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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의 잔을 채워주소서 (요 4: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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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김광일목사 (벧엘감리교회)

주후 4세기경 교계의 큰 지도자였던 어거스틴이 하루는 꿈을 꾸었는데 죽어서 천국의 문 앞에 도착해 있었습니다. 천국의 문지기가 어거스틴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누구요?", "나는 진실한 크리스천입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문지기가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크리스천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당신의 머리와 생각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 아니라 철학자 키케로의 사상과 생각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사람의 머리 속에 들어 있는 것과 생각으로 그가 누구인지를 판단합니다." 소스라치게 놀란 어거스틴은 꿈에서 깬 후 "진짜 크리스천답게 살아야 한다. 크리스천답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워지는 삶을 살리라" 고 굳게 결심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삶 속에는 무엇으로 채워져 있습니까? 무슨 생각으로 채워져 있습니까?

한 통계를 보니 한국인의 삶에 대한 불만족도가 76%입니다. 마음속에 생명의 샘을 잃어버린 사람에게 만족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한국인 30대 후반의 51%가 삶의 목표를 “경제적으로 부유해지는 것”, 37%가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을 삼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아무리 부유해지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한다고 해도 행복해 질 수는 없습니다. 그런 것들은 주위 환경의 변화에 따라 변하기 때문에 결코 마음의 갈급함을 채워 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헤밍웨이는 엽총으로 자살하였습니다. 명예와 물질이 그의 마음속에 행복을 갖다 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유서에서 “나는 필라멘트가 끊어진 전구처럼 공허하다” 고 하며 무엇으로도 채우지 못했던 삶을 보여주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마리아여인 역시 공허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마셔도 계속 목이 마른 물을 얻기 위하여 우물가에 나왔다가 예수를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대화 중에 자신의 갈급함을 채워줄 진리를 얻게 됩니다. 오히려 그녀는 예수님을 향하여 외칩니다. “오 주님, 채우소서. 나의 잔을 높이 듭니다. 하늘 양식 내게 채워 주소서. 넘치도록 채워주소서”. 여러분의 심령도 주님이 주시는 생수로 채워지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잔이 채워지려면,

첫째로 삶의 관심이 영적인 것으로 변해야 합니다

스페인 출신의 성악가인 호세카레라스는 1987년 6월에 자신이 백혈병 환자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견디기 어려운 골수 이식 수술과 항암 치료를 받으며 생사의 갈림길을 넘나들었습니다. 살 가망이 거의 없는 죽음의 병과 사투를 벌렸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투병 생활 중에도 그는 무대 위에 서게 되었는데 노래를 하기도 전에 모든 관객이 기립해서 열렬한 박수를 보내곤 했습니다. 이제는 기적적으로 완치되어 다시 한 번 전성기를 맞이했다는 평을 듣고 있는 호세 카레라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내가 이전에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은 이제 하나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전에는 무대에 설 때마다 돈과 명예가 더욱 늘어나게 되어 극장에서 극장으로 옮겨 다니는 일이 행복했습니다. 그러나 이젠 그런 바쁜 공연 스케줄속에서 오히려 더 소중한 것들을 잃어 버렸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는 1999년 한 해 동안 단 열 두 번의 콘서트를 가졌으며 그 중 여덟 번은 자기와 같은 백혈병 환자들의 치료 기금 마련을 위한 콘서트였다고 합니다. 우리도 얼마나 바쁘게 살아왔습니까? 자식을 위해서, 사업을 위해서, 성공을 위해서 너무나 바쁘게만 살아오지 않았습니까? 바쁜 일상 가운데 진정 우리에게 소중한 것들은 잊고 살아온 것은 아닙니까? 삶의 관심이 지나치게 육적인 것에만 치우쳐 있는 것은 아닙니까? 잠시 바쁜 발걸음을 멈추고 우리의 인생에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본문을 보면 우물가에서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물을 달라할 때 거부하는 여인을 향해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지만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고 말씀하시면서 사마리아 여인의 관심을 영적인 것으로 돌리십니다. 즉 마음 속의 욕망을 채울 수 있는 근본적인 해답은 내면에 있는 것이며, 그것은 영적인 것이라고 가르치신 것입니다. 문제는 다양하지만 해답은 하나입니다. 그 해답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가 마음에 오시면 여러 가지 문제와 질병, 근심, 걱정이 해결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날마다 갈급한 문제들을 육적으로 해결하려는 악순환을 청산하고 영적인 관심을 가짐으로 주님을 통하여 영원한 생수를 받아 채우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 주님을 내 삶에 모셔들입니다. 오셔서 나의 삶의 잔을 온전히 채워주시고 나를 주장해 주옵소서" 라고 간절히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날마다 영적인 것에 관심을 가짐으로 풍성한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보는 예배가 아닌 드리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록펠러가 성공적으로 인생을 살게 된 것은 그가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예배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도 처음에는 예배를 드리면서 “자신을 위하여, 돈을 위하여 축복해 달라” 고 하였습니다. 그러다 실패하게 됩니다. 그는 실패를 통해 바른 예배를 회복하게 됩니다. 그 후 그는 “하나님을 위하여, 인류를 위하여 사업을 축복해 달라” 는 예배를 드리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를 미국의 부호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50세쯤 되어 몸에 이상이 생겼습니다. 의사는 얼마 못살고 죽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다시 자신의 예배를 점검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는데 “인류를 위하여 더 많이 구제하고 선교하라는 말씀” 이었습니다. 그는 순종했습니다. 이제는 그의 삶 자체가 예배를 드리는 모습이 되었습니다. 그 이후 하나님은 록펠러의 생명을 90세가 넘도록 연장시켜 주셨습니다.

