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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변화산의 기도의 역사를 가지라 (눅 9:2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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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김성철목사 (왕십리교회)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시고 기도하러 산에 올라 가사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 (누가 9:28-29)

기도는 신앙의 삶 자체입니다. 우리는 기도의 삶으로 신앙의 삶을 바르게 이루어 갈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기도한다는 것은 신앙인이 되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기도의 삶이 이렇게 중요함에도 문제는 사람들이 기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기도에 있어서 심각한 문제는 기도하지 않는 것과 기도할지라도 잘못된 기도를 한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572명의 목사님들에게 기도에 대하여 조사한 결과, 57%가 하루에 20분 미만 기도한다고 했고, 34%가 하루에 20분에서 한시간 기도한다고 했고, 9%만이 하루에 1시간 이상 기도한다고 했습니다. 이 모든 분들의 평균 기도 시간은 하루에 22분이었습니다. 그리고 국가별로 보면, 오스트리아 목사님들은 하루에 평균 23분기도 하고, 뉴질랜드 목사님들은 하루에 평균 30분, 일본 목사님들은 하루에 평균 44분, 한국 목사님들은 하루에 평균 90분 기도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는 이러한 평균에 가까운 기도를 하고 있지 못하다고 봅니다.

기도하지 않는 이유를 보면 몇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첫째로, 기도의 가치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입니다. 기도의 중요성을 알지 못하고 기도 속에서 하나님의 충만한 세계의 풍요의 삶을 소유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보이는 것과 어떤 결과에 대해서는 귀중히 여기면서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에 대하여는 그 귀중성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영적 세계의 역사가 보이는 세계의 역사를 만들어 가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르비딤에서 아멜렉과 전투에 임했습니다. 여호수아는 백성들을 이끌고 나가 싸웠습니다. 모세는 산에 올라가 손을 들어 기도했습니다. 모세의 손이 올라가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이 내려오면 아멜렉이 이겼습니다. 아멜렉과의 전투에서 여호수아가 거느린 백성들은 열심히 싸워 승리했습니다. 그러나 그 승리는 모세의 손이 올라감으로이긴 승리였습니다. 모세의 기도하는 손이 여호수아를 아멜렉과의 전투에서 승리하게 한 것입니다. 아멜렉과의 승리는 전투에서 직접 싸운 여호수아 보다, 드러나지 않고 기도하는 모세의 손에 있었던 것입니다. 보이는 세계의 승리는 그 배후의 보이지 않는 영적 전투로서의 기도의 역사에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영적 사실을 무시하는 데서 기도하지 않는 것입니다.

셋째는, 기도에 대한 오해를 가지는 데서 기도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잘못 기도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오해입니다. 기도하는 사람들의 몰상식한 생활 태도나 행동을 보고 기도에 대하여 멀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기도에 대한 오해일 뿐입니다.

넷째는 믿음의 부족이나 기도의 체험과 훈련부족입니다. 기도해도 별로 이루어질 것 같지 않고, 기도해 보았어도 어떤 체험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기도하려고 해도 생활화되도록 훈련되지 않았기에 기도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도의 삶은 우리에게 절대적인 것이 되어야 합니다. 기도해야 살아있는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기도하지 못하면 잠들거나 죽은 신앙이 됩니다. 기도의 삶은 하나님과 우리가 함께 하는 삶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관계자체입니다.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문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고 시작됩니다. 우리는 기도함으로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로 함께 하시는, 하나님과의 한 가족의 관계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기도함으로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하는 자녀로 살게됩니다. 하나님의 자녀의 영광과 축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기도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합니다. 기도란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표현하는 길이며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길입니다. 기도야말로 하나님과의 가장 절묘한 사랑의 관계 안에 있도록 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라고 하기 전에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의 은혜의 관계를 유지하게 하며 우리의 모습을 고백하게 하는 하나님과의 커뮤니케이션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세상을 움직이시고 우리와 삶을 축복하셔서 아름답게 하시는 당신의 방법이 기도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기도를 향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계시록에 보면 24장로들이 보좌 앞에서 경배하는데, “향이 가득한 금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들의 기도들이라”고 했습니다. 시편 기자는 시편 141장 2절에서“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분향함과 같이 되며 나의 손드는 것이 저녁 제사 같이 되게 하소서”라고 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향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성도의 기도를 기뻐하시고 즐거워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기도 안에서 영광을 받으시며 우리를 축복하시며 우리와 교제하시는 것입니다.
기도가 있는 곳에 바른 신앙은 물론 교회의 바른 역사가 있습니다. 바른 기도로 신앙의 성숙과 교회의 올바른 성장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사무엘은 어린 시절부터 무릎꿇고 기도하는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기도는 이스라엘 민족을 새롭게 하고 바로 세우는 영적 풍요의 시대를 만들었습니다. 다니엘은 이스라엘 민족패망의 슬픔의 역사 중에서도 기도의 사람으로 살았습니다. 다니엘의 기도는 바벨론과 메대와 바사의 왕들을 하나님 앞에 무릎꿇게 하였습니다.
기도는 개인의 삶은 물론이거니와 교회의 큰 자산입니다. 교회의 은혜로움과 성장의 역사는 성령께서 능력 있게 사역하실 수 있도록 하는 우리의 기도에 있습니다. 기도에 항상 깨어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 바른 신앙과 성숙한 믿음의 사람이 되며, 그리스도의 참된 사역과 성장을 이루는 교회가 됩니다.

