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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리의 간절한 소원은? (롬 1:8~15, 사 1:10~17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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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강석공 목사 (광야교회)
- 2004년07월25일 설교 
 
  사람들은 누구나 꿈을 가지고 있게 마련입니다. 꿈이 없는 사람은 없다고 해도 과히 틀린 말이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누군가는 꿈이 없는 개인이나 민족은 존재할 가치조차 없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대입 수능시험을 앞둔 수험생들에게는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꿈일 것입니다. 또 요즘 청년 실업 문제가 매우 심각하지 않습니까? 때문에 아직 취업을 하지 못한 젊은이들에게는 좋은 직장을 구하는 것이 꿈일 것입니다. 물론 꼭 바람직한 것은 아니지만 요즘 경제가 워낙 어렵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로토 당첨의 꿈을 꾸고 있습니다. 누구나 나름대로 크고 작은 꿈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꿈이 불의한 것이 아닌 이상 다른 사람의 꿈을 가지고 뭐라고 시비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왕이면 바람직한 꿈, 올바른 소원을 갖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특별히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제대로 된 꿈과 소원을 갖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에게도 꿈이 있었습니다. 그의 특히 간절한 꿈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여러 번 로마에 가려고 했지만 길이 막혀서 그 꿈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롬 1:10) 그가 로마에 있는 성도들을 가르치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 간절히 기도한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 간절한 기도의 결과로 그는 비록 죄수의 신분이기는 하지만 로마를 방문할 수 있게 되었고, 거기서 담대하게 또한 거침없이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가르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실 복음을 전한다고 하는 것은 어느 정도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엊그제 지하철 2호선을 타고 가던 도중에 검은 양복에 노란 띠를 어깨에 두른 한 전도자를 보았습니다. 그는 매우 두꺼운 성경책을 손에 들고 있었습니다. 아마 전도를 끝내고 귀가하던 길이었던 것 같습니다. 문제는 그의 표정이었습니다. 너무나도 그 표정이 엄숙해서 그가 타는 순간 그 칸에 타고 있던 승객들의 표정이 일제히 굳어지는 것이었습니다. 신학교에 다니는 신학생들은 전도를 이론으로 배울 뿐만 아니라 실습도 합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실제로 전도하는 것이 그리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신학생들로서는 더욱 열심히 전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길을 가다가도 전도하고, 차를 타고서도 사람들에게 전도해야 합니다. 때로는 이상한 사람 취급을 당하기도 합니다. 여간 창피한 것이 아닙니다.

  감리교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는 요한 웨슬리가 선교사로 미국에 갔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가 신통치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다시금 아메리칸 인디언들에게 복음을 전하려고 했지만 왠지 자신이 없어서 망설이게 되었습니다. 그는 모라비안 선교사 한 분을 만나서 그와 같은 자신의 심정을 털어 놓았습니다. 그러자 그 모라비안 선교사가 웨슬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믿음을 얻기 위해서 복음을 전하십시오! 믿음이 있으면 있는 그것으로 전하십시오!” 그렇습니다! 전도는 전도하겠다는 마음을 갖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까?

  다음으로 일단 전도하러 나가야 합니다. 결과는 하나님께서 책임지실 것입니다. 사실 전도는 하나님의 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옛날 이스라엘에 대해서 갖고 계셨던 그 꿈을 오늘 우리 시대의 사람들을 향해서도 갖고 계십니다. 이사야 1장 3절 말씀에 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업신여기고 그 하나님에게서 등을 돌렸습니다. 배신이란 이미 맺어진 아름다운 관계를 파괴하기 때문에 정말로 나쁜 것입니다. 그와 같이 그릇된 배신의 결과로 땅이 이스라엘은 황폐하게 되었고 그 성읍들은 송두리째 불에 타버렸다는 것입니다.

