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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율법과 예수(3) (출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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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손상률 목사 (후암교회)

1. 레위 족속중 한 사람이 가서 레위 여자에게 장가 들었더니
2. 그 여자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아 그 준수함을 보고 그를 석달을 숨겼더니
3. 더 숨길 수 없이 되매 그를 위하여 갈 상자를 가져다가 역청과 나무 진을 칠하고 아이를 거기 담아 하숫가 갈대 사이에 두고
4. 그 누이가 어떻게 되는 것을 알려고 멀리 섰더니
5. 바로의 딸이 목욕하러 하수로 내려오고 시녀들은 하숫가에 거닐 때에 그가 갈대 사이의 상자를 보고 시녀를 보내어 가져다가
6. 열고 그 아이를 보니 아이가 우는지라 그가 불쌍히 여겨 가로되 이는 히브리 사람의 아이로다
7. 그 누이가 바로의 딸에게 이르되 내가 가서 히브리 여인 중에서 유모를 불러다가 당신을 위하여 이 아이를 젖 먹이게 하리이까
8. 바로의 딸이 그에게 이르되 가라 그 소녀가 가서 아이의 어미를 불러오니
9. 바로의 딸이 그에게 이르되 이 아이를 데려다가 나를 위하여 젖을 먹이라 내가 그 삯을 주리라 여인이 아이를 데려다가 젖을 먹이더니
10. 그 아이가 자라매 바로의 딸에게로 데려가니 그의 아들이 되니라 그가 그 이름을 모세라 하여 가로되 이는 내가 그를 물에서 건져내었음이라 하였더라 

야곱의 말년에 애굽으로 이주했던 그의 가족들은 당시 그 나라의 총리로 있었던 요셉의 후광을 입고 고센 땅에서 부러움 없이 살았습니다. 사백 여년의 세월이 지나는 동안 장정만 육십만이 넘는 거대한 부족국가로 발전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이스라엘의 번성은 애굽 백성들을 긴장시켰고 급기야 바로 왕으로부터 이스라엘에 탄압정책을 쓰게 하였습니다. 애굽 와 바로는 이스라엘 사람을 모두 다 애굽의 국고성을 쌓는 노역에 동원시켜 노예로 부렸습니다. 출애굽기 1:12에 “그러나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식하고 창성하니 애굽 사람이 이스라엘 자손을 인하여 근심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역사를 엄하게 하여”라고 했습니다. 그것도 모자라서 바로 왕은 애굽의 산파들에게 명하기를 이스라엘의 집에 아이가 나면 남자여든 죽여버리고 여자여든 살려두라고 하였습니다(출 1:16). 그러나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바로의 명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화가 난 바로는 애굽의 모든 백성에게 명하여 이스라엘 집에서 나는 남자아기는 모조리 하수에 던져 버리라고 하였습니다.

이때 이스라엘 백성 중 레위 지파에 속한 아므람과 요게벳 사이에서 모세가 출생하였습니다. 그 부모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가며 처음 석 달 동안 아이를 숨겨서 키웠으나 더 어찌할 수 없게 되자 갈대상자에 담아 강물에 떠내려보냈습니다. 때마침 하수 가에 목욕하러 나왔던 바로 왕의 공주가 이 상자를 발견하고 그 안에 있는 아기를 꺼냈습니다. 그는 아기를 보는 순간 측은한 마음이 들어 자기가 그 아이를 키우기로 하였습니다. 공주는 아이의 이름을 모세라고 불렀는데 이는 물에서 건졌다는 뜻입니다. 이 사람 모세가 훗날 출애굽의 영도자요 율법의 창시자가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모세를 담아 강물에 띄워 보낸 갈대 상자를 중심으로 기독교 복음의 진수인 예수 그리스도를 조명해 보고자 합니다.

