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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풍복한 삶 (출 16:11~18, 빌 2:1-4, 눅 9: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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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종화 목사 (경동교회)

구약의 말씀: 출애굽기 16: 11 ~ 18
  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이스라엘 자손이 원망하는 소리를 들었다. 너는 그들에게 '너희가 저녁이 되면 고기를 먹고, 아침에는 빵을 배불리 먹을 것이다. 그렇게 될 때에 너희는, 나 주가 너희의 하나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하고 말하여라." 그 날 저녁에 메추라기가 날아와서 진 친 곳을 뒤덮었고, 다음날 아침에는 진 친 곳 둘레에 안개가 자욱하였다. 안개가 걷히고 나니, 이럴 수가! 광야 지면에, 마치 땅 위의 서리처럼 보이는, 가는 싸라기 같은 것이 덮여 있는 것이 아닌가! 이스라엘 자손이 그것을 보고, 그것이 무엇인지 몰라서, 서로 "이게 무엇이냐?" 하고 물었다. 모세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이것은 주께서 너희에게 먹으라고 주신 양식이다. 주께서 너희에게 명하시기를, 너희는 각자 먹을 만큼씩만 거두라고 하셨다. 너희 각 사람은, 자기 장막 안에 있는 식구 수대로, 식구 한 명에 한 오멜씩 거두라고 하셨다."
이스라엘 자손이 그대로 하니, 많이 거두는 사람도 있고, 적게 거두는 사람도 있었으나, 오멜로 되어 보면, 많이 거둔 사람도 남지 않고, 적게 거둔 사람도 모자라지 않았다. 그들은 제각기 먹을 만큼씩 거두어들인 것이다.

서신서의 말씀: 빌립보서 2:1 ~ 4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에게 어떠한 격려나, 사랑의 어떠한 위로나, 성령의 어떠한 교제나, 어떠한 동정심과 자비가 있거든, 여러분은 같은 생각을 품고,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고, 한 마음이 되어서, 나의 기쁨이 넘치게 해주십시오. 어떤 일을 하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고, 서로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십시오. 또한 여러분은 자기 일만 돌보지 말고, 서로 다른 사람들의 일도 돌보아 주십시오.

복음서의 말씀: 누가 복음서 9:10 ~ 17
  사도들이 돌아와서, 자기들이 한 모든 일을 예수께 말씀드렸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데리고, 따로 벳새다라고 하는 성읍으로 물러가셨다. 그러나 무리는 그것을 알고서, 그를 따라갔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맞이하셔서, 하나님의 나라를 말씀해 주시고, 또 병 고침을 받아야 할 사람들을 고쳐 주셨다. 그런데 날이 저물기 시작하니, 열두 제자가 다가와서, 예수께 아뢰었다. "무리를 흩어 보내서, 주위의 마을과 농가로 찾아가서 잠자리도 구하고 먹을 것도 구하게 하십시오. 우리가 있는 여기는 빈 들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그들은 말하였다. "우리에게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나가서, 이 모든 사람이 다 먹을 수 있을 만큼 먹을 것을 사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거기에는 남자만도 약 오천 명이 있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사람들을 한 오십 명씩 떼를 지어서 앉게 하여라." 제자들이 그대로 하여, 모두 다 앉게 하였다. 예수께서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드시고, 하늘을 우러러 감사 기도를 드리신 뒤에,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셔서, 무리 앞에 놓게 하셨다. 그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부스러기를 주워 모으니, 열두 광주리나 되었다.

최근에 신문에서 읽은 미담 하나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미국 로스엔젤레스에서 있은 일인데, LA타임즈에 실린 것을 우리나라 신문이 전제한 것입니다. 주인공은 김연흥 할머니인데, 미국 이름은 글로리아 김입니다. 예순한 살 되신 분인데 지금도 LA에서 살고 계신다고 합니다.

이분은 새벽 2시면 눈을 뜨고, 뜨자마자 부엌에 나가서 감자와 토마토, 국수로 2백여 명이 먹을 스프를 만들고, 그 다음에 봉지에다 과자, 빵, 과일을 담아서 자기 승합차에 싣고 4시에 노숙자들이 있는 곳을 찾아갑니다. 노숙자들 중에는 백인도 있고 흑인도 있고 히스페닉도 있고 동양 사람도 있습니다. 이분은 다인종 노숙자들에게 음식을 나누어줍니다.

그런데 미국사람들은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하이, 헤이, 헬로우 하면서 인사합니다. 이 할머니 인사법은 할렐루야입니다. 할렐루야 하고 인사하면서 빵과 스프를 전하는데 노숙자들이 이 할머니를 부르는 호칭은 ‘마마’입니다. 그러면서 신문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흔히 천사는 하얀 옷을 입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White Angel이라고 말하는데, LA에서 새로 생긴 말은 White가 아니고 Brown Angel이라는 것입니다. 갈색 머리의 천사라는 말입니다.

