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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마음을 시원케 하는 사람 (고전 16: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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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송기현 목사 (한광교회)
 
  미국에서 실재적으로 있었던 일인데 시골학교 선생님께서 어린이들의 음악교육을 위하여 피아노가 필요해서 당시에 가장 부자인 포드자동차 사주인 포드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회장님 우리 학교에 피아노 한대가 필요합니다.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얼마 있지 않아서 답장이 왔는데 봉투를 열어보니까? 10센트가 들어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실망하지 않고 그 10센트를 가지고 가게로 가서 땅콩을 사왔습니다. 우리같으면 어쪘겠습니까? 부자가 째째하게 쩐이 뭐야 줄라면 피아노를 살 수 있는 돈을 줘야지 애들 장난도 아니고 이게 뭐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선생님은 학교 짜투리땅에다 10센트를 주고 사온 땅콩을 심었습니다. 그리고 땅콩을 수확해 팔아서 이익금을 얼마를 포드에게 보내고 나머지는 저축을 했습니다. 몇년을 그렇게 했습니다. 드디어 땅콩을 판돈으로 피아노를 살 수 있는 돈이 모아졌습니다. 그래서 그 선생님께서 포드에게 감사의 편지를 썼습니다. "회장님의 도움으로 이제 피아노 살돈이 모아졌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요. 바로 즉시 답장과 함께 만달러가 송금되어져 왔습니다.
  답장에 이렇게 쓰여졌습니다. 선생님 같은 분이 미국에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선생님 같은 분은 처음입니다. 많은 사람이 도움을 내게 요청했지만 기부금를 주고 나면 작다고 투절데거나 모르는척 해버리는데 선생님같이 이렇게 작은 동전의 기부금에 대해서도 감사하고 그 이익까지 돌려주시니 너무 감격했습니다. 여기 만달러를 드리니 피아노를 사시고 앞으로도 선생님이 도움을 도청하면 액수와 상관없이 제가 책임을 지겠습니다.

  참 시원한 이야기지 않습니까? 이런 선생님이 있고 이런 부자가 있으니 미국이 번영하는 것입니다.

  시원한 것, 시원한 곳, 시원한 사람이 생각나고 그리운 때입니다. 나라의 정치도 시원해졌으면 하고, 경제도 좀 시원하게 풀렸으면 합니다. 날씨도 너무 덥다보니까 이젠 좀 시원해졌으면 하고 바라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마음이 시원해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믿음이 시원해졌으면 하는 것입니다. 답답한 사람 말고 좀 시원 시원한 사람을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시원한 얼음냉수같고 시원한 얼음수박화채같은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무척 덥지요? 왜 이렇게 더운지 아십니까? 하나님께서 좀 먹고 살라고 더위를 주신 것입니다. 여름장사라도 좀 해서 살라고 주신 더위입니다. 더우니까 어러운줄 알면서도 냉장고도 사고 에어콘도 사고 선풍기도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원한 음료를 마시게 되고 시원한 곳을 찾아나서서 돈을 쓰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 사람들이 돈을 벌게 되고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더위도 추위도 다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 가운데 보면 여러 사람들이 바울과 고린도교회를 시원하게 해주었다고 하면서 그들을 알아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사람을 시원케 해주는 이들도 있는가 하면 반대로 사람들로 하여금 정말 답답하고 후덥지근하게 하는 이들도 많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와 민족과 국가와 교회는 시원케 해주는 이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더 이상 답답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아가서의 술람미여인의 외침처럼 "내가 병이 났으니 나를 시원케 해주오"하는 탄식이 곳곳에서 들려오고 있습니다. 술람미 여인은 "내가 사랑함으로 병이 났으니 건포도로 힘을 돕고 사과로 나를 시원케 하라"(아가 2:5)고 요구했습니다.

  누가 우리를 시원케 할 수 있겠습니까? 주님이 우리를 시원케 하실 수 있습니다. 주님은 "나를 믿는 자는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넘치리라" 약속을 하셨습니다. 솔로몬을 사랑함으로 병이 난 술람미 여인을 시원케 해줄 수 있는 사람은 솔로몬 밖에 없었습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지음받은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무엇이든지 사랑함으로 병이들었다고 하면 그 묘약은 하나님께 있는 줄로 믿습니다. 그 믿는 자가 답답해 하고 힘들어할 때 바로 하나님께서 그를 눈여겨 보시고 계시며 그를 시원케 해 주실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더 큰 은혜를 주시기 위해서 정말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시원하게 하시려고 답답함과 힘겨움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시원케 하시는 하나님은 이 시간 우리 믿는 자 중에서 시원케 하는 이를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는 이런 사람입니다.