예수님은 기도하시기 위해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을 데리고 헬몬산 기슭 한적한 곳을 찾으셨습니다. 제자들은 기도하는 중 피곤을 이기지 못하여 졸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기도하셨습니다. 이 기도역사는 우리들의 것이 되어야 합니다. 그럼, 예수님의 기도역사는 무엇입니까?

기도하실 때에 예수님의 용모가 변했습니다.
마태복음에는 예수님의 변화를 더욱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마17:2) 예수께서 기도하실 때에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하신 것입니다. 해같이 빛났다는 것은 권세 있고 영광스러운 모습이고,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타났다는 것은 순결과 거룩한 모습으로 변화되셨다는 것입니다. 기도하실 때에 하나님의 아들의 신령한 모습으로 변화되신 것입니다.

우리도 기도 속에서 변화되는 것입니다. 기도 속에는 하나님의 임재와 성령의 교제하심이 있습니다. 기도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의 모습을 회복하게 됩니다. 기도 속에서 순결하고 거룩한 성도로 변화되어 갑니다.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하고 그분의 거룩함에 참여하게 됩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변화의 역사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우리의 모습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을 변화시킵니다. 나의 마음의 변화는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입니까? 나의 성품과 생활의 자세는 어떻게 변화되는 것입니까? 기도함으로 변화 받는 것입니다.
기도함으로 염려와 두려움과 근심과 걱정이 하나님의 위로와 사랑과 능력으로 변화받게 됩니다. 고난과 역경 슬픔과 아픔을 가진 사람이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충만한 세계를 가지고 사는 사람으로 변화 받습니다. 방종과 타락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기도함으로 회개와 함께 성별한 사람으로 변화 받는 것입니다.

기도하실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났습니다.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남으로 예수님은 그들과 더불어 대화하셨습니다. 모세는 구약의 율법의 대표자이고 엘리야는 선지자와 예언자의 대표자입니다. 모세는 장차 하나님께서 일으키실 메시야를 예언했고(신18:5), 엘리야는 메시야의 선구자로 예언되었습니다.(말4:5) 엘리야는 산채로 승천하였고(왕하2:11) 모세도 특이한 방식으로 부름을 받아 그 시신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신34:6)
이들이 변화산에서 나타나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눈 것은 율법과 선지자의 최종적인 가르침이 예수님께 집중되어 있음을 보여준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세를 통하여 인간에게 주어진 율법이 완성되는 것과 모든 예언자들이 예언해 온 그 예언이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완성되는 것임을 확신시켜주기 위함인 것입니다.

기도의 역사는 우리로 하여금 율법과 예언의 말씀의 약속과 그 약속의 성취의 역사를 확신하게 해줍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의 약속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 약속이 이루어지는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의 약속을 믿는 사람이 되고 그 약속의 확신 속에 살아가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죠지 스위팅’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도란 성경을 여는 비법, 즉 ‘열려라 참깨!’다. 항상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는 기도로서 성경 읽기를 시작하라. 우리는 책을 읽을 때에 그 책의 저자가 대답하고 설명해주기를 바라지만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아주 놀라운 일인 것처럼 보이지만 기도하면서 성경을 읽을 때에는 그것이 가능하다.”
기도 속에서 모세와 엘리야를 만나셔서 대화하셨던 예수님처럼 기도함으로 율법과 예언으로 주신 하나님의 말씀의 약속과 그 약속의 성취를 확신하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의 약속과 그 약속의 확신을 가지고 사는 그리스도인이 되시길 바랍니다.

