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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훈련받는 그리스도인 (왕상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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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철 목사 (대구감리교회)

왕상 17:1~7  길르앗에 우거하는 자 중에 디셉 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고하되 나의 섬기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년 동안 우로가 있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2)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3) 너는 여기서 떠나 동으로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숨고 4) 그 시냇물을 마시라 내가 까마귀들을 명하여 거기서 너를 먹이게 하리라 5) 저가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하여 곧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머물매 6) 까마귀들이 아침에도 떡과 고기를, 저녁에도 떡과 고기를 가져왔고 저가 시내를 마셨더니 7) 땅에 비가 내리지 아니하므로 얼마 후에 그 시내가 마르니라

고전 9:24~27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25)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26) 그러므로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같이 아니하여 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

남편이 되기는 쉽지만 좋은 아버지가 되기는 어렵다. 아내가 되기는 쉽지만 좋은 어머니가 되기는 어렵다

다섯 살짜리 아들을 교육시키기 위해서 엄마가 한 아이의 글을 읽어주었습니다.

"애야 어떤 마을에 철이라는 아이가 있었단다. 이 아니는 날 때부터 철이 들어서 엄마가 깨우지 않아도 일어나고 자기 옷을 자기가 챙겨서 잘 입고 그리고 엄마가 떠 먹여 주지 않아도 자기 혼자 잘 먹고 그리고 장남감도 혼자서 잘 가지고 놀다가 정리하곤 한단다. 참 착한 아이지 않니? 너도 이런 아이가 되고 싶지 않니?"

그러자 아이가 이렇게 반문합니다.

"엄마! 걔는 엄마도 없나봐?"

철없던 어린 시절, 누구나 부모님의 가르침과 스승님의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하고, 불평하고 짜증내던 시절이 있습니다.

저는 한 교회의 지도자로 제게 맡겨진 성도들이 성숙한 그리스도인, 성숙한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기를, 이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간절히 원합니다. 그래서 성도들에게 훈련에 참여하라고 설득하고, 참여한 성도들을 훈련시키고, 더불어 인내로써 훈련의 과정을 이어갑니다.

그러나 실상, 저도 훈련생의 입장으로 훈련을 받게 될 때, 힘이 듭니다. 때로는 짜증도 납니다. 그리고 눈꺼풀이 자꾸 내려와 앉습니다. 원래 훈련병은 춥고 배고프고 졸린 것이 특징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를 훈련하십니다. 그 훈련 속에 하나님의 지혜가 있고 사랑이 있음을 우리가 알아야 하겠습니다.

오늘 구약 성경의 본문을 보면 엘리야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엘리야 시대에 이스라엘 왕은 아합이었습니다. 그 시기는 이스라엘이 종교적으로 가장 암울한 시기였습니다. 잔인하고, 이방신 섬기는데 선수였던 아합, 그리고 부창부수 그의 아내, 이세벨. 종교적으로 가장 어두웠던 그 시대에 엘리야라는 선지자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쓰임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쓰임을 받으면서 그는 훈련을 동시에 받습니다.

훈련을 받는 것은 마땅하기 때문에 훈련받게 됩니다.

군대에 들어갈 때도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신체 건강한 대한민국 남성들만이 가게 됩니다. 여군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체 건강한 대한민국 여성들만이 갈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아무나 군대에 갈 수 없습니다. 키가 155cm 이상 ~ 189cm 이하여야 합니다. 몸무게는 50kg~94.9kg 사이에 있어야 합니다. 시력은 교정 시력 0.7 이상이어야 합니다.

그 외에 있는 사람은 제발 들여 보내달라고 해도 안 받아 줍니다.

설사 그 신체 조건을 만족했다고 해도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면 받아들여 주지 않습니다. 대한민국 군대는 위의 신체 조건을 만족하고, 대한민국 국민이어야만 들어가는 곳입니다.

요즘 그 가운데 들고 싶지 않은 사람들은 국적을 바꾸기도 하고, 건강한 신체를 건강하지 않은 것처럼 꾸미기도 합니다만, 아무나 훈련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훈련하시는 것은 그를 통해서 하나님의 일을 나타내실만 하기 때문입니다.

훈련 과정은 힘이 듭니다. 그러나 그 과정을 잘 마치면 그는 참으로 귀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1. 가서 외침, 그리고 도망침.

