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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떻게 기도할까? (엡 3: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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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고신복 목사 (산성교회)

1960-70년대에 아디다스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포츠 신발 브랜드였습니다. 그런데 몇 명의 젊은이가 모여 스포츠 신발 회사를 설립하여, 거대 그룹 아디다스와 경쟁하려 했습니다. 가족들조차 그 계획이 가망 없다고 생각하여 그들을 비웃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가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를 실행에 옮겼습니다. 회사를 운영하는 데 매우 힘들었습니다.

어느 날 그들은 한 자리에 모여 확실한 해결책을 찾으려 했습니다. 오랫동안 이리저리 궁리를 해보았지만 뚜렸한 묘안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 중 한 사람이, "Just do it" 하고 의견을 내놓았다. <한번 해 보는 것이 어떠냐>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젊은이들도 그 말을 이해했습니다. 다른 의견을 더 이상 들을 필요도 없이 그들은 바로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깊이 생각할 필요없이 한번 해보자는 것입니다. "Just do it"
그들은 이 말을 회사의 슬로건으로 내 걸었습니다. 그리고 티셔츠에 "Just do it"을 새겨 입고 다녔습니다. 이 회사가 바로 나이키입니다. 나이키는 몇 해 지나지 않아 아디다스를 밀어내고 세계에서 가장 큰 스포츠 신발업체가 되었습니다. 오늘도 나이키 직원들은 "Just do it" 티셔츠를 입고 일을 합니다.

세상에는 자신의 가능성을 이루지 못하고 그대로 머물러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대부분 그들은 행동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론적으로는 잘 알고 있지만 행동하지 않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지식은 단지 잠재적인 능력일 뿐입니다. 지식은 실천에 옮길 때 비로소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성공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을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들입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폭포증후군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폭포증후군이란, 방향을 확실히 정하지 못한 채 삶의 강물에 뛰어들어 물살에 몸을 맡겼다가 무시무시한 폭포가 몇 미터 앞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비로소 놀라 깨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좀더 일찍 행동하면 할 수록 더욱 일은 쉬어집니다. 지금이라도 행동으로 옮기면 늦지 않았습니다. 남의 웃음거리가 될까봐 두려습니까? 걱정하지 말고 지금 시작하십시오! 그러면 당신은 분명히 이룰 것입니다.

(왕상3:14) “네가 만일 네 아비 다윗의 행함 같이 내 길로 행하며 내 법도와 명령을 지키면 내가 또 네 날을 길게 하리라” (고전9:23)“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예하고자 함이라”(히13:16)“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 주기를 잊지 말라 이같은 제사는하나님이 기뻐하시느니라”(약2:14)“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약2:17)“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우리 같이 복음성가 찬미예수 433장(기도하자 우리 마음 합하여)와 382장(기도할 수 있는데)를 같이 이어서 부르시면서 <행할 수 있는 능력>을 달라고 기도하시겠습니다.

유대 사람들은 세가지 유형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첫째는 마가복음 11장25절이나 눅18장11절 이하에서 서서 기도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것은 그 당시 보통 유대 사람들이 기도하는 자세입니다. 둘째로는 스가랴서 10장1절이나 눅18장11절 이하에서 엎드려서 드리는 기도의 자세입니다. 세째로는 다니엘서 6장10절이나 눅가복음 22장41절, 사도행전 7장60절, 그 밖의 여러곳에 무릎을 꿇고 드리는 기도가 있습니다.

기도의 방법과 자세로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분명한 사실은 <기도는 역사를 이루는 응답이 있는 것으로 하나님과 영적인 교제를 나누는 것>입니다. 기도라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지며 영적인 교제를 나누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교제속에서 주님의 모습을 닮게 됩니다. 능력있는 자가 되어지며, 사랑할 수 있는 자가 되어지며, 지혜로운 자가 되어집니다. 기도하는 자는 신앙이 자라고, 기도하는 자는 성품이 좋아지고, 기도하는 자는 축복의 사람이 되어집니다.

사도바울은 자기 자신이 하나님의 일군이 된 것에 대한 감사와 감격속에서 무릎을 꿇고 이방의 모든 성도들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사도바울이 무릎을 꿇고 기도한 내용을 통하여 우리들의 기도 제목을 다시 한번 새롭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어야 합니다.

1. 성령으로 말미암아 속사람이 능력으로 강건하기를 기도했습니다.

