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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공의를 하수 같이 (창 50: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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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김기홍 목사 (아름다운교회)

요셉의 이야기는 우리 신자들에게 이상처럼 들립니다. 배다른 형들의 손에 먼먼 나라에 노예로 팔립니다. 정절을 지킨 대가로 무기 징역수가 되어버립니다. 그런데도 가장 강한 나라의 총리가 되고 많은 사람들을 죽음에서 구합니다. 부모와 형들과 모든 가족들을 다 구하고 거기다가 악행을 한 형들을 다 용서합니다. 태양처럼 빛나게 살아갑니다.

요셉이 그렇게 선하게 살았으니까 하나님이 복을 주셨다. 사람들은 그렇게 이해합니다.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착하게 산다고 본성까지 그런 사람은 없어요. 그러니까 사람의 착한 것은 모양뿐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복을 주셨으니까 그렇게 살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복이 펼쳐져 나오게 하는 선택과 행동이 중요합니다. 오늘의 주제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 앞에 와서 노래하지 말라. 그것보다는 공의를 물처럼 흐르게 해라. 내가 준 복과 능력으로 내가 너희에게 하듯 그렇게 남에게도 해라.”(암5:23) 하나님의 은혜는 늘 부어지고 있습니다. 힘들다고 주저앉으면 하나님의 은혜는 하나도 열매 맺지 못합니다. 은혜를 믿고 의를 선택합니다. 그러면 공의가 흘러내리는 것입니다.

1. 역경

요셉은 참으로 억울했습니다. 형들이 질투합니다. 아버지가 요셉만 사랑한다는 것이지요. 형제들 모두 어머니가 달랐어요. 말째 요셉을 왕따시키고 괴롭힙니다. 늘 불안 속에 소년 시절을 보냅니다. 그러다가 형들은 요셉을 죽이려고 마른 우물 속에 집어넣습니다. 그러다가 대상들에게 노예로 팔아넘깁니다. 이 정도 상처라면 충분히 요셉을 망칩니다.

여기서 요셉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절망합니다. 그리고 되는 대로 살아갑니다. 팔자가 사나운 억울한 사람으로 자신을 이해합니다. 그러면서 형들을 증오합니다. 때가 되면 원수를 갚겠다고 다짐합니다. 그러니까 마음속을 패배자로 만들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몇 년 보내면 그 상황보다 오히려 사람이 더 나빠집니다.

하나님이 정말 계시는가? 하나님이 아예 세상일에 관심이 없이 보입니다. 악한 자들이 더 잘되는 것 아니겠어요? 그렇게 생각하면 그렇게 삶이 펼쳐집니다. “나는 왜 이 모양인가? 모두 나를 버렸다. 도무지 되는 게 없네. 사는 게 지옥이구나!” 현실보다 더 비참하게 보아 괴로워합니다. 하나님 은혜를 물처럼 흘려보내는 게 아니라 막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정말 그 믿음대로 삶은 더 악화됩니다. 안 되는 사람은 자기가 왜 안 되는 지 이유를 수 없이 지적할 수 있어요. 반대로 어떻게 하면 될지에 대해서는 말하려고도 않습니다. 그저 “다 해 보았는데 안 된다”고만 말하지요. 그러면서 착한 것만 강조하지요. 요셉도 그런 식으로 상황을 받아 절망의 사람으로 자신을 정착시킬 수 있었어요.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두려워 마소서.” 분명히 해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자기에게 유익하게 바꾸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시고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셨습니다. 여기 하나님의 은혜가 흘러내리게 하는 원리가 있습니다.

1) 하나님은 여전히 함께 하신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도 나를 돌보고 계신다. 2) 그러니 사탄이 나를 지배하게 하지 말라. 상황과 감정이 나를 지배하게 버려두지 말라. 그러면 은혜는 내게 내릴 수 없다. 3) 하나님이 나를 지배하게 하자. 그러면 하나님은 견딜힘을 주신다. 4) 그렇게 꾸준히 하자. 때가 되어 내가 준비되면 모두 이기게 하신다.

