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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뻐하심을 받는 예배자가 되라! (요 4: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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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오주철 목사 (영신교회)

인생의 마지막 날에 무엇을 사랑할 것인가? 시간이 갈수록, 날이 갈수록 우리가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주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을 사랑하십시오. 주님의 사랑을 받으면 됩니다. 그 주님께서 우리를 초청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그런데 어떤 사람은 결혼식에 가야 한다고 거절합니다. 어떤 사람은 직장에 가야 한다고 거절합니다. 어떤 사람은 쇼핑하러 가야하기 때문에 안 된다고 거절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저런 구실이 있어서 거절하지만, 우리는 예수님의 초청하심에 응답해서 이곳에 왔습니다. 정말 잘 오셨습니다. 주님의 사랑을 더 깊이 느끼고 경험하는 은혜로운 이 한 시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요한복음 8장에 보면,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고 했습니다. 아들이,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자유하게 하시면 우리는 참으로 자유롭게 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 그분만이 우리를 자유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주 앞에 나오신 사랑하는 여러분, 모든 생명의 희망이 되시는 예수님을 붙들고 주님 전에서 예수의 이름으로 내 삶의 모든 어둠의 세력으로부터 해방을 선언하십시오. 나태와 향락에서 해방을 선언하십시오. 탐욕적인 인생관에서의 해방을 선언하십시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했습니다.

특별히 사랑하는 여러분, 주 앞에서 은혜 받기를 간절히 사모하십시오. 은혜를 받으면 하나님이 예비하신 광대한 세계로 다시 뛰어넘을 수가 있습니다. 은혜가 있으면 내가 이제껏 알지 못하던 하나님이 예비하신 광대한 바다로 헤엄쳐 나갈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실패의 자리에 누워있기를 거부해야 합니다. 낙심과 절망의 자리에 앉아있기를 거부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일어나서 교회 부흥의 주인공이 되십시오. 지금은 변두리에 있는 작은 영신교회이지만 수년 내에 중심에 우뚝 설 수 있도록 역사의 주인공이 되십시오. 다같이 따라 하시겠습니다. "나 때문에 하나님의 교회가 부흥하리라!"

우리가 무슨 기도를 잘한다, 금식을 잘한다, 성경을 달달 외운다, 이런 것들도 다 중요한 믿음입니다. 그러나 나 때문에 하나님의 교회가 부흥되는 확신의 믿음이 제일 아름다운 믿음입니다. 믿으시기를 축복합니다. "나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교회에 부흥의 한 때가 오게 하리라!"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교회가 부흥하는 데 있어서 걸림돌이 되지 않기를 기도하십시오. 미안한 이야기지만 성경을 못 읽어도 좋습니다. 보십시오. 우리들 주위에는 글자도 모르고, 학벌도 없고, 변변한 재물이 없어도 조그마한 지식을 가지고도 큰 능력을 행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이루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아 마땅한 헌신자가 되십시오. 내가 정말 인생의 참된 자유를 발견했다면 믿음으로 주 앞에서 헌신자가 되셔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다 질그릇입니다. 질그릇은 깨어지기 쉽습니다. 질그릇은 보잘 것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 질그릇 안에 무엇이 담겼느냐에 따라서 그 가치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하나님의 보배가 담겨있으면 그 그릇의 가치는 보배로운 그릇이 됩니다. 우리가 보잘 것 없는 질그릇 같은 생명이지만 그 안에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담겨있으면 전혀 달라집니다. 무엇이 담겨져 있느냐? 그 질그릇을 누가 쓰느냐가 중요합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손에 붙잡힘을 받으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쓰시면 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을 쓰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자세입니다. "주여, 내가 여기 있습니다. 마음대로 쓰시옵소서"