16절을 보면 “성령으로 말미암아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소서”라고 간구를 하였는데, 이는 육신의 건강을 위해 기도하기 전에 속사람인 심령의 강건을 위하여 차원높은 기도를 한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중생으로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이 성령으로 거듭나기를 바랬습니다.성령만이 속 사람을 거듭나게 하시며, 구원의 확증을 가지게 합니다. 스가랴서 4장6절에 “이는 힘으로 되지 않으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도 니고데모에게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3:5)고 했습니다. 초대교회는 성령이 폭발하고 나서야 모이는 역사, 드리는 역사, 신유의 역사, 부흥의 역사가 크게 일어났습니다.

성령으로만 속사람이 변화될 수 있습니다.
성령으로만 강팍한 마음을 녹일수 있습니다.
성령으로만 속사람이 강건해 질 수 있습니다.
성령으로만 올바른 길로 갈 수가 있습니다.

명예와 권력, 물질등과 같은 것을 가지고 인도자로 삼을 때에는 실패할 수 밖에 없지만 성령님을 모시고 살면 패배의 길을 간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잠언 3장6절에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인도하시리라”고 했습니다.
성령의 도우심속에서 기도할 때 속사람이 강건해 집니다. 속사람이 나약해 질 때 소망을 상실해 버리며, 속사람이 나약해 질 때 불만해 하고, 속사람이 나약해 질 때 기쁨을 상실해 버리고, 속사람이 나약해 질 때 환경에서 지배를 받게 됩니다. 오직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야지만 속사람이 강건해 질 수 있습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받는 자만이 환경을 지배하고 살 수 있는 것입니다.
17세기의 신학자 클라크는 이런 말을 한적이 있습니다. “우리의 겉 사람이 땅위의 음식물로 살아가고 자라나는 것같이 우리의 속사람은 하늘의 영양분을 공급받아야 합니다. 우리들은 속사람이 강건하기를 위해서 날마다 기도하여야 합니다.

2. 사랑가운데 더욱 성숙해 지기를 바라면서 기도하여야 합니다.

심리학 이론에 의하면 인간의 성격은 유전적인 특징들과 그 사람이 살아오며 축적한 경험에 의해 형성된다고 합니다. 따라서 어른이 된다 해도 어린 시절의 경험이 주는 영향에서 벗어나기는 힘든 것입니다. 인간은 과거의 행동 패턴을 반복하려는 성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과거의 상처로 인한 그림자가 지금의 행복을 덮기 때문에 불행을 이겨내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과거의 아픈 상처와 과거의 고통의 포로에서 와지는 불행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사랑의 깊이와 사랑의 넓이가 더한 성숙한 삶을 살 때 우리는 행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좀 더 성숙한 사랑을 가져야 합니다. 성숙한 사랑을 가지고 살 때 나와 관계하고 있는 사람들의 내면속에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는 상처를 치유할 수 있습니다. 성숙한 사랑을 가질때 과거의 상처로 인해 우울하게 지내는 사람들에게 기쁨을 선물함으로 불행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습니다.

세계적인 심리학자이자 정신치료자인 <아놀드 라자러스>씨의 저서 『단 1분만이라도 다르게 생각하자』에서 소개되어진 이야기중에 어린 시절에 부모와 형제들에게 상처입은 것으로 인해 우울증에 시달리는 C부인과 알코올 중독자였던 아버지로부터 수시로 구타와 성폭행을 당하며 성장했던 B양의 이야기입니다.
C부인은 10년째 정신과 의사에게 상담을 받고 있는 중년의 여성입니다. 그녀는 유년시절이 불행했다고 고백합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권위적인 사람으로, 어머니는 그러한 아버지께 당하기만 하고 살았고, 2남 1녀중 막내인 C부인은, 부모님이 오빠들만 사랑하고 관심을 가져 주며 자신은 항상 소외시키고 무시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린 시절의 상처가 지금까지 계속 그의 마음을 누르고 있어 우울증에 걸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불행한 가정에서 자라난 사람들 중에 대다수는 성인이 되어서도 무력하고 우울한 기분을 가지게 합니다. 알코올 중독자였던 아버지로부터 수시로 폭행을 당하며 성장했던 B양은 “나는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없어요”라고 할정도로 마음의 깊은 상처속에서 과거의 일이 늘 그를 괴롭히고 있었습니다. 이미 지난 시절의 어려웠던 이야기지만 그것이 상처가 되어 지금까지 우울증으로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C부인과 B양이 어린시절 부모의 성숙된 사랑속에서 성장했더라면 지금의 우울증 신세를 면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성숙치 못한 사랑은 가까운 사람들에게 아픔을 줍니다. 특히 무시하는 말로 인한 상처, 잘못된 행동과 모난 성격으로 인한 상처, 고집과 의논하지 않고 독단적인 일처리로 인한 상처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입고 입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17절에서 보면 “사랑가운데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뿌리가 박힌다’ 는 말은 나무를 두고 한말입니다. 그리고 “터가 굳어져서”라는 말은 집을 두고 한 말입니다. 뿌리가 깊은 나무처럼, 터가 굳어진데 세워진 집처럼, 사랑의 뿌리가 든든히 박혀야 하고 사랑의 터가 굳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인간의 약함 가운데 하나는 얕은 사랑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사랑한다고 하지만 아주 이기적인 사랑을 가지고 살아 갑니다. 작은 일에 분노하고, 작은 일에 원수 맺고, 작은 어려움에 배척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사랑은 주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받으려고만하는 이기적인 사랑의 모습을 보일때가 많습니다.