2. 오래 참음

요셉이 매 맞고 팔려갈 때 먼먼 나라에서 노예들만이 들어가는 감옥에 들어가 있을 때도 하나님은 함께 하셨습니다. 만약 그 하나님의 임재를 느낀다면 어떤 음성을 들을까요? “요셉아, 하나님이 함께 있다. 네가 여기서 절망하고 믿음을 버리면 내가 너를 도울 수 없다. 하지만 나를 믿고 당당하게 서라. 내 은혜가 강처럼 흘러내려 너를 돕게 해라.”

도대체 역경이, 억울함이 손해가 어쨌다는 겁니까? <이병철대 정주영>이란 책에 보면 두 사람 모두 일제하에서 전쟁에서 5.16에서 여러 번 전 재산을 날렸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망하지 않았어요. 돈이 다 사라지고 빚더미에 앉았다고 망한 겁니까? 망했다는 생각이 그를 망하게 합니다. 경험도 신용도 인간관계도 삶도 다 있는데 뭐가 망했나요?

불신자도 이렇게 일어난다면 신자는 더 잘할 수 있어요. 요셉이 자기 망한 일에 잡혔나요? 노예로 떨어졌어요. 자기를 망친 형들을 미워하고 절망하는 동안 하나님의 은혜는 그에게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사탄은 과거일로 그에게 원통함을 일으키게 합니다. 현실이 더욱 괴롭도록 만듭니다. 예배하고 하나님을 느껴야 합니다. 빛이 비치게 해야지요.

잘 안된다고 절망하면 그 상태대로 삶이 전개 됩니다. 어렵다고 불평하고 슬픈 소리하고 술 마시고 신세타령 해 보세요. 아무리 교회를 오래 다녀도 그런 자세를 가지면 은혜는 막혀버리고 맙니다. 힘들어도 자기 할 일을 하면서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신으로 일어서야 합니다. 그렇게 살기로 선택하면 하나님의 은혜는 새로운 힘을 공급해 줍니다.

모든 좋은 일은 쉽게 되지 않습니다. 큰 일 일수록 변수가 많고 실패도 많아요. 시간도 오래 걸립니다. 성경이 말하는 오래 참음은 그냥 기다리는 게 아닙니다. 앞의 네 가지 원리를 적용하며 자기 할 일을 하는 것입니다. 공의를 하수처럼 흘리며 인내하는 것입니다. 무력하게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참고 있는 것은 인내가 아니라 굴종입니다.

요셉의 인내는 왕따로서도 아니고 노예로서도 아닙니다. 죄수로서도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과 함께 자신을 계속 성장시켰습니다. 외로움을 고된 노예 생활을 감옥의 고통을 모두 자신을 위해 이용했어요. 모든 역경은 하나님의 은혜를 적용시키는 기회입니다. 누구나 현재가 불만스럽고 괴로우면 잘못하고 있는 겁니다. 다시 네 가지 원리로 돌아가세요.

3. 유혹

요셉은 노예였습니다. 노예는 인권이 없습니다. 물건이요 동물입니다. 또 그렇게 생각하도록 길들여져 있습니다. 마치 우리 인생이 자신의 한계에 잘 길들여져 있는 것과 같아요. 하지만 요셉은 절망이 지배하도록 버려두지 않았어요. 분함과 노여움과 악의와 비방을 버렸어요. 하나님의 평안을 입고 늘 감사했어요. 그렇게 안 하면 견딜 수가 없었지요.

얼마 못가서 그는 주목을 받습니다. 그의 모습은 다른 노예들과 달랐어요. 주위 사람들이 좋아합니다. 주인도 좋아합니다. 아무도 그를 노예로 대하지 않습니다. 주인이 모든 것을 그에게 맡깁니다. 노예들을 지배하는 존재가 됩니다. 일이 잘 되나갈 때가 어찌 보면 가장 위험한 때입니다. 마음이 느슨해져 약점이 드러납니다. 그리고 그것이 쌓입니다.

슬그머니 사탄에게 잡히는 게 더 무서운 일입니다. 누구나 잘되면 하나님을 소홀히 합니다. 하나님을 절대로 잊지 않는다 하지만 행동으로 멀어졌음을 보여줍니다. 교회출석을 안 해요. 일이 너무 많고 바빠서입니다. 들어보면 이해가 충분히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배를 가장 중요하게 보십니다. 내가 가장 우선으로 하는 게 도대체 무엇인가요?