할머니 이야기를 신문에 난 대로 소개해드리면, 한국에서 숭의여고를 졸업하고 집안에 있다가 할머니의 어머니가 76년에 간호사가 되어서 가족들이 미국으로 이민을 갔습니다. 플로리다 주에서 어머니는 간호사 일을 하다 돌아가셨는데, 이 할머니는 어머니에게 나오는 연금을 타서 삽니다. 할머니는 가진 모든 것을 다 하나님께 헌신하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어머니 때문에 타는 연금을 자신이 죽을 때까지 남을 위해 쓰고 싶어합니다.

이분은 낮에는 승합차를 몰고 한인 상점을 돌아다니면서 도와 달라고 하면서 빵, 감자, 과자, 과일 등을 얻어다가 새벽에 정리하고 요리하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이분은 음식물을 얻을 때, 곧 유효기간이 지날 것들을 달라고 부탁한다고 합니다. 어차피 유효기간이 끝나면 못 팔 것이니, 그 전에 달라고 부탁한다는 것입니다.

유효기간 이야기를 하면 생각나는 게 있습니다. 98년에 금강산에 평양을 거쳐서 갔을 때, 금강산 호텔에 가서 빵과 초콜릿을 사려고 했는데, 점원 아가씨가 건네주는 초콜릿과 빵을 보니, 유효기간이라고 인쇄해놓은 게 95년 몇 월 몇 일, 다른 것은 93년 몇 월, 이렇게 되어 있더라고요. 빵이 유효기간을 3년, 5년씩이나 지난 건데 어떻게 먹겠습니까? 그래서 제가 “이거 못 먹는 건데.” 하니까 그 아가씨 말이 “안 먹으려면 그만 두세요. 우리는 없어서 못 먹는데.”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마 90년대 초반에 북한에 큰 홍수가 나서, 그때 우리나라를 포함한 여러 나라에서 빵과 초콜릿 등을 보냈는데, 그것을 일부 남겨놓은 건지, 아니면 전부 안 먹고 남겨놓은 건지는 몰라도, 유효기간이 전부 몇 년씩 지난 것들이었습니다. 우리는 북한에 유효기간이 지난 음식을 주지 않았습니다. 만일 그런 것을 주었다면 저주를 받을 일입니다. 북한 사람들이 먹든 안 먹든.

유효기간이 지난 것으로 남을 도와주어서는 안 됩니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가 쓰다 쓰다 남아서 버리는 것, 이걸로 구제사업을 하면 안 됩니다. 유효기간 지나지 않은 것 중에서 남는 걸 좀 달라는 이 할머니, 글로리아 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남을 돕는 우리의 자세를 돌아보게 됩니다.

사람이 아무리 지성이 있고 도덕심이 강해도 일단 배고프고 목마르면 정상궤도를 유지하기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4백 년 종살이에서 해방시켜 홍해를 가르는 기적을 통해서 광야로 인도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고마움도 잠시, 배고프고 목마르자 하나님을 원망하기 시작합니다. 어느 정도 원망이냐 하면, 차라리 종살이할망정 배부르게 먹는 게 나았다는 것입니다. 자유, 행복, 독립, 배고프면 다 소용없어지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 하는 말이 이집트로 돌아가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기가 막힌 이야기일 겁니다. 지도자 모세도 기가 막혔을 것입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간구하자, 하나님께서는 밤에 메추라기 떼를 고기로 주시고 아침엔 하얀 가루를 이슬처럼 내려서 빵으로 먹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오늘 만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하나님께서 출애굽기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먹는 기적입니다.

오늘의 복음서 본문에서 예수에게 베푸신 먹는 기적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선교하러 보내셨습니다. 보내시면서 하시는 말씀, “갈 때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마라. 지팡이도, 먹을 것도, 돈도 가지지 말고 떠나라. 그리고 복음을 선포하면 하나님께서 필요한 것을 주실 것이다.” 제자들이 갔다가 돌아와서 예수님께 선교 보고를 합니다. 보고를 듣고 좀 쉬자고 조용한 곳으로 물러났지만, 사람들은 예수님 일행을 놓치지 않고 따라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하나님나라 복음을 선포했습니다.