Ⅰ. 갈대의 특징

갈대는 습기가 있고 기온이 따뜻한 지역에서 서식하는 식물로써 주로 강이나 바닷가에서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욥기 8:11에 “왕골이 진펄이 아니고 나겠으며 갈대가 물 없이 자라겠느냐”고 하였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갈대는 우리나라에서 말하는 갈대와 달리 골처럼 생겨서 유연하고 질긴 성질이 있습니다. 고대 애굽이나 중동지역에서는 파피루스(Papyrus)라 불리우는 갈대 속을 가지고 종이를 대신하여 성경 사본을 필사하기도 하였습니다.

(1) 갈대의 연약한 면을 나타냅니다.

이사야 42:3에는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라고 하였습니다. 갈대는 다른 나무들처럼 줄기가 굵거나 견고하지 못합니다. 속은 비어있고 마디가 있지만 길고 가늘어서 바람이 불면 심하게 흔들립니다(마 11:7). 여리고 딱딱하지 못하기 때문에 쉽게 부러지거나 상처를 받게 됩니다. 확실히 인간은 연약한 존재입니다. 신체적으로도 연약하여 질병이나 사고로 무너지곤 합니다. 정신적으로도 약해서 조그마한 충격에도 엄청난 타격을 받습니다. 속이빈 갈대처럼 겉으로 강해 보이는 사람이 실상은 아무런 힘도 없이 무너져 앉는 것을 보게 됩니다. 상한 갈대처럼 약하고 무력한 것이 범죄한 인간의 본 모습입니다.

(2) 갈대는 곧게 자랍니다.

갈대는 다른 식물들처럼 많은 가지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옆으로 가지를 뻗는다거나 뒤틀린 모습이 없습니다. 오직 위로 행해서만 곧게 올라갑니다. 이것은 세상 가운데서 그리스도와 연합된 성도의 특징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바른 신앙을 가진 사람은 여러 가지 이단 사설과 혼잡된 세상 풍조에 요동하지 아니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교통하며 거룩을 지켜나갑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에게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하였습니다(레 11:45). 세상 사람이 다 어두움의 일에 젖어 있을 때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고 거룩한 행실을 실천하는 것입니다(롬 13:11-14).

(3) 갈대는 위로 높이 올라갑니다.

갈대는 비록 몸집은 가늘지만 키가 크고 높이 올라갑니다. 일년생 야생초 가운데 갈대보다 더 큰 키를 가진 식물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성도는 비록 땅에서 살지라도 하늘나라의 이상을 가진 자들입니다. 위에 것을 바라보며 언제나 높이 올라가는 삶을 살아갑니다. 이사야 40:31에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높이 위로 올라간다는 것은 하나님께로 향한다는 뜻입니다(골 3:2). 위로 올라가서 거기서 사방을 보고 밑으로 볼 수 있는 것이 그리스도의 시각이며 비젼 있는 안목인 것입니다(빌 3:18-20).

Ⅱ. 모세를 담은 갈대상자

히브리서 11:23에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달 동안 숨겨 임금의 명령을 무서워 아니하였으며”라고 하였습니다.
모세의 부모들은 처음 석달 동안 임금의 명령을 어겨가면서 아기를 보호하려 했으나 더는 어찌할 수 없다고 판단되었을 때 자기들의 손으로 아이를 강물에 내다 버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이를 그냥 물 속에 빠뜨리지 않고 상자에 담아서 띄워 보내는 기지를 발휘하였습니다. 당시의 사람들이 갈대로 만든 여러 종류의 기구를 사용하였고 그것들이 여러 면으로 유익을 주었겠지만 죽음의 현장에서 생명을 건져준 모세의 상자야말로 가장 가치 있는 기구였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1) 역청과 나무 진을 칠했습니다.