자. 그 암울했던 시기에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훈련하시는데, 맨 먼저 아합에게 가서 외치라고 말씀하십니다.

왕상 17:1  길르앗에 우거하는 자 중에 디셉 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고하되 나의 섬기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년 동안 우로가 있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서슬 퍼렇던 독재자, 아합에게 이 위협적인 말을 전하게 하십니다. 간담이 서늘해질만큼의 공포를 무릅쓰고, 그는 용감하게 용감하게 아합왕에게 나타나 외칩니다.

"지금부터 이 땅에 우로가 내리지 않을 것입니다. 비도 내리지 않을 것이고 이슬도 내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적어도 하나님께서 외치라고 말씀하셨고, 또 그렇게 엘리야가 했다면 천군천사를 보내어 아합의 분노에 찬 살육의 칼에서 엘리야를 지켜 주시는 것이 정상 아닙니까? 그것이 명령을 내리고, 그 명령대로 수행한 자에 대한 마땅한 보호가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기가 막혀 말도 나오지 않은 상황입니다.

왕상 17:2~3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3) 너는 여기서 떠나 동으로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숨고

그릿 시냇가에 숨으라는 말씀입니다. 천군 천사를 보내어 하나님의 함께 하심과, 그의 삶을 보호하심을 만방에 떨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도망쳐 숨으라는 것입니다.

그릿 시냇가에 아방궁을 지어 놓고 그를 인도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요즘은 경치 좋은 곳에 콘도를 지어 안식을 얻는다지만, 콘도는 고사하고, 초가집 한 채 없었습니다. 그곳에서 그가 멋지게 설교하여 수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곳도 아니었습니다. 외딴 시냇가에 혼자 숨어있으란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홀로 있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아십니까? 바로 '홀로 있는 것',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훈련 방법이었던 것입니다.

자기의 말대로 비와 이슬이 그쳐진 그 때, 그가 세상 사람들 앞에서 "봐라. 내 말대로 되었잖아!"라고 외친다면, 많은 사람들 앞에 그는 으쓱 거릴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그를 아합 이상으로 두려워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마치 자기가 하나님인양 착각하여 자고한 자리에 오르려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외로운 자리로 보내십니다.

교만의 죄를, 그리고 홀로 앞서가는 범죄를 그에게 허락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축복이요, 훈련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에게서 중요한 것은 겸손입니다. 축복의 통로가 되려면 그 관이 비워있어야 합니다.

2.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합니다.

왕상 17:4~7 그 시냇물을 마시라 내가 까마귀들을 명하여 거기서 너를 먹이게 하리라 5) 저가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하여 곧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머물매 6) 까마귀들이 아침에도 떡과 고기를, 저녁에도 떡과 고기를 가져왔고 저가 시내를 마셨더니 7) 땅에 비가 내리지 아니하므로 얼마 후에 그 시내가 마르니라

그곳은 미리 자기 몸을 의탁하기 위해 예비한 곳이 아닙니다. 숨을 것을 대비해서 피난 보따리를 싸놓지 못했습니다. 먹을 것이 없습니다. 아직 시내가 마르지 않아 갈증은 해결되지만, 먹을 만한 것이 없습니다. 어찌해야 할까요.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훈련시키십니다. 두 번째 방법은 날마다 하나님을 의지해야만 이 먹고 살 수 있게 한 것입니다.

까마귀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하루 하루의 삶을 연장시켜 나가십니다. 왜 하필 까마귀를 썼느냐고 묻지 마십시오. 중요한 것은 까마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저를 매일 돌보시고, 엘리야는 매일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의지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을 살아갈 때, 가장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세상을 보는 것이 아니요, 사람을 보는 것 아니요, 예금 통장을 보며 살아가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훈련은 받는 엘리야. 결국 그의 인생은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3. 상을 받게 됩니다.

올림픽 경기 때, 시합이 다 끝나고 시상대에 서서 상을 받게 됩니다.

금메달, 은메달, 동메달이 사실은 값이 얼마 안된답니다. 금.은.동메달이 사실은 30만원, 15만원, 3만원 밖에 안한답니다.

고작 30만원 짜리 그거 하나 따려고 그 고생을 하겠습니까? 메달은 메달이 갖고있는 금전적인 가치, 그 30만원이 전부가 아닙니다.

때문에 그 어려운 훈련 과정을 인내하는 것이 아니라, '성취'의 기쁨, 국가의 명예 때문에 그토록 애쓰는 것 아닙니까?

