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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는 성도 (요 17: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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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기홍 목사 (아름다운교회)

프랜시스 쉐퍼라면 20세기 기독교 최고 지성입니다. 스위스에서 활동하다가 암에 걸려 치료차 미국에 갔어요. 자신의 죽음을 내다보며 휘튼 대학에서 설교를 합니다. “만약 여러분의 목표가 삶의 행복이라면 불신자와 무엇이 다릅니까? 신자의 목표는 그 이상이어야 합니다. 나는 내 목표를 거룩으로 잡고 있습니다. 힘 다해 거룩을 위해 노력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거룩이란 말은 별로 인기가 없습니다. 거룩이 행복보다 더 좋고 높은 진리임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거룩은 구별되었다는 뜻입니다. 죄와 악으로부터 구별됩니다. 저주로부터도 구별됩니다. 그러려면 힘이 있어야지요. 죄와 악을 떠날 뿐 아니라 벌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거룩 자체입니다. 자신을 거룩하다 선언하십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거룩하다 하십니다. 그러면서 거룩하기를 원하십니다. 사람들은 거룩이 힘들리라 생각합니다. 재미도 없다고 생각해요. 그러면 하나님이 재미없나요? 말할 수 없는 영광과 행복 속에 계십니다. 일단 거룩을 목표로 삼으면 거룩의 능력이 공급됩니다. 동시에 거룩이 주는 깨끗한 행복을 누립니다. 거룩보다 더 큰 축복은 없어요.

1. 신자가 사는 목적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기 전날 밤에 하나님과 대화하는 내용이 본문입니다. 여기서 그는 신자들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15) 신자들을 그냥 여기 나두되 거룩하게 보전해 달라는 부탁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사는 목적을 말해줍니다.

예수께서는 하늘나라로 가십니다. 여기와는 비교가 안 되는 좋은 곳이지요. 나 자신도 세상이 힘들 때는 하늘나라로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아직은 아닙니다. 예수는 할 일을 다 하셨어요. 그래서 영광 속에 좋은 곳으로 가십니다. 하지만 우리는 남은 시간동안 할 일이 있어요. 길지도 짧지도 않은 한 평생 계속 목표로 삼아야 해요.

거룩은 진행형입니다. 금을 정제해 순도를 높입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욥23:10) 다이아몬드 광석은 유리 덩어리처럼 보입니다. 그것을 수없이 깎아 찬란한 보석으로 만듭니다. 신자도 그렇게 만들어져 갑니다. 깎일수록 빛나요. 천국 들어가기까지 거룩의 과정을 거쳐야 해요.

만약 우리만의 힘으로 그렇게 한다면 스님들이 산에서 수도하는 것 같겠지요. 그래서 거룩이란 단어를 싫어하는 겁니다. 힘들다는 거예요. 사람들이 거룩을 많이 오해합니다. 외형만을 생각하지요. 생각해 보세요. 거룩한 모습 그것이 어떤 것인가요? 점잖은 것? 신부와 수녀의 복장입니까? 금욕입니까? 남들은 그렇게 하면 좋겠지만 나는 하기 싫은 것 아닙니까?

거룩은 그런 게 아닙니다. 더러운 옷을 벗고 새 옷을 입습니다. 상한 음식을 버리고 정갈한 음식을 먹습니다. 걱정이 겸해 오는 기쁨이 아니라 순수한 기쁨을 찾습니다. 악을 버리고 의로운 생활을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람으로 스스로를 만듭니다. 요셉처럼 힘들어도 유혹을 받아들이지 않고 깨끗하게 살아갑니다. 신자의 삶은 거룩해지는 성화의 과정입니다.

거룩은 구별입니다. 세상과 다릅니다. 리처드 니버의 <그리스도와 문화>에 설명되어 있습니다. 신자는 세상을 향해 몇 가지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제일 나쁜 것이 세상과 아무런 구별이 없다는 것입니다. 문화에 종속되는 신자입니다. 세상 사람들과 도덕적으로 같아요. 모두 다 하는 데 어떠냐는 거지요. 교회 가는 것 빼면 아무도 신자인줄 몰라요. 거룩이 아니에요.