이 땅에서 헌신 할 것이 없는 생명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쓸 곳이 없는 생명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사람이 건강하다, 잘 생겼다, 학벌이 좋다, 재물이 많다. 이런 것이 다 무슨 필요가 있습니까? 내가 헌신할 수 있는 내 자리를 알지 못하는 의미가 없는 생명이라면 건강이 무슨 필요가 있습니까? 젊음이 무슨 필요가 있습니까? 재물이 무슨 필요가 있습니까? 산다는 것은 생명을 연소하는 것입니다. 조금씩 조금씩 어딘가를 향해서 태워야 됩니다. 보람된 곳에 태워야 됩니다. 의미 있는 곳에 태워야 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태워야 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역사를 위하여 태울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초가 탈 때는 밝은 빛이 납니다. 그러나 타지 않는 초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타지 않는 초가 무슨 빛이 있습니까? 주님의 교회의 부흥을 위해서 위대한 헌신의 불꽃을 태울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부흥시키는 기둥 같은 주인공들, 기둥 같은 일꾼들이 되기 위해서 헌신은 산소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헌신만 일어나면 그 생명 속에는 최상의 것이 나옵니다. 어떤 사람은 헌신의 터를 찾은 사람은 죽음도 피해간다고 말합니다. 맞습니다. 하나님은 그 사람이 그 헌신을 이루기까지는 절대로 데려가지 않습니다. 그리고 헌신하려고 몸부림치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그가 헌신할 수 있는 건강을 주십니다. 물질을 주십니다. 시간을 주십니다. 마음의 평안을 주십니다. 기쁨을 주십니다. 기억하십시오. 중요한 것은 헌신하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모두가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기에 마땅한 헌신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이것이 성숙한 신앙인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삶의 모습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 앞과 사람 앞에서 보여 줄 수 있는 우리의 성숙한 신앙의 모습은 바로 구체적이고도 희생적인 헌신입니다.

오늘은 성숙한 신앙인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두 번째의 삶의 모습을 생각하려고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성숙한 신앙의 모습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자의 모습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저는 여러분에게 이 질문을 드리고자 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자입니까? 택함 받은 백성이 하나님 앞에서 예배드리는 것은 가장 귀하고 가치 있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여러분은 주 앞에서 드리는 이 예배가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하고 가치 있는 일이라는 것을 인정하십니까? 예배는 하나님 앞에 은혜를 받은 택한 백성들의 가장 중요한 삶의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엿새동안 세상에서 부지런히 살았던 목적은 오늘 주 앞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리고자 함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오늘 주 앞에서 드리는 이 예배가 여러분의 삶의 목적이 되고 있습니까? 기억하십시오. 우리의 예배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참된 예배가 될 때에 우리의 신앙도 건강한 신앙으로 자라게 될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바람직한 신앙, 성숙한 신앙의 사람은 예배를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간혹 보면, 무교회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니면 예배에 참석하지 않으면서 자신만의 신앙을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기독교인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그가 아무리 신앙이 좋다고 해도 예배에 성공하지 못한다면 그의 신앙은 헛된 신앙입니다. 그가 아무리 신앙을 고백한다고 할지라도 예배가 없다면 그도 불신앙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모름지기 성숙한 신앙인이라면 예배에 성공하는 사람입니다.

김남준 목사님이 쓴 '예배의 감격에 빠져라'라는 책에 보면, 일부 교인들 가운데서 행하여지는 잘못된 예배를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습니다.
"졸음으로 시작하여 축도 할 때 깨는 수면제 예배,
시계 바늘만 계속 들여다보다 종치는 맥빠진 예배,
설교를 외면하고 성경 읽기로 시간 때우다 끝내는 독서 예배,
설교 제목 하나 기억 못한 체 끝내 버리는 기억상실증 예배!
주님과의 말씀은 없고 기분 전환에 초점이 맞추어진 감각 예배!"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떤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까? 혹시 우리도 이런 예배를 드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현대 교회의 가장 큰 위기는 예배의 부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는 곳마다 수많은 예배당이 줄지어 있고, 교회마다 수준 있고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는 성가대가 있습니다. 그런데 영적인 깊은 감동과 생동감이 넘치는 예배를 드리는 교회를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예배는 교회의 절대적 사명이요, 본질 중의 본질입니다. 예배의 동력선이 끊어진 교회는 바다에 좌초된 배와 같이 이미 힘을 잃고 죽은 상태와 다름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떠한 예배를 드리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지 못한다면 그 예배는 하나님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한낱 인간들의 모임일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진정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기에 합당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예배를 앞세우는 백성은 창대해지지만 예배를 우습게 알거나 무시하는 사람은 반드시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신앙인은 예배에 성공해야 신앙생활에 성공합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았던 믿음의 사람들은 그들이 언제 어디에 있든지 늘 하나님께 단을 쌓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예로, 아브라함과 롯을 보십시오. 아브라함은 어디를 가든 먼저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반면에 그의 조카 롯은 아무리 찾아보아도 "제단을 쌓았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두 사람은 똑같이 부자였고, 똑같은 환경과 조건에서 출발했습니다. 어쩌면 롯이 아브라함보다 한 발짝 앞서나갔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는 물이 넉넉하고 초원이 펼쳐져 있는 요단 들판으로 나아갔습니다. 반면에 아브라함은 허허벌판에 홀로 남았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의 마지막 결과는 엄청나게 달랐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 되는 축복을 누렸습니다. 그러나, 롯은 아내가 소금 기둥이 되었습니다. 자신은 친딸과의 사이에서 아들을 낳아 모압과 암몬 족속을 만들어서 하나님 앞에서 영원히 저주받은 조상이 되게 했습니다. 예배가 한 사람의 운명을 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예배에 성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행복한 신앙생활은 예배 생활의 회복에 있습니다. 성숙한 신앙생활의 성패는 예배에 달려 있습니다.