예배는 알고 드려야 합니다. 모르고 드리면 우상 앞에 절하는 것이고, 알고 드려야 하나님이 받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리면 살아 계신 하나님, 인격적인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이 우리의 예배를 받으심을 알고 드려야합니다. 또한 예배는 하나님과 만나는 감격의 시간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예배를 통해서 만나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따라서 예배를 드릴 때는 내가 하나님과 만난다는 감격 속에 구속의 은혜를 찬송하는 마음으로 드려야합니다. 그러므로 예배는 보는 것이 아니라 드리는 것입니다. 본다는 말은 남들이 하는 것을 구경하듯이, 영화를 구경하듯이 보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마음에 감격이 없습니다. 아무 생각도 없이 앉아서 오늘 목사가 무슨 이야기를 하나, 성가대는 무슨 노래를 하나, 그냥 구경하고 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배가 아닙니다. 이제 우리의 예배는 변해야 합니다. 보는 예배에서 드리는 예배로 바뀌어야 합니다. 예배는 보는 것이 아니라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는 것은 보는 예배요, 아는 것을 예배하는 것은 드리는 예배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참된 예배자를 찾고 계십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 드리시기 바랍니다.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는 예배 보는 자들이 되지 마시고 아는 것을 예배드리는 사람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잘 드려진 한 번의 예배가 인생을 바꾸어 놓습니다. 이후로 보는 예배가 아닌 드리는 예배를 하나님께 드려 예배의 성공자가 되어 날마다 은혜로 채워지는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버릴 것을 감히 버리는 결단을 해야 합니다

어떤 남자가 교회를 다니는 여자와 연애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자의 집이 몹시 가난했습니다. 어느 날 여자친구 집에 놀러 갔습니다. 그녀의 집이 가난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집 문을 열려고 하는 순간 여자친구와 그녀의 엄마의 대화를 들었습니다. 여자 친구의 엄마가 "어휴, 먹을게 없네. 어떻게 해. 이대로 죽어야 하나?" 라고 하자, 여자 친구가 "엄마 먹을 게 없으면 똥이라도 드세요. 죽긴 왜 죽어 살아야지." 남자는 깜짝 놀랐습니다. 여자 친구네가 잘 살지 못한다는 건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하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당장 그 남자는 집으로 뛰어가 냉장고 문을 열고 먹을 수 있는 건 죄다 꺼내 가지고 여자 친구네 집에 갔습니다. 그런데 문을 여는 순간 깜짝 놀랐습니다. 여자 친구하고 그녀의 엄마가 고스톱을 하고 있었습니다. 신앙생활에 방해가 되면 고스톱도 버려야 합니다.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데살로니가 전서 5장22절은 말씀하였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이고 온 물동이도 버렸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물동이를 들고 사십니까? 오늘 남의 눈을 피해 숨겨온 물동이가 있습니까? 단순히 육신의 목을 축이기 위해 들고 다니는 물동이입니까? 어쩌지 못해 쩔쩔매고 지고 다니는 무거운 물동이 입니까? 그러나 이러한 물동이들을 버릴 때 삶의 잔은 채워질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 만난 사람으로, 예수님 믿는 사람으로, 예수님 전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데 방해되는 것이라면 단호히 버리시기 바랍니다. 비록 오래도록 머리에 얹고 등에 지고 다녔던 익숙한 것이라 할지라도 버리셔야 합니다.

이 시간 우리가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삶의 습관 중에 버릴 것은 없습니까? 버릴 시기와 분량을 정하는 데 머뭇거리지 말고 과감하게 버려야 합니다. 우리가 버리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채워 주시지 않는 것입니다. 내가 움켜쥐고 있는 것들 때문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들을 쥘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움켜 쥔 것들은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것인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여러분이 가지고 왔던 물동이는 어떤 것입니까? 육신의 목만 축이는 것이라면 과감히 버리는 결단을 함으로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샘물로 채움 받는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가정으로, 이웃에게, 직장으로 달려가 예수님을 증거 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어거스틴은 "인간의 내면 속에는 하나님으로만 채워지는 공간이 있다" 고 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으로 채워지지 않으면 아무리 다른 것을 채워도 영원히 목마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사마리아 여인처럼 예수님을 온 몸과 마음으로 만나야 합니다. 그리 할 때 예수께서 주시는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생수를 통해 참된 만족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영적인 것에 관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버릴 것을 과감히 버리며 보는 예배가 아닌 드리는 예배를 통하여 여러분의 갈급한 심령이 은혜의 생수로 채워지는 복된 시간이 되어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4-08-08 00:0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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