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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을 체험하라! (요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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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진대흥 목사 (창천교회)

  성령체험을 통한 회개와 기도라는 감리교 부흥운동을 시작한 존 웨슬리 목사님은 신앙의 중심이 되는 네 기둥을 설명하였습니다. 성서와 전통, 그리고 이성과 체험이 그것입니다. 말씀(성서)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해야 하지만, 자기중심적 성서 해석의 오류를 피하기 위해 교회의 전통을 존중하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믿음생활이 신비주의와 열광주의로 빠지지 않도록, 성령께서 부으시는 이성의 협력이 필요함을 주장하였습니다. 더해서 성령의 체험, 곧 하나님을 만나는 뜨거운 생명의 체험이 있어야 함을 강조하였습니다. 어떠한 사회현상이라 할지라도 그 핵심이 무엇인지가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주님께서도 사람의 겉모습을 살피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중심, 그 핵심을 보신다고 이르신 것처럼, 우리의 믿음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핵심 중의 핵심은 바로 하나님과의 만남, 그분의 역사를 체험하는 것입니다. 믿음이라함은 결코 지식과 경륜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 그 분과의 뜨거운 교제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 하나님 체험을 빼놓고 믿음을 말할 수 없습니다.

  오늘 저는 본문을 중심으로 세 가지의 하나님 체험의 길을 제시하려 합니다. 주의 깊게 경청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을 분명히 느낄 수 있습니다. 지금도 살아 역사하시는 세상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 만남은 어떠한 특정한 장소, 특별할 것 같은 사건에서만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의 일상 가운데 나의 삶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내 마음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뜨겁게 만나며, 느끼며, 고백할 수 있습니다. 간절히 바라기는, 오늘 이 말씀 가운데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주님의 보혈의 십자가의 그 뜨거운 사랑의 은총이 여러분의 삶의 현실 속에서도 만나지는 역사가 있기를 소원합니다.

  1. 우리가 하나님께 민감할 때에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 하나님을 의식하라!

  먼저 우리는 ‘민감하다’는 말을 주목해야 합니다. 이는 예민하다,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 민감하다는 것은, 하나님 그 분의 아름다운 역사하심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하나님 역사에 따라 우리들의 삶이 제대로 작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겠습니다. 이는 ‘기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성도의 삶입니다. 주님께서도 친히 요한복음 4장 24절에서 "하나님은 영" 이심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또한 창세기에서는 우리 자신은 하나님의 영을 통한 생기, 생령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를 사도바울은 로마서 8장에서 '우리 자신은 오직 영의 생각으로만 하나님을, 영이신 그 분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 고 잘 정리하고 있습니다. 그르므로, 영이신 하나님께 민감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기도하는 자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나실인이였던 삼손을 생각해 보십시요. 그가 하나님 제단 앞에서, 그 삶속에서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하나님을 의식함으로 나실인으로서의 바른 모습이었을 때는, 당나귀 턱뼈로 훈련된 블레셋 군대 일천 명과 싸워 이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고, 기도의 부르짖음을 중단하였을 때, 짐승과 같이 두 눈을 잃고 맷돌을 돌려야 하는 한심한 처지가 되고 말았지요. 그러나 사사기 16장 28절에서 삼손을 크게 하나님을 부르짖습니다. 두 번이 간절히 생명을 다해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드디어 살아계신 하나님을 의식하였을 때, 그는 예전에 함께 하셨던 전능하신 하나님을 다시 체험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기도하던 주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하나님의 역사에 민감하였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포도주가 떨어진 혼인 잔칫집. 아무도 하나님의 역사의 때임을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지금이 바로, 살아계셔 이 땅에 오신 하나님 능력의 때임을 알고 간구합니다.