예배를 헬라어로는 '프로스 큐네오' 라고 합니다. 프로스라는 말은 '앞으로' 진행이라는 말입니다. 큐네오는 '나아가다' 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예배는 바로 우리 인간이 하나님 앞으로 가까이 나아가는 시간입니다. 사람을 만나는 시간이 아닙니다. 하나님 전에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가까이 서는 시간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죄인된 우리가 전능하신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 있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이것을 깨달았던 시편기자는 73편 28절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 있다는 것은 복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전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다는 것은 내 인생에 최고의 복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늘 하나님을 가까이 하십시오. 그러기 위해서는 예배에 성공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시간입니다. 사람을 바라보는 시간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은 사람을 보러옵니다. 건물을 보러옵니다. 그러다가 누구 때문에 실망했다고 합니다. 건물이 어떠하다고 불평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예배는 사람을 보러오는 시간이 아닙니다. 건물을 감상하러 오는 시간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이 계신 곳을 향하여 내 영혼이 그를 바라보면서 그의 말씀을 듣는 시간이 바로 예배 시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배의 목적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예배에서 첫째로 중요한 목적은 바로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캄캄한 밤에 길을 잃어버렸을 때에 우리는 하늘의 북두칠성을 보고 위치를 찾아냅니다. 북두칠성을 보고 가야할 방향을 찾습니다. 마찬가지로 이 세상은 우리의 길을 알지 못합니다. 우리가 어디로 가야할까? 우리 인간이 가야 할 생명의 길, 구원의 길, 영생의 길이 어디에 있습니까? 땅은 캄캄할 뿐입니다. 주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바라볼 때에만 영원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복지로 나아갈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배는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내 영혼이 은총을 입어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두 번째, 예배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우리의 구원자요 창조자이신 하나님,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예배입니다. 교회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우리가 찾아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종교는 나를 위해서 갑니다. 내 아들의 건강, 내 딸의 결혼, 아들 낳고 딸 낳고, 남편이 잘 되고, 내 몸이 건강하고, 이런 목적으로 갑니다. 그러나 교회는 그게 아닙니다. 그런 것 때문에 오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받은 은혜에 감사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옵니다. 하나님의 깊고 오묘하신 섭리를 찬양하고자 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옵니다. 그러니까 예배의 주체는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세상 종교는 늘 가는 것이 아닙니다. 아플 때만 갑니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만 갑니다. 그러나 교회는 예배드리는 날을 아예 정해 주셨습니다. 엿새 동안 일하고 제 칠일은 하나님 앞에 드리는 거룩한 날로 아예 정해서 좋든지 안 좋든지 이 날은 반드시 나와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기분 좋다고 나오고 기분이 안 좋다고 해서 나오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바쁘다고 안나오고, 시간이 남아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이 날은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그분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 모두가 나와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는 어떤 예배입니까? 하나님께로부터 기뻐하심을 받는 예배자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어떤 예배를 드려야 합니까? 오늘 본문은 아주 간단하면서도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가 되기 위해서는 신령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신령한 예배는 영적인 예배로 오직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입니다. 그러니까 예배의 대상이 사람이 아닙니다. 우상이나 어떤 건물도 아닙니다. 예배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예배 시간에는 사람에게 마음을 빼앗겨서는 안됩니다. 특별히 설교자에게 마음을 빼앗겨서는 안됩니다. "설교를 잘하느니 못하느니, 목사님이 지난 주일에는 빨간색 넥타이를 했는데, 오늘은 파란색 넥타이를 했다"는 식으로 사람에게 마음을 빼앗겨서는 안됩니다. 오직 설교자를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신령한 예배를 드리기를 원한다면 우리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려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는 두 번째로, 진정으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가 드리는 이 예배가 거짓되거나 형식적인 예배가 아니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이어야 합니다. 스스로 속이지 마십시오. 우리 하나님은 조롱을 받으실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진실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성도는 지난 엿새 동안 살았던 생활을 가지고 주 앞에 나와야 합니다. 가식되고 꾸며진 삶의 모습이 아니라 진실한 삶의 모습으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자의 모습니다.