  첫째로는 깨어 믿음에 굳게 선 사람이 시원케 합니다.
  오늘 본문 13절를 보시기바랍니다.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라"고 했습니다. 깨어 믿음에 굳게 선 사람, 믿음이 강건한 사람이 시원케 하는 사람입니다. 오늘날은 흔들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쉽게 낙심합니다. 쉽게 포기합니다. 쉽게 꿈을 접어버리고 인생을 접어버립니다.
  어찌 이런 사람들에 시원함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깨어있는 성도, 믿음에 굳게 서고 복음에 굳게 선 성도, 남자는 남자답게 강건하고 여자는 여자답게 아름답고 세심한 성도가 사람을 시원케 할 수가 있습니다.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 답게 강건한 성도가 누구이겠습니까? 바로 충성스러운 성도인 것입니다. 충성된 성도가 시원케 할 수 있습니다.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냉수 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케 하느니라(잠 25:13)"했습니다.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는 말씀도 있습니다.

  둘째로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는 사람이 시원케 합니다.
  오늘 본문 14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하셨습니다.
  아가서의 술람미 여인은 사랑함으로 병이 낫다고 했습니다. 성도는 주님을 사랑함으로 병들 줄 알아야 합니다. 성도는 주님의 말씀과 주님이 맡겨주신 사명과 그 일을 사랑함으로 병이 날 줄 알아야 합니다. 이처럼 주님께서 맡겨주신 그 사명과 일을 병이나도록 사랑해 보셨습니까?
  일을 억지로 어쩔 수 없이 하는 사람이 아니라 일을 사랑으로 하는 사람이야 말로 시원케 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야곱이 형님 에서의 낯을 피하여 삼촌 라반집에 갔었을 때 라헬을 보자마자 첫눈에 반했습니다. 그래서 사랑할 수 밖에 없었었습니다. 삼촌과 계약을 했읍니다. 삼촌 당신의 작은 딸 라헬을 나의 아내로 주십시오 그려면 삼촌을 위해서 7년을 일하겠습니다. 그러자 라반은 그러마 라헬을 네게 주는 것이 타인에게 주는 것보다 나으니 나와 함께 있으라 했습니다. 성경은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년 동안 라반을 섬겼으나 그를 사랑하는 까닭에 칠년을 며칠같이 여겼더라"고 했습니다.
  7년이 끝나는 날 이제 라헬과 신방을 꾸미고자 했습니다. 7년을 기다리던 밤이었습니다. 그런데 라반은 라헬 대신에 레아를 밤중에 들어보냈습니다. 달콤한 잠을 자고 아침에 일어나보니 신부가 바뀐 것입니다. 라헬이 아니라 레아였던 것입니다.
  "외삼촌 나를 속이심이 어찌됨이니이까?" 그 때 라반이 말하기를 "우리네 풍습에는 언니보다 아우를 먼저 주는 것이 옳지 않다. 이를 위하여 칠일을 더 채우라 그리하면 그도 네게 주리니 네가 또 나를 위하여 칠년을 동안 섬길지니라" 했습니다. 야곱이 라헬을 더 사랑하므로 다시 칠년 동안 라반을 섬겼습니다. 이렇게 해서 아내를 얻는 일로 해서 14년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하나도 피곤치 않
았고 시간이 더디가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라헬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사랑으로 하는 일이라야 시원케 보이고 정말 시원케 합니다.

  셋째로는 부족한 것을 보충하는 자가 시원케 합니다.
  바울사도는 오늘 본문 17절에서 "내가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의 온 것을 기뻐하노라 저희가 너희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였음이라"고 했습니다. 갈증은 수분이 부족할 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배고품은 먹을 양식이 공급되지 못할 때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외로움과 쓸쓸함은 사랑받는 것이 부족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영적인 기갈도 영적으로 채움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부족한 것을 탓만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부족한 것을 채워주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오늘 성경에 나오는 이 사람들은 부족한 것을 채워주려고 힘쓴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과 고린도 교회가 시원함을 느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어찌 완벽한 사람, 완변한 교회, 완벽한 논리가 있겠습니까? 최근에 가장 우수한 우주론이라고 생각되었던 스티븐 호킹박사의 불렉홀이론이 잘못되었다고 스스로가 이 이론을 수정했습니다.
  인생은 미완성입니다. 완벽은 없습니다. 인간의 지식도 미완성입니다. 부족이 드러납니다.
  그러므로 부족을 탓하지 말고 부족을 채워주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이런 사람이 정말 사람의 마음을 시원케 합니다.

  바울사도는 18절에서 "이런 자들을 알아주라"고 했습니다. 즉 시원케 하는 이들을 알아주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는 마땅히 이렇게 시원케 하는 이를 알아주어야 할 것입니다. 알아주기는 커녕 시기하고 어떻게 하면 넘어뜨릴까 하여 시비를 거는 그런 일들이 있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시원한 얼음냉수 같은 성도가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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