  성도 여러분! 깨어 쉬지말고 기도하십시요. 하나님을 언제나 여러분의 삶의 구체적인 현실속에서 의식하십시요. 아무런 생각도 없이 화난다고 화 다 내고, 밉다고 다 미워하고, 내 기분 내키는 대로 말을 쏟아 내고, 어떻게 거룩하신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습니까? 내 지식과 경험으로 어찌 그 분이 느껴질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의식하십시요. 그럼으로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놀라운 역사에 민감하십시요. 하나님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다 잠언 8장 17절"

  2. 신앙의 기본에 충실할 때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  하나님 중심의 예배를 드리라!

  본문인 요한복음 2장에 기록된 가나 혼인잔치의 역사는, 기도하며 하나님을 의식하던 마리아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본문에서 포도주가 다 떨어진 것을 알리는 마리아에게 주님께서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여자여, 나와 상관이 없도다, 아직 내 때가 아니도다!" 그렇게 냉정하시던 주님을, 본문에서는 아무런 설명도 없이 갑자기 항아리에 물을 붓고, 그 물을 다시 떠다 주라고 친절히 온 과정을 설명하신 분으로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 어찌된 일입니까? 문제의 핵심은 요한복음 2장 6절에 있습니다. 주님께서 유대인의 결례를 따라 물 두 세통 드는 항아리 여섯 개가 놓여진 것을 보셨다는 것입니다. 이 항아리는 바로 모세로부터 전해진 정결예식을 위해 물을 담아두던 것입니다. 당시에 율법이라면 더 이상 할 말이 없는 바리새파 사람들도 이 귀찮은 일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습니다(눅 7:44). 그러나, 신앙의 기본을 충실히 지켰던 이 잔칫집은 하나님을 체험하였습니다. 기적의 능력을 맛보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들 신앙의 기본은 무엇입니까? 바로 ‘예배’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높이는 예배입니다. 우리 중심이 아닌, 하나님 중심으로 철저히 구별하여 드리는, ‘고르반’의 예배입니다. 혹시 우리들 가운데 주님의 능력을 잃고, 믿음도 잃어가는 성도있습니까? 뜨거운 생명의 예배를 회복하십시요. 하나님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는 (시 95:6)" 예배에 충실할 때, 하나님의 살아계신 성령은, 우리들의 삶을 만지실 것입니다.

    3. 생명의 현장에 서 있을 때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 양육과 전도에 헌신하라!

  사무엘상 17장 31절로 40절에 기록된 다윗의 고백을 통해, 우리 스스로는 하나님의 양떼, 곧 아직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새롭게 창천교회의 문을 두드리고 있는 새 가족을 위해 헌신해야 하나님을 만날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울은 왕궁의 깊숙한 곳에서 주저앉아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아버지의 양떼를 먹이고, 보호하기 위해 들판에 서 있습니다. 사울은 골리앗의 창검앞에서 어찌할 바를 몰라 하고 있었지만, 다윗은 들판에서 만난, 아버지의 양떼의 생명을 위협하는 곰과 사자의 발톱앞에서 당당히 외칠 수 있었습니다. "사시는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신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매주일 잠시 잠깐 예배당 의자에 머물렀다 가는 것으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엄청난 오판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잃어버린 양, 아직도 믿음없는 자들을 위해 우리가 무엇인가를 할 때,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십니다. 전도하십시요. 새가족을 위한 헌신에 자신의 삶을 드리십시요. 하나님을 체험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약하지만, 하나님은 강하십니다. 하나님의 강함은 영원하며, 참 생명입니다. 이 땅을 살면서, 우리 각자의 삶이, 몸 된 창천교회가 기쁨이며, 승리의 이름이 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을 우리가 만나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역사하시는 체험의 현장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함께 하나님을 매 순간 의식하며 하나님께 민감한 삶을 삽시다. 신앙의 기본인 하나님 중심의 예배에 생명을 다하십니다. 그리고 전도와 양육에 헌신합시다. 사시는 하나님은 분명히 우리를 만나시고, 우리를 통해 역사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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