특별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개가 술에 중독이 되어있습니다. 신자들도 술 마시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요. 성적으로도 타락합니다. 신용도 없어요. 남들이 다 그러는데 어떠냐는 것이지요. 남들이 기준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진리가 우리를 거룩하게 만듭니다. 개인이 타락하면 개인이, 사회가 타락하면 사회가 망하고 말아요.

세상과 구별되는 신자는 3가지입니다. 하나는 문화와 아주 담을 쌓아버립니다. 세상은 다 썩어질 것이니까요. 다음은 문화 위에 서서는 그 따위로 하지 말라고 비판만 합니다. 이것도 주께서 우리를 세상에 남겨놓은 이유가 아닙니다. 마지막이 문화를 변화시키고 이끌어가는 신자입니다. 신자는 세상에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빛으로 소금으로 그렇게 해야 합니다.

2. 역설적 존재

거룩은 구별됩니다. 그것도 좋게 구별되지요. 신자라고 이상한 모습으로 다르지 않습니다. 거룩하면 가난하고 재미없게 살 거라 생각하지 마세요. 그것은 거룩과 아무 상관이 없어요. 하나님이 거룩하십니다. 그 하나님이 가난한가요? 그 하나님이 재미가 없을까요? 거룩하게 살면 세상 사람보다 더 잘 됩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아도 부럽습니다.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진흙에서 나온 꽃을 보았나요? 진흙은 더러워요. 벌레가 우굴 거립니다. 냄새도 나고요. 그런데 거기서 연꽃이 나옵니다. 거기 뿌리를 내리고 영양을 얻습니다. 하지만 진흙과는 완전히 구분이 됩니다. 꽃은 진흙의 더러움을 가려줍니다. 그래서 그 곳이 살만한 곳이 되게 해줍니다. 좋은 열매도 맺습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초파일에 연꽃등을 달고 기원합니다.

진짜 연꽃은 신자입니다. 신자는 세상을 근거로 살아요. 신자라고 산에 들어가 나무뿌리 먹고 살지 않아요. 같은 말을 쓰고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생활을 해요. 그 문화 속에 푹 젖어있어요. 그러나 사람들이 잘못하는 것도 따라하지는 않아요. 거기 동화되지 않아요. 신자는 분명히 다릅니다. 적어도 연꽃처럼 피어오르려면 그렇습니다. 그것을 하나님이 원하세요.

신자는 역설적인 존재입니다. 세상 사람들과 같지만 다릅니다. 그들과 함께 살지만 다르게 삽니다. 그들이 힘을 얻는 것은 돈이요 사람입니다. 그들이 즐거워하는 것은 놀고 술 마시고 화토하는 겁니다. 신자도 그것을 좋아하면 이미 신자의 힘을 잃어버립니다. 그래서 죽도 밥도 아닌 신자가 되고 말지요. 불신자들도 모두 우습게봅니다. 신자는 무엇인가 구별됩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나요? 하나님이 해주신다면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사옵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향해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이제 자신의 정체를 분명히 아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절대로 세상에 속하지 않았어요. 하늘에 속했어요.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셨어요. 그래서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모습이 되셨어요. 세상의 음식을 먹고 옷을 입었어요. 부모를 모시고 친구를 사귀었어요. 세상의 꽃이었어요. 이제 우리가 예수에 의해 세상에 보내졌습니다. 예수의 모든 풍성함을 다 가지고 세상에 보내졌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필요로 하는 것은 음식이요 옷이요 물질입니다. 세상적인 도움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살게 하는 힘은 위에서 옵니다. 진흙 속에 있지만 자신이 꽃임을 알고 믿어야 합니다. 세상과는 달라요. 불교인들이 그렇게 사모하는 삶이 거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주어졌어요. 이미 거룩해졌어요. 그 생명과 능력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 안에 부어진 것입니다.