그런데 날은 저물었고 오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먹을 것도 없었습니다. 제자들은 먹을 것과 잘 곳을 찾아야 되니 사람들을 빨리 돌려보내자고 말씀드립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너희들이 먹을 것을 주어라.”고 하십니다. 그러니까 제자들은 당황한 것 같습니다. 우리는 가진 돈도 조금밖에 없는데, 어떻게 저 많은 사람들을 먹일 수가 있겠느냐고 반문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오천 명을 풀밭에 오십 명 정도씩 둘러앉게 하시고, 제자들에게 혹시 사람들 중에 먹을 것을 가져온 사람이 있는가 알아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들 가운데서 빵 다섯 덩어리와 물고기 두 마리가 나왔습니다. 빵은 보리빵입니다. 당시 유대 땅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먹던 빵은 밀빵이 아니라 보리빵입니다. 그리고 물고기는 아마 소금에 절인 것을 구워서 가져왔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보리빵 다섯 덩이와 물고기 두 마리를 들고서 하늘을 우러러 하나님께 기도를 하시고 떼어서 나눠주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오천 명이 다 먹고 부스러기가 열두 광주리나 남았습니다.

이 두 이야기를 비교해 보십시오. 하나는 모세가 빌었더니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메추라기와 만나를 내려주셔서 이스라엘 모든 사람을 배부르게 해주셨다는 이야기입니다. 다른 하나는 예수께서 사람이 가진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빵 다섯 개를 가지고 축사하고 나눠주셨더니 오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배부르게 먹고 열두 광주리나 남았다는 이야기입니다. 두 이야기에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습니다.

만나 이야기는 하나님께서 아무것도 없는 무(無)에서 먹을 것들을 내려주신 기적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행한 기적은 항상 이렇습니다. 사람이 가진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땅에 뭐가 있든지 전혀 관여하지 않으시고 하늘에서 필요한 것들을 내려주십니다. 바위를 쳤더니 물이 나왔다는 기적부터 시작해서 구약시대의 기적은 땅의 조건과 상관없이 하나님 홀로 일으키신 기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기적을 잘 살펴보십시오. 예수께서 오천 명을 먹이신다고 빵이 하늘에서 우수수 떨어지게 하셨습니까? 그게 아니지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가져오라고 하셨습니다. 작든 크든, 많든 적든 뭔가 자신들에게 있는 것을 가지고 오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가져온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축사하셔서 많은 사람을 먹이셨습니다. 사람이 가진 것에다 하늘의 능력을 더함으로써 기적을 일으키신 것입니다. 신약성서에 나오는 기적은 구약성서에서처럼 하늘에서 벼락처럼 떨어지는 기적은 하나도 없습니다. 반드시 인간이 가진 것을 계기로 삼아서 기적이 일어납니다.

이 말씀을 드리면서 신구약성서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생각하게 됩니다. 구약시대의 하나님은 땅에 직접 관여하시면서 직접 이스라엘 백성을 통치하셨습니다. 그러다가 인간의 고통을 위에서 내려다보고 고통을 치유하는 것보다, 차라리 인간의 고통 속에 들어가서 그들의 고통을 직접 겪고서 그들을 치유하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한 사건을 일으키셨습니다. 인간이 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땅에 있는 인간의 삶이 계기가 되지 않는 기적은 행하지 않으십니다. 이것이 구약시대와 다른 것입니다.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빵 다섯 덩이? 보잘것없어도 좋으니 그것을 가져오라고 합니다. 이 말씀을 대하면서 꼭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늘의 기적을 바라십니까? 질병이 낫기를 바라십니까? 복을 받기를 바라십니까? 자신이 가진 것을 내어놓으십시오. 땅과 상관없이, 나의 준비와 상관없이 복을 달라고 하는 건 구약시대 이야기입니다. 예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그날 이후로는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준비 없이, 인간이 내놓은 것 없이 하늘에서 직접 기적을 행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가진 것을 내놓아라. 죄악도 내놓아라. 내가 용서의 기적을 베풀겠다. 조그만 사랑의 마음씨라도 내어놓아라. 내가 하늘의 사랑을 더하여 엄청난 사랑의 기적을 베풀 것이다. 다 나누고도 열두 광주리나 남을 만큼!” 이제부터는 우리가 가진 것, 잘못된 것, 좋은 것, 많은 것, 작은 것, 이것을 내어놓아야 그 위에서 하나님이 새 역사를 시작하십니다. 참으로 중요한 말씀입니다.

또 다른 차이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기적에는 특별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오천 명을 먹이고 열두 광주리가 남은 것입니다. 열두 광주리는 열두 제자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기적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을 혼자 가지지 않으시고 자기가 택한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십니다. 이제 제자들은 자기 능력이 아니라 하늘의 능력을 받아서 복을 빌면 열두 광주리를 남길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남은 열두 광주리는 배불리 먹은 오천 명이 들고 가서 다른 배고픈 사람들에게 전해주어야 할 양식입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임하는 곳에는 항상 남음이 있습니다. 문제는 그 남은 것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 말고 따로 예정하신 사람들을 위해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헌금과 봉사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는 것이 관례처럼 되어 있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은 하지 않아도 우리가 다 깨닫기 때문입니다.

