고 말씀하십니다.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롬12:11) 긍정적인 사람, 비젼이 있는 사람은 열심이 솟아나게 됩니다. 벤처기업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벤처기업이라는 말은 남이 하던 일을 모험적으로 새로운 것을 발견해서 수입을 거두는 기업을 벤처기업이라고 합니다. 벤처기업의 공통점을 보면 기업의 일군들이 많지 않지만 밤잠을 자지 않고 열심히 연구합니다. 그렇게 열심히 하다보니까 성공하게 되는 것입니다.

부지런하여 열심을 품고 일할 때 복을 받지 않을래야 안을 수가 없습니다. 축복받게 됩니다. ‘열심을 품고(프뉴마제오)’란 ‘성령’이라는 뜻의 ‘프뉴마’와 ‘물이 끓듯 열정적이다’는 뜻의 ‘제오’가 합쳐진 말로 ‘성령의 뜨거운 열정을 가지라’는 의미입니다. ‘열심’이란 적당히 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생활도, 기도도, 봉사도, 성령의 뜨거운 역사를 체험하고, 충성하는 것을 말합니다. 살후3:10에는 “. . .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라”라고 했습니다. 예레미야 48:10에는 “여호와의 일을 태만히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요. . ”라고 . . . 잠10:4에도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라고 했습니다.

구 소련의 서기장이었던 고르바초프가 한번은 교황을 찾아갔습니다. 교황과 대화 중 이런
내용이 있었다고 합니다. “소련은 하나님을 필요로 합니다. 인간의 가치를 아는 그런 나라가 되길 원합니다. 하나님 없이는 인간이 아무리 노동력을 동원해서 생산력을 아무리 높여도 결과는 패망이요, 실패요, 모든 질고 속에 비참하게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공산당의 특징은 일을 열심히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수동적입니다. 시간만 떼웁니다. 그러나 자본주의에는 어떻습니까? 목숨을 겁니다. 의욕을 가지고 일합니다.
특별히 기독교는 금욕과 노동을 중요시합니다. 부지런합니다. 프로테스탄티즘의 금욕은 사람들의 노동을 직업(소명)으로 생각합니다.

독일의 사회과학자 막스 베버는 자본주의 발달을 위해서는 금욕과 노동정신 등 프로테스탄트의 윤리가 전제돼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바울은 손 대접하기를 힘써야 한다고 했습니다.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롬 12:13) 성도가 열심이 있다는 것은 모든 분야에서 구체적인 행동을 요구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매사에 부지런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게으를 때 망하는 것입니다.

사탄은 마음의 열심을 식게 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고 핑계와 구실을 만듭니다. 빨리 피로감을 느끼게 합니다. 좀더 눕고 좀더 자게 합니다. 좀더 편안해지게 합니다. 정신을 산만하게하고 딴 생각을 하게하고 집중이 되지 않게 만듭니다. 그만하면 되었다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이런 생각과 마음을 갖게하므로 열심히 식어들게 만듭니다. 그리고 이 열심히 식어질 때 우리의 소원도 사라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은 열심의 모델입니다. 요2:17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짧은 생을 열심의 불로 태우시며 살다 가셨습니다.
오늘 주님은 우리 모두의 가슴에 이 열심이 활활 불타길 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금년 하반기를 소원의 불을 다시 붙여서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며 승리의 남은 한해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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