3. 거룩을 실천하라

꽃은 진흙과 함께 뒹굴지 않아요. 신자는 예배하고 스스로를 깨끗하게 합니다. 거기 천국의 능력이 있어요. 핍박받고 죽어도 기쁘고 행복해요. 북극의 흰 담비는 깨끗하기로 유명합니다. 담비를 잡으려면 굴에다 오물을 묻힙니다. 그러면 굴에 안 들어가요. 잡혀도 깨끗한 모습으로 잡히려고 합니다. 이러한 자세가 신자입니다. 이미 거룩하지만 거룩을 경험합니다.

이제부터 우리의 삶에서 그 거룩이 나타나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세상에 머무는 이유입니다. 그것이 정금으로 잘 깎인 다이아몬드로 바뀌는 과정입니다.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우리의 거룩에 참여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20) 거룩의 분명한 목적입니다.

거룩의 목적은 둘입니다. 스스로 세상의 꽃으로 나타나기 위해 자신을 만들고 보여주는 것이 하나요, 둘째는 그렇게 해서 다른 사람들도 거룩에 참여하게 하는 것입니다. 안 그러면 모두 진흙에 묻혀 썩어지고 맙니다. 그렇게 사는 게 힘들고 지루할까요? “이 말을 하옵는 것은 그들로 내 기쁨을 그들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함이니이다.”(13) 예수의 기쁨이 있어요.

토마스 아켐피스는 <그리스도를 본받아>라는 고전에서 거룩하게 사는 법을 말합니다. 세상의 사욕을 버리고 돌아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사욕에는 우울함과 미움과 두려움과 탐욕이 포함되지요. 어떻게 우리 속에서 그것들을 몰아낼까요? 그것들은 연기처럼 어느새 내 속에 들어와 있습니다. 그래서 스님들은 평생 수도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없앨 수 없어요.

어느날 무디가 손에 컵을 들고 물었어요. “이 컵에서 공기를 어떻게 완전히 뺄까요?” “공기 펌프로 빼면 됩니다.” “그렇게 해서 진공이 되면 컵이 깨집니다.” 그는 주전자로 컵에 물을 부었어요. “자 보세요. 공기는 조금도 남아있지 않아요. 우리 속에 죄를 없애는 것도 우리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오직 성령이 충만히 채워져야 죄는 제거되고 거룩한 삶이 옵니다.”

21절이 바로 거룩입니다. 하나님이 예수 안에 예수께서 하나님 안에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신자도 하나가 되어 성삼위 속에 있습니다. 이보다 더 큰 영광이 있나요? 그러면 세상이 예수를 믿게 됩니다. 그래서 함께 거룩에 참여합니다. 세상과 하나되면 함께 망합니다. 세상을 이용해서 거룩을 실천해야 합니다. 그리고 세상을 비추어 거룩으로 이끌어야 합니다.

첫째로 자신이 세상의 꽃인 것을 늘 확인하세요. 돈이 없다고 남이 나보다 잘나 보인다고 기죽으면 거룩한 삶은 안 됩니다. 비록 세상에 파묻혀 같이 살지만 나는 하나님께 속했어요. 이 믿음이 나를 꽃의 역할을 하게 만들어줍니다. 이 믿음이 나에게 능력을 공급합니다. 이 믿음이 세상 것들을 거룩한 삶을 위해서 쓸 수 있도록 도움을 줍니다. 말씀대로 믿으세요.

둘째로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를 간절히 사모하세요. 늘 예수 그리스도가 마음에 있게 하세요. 그래서 세상이 우리와 하나님이 하나인 것을 알게 하세요. 그러면 많은 사람들이 나의 거룩을 부러워합니다. 그들에게 내 능력의 출처를 말해주세요. 그러는 과정에서 나는 더욱 더 정금이 되고 더 찬란한 다이아몬드가 됩니다. 그렇게 나는 성도요 더욱 성도가 되어갑니다.

QT를 위한 질문

1. 거룩의 의미가 무엇인가요?(서/2)
2.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거룩과 실제 내용은 어떻게 다른가요?(1/4,5)
3. <그리스도와 문화>에 나타나는 네 가지 신자를 설명하세요.(1/6,8)
4. 신자는 왜 역설적 존재인가요?(2/4)
5. 거룩할 수 있는 힘은 어디서 오나요?(2/5-7)
6. 거룩을 어떻게 실천할까요?(3/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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