특별히 기억해야 하는 것은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지만, 우리들에게도 참으로 유익하고 소중한 시간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회복해 주시는 시간이 바로 예배 시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예배를 통해서 은혜를 주십니다. 예배를 통해서 능력을 주십니다. 예배를 통해서 복을 주십니다. 시편 51편 10절 이하에 보면 하나님은 예배 시간에 우리 마음에 정직한 마음을 창조하여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예배는 영적인 창조의 시간입니다. 좋은 마음은 사람이 창조하지 못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가시밭과 같이 잘못되어 갈 때에 성령은 오셔서 예배를 통하여 새롭게 하십니다.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고 나면 악한 마음은 물러가고 선한 마음이 우리 마음에 자리 잡게 됩니다. 예배를 드리고 나면 어두운 마음은 떠나가고 밝은 마음이 우리 안에 자리를 잡습니다.

두 번째는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한다고 했습니다. 예배를 드릴 때에 하나님은 죄로 말미암아 잘못된 우리의 몸과 마음을 새롭게 하십니다. 내 삶을 새롭게 바꾸어 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주 앞에서 예배를 드리는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예배를 드릴 때에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정직한 마음을 주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의 심령이 새로워지기를 축복합니다. 우리의 죄악된 옛 모습은 오늘 이 예배를 통해서 완전히 새롭게 거듭나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우리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면 하나님은 예배를 통하여 모든 것을 회복해 주십니다.

이제 예배를 다 마치고 교회 문을 나설 때에 우리는 성령으로 새롭게 거듭난 모습으로 세상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오늘 주 앞에서 예배를 드리는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이 예배를 마치고 세상으로 나갈 때에 힘없는 종교꾼이 아니라 능력있는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래서 주님께로부터 받은 사명을 가지고 이웃 사랑을 실천하십시오. 내 가정에 가서 훌륭한 어머니로 봉사하십시오. 훌륭한 남편으로 집에 들어가고, 내 직장과 기업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용사가 되십시오. 우리는 이 결단의 마음을 가지고 교회 문을 나서야 합니다. 들어 올 때의 모습과는 전혀 다르게 나아가야 합니다. 교회는 우리를 변화시키는 곳입니다. 교회에서 변화된 여러분은 세상에 나가서 빛과 소금의 되어주셔야 합니다. 그렇기 되어주시기를 축복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자의 모습입니다. 이것이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저는 여러분들이 예배를 보다 잘 드리기 위한 방법을 몇 가지 제안하려고 합니다.

첫 번째는, 예배의 중요성을 분명하게 인식하십시오. 다른 무엇보다도 예배가 가장 중요하고 소중하다는 인식이 있어야 합니다. 사실, 하나님 앞에서의 예배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드리는 예배를 중요하게 여기신다면 하나님께서도 여러분을 중요하게 여기시고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지미 카터 대통령은 대통령 시절에도 주일이 되면 워싱턴에서 비행기를 타고 조지아 주로 내려갔다는 것은 우리가 익히 잘 아는 이야기입니다. 그는 거기서 늘 자기가 맡았던 교회학교 한 반을 맡아서 공부를 가르치고, 예배를 드린 다음에 다시 워싱톤으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은 카터의 모습만이 아니라 오늘 우리들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행을 하다가도 주일이 되면 내가 섬기는 영신교회 예배당으로 돌아오셔야 합니다. 모든 계획의 중심에 예배가 들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무엇을 중심하고 살아야 하는지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예배가 중심 되지 못한 삶은 흔들리며 휘청거리는 삶을 살게 됩니다. 결국 삶의 실패자가 되고 맙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 드리는 예배를 악세사리로 만들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삶의 중심에 언제나 예배가 있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예배가 삶을 움직여나가는 원동력이 되어지기를 축복합니다.