본문 말씀 3절에 “더 숨길 수 없이 되매 그를 위하여 갈 상자를 가져다가 역청과 나무 진을 칠하고 아이를 거기 담아 하숫가 갈대 사이에 두고”라고 하였습니다. 이사야 18:1-2에 보면 “슬프다 구스의 강 건너편 날개치는 소리 나는 땅이여 갈대배를 물에 띄우고 그 사자를 수로로 보내며…”라고 하였습니다. 그 당시 애굽이나 구스 같은 갈대가 흔한 나라에서는 그것으로 강이나 수로에 물건을 운반할 수 있는 배도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갈대로 상자나 배를 만들 때 거기 물이 스며들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반드시 그 사이를 접착하는 재료가 쓰여졌습니다. 역청은 일종의 골탈과 같은 것이며 나무 진은 송진(松津)과 같은 것이어서 이것을 바르면 갈대의 엮은 사이를 접착시키고 굳어져 물이 스며들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모세를 구한 상자는 갈대에 역청과 나무 진을 입힌 것이었습니다. 이는 성육(成肉)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성경은 세상에 오신 예수님을 가리켜 하나님의 아들이 다윗의 후손으로 나셨다고 하였습니다(롬 1:2-3). 그래서 이름을 예수(사람) 그리스도(하나님)라 하고 이를 신인양성(神人兩性)으로 표현합니다. 요한복음 1:14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하였습니다.

(2) 생명을 구해준 상자

창세기 6장과 7장에는 노아의 홍수이야기가 있습니다. 인간의 죄악이 관영 했을 때 하나님께서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의인 노아와 그 가족을 구원하기 위하여 노아에게 방주를 짓게 하였습니다. 창세기 6:14에 “너는 잣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짓되 그 안에 간들을 막고 역청으로 그 안팎에 칠하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만든 방주에는 노아의 여덟 식구와 하나님께서 구별하신 각종 짐승들이 들어갔습니다. 창세기 7:16에 “…하나님이 그에게 명하신 대로 들어가매 여호와께서 그를 닫아 넣으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어서 사십일 동안 하늘에 창이 열리고 깊음의 샘이 터지는 등 전무후무한 대 홍수로 지면에 있는 모든 생명은 다 죽게 되었으나 방주에 들어간 노아와 동물들은 모두 생명을 구했습니다. 창세기 7:22-24에 보면 “육지에 있어 코로 생물의 기식을 호흡하는 것은 다 죽었더라 … 홀로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자만 남았더라”고 하였습니다. 방주는 노아의 생명을 구해준 도구입니다. 여기 갈대 상자는 나일강에 던져져 소리 없이 죽어야 될 모세를 구해준 생명의 도구입니다. 이는 모두 죄와 죽음 아래 신음하는 불쌍한 인간을 구원해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뜻합니다.

(3) 물위에 떠 있는 상자

노아가 만든 방주를 테바(???)라고 하는데 이는 상자를 뜻합니다. 길이 삼백 규빗, 넓이 오십 규빗, 높이 삼십 규빗의 크기인데 상, 중, 하 삼층으로 되어 있고 그 안에는 칸을 막고 돌아가면서 창을 내게 하였습니다(창 6:14-16). 보통 배들처럼 앞(이물)과 뒤(고물)의 표시나 선장실이 따로 있지 않았습니다. 그 배는 그냥 물위에 떠있기만 하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는 방향도, 마른 땅에  멈추는 시간도 모두 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운행하시는 것입니다. 다만 그 속에 물이 스며들거나 가라앉지 않으면 됩니다.

모세를 담은 갈대상자도 그와 같은 기능을 합니다. 그냥 바람 부는 대로 물결의 흐름을 따라 어디로든지 흘러가되 분명한 것은 그 안에 물이 스며들어 오지 못하게 하고 물 속에 침몰되지 않으면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 오신 예수님의 모습이 그러했습니다. 갈대처럼 부드럽고 약해 보였고, 강포한 사람들 앞에서도 유연하게 끌려 다니는 것 같았지만 세상 속에 굴복되지 아니하고 의연하게 대처하였습니다.