요셉은 상황이 좋아졌다고 거기 매이지 않았습니다. 아름다운 여주인이 유혹합니다. 황홀한 일이 아닙니까! 만약 관계를 맺으면 사실상의 주인이 됩니다. 머리를 잘 쓰면 주인을 제거하고 자기가 그 자리를 차지할 수도 있어요. 여주인을 이용할 수도 있습니다. 역사를 통해 보면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방법으로 자기 뜻을 이룹니다. 그게 세상입니다.

요셉은 거절합니다. 한 두 번이 아니라 수없이 그렇게 합니다. 여주인이 옷을 잡고 매달리자 그 옷을 벗고 피합니다. 그에게도 여주인의 유혹은 강한 것이었어요. “당신의 내 주인의 아내입니다.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첫째로 하나님을 모시고서 그럴 수 없다는 것이요 둘째로 주인에 대한 의리도 중요했어요.

그 결과 모든 죄를 뒤집어씁니다. 주인이 배신당했다고 저주하고 그를 감옥에 던져도 그는 입을 다물었어요. 여기서 그의 모습이 나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공의를 실천합니다. 그래서 더욱 더 하나님의 도구로 자신을 드립니다. 하나님은 의로 세상을 통치하십니다. 그 의가 권능이요 사랑입니다. 요셉은 세상을 향해 하나님처럼 되는 겁니다.

4. 용서

감옥에 들어가도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은 눌리지 않습니다. 안중근 의사가 이등박문을 죽이고 감옥에 들어있는 동안 너무도 당당했어요. 순사들이 존경할 정도로 기품이 있었습니다. 나라를 위해 죽는다는 자부심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어요. 하물며 하나님의 의를 위해 당한다면 얼마나 더 당당할까요? 거기서도 하나님의 은혜는 쏟아져 내립니다.

만약 요셉이 감옥에서 고통하며 형들이 자기에게 한 일을 증오하고 뒤집어씌운 여주인을 저주한다면 모든 게 막힙니다. 그는 감옥에서 모든 사람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았어요. 그것은 그의 힘으로 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옷 입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비쳐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를 만나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만나는 것 같았어요.

이러한 훈련은 삶에서 계속 진행됩니다. 역경과 인내와 유혹은 반복해서 우리가 자라나기를 요구합니다. 30세 젊은이였지만 누구보다도 더 성숙하고 지혜로운 하나님의 사람이 됩니다. 애굽의 총리였어요. 총리가 되어서도 계속 같은 일은 진행됩니다. 외국인으로서 그 자리를 유지할 뿐 아니라 온 세상 사람들을 죽음과 멸망에서 구원하고 또 합니다.

결국 그의 앞에 형들이 엎드립니다. 용서해 달라는 거지요. 아버지는 돌아가셨습니다. 형들은 복수할까봐 두려워합니다. 저들이 참으로 회개했는가? 용서받을 자격이 있는가? 나는 왜 용서만 해야 하는가? 이런 생각이 아닙니다. 요셉에게는 용서가 형들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방편이었어요. 용서를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는 나를 통해 흘러내립니다.

용서 없이 은혜는 은혜되지 않아요. 하나님의 용서로 구원받은 나입니다. 내가 자격이 있었나요? 내가 정말 뉘우치거나 변했기에 주어졌나요? 하나님의 마음으로 용서할 때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은 흘러내립니다. 막힌 둑이 무너지듯 넘쳐 들어옵니다. 이처럼 하나님 공의가 물처럼 흘러내리게 우리 자신을 드립시다. 먼저 복된 삶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QT질문: 노트에 매일 조금씩 하시면 연말에 시상이 있습니다. 괄호 안의 숫자는 답을 생각하는 데 도움이 되는 글의 위치로서 장과 문단입니다.

1. 받은 복이 흘러나오게 하려면 어떻게 하나요?(서/2,3)
2. 역경은 어떻게 내게 역경이 되나요?(1/2,3)
3. 하나님의 은혜가 흘러내리게 하는 방법은?(1/6)
4. 인내는 어떻게 하는 것인가요?(2/5.6)
5. 유혹은 어떻게 오나요? (3/2,3)
6. 용서의 유익은 무엇인가요? (3/4,5)
7. 어떻게 삶 속에서 공의를 하수처럼 흘리는지 자신의 입장을 말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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