  선지자 이사야의 말은 마치 오늘 우리를 향하여 던지는 경고의 메시지로 들리지 않습니까? 오늘 우리는 과연 어떻습니까?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때문에 하나님의 뜻도 모르는 것이 당연합니다. 때문에 무엇이든지 멋대로 합니다. 그런 것들이 바로 하나님을 배신하는 것이 아니고 또 무엇이겠습니까? 그 결과 오늘 우리도 징계를 받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이 비참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 과연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무엇보다 먼저 죄를 고백하고 그 죄의 용서를 받아야 합니다. 아울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순종하며, 그 하나님과 더불어 올바르게 사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복음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 일을 먼저 믿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맡기셨습니다. 이 일을 우리가 잘 감당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꿈을 이루어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우리가 전해야 할 복음이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메시지에 제한될 수는 없다는 사실입니다. 사도 바울이 뭐라고 말했습니까?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롬 1:15) 그런데 로마에는 이미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복음을 들은 성도들이 있었습니다. 권력의 중심지 로마에 있는 성도들은 분명히 눈에 띄는 존재들이었을 것입니다. 모든 일을 힘에 의지하는 로마의 풍조 속에서도 성도들은 그 믿음이 주위에 알려질 정도로 신실했습니다. 이와 같은 성도들의 형편을 볼 때 그들이 다시 복음을 들을 필요는 없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사도 바울이 복음 전하기를 원한다고 한 것을 좀 더 넒은 의미로 해석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실제로 그가 로마에 가려고 했던 이유 중에는 신령한 은사를 그들에게 나누어 주어 견고하려고 하는 이유도 있었습니다. 은사란 은혜와는 달리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가 은사를 나누어 주고 싶다는 말은 성도들의 믿음에 대해서 좀 더 상세하게 설명해 주고 싶다는 뜻으로 들립니다. 또한 그는 그들과 함께 지내면서 믿음으로 서로 위로를 받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로마에 가고 싶었지만 어찌 보면 그들로부터 어떤 형태의 복음을 듣고 싶어했는지도 모릅니다. 사실 그가 예상치 못한 복음의 다른 어떤 면을 발견할 수 있는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었을 것입니다.

  또한 사도 바울은 로마 교회의 다양한 구성원들, 즉 유대인과 헬라인, 배운 사람과 무식한 사람, 시민과 노예 사이에서 있을 수 있는 갈등도 예상했던 것 같습니다. 그는 갈등과 대립 요소들을 제거하고 더욱 교회를 든든하게 세우기를 바랐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복음 전하는 일에는 이와 같이 여러 가지가 다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복음은 주님이 지상에 계실 때 행하셨던 사역들을 모두 포함하는 것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입니다. 말씀을 선포하시고 병자들을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신 모든 사역들이 다 복음이라는 말입니다.

  끝으로 사도 바울은 복음 전도의 사명을 빚진 자로 표현했습니다. 빚이라는 것은 갚아야 할 의무를 말합니다. 제대로 된 사람은 의무를 다 이행하려고 합니다. 의무는 이행하지 않고 권리만 주장한다면 그는 미숙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구원받은 은혜를 빚으로, 또한 성도들을 핍박하던 자기를 전도자로 불러 주신 은혜를 빚으로, 그리고 여러 가지 은사를 주신 것도 도저히 갚을 수 없는 빚으로 생각하며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그 빚을 조금이라도 갚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빚을 복음 전도를 통해서 갚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감옥에 있을 때에나, 나갔을 때에나, 안식일에는 회당에서, 그리고 길거리에서까지 부지런히 복음을 전하여 그 빚을 갚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역시 주님에게 큰 은혜의 빚을 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로서는 이 빚은 도저히 다 갚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만 빚진 자의 자세로 살아갈 뿐입니다. 사람마다 꿈을 갖고 있다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의 간절한 꿈은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복음 전도의 꿈은 우리 하나님의 간절한 소원이기도 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생명을 살릴 수 있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그 옛날 사도 바울의 소원이 저와 여러분 모두의 소원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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