기도하실 때에 하나님의 신령한 세계를 가지셨습니다.
졸다가 깨어나 예수님의 변화된 모습과 모세와 엘리야와 대화하시는 모습을 본 제자들은 그 신령한 세계를 보고 놀랐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 이렇게 요청했습니다.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성서는 말하기를 이렇게 말하는 베드로가 ‘자신의 말을 자기도 알지 못하더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신령한 세계는 제자들을 황홀하게 했고 감동하게 했으며 모든 것을 잊게 할 정도로 그들을 사로잡았습니다. 베드로는 그를 만족하게 하는 감동의 계속적인 유지를 위해 세 개의 초막건축을 제안하기까지 했습니다. 그 감격이 너무 커서 자신이 하는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몰랐습니다.

기도는 우리를 하나님의 세계의 신령함을 체험하게 합니다. 그 신령함의 체험은 인간의 영혼을 만족하게 합니다. 그 신령함의 체험은 우리를 위로와 기쁨과 평안의 세계로 인도합니다. 영적 신령함의 감격으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성도는 신령한 은혜에 사로잡혀 사는 것입니다.
기도 속에서 신앙생활의 즐거움을 찾게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이 재미없고 지루하다면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는 신앙생활이 되도록 하십시오. 그러면 신앙생활이 감동적이고 즐겁고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사람은 신앙생활을 재미있고 즐겁게 하는 것입니다.
기도함으로 은혜의 기쁨과 평안을 누리며 신앙생활의 감동과 즐거움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실 때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예수께서 기도하시던 곳에 구름이 덮였습니다. 구름 속에서부터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그것은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저희의 말을 들으라”는 음성이었습니다.
마태복음에서는 빛난 구름이 저희를 덮었다고 했습니다(마17:5) 이 구름은 하나님의 임재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기도가운데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합니다. 바로 성령의 임재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운데 성령으로 임재 하셔서 말씀하심으로 그 음성을 듣게 하십니다. 그 음성은 인간을 새롭게 창조하며 변화시키며 위로하시며 용기를 주시고 인도하시고 붙드시고 명령하시는 음성입니다. 그 음성은 인간의 소리가 아니라 하나님이 영으로 우리에게 하시는 음성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어떻게 들을 수 있습니까? 기도 속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 기도 속에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성령의 임재 가운데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내 중심 깊은 곳에 그분의 음성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 음성은 우리를 권세 있는 그리스도인으로 붙드시고 세우시는 음성입니다.
어떤 나이 많은 어부가 젊은 어부에게 노를 맡겼습니다. 그 젊은 어부는 두 손으로 노를 젓다가 한쪽 노에는 ‘기도하라’, 다른 쪽 노에는 ‘일하라’고 쓰여진 것을 보았습니다. “할아버지. 사람이 열심히 일하고 부지런히 살면 되지, 꼭 기도해야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노인은 아무소리 없이 ‘기도하라’고 쓰여진 노는 묶어두고 ‘일하라’고 쓰여진 노만 젖게 했습니다. 그러니까 배가 앞으로 나가지 않고 뱅글뱅글 원을 그리면서 제자리에서 돌기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에 노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도하지 않고 일만하면 전진이 없소. 아무 것도 이룰 수가 없는 법이요. 또한 일을 안하고 기도만 하여도 안 되는데 그것은 아무 것도 이룰 수가 없기 때문이요.”

예수님의 생애는 기도와 함께 일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열심히 부지런히 살아왔어도 우리의 손에 쥐어진 가치와 삶의 의의는 무엇입니까? 무의미와 허무한 것일 뿐이라면, 기도 없이 노를 짓는 인생을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는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기도의 세계는 아버지 하나님과 함께 하시는 세계였습니다. 예수님은 그 기도의 세계에서 아버지의 아들의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모하셨습니다. 모세와 엘리야를 만나 대화하셨습니다. 신령한 세계를 누리셨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음성을 들으셨습니다.
변화산상의 예수님의 기도는 우리의 기도역사가 되어야 합니다. 그 기도의 삶으로 변화와 함께 확신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감동과 즐거움을 가지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사는 살아있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변화산의 사건을 만들어 가는 기도의 승리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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