히브리서 4:15에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 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또한 그리스도와 연합된 성도들의 거룩한 삶을 뜻합니다. 성도는 세상 속에 살면서도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사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Ⅲ. 갈대상자에 얽힌 신비

이사야 42:2-3에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로 거리에 들리게 아니하며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리로 공의를 베풀 것이며”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장차 세상에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펼치게 될 메시야 사역의 특징을 나타낸 것입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시고 그것을 통하여 일하시는 하나님의 신비로운 역사를 엿보게 하는 것입니다.

(1) 하나님 은혜의 한 면을 보여줍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갈대는 가늘고 키가 크지만 속이 비어 있어서 매우 여리고 약한 특징을 지닌 것입니다. 성경에서 이사야가 표현한 “상한 갈대”나(사 42:3), 예수께서 말씀하신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마 11:7) 등은 모두 갈대의 약한 것과 부정적인 면을 부각시킨 것입니다. 한편 프랑스의 사상가 파스칼(Pascal)은 사람을 가리켜 ‘생각하는 갈대’라 하였고, 미국의 여류 시인 펄 벅(Pearl Buck)은 ‘인간은 살아 있는 갈대’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표현들은 가장 약하고 볼품 없는 것이라도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가장 귀하고 요긴하게 그 역할을 해 내는 것을 뜻합니다. 모세를 담고 강물에 떠내려가는 갈대 상자는 외모로 볼 때 초라하고 약한 것이었으나 그 안에 소중한 생명을 담았고 또한 그의 역할로 인해서 위대한 출애굽 운동의 역사를 이루는 일에 기여하게 하였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고전 15:10).

(2) 버림받은 자를 세워서 큰 일을 하십니다.

모세는 그 부모의 손에 의하여 강물에 버림을 받았습니다. 다행히 물이 스며들지 않는 갈대 상자에 담겨 하수에 흐르는 물을 따라 정처 없이 기약 없이 떠내려가고 있었습니다. 이는 세상으로부터 유기된 자요 심지어 부모와 가족에게서도 완전히 격리된 상태임을 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건져서 자기의 요긴한 도구로 사용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의도하시는 구원 운동에 주역으로 쓰이게 하였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예수님을 가리켜 건축자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리 돌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벧전 2:7). 옛날 야곱의 아들 요셉은 그 형들에 의하여 종으로 팔려 갔으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세워 애굽의 총리가 되게 하였고 결국 야곱의 가족들이 그의 손안에서 보호받게 하였습니다(창 50:19-21).

(3) 하나님의 심오한 방법이 동원되었습니다.

인간의 능력이 한계에 이르게 되면 하나님께서 일하십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자기가 할 일에 최선을 다한 후 하나님의 도우심을 청하게 됩니다. 이때 사람들은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는 말을 씁니다. 모세의 부모는 아이를 담은 갈대상자를 물위에 띄워 보내고 뒤돌아서면서 체념과 함께 눈물을 흘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부터 용의주도한 하나님의 작업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마침 시녀들과 함께 강물에 목욕하러 나왔던 바로의 공주가 그 상자를 건져내어 뚜껑을 열었을 때 그 안에서 울고 있는 아기를 보고 마음이 감동되었습니다. 6절에 “그 아이를 보니 아이가 우는지라 그가 불쌍히 여겨 가로되 이는 히브리 사람의 아이로다”고 하였습니다.

그즈음 떠내려보낸 상자를 지키고 있던 모세의 누이 미리암이 공주에게 나아가 공주의 눈치를 살피며 “히브리 여인 중에서 유모를 불러다가 당신을 위하여 이 아이를 젖 먹이게 하리이까”하고 물었습니다(7절). 공주가 쾌히 허락하자 미리암은 곧바로 달려가 자기 어머니를 데리고 왔습니다. 이렇게 하여 모세는 장성할 때까지 그 어머니의 품에서 젖을 먹으며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이스라엘 민족의 정신을 기르면서 건전하게 자랐습니다. 이것은 어느 누구도 만들어 낼 수 없는 하나님의 계획이요 섭리입니다. 역사의 주권자이신 하나님께서 장차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전개하실 구원 운동의 모델을 삼기 위하여 갈대 상자의 진리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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