훈련 과정에 인내한 선수가 그 기쁨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수고하고 애쓰는 일 없이 성취를 이룰 수 없습니다.

어떤 일에서는 성취를 가슴 가득 감격으로 안기 위해서는 땀흘리는 수고가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합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몇 푼 안되는 그 메달을 갖게 되면, 감추어져 있던 푸짐한 상급이 있답니다. 최선을 다한 그대에게, 국가에서, 또는 해당 경기 연맹에서 포상금으로 그 노력과 훈련에 인내한 선수를 보상하고 격려합니다. 드러난 상급은 아니었지만, 수고하여 좋은 결과를 얻은 그들을 위해 상급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신앙인인 우리가 감내해야 할 훈련 과정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는데, 훈련과정 없이 이루어지는 법이 없습니다. 그렇게 애써 수고하고 땀흘려 주님의 일을 준비해가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이 땅에서 승리와 성취를 맛보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감추어져 있던 더 크고 귀한 상급이 또한 있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더욱이 세상의 상급은 수많은 땀흘린 사람가운데 좋은 결과를 낸 이들에게만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상급은 땀흘려 애쓴 누구에게나 예비 되어질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도 신앙생활을 하는 데, 바로 상을 바라보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삶을 살아가다가, 그 죄를 회개하고 거듭 나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것은 완성이 아닙니다. 그 때부터 신앙생활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경건의 연습을 통하여 점점 거룩한 삶으로 승화되 나가고, 그리고 는 마지막 때에 하나님 나라에 가서 하나님 앞에서 상을 받고 영광스럽게 하나님의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그 상을 바라보고 경건의 연습과 훈련을 해 나가는 것입니다.

4. 훈련의 과정

1) 최선을 다해서 경주해야 합니다.

고전 9:24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최선을 다하지 않고 좋은 결과를 구하는 것은 성취를 도둑질하는 것입니다. 그 성취는 최선을 다한 사람의 것이어서는 안됩니다. 최선을 다하여 달음질하는 자가 결승 테이프를 끊게 됩니다.

2) 절제해야 합니다.

고전 9:25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우리나라 마라톤 선수 중에 이봉주라는 선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이봉주 선수가 본래 신체적인 조건이 육상하기에 적절치가 못하답니다. 양 발이 똑같지가 않답니다. 오른발 왼발이 문수가 다르답니다. 그러니 이게 신발이 잘 맞겠습니까? 그것도 어려운 문제지요.

그런데 신체적인 약점을 극복하고 달리기를 하는데, 42.195km를 완주하기 위해서 그가 연습하는 거리는 15,000km랍니다. 한번의 우승을 위해서 다른 모든 것을 뒤로 미룬채 그는 뜁니다. 그 이봉주 선수가 말했답니다.

"남들과 똑같이 해서는 아무것도 될 수가 없습니다."

3) 분명한 목표를 설정해야 합니다.

고전 9:26  그러므로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같이 아니하여

26절에는 분명한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경건의 연습을 할 때에, 목표를 분명히 설정을 해야 하는 것이지요. 달리기하는 선수는 결승점이 정해져 있습니다. 그것을 향해서 달려나가는 것입니다.

훈련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훈련을 열심히 해서 거룩한 삶을 살아서 우리 하나님 아버지를 기쁘시게 해드려 야겠다는 것이지요. 하나님 아버지를 기쁘게 해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갔을 때에 하나님께로부터 상받는다는 목표를 가지고 우리가 훈련을 하는 것입니다.

빌 3: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썩을 면류관을 위해서도 열심히 땀과 눈물을 흘리면서 운동선수들이 훈련을 합니다. 우리 성도들은 썩지 않을 면류관을 위해서,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상을 위해서 거룩한 땀을 흘리면서 훈련을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9월 17일 바나바 사역자 제 2기 훈련이 시작됩니다. 바나바 사역자 훈련은 우리 교회에 새롭게 출석하는 분들에게 우리 교회를 소개하고, 적응을 위하여 섬기는 헌신자입니다.

이 훈련에 여러분을 초청합니다.

적극적으로 참여하시어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시고, 여러분의 헌신으로 새 신자가 그리스도를 온전히 영접하여 구원을 이루는데 쓰임받으시고, 하니님 나라의 귀한 상급이 여러분에게 흘러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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