둘째로는, 토요일은 될 수 있는 대로 좀 일찍 잠자리에 들도록 하십시오. 밤이 늦도록 텔레비젼이나 비디오를 보지 마십시오. 모임에 가더라도 좀 일찍 돌아오십시오. 일하는 것이 남아 있더라도 미루십시오. 토요일에는 온전한 주일을 위해서 준비하는 날이어야 합니다.

셋째로는, 어떤 일이 있어도 주일 예배 시간에는 약속을 피하십시오. 예배는 내 생명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소중한 것입니다. 모든 약속은 예배 이후로 미루십시오. 예배보다 우선인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넷째로, 예배 시간 전에는 감정 조절을 잘 하십시오. 다른 날은 부부 싸움을 하는 한이 있더라도 주일에는 기분 좋게 시작하십시오. 기분이 상하면 예배도 상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 몸과 마음의 컨디션을 최상의 상태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그냥 있는 몸 그대로 주님 앞에 달려나오기보다는 마음을 가다듬어야 합니다. 생각을 집중해야 합니다. 허탈한 심령을 다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몸을 단정하게 하고 주님 앞에 예배를 드려야 최상의 예배입니다.
마지막으로, 최선을 다해서 드리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종교 개혁자 칼빈은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도중에 벌이 날아와서 쏘더라도 꼼짝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우리는 예배를 드리다가도 핸드폰이 울리면 그것을 들고 나갑니다. 미리 꺼두든지 잊었더라도 즉시 꺼야 합니다. 요즘은 여름철이라서 모기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 모기가 내 살에 붙어서 피를 빨아먹어도 예배에 집중하십시오. 경건하게 드리는 예배 가운데 하나님을 만나십시오. 모름지기 성숙한 신앙인이라고 한다면 주님 앞에 드리는 예배가 최선을 다하는 예배이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숙한 신앙인은 예배에 성공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자가 되려고 헌신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리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우리의 삶을 책임져 주십니다. 인생의 행복은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하는 삶에 얼마나 충실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A.W. 토저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루를 예배로 시작하는 사람은 결코 마귀가 건드릴 수 없는 권능자의 삶이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도 하루를 예배로 시작한다면 마귀가 손 못 대는 능력 있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마귀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 한 후 교회 문을 나서는 성도를 가장 무서워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제대로 예배를 드렸다면 여러분은 능력의 종이 될 것입니다. 어둠의 마귀 권세를 능히 이길 수 있는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예배다운 예배가 드려질 때에 엿새동안의 삶은 반드시 성공할 것입니다. 우리는 예배하기 위해서 엿새를 살아야 합니다.

미국 사람들은 청교도들이 건너와서 먼저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들은 먼저 마을에서 하나님을 잘 섬기고 그분을 영화롭게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나라는 오늘날 세계를 향하여 큰 일을 할 수 있는 위대한 민족으로 하나님이 복을 주셨습니다. 여러분, 잘 되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을 바로 섬기십시오. 여러분의 자녀가 잘 되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그로 하여금 하나님께 경배하며 사는 방법을 힘써 가르치십시오. 그것이 우리가 범사에 잘 되는 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다시 묻습니다. 여러분은 성숙한 신앙인입니까? 아니 이제부터라도 성숙한 신앙인으로 살아가기를 소망하십니까? 그렇다면 주 앞에서 보다 구체적이고 희생적인 헌신을 하십시오. 교회 일에 구체적으로 참여하십시오. 그리고 예배에 성공하십시오. 주일 예배만이 아니라 모든 공적인 예배에 부지런히 참석하십시오. 우리의 건강한 믿음은 모든 예배에 참석하는데서부터 자라납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하나님 앞에서 복을 받기에 마땅한 헌신자들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참된 예배자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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