성서에는 우리가 가진 것 가운데 십분의 일을 떼어놓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것이 무슨 뜻이냐 하면, 열 개 중에 아홉 개는 우리가 쓰되 나머지 한 개는 하나님의 것, 사실 열 개가 다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만, 다른 사람을 위해서 우리에게 위임된 것으로 알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쓰는 아홉 개와 이웃을 위해 쓰는 한 개가 다 있을 때 우리는 풍족해집니다. 그 한 개를 통해서 성령은 역사하십니다. 사도 베드로가 무슨 능력이 있길래 그의 설교를 듣고 삼천 명이 회개했겠습니까? 그것은 성령이 베드로 설교를 통하여서 남은 광주리의 무한한 역사를 이루신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재산이나 재물이나 시간이나 간에 이 모든 것 중에 이웃을 위해서 쓰도록 남겨놓은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을 떼어놓으십시오. 떼어놓아야 하는 그 부분은 여러분 몫이 아니고 하나님의 몫입니다. 실지로 따져보십시오. 하나님이 우리 돈 그것, 왜 필요합니까? 하나님이 우리의 시간이 왜 필요합니까? 하나님이 우리의 지혜나 능력이 왜 필요하겠습니까? 전지전능하신 분인데! 필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몫이라는 말의 뜻은 “너희에게 충분하게 줄 테니, 그 가운데에서 일부를 다른 사람들에게 내 이름으로 주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서 솔직하게 한번 생각해 보십시다. 교회를 위해서 쓰는 시간, 교회에 바치는 헌금, 교회에서 행하는 봉사, 거기에 더하여 불쌍한 이웃들한테, 북쪽에 있는 동포들이나 아프리카에 있는 굶주리고 헐벗은 이웃들한테 베푸는 그 모두를 다 합한 것이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것의 십분의 일이 되는지. 만약 십분의 일이 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풍요 가운데 있다고 믿습니다.

우리에게는 빵만이 아니라 많은 재능을 주셨습니다. 이 많은 재능을 혼자 끌어안고 살다가 죽을 겁니까? 이 재능을 써야 재능 때문에 복을 받고 감동하는 사람들도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한테 기술을 주셨습니다. 지혜도 주셨습니다. 무엇 때문에 혼자 안고 끙끙 앓습니까? 베풀어야 할 것 아닙니까? 하나님께서는 십분의 일만 베풀어도 된다고 하십니다.

돈만 이야기하면 이 비유는 의미가 없습니다. 설교, 찬양, 재능, 기술, 지혜, 마음씨, 사랑, 이 모든 것이 오늘의 빵입니다. 이 빵들을 어떻게 할 겁니까? 혼자 먹고 배탈이 날 겁니까? 아니면 조금 모아 놨다가 다른 사람에게 나눌 것입니까? 사랑은 나눌수록 커진다고 합니다. 믿음도 나눌수록 커집니다. 우리의 재능도 나눌수록 사랑과 감동을 불러일으킵니다.

열두 광주리를 남겨놓았습니다. 여러분은 그 광주리를 들어서 하늘의 복을 비십시오. 그때마다 또다시 열두 광주리가 남을 것입니다. 실컷 먹고 남는 것은 여러분이 차지하지 마시고 다른 사람들에게 넘겨주십시오. 여러분들에게 권력을 주셨습니까? 충분히 권력을 행사하시고 남는 권력은 열두 광주리에 모아서 나누십시오. 그걸 독식하면 권력 남용이 됩니다. 권력뿐입니까? 지혜든 지식이든 재능이든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서신서 본문, 빌립보서의 말씀입니다. “여러분들에게 충분하게 주셨으니, 자기 일만 돌보지 말고 서로 다른 사람들의 일도 돌보아 주십시오.” 욕심이 무엇입니까? 남는 것까지 자기 것인 양 독식하는 것입니다. 욕심이 잉태하여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면 사망을 낳습니다. 그러니 살펴보십시오. 남는 것이 반드시 있을 텐데, 그것은 하나님의 것임을 기억하십시오. 그것으로 이웃을 위해서 헌신하십시오.

그러나 물질과 시간과 헌신과 사랑과 그 모든 것을 바칠 때, 구약에 있는 율법의 방식으로는 하지 마십시오. 이미 우리는 율법시대에 살지 않습니다. 율법 하에서처럼 ‘그렇게 안하면 죽는다. 벌 받는다. 손이 잘린다.’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은총의 시대, 복음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보내신 성령을 받고 감동되는 대로 자유스럽게 결단하여야 합니다.

성령을 받으면 감동하여 나누는 기쁨의 삶, 풍족한 삶을 누리고 또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남은 열두 광주리를 통해 모두가 풍족하기를 바라십니다. 온 세계가 충만하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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