보다 성숙한 사랑을 하기 위해 예수님의 사랑을 본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인간관계의 기본적 원칙을 사랑이라고 가르치셨고, 몸소 본을 보이셨습니다. 사람은 이웃을 제 몸처럼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정말 미운 사람을 용서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원수와 같은 사마리아인을 위대한 아름다움의 주인공으로 삼고 있습니다. 사람은 이웃을 제 몸같이 사랑하면서도 낮은 여성관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여성에게 정당한 위치를 주셨습니다. 사람은 이웃을 제몸처럼 사랑하면서도 죄인을 미워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인을 사랑하셨습니다. 사람은 이웃을 제몸처럼 사랑하면서도 미워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박해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라.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아들이 될것이다.”<마태5:44-45>라고 하셨습니다.

사랑은 성도들이 제일 먼저 생각해야 할 미덕을 생각하여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사실상 믿음의 사도라기 보다는 사랑의 사도로 불리우는 것이 더 적합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여러 가지 은사, 여러가지 능력중에서도 가장 큰 은사와 능력은 “사랑”입니다(고전13:13).

믿음의 목표는 사랑입니다. 우리들이 믿음생활하고 이렇게 예배하는 것도 사랑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향하는 사랑은 그렇게 쉬운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사랑, 자기를 해롭게 하는 사람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사랑, 버림을 받은 사람까지도 사랑하는 사랑 등과 같은 사랑을 하기 위해 서로 노력할 수 있는 성숙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마음에 계시기를 기도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주실 때 결핍된 것으로 주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충만하게 주시며, 때에 따라서 알맞게 주십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심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찬양하였습니다.

누구를 통하여 부족함이 없게 하십니까? 요한복음1:16에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요한이 <충만>이란 의리로 사용한 낱말은 중요한 낱말입니다. 그 낱말은 <플레로마>라는 것인데 이것은 하나님 안에 존재하는 전체의 총계(總計)를 말합니다. 골로새서 1장 19절에서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안에 거하게 하시고"라는 한 말씀이 바로 아버지안에 있는 모든 것을 예수안에 머물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안에는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과 사랑의 총계가 무진장 가지고 계시는 것입니다. 사람은 어떤 필요를 가지고서라도 예수님께 나아갈 수 있으며 그에게서 그 필요가 충만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미에 대한 애착을 가진 사람은 예수에게서 구주적인 미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지식의 탐구를 위해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은 예수에게서 궁극적인 계시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용기를 필요로 하는 사람은 예수께서 용감하다는 것의 모범과 비결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삶의 의욕을 잃고 낙심하는 사람은 예수에게서 힘을 얻게 될 것이며, 자신의 죄의식에 빠져 있는 사람은 예수에게서 죄의 용서와 선하게 될 수 있는 능력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 안에 있는 "플레로마", 는 하나님안에 있는 모든 충만하심을 말하기 때문에 누구라도 이것에서 필요한 생명의 샘을 얻게 될 것입니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요1:18)

예수님은 단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온 예언자가 아니며, 단순히 놀라운 통찰력과 인간의 심중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전문 심리학자만이 아닙니다. 또한 예수님은 단순히 하나의 모범과 본보기만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구세주였습니다. 그는 사람들을 악에서 구원하셨고, 사람들의 과거에 속박하는 사슬을 깨뜨리셨고 미래를 포착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분이 나의 마음속에 함께 계시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지금 이때가 기도가 가장 필요한 때입니다.

우리들은 사도바울이 기도한 내용처럼, 성령으로 말미암아 속사람이 강건하도록 기도하여합니다. 그리고 사람이 더욱 성숙하여 사랑의 사람이 되도록 기도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것을 먼저 충만하도록 간구하여야 합니다. 그리하면 여러분들이 기도하시는 것 외에 모든 것을 더하시는 하나님의 준비된 사랑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여러분의 가정과 일터에 함께 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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