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여름수련회-3] 참신하게 :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 presentation

  • 잡초 잡초
  • 388
  • 0

첨부 1


- 설교 : 이덕재 목사 (빛과소금의교회)

I.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

“참되게-하나님의 나라의 비전”, “신나게-하나님의 나라의 능력”에 이어 세 번째 주제는 “참신하게-하나님의 나라와 교회”입니다.

예수님께서 일찍이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라고 말씀하셨듯이, 세 번째 주제, “참신하게”는 하나님의 나라의 비전과 능력을 담는 새로운 교회를 어떻게 세워갈 것인가 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들의 공동체”입니다. 비유컨대,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의 ‘모델 하우스’이고 하나님의 나라의 ‘군대’입니다. 모델 하우스라 함은 우선적으로 그 백성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어떠한 것인지 체험하게 하는 곳이요 나아가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가 어떠함을 보여주는 곳이라는 의미입니다.
군대라 함은, 남은 영적 전투 가운데, 하나님의 통치를 실현하고(=공격) 사단과 세속의 공격을 막아내는(=방어) 주체가 교회,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들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 된다는 것은, 여전히 자아와 세속과 마귀의 통치를 따르면서, 개인의 삶의 영역에서 교회라는 새로운 영역을 추가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의 삶의 전 영역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들이고 실현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 가운데 교회는 하나님의 통치를 배우고 익히고 그 힘과 지혜를 얻는 공동체입니다.


II. 교회에 대한 세속의 도전과 세상에 대한 우리 교회의 도전

‘현대를 사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책에서 존 스토트(John Stott)는 세상 사람들이 찾고 갈망하는 세 가지를 지적하였습니다. 초월성에 대한 추구, 의미에 대한 추구 그리고 공동체에 대한 추구가 그것입니다. 나아가 이러한 세상의 갈망과 추구는 교회에 대한 도전으로서 초월성에 대한 추구는 예배의 질에 대하여, 의미에 대한 추구는 교회의 가르침의 질에 대하여 그리고 공동체에 대한 추구는 교회의 교제의 질에 대한 도전이라고 지적하였습니다.
중요한 것은 많은 서구의 사람들이 교회에 대하여 기대감이 떨어지지만, 그러나 이 초월과 의미와 공동체에 대한 갈망은 어느 때보다 크게 느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교회가 이러한 인간의 실재적 필요를 과연 채워줄 수 있는가가 과제입니다. 

저희 교회가 계속 기도해 오는 소망이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신앙의 ‘곧은 길’을 만드는 것과 ‘맑은 물 근원’이 되고 싶은 것입니다. ‘곧은 길, 맑은 물’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 것입니까?
곧은 길이란, 정직의 가치를 중요시여기는 것이며 맑은 물이란, 순결의 가치를 중요시여기는 것입니다. 정직하게 예수님 믿는 것이 무엇인지, 순결한 교회의 공동체생활이 무엇인지 체험하고 세워가고 싶은 소망입니다. 신앙생활에서 욕망의 때와 세속의 오염을 극복하고 맑은 물을 흘러낼 수 있는 샘이 되자는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가치들을 구분할 줄 알고 바로 세워야 합니다.

첫째는, 기복신앙의 맹신이 아니라 제자들의 공동체가 되는 것입니다. 기복신앙이란, 결국은 그 신앙의 열심과 추구가 자기와 자기 가족을 위한 것을 말합니다. 수능 앞두고 40일 새벽기도하는 모습이나 하나님 믿어서 사업 잘되고 결혼 잘하고 자아실현하고 이런 것을 위하여 열심을 내는모습을 말합니다.
상대적으로 제자들의 공동체라는 것은 예수님 믿는 것은 예수님 따르는 것임을 명확히 인식하여 예수님을 배우고 따르는 마음이 우선이고 중심인 것을 말합니다. 교회 공동체의 물(=분위기)가 복받기 위하여 열심인 모습을 곧은 길, 맑은 물이라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비전을 안고 예수님을 배우고 따르는 물이 면면히 흐르는 교회가 맑은 교회입니다.

둘째는, 이원론적 신앙이 아니라 통일적 세계관을 갖는 신앙인이 되는 것입니다. 이원론적 신앙이란, 주일은 하나님의 것, 나머지는 나의 것, 십분의 일은 하나님의 것, 십분의 구는 나의 것으로 구분하는 것을 말합니다. 반대로 통일적 세계관을 갖는 신앙은 예수님의 주권을 내 삶의 모든 영역에 인정하는 것을 말합니다. 주일에 예배의식에 참여하는 것, 헌금을 하는 것은 내 삶의 모든 영역에서 예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신앙고백의 행위입니다(그림1,2 참조).

셋째로는, 이분법적 직제를 극복하고 전신자 제사장 사역을 실현하는 교회입니다. 성직자와 평신도의 구분, 신학교만 나오면 성직자 계열에 서는 구분은 성경적인 것이 아닙니다. 모든 신자는 성직자이고, 사역은 모든 신자의 사명이자 특권입니다.
종교 개혁을 부르짓는 3대 모토가 오직 성경, 오직 은혜 그리고 전신자제사장주의였습니다. 개신교회가 성경의 중요성과 은혜의 복음은 많이 강조하지만, 여전히 중세처럼 성직자와 평신도로 구분하는 것은 개혁해야할 과제입니다.
모든 신자가 사역자이고 목사는 영적인 지도자로서 신자들의 사역을 여러 가지 면에서 지원하는 사람입니다. 사역한다는 것은 내 삶을 정직하게 세우는 것이며 내 이웃을 사랑하는 삶입니다. 하나님 앞에 바른 삶이 참된 예배이듯이, 사역은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말합니다.

넷째로는, 자아연민과 자기영광이 아니라 자기부인의 신앙을 추구하는 모습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신앙의 전제조건으로 자기부인을 말씀하셨습니다. 반면,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의 종교의 특징이 “저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는” 자기 영광과 자기 연민의 종교임을 지적하셨습니다.
예컨대, 집사 혹은 무슨 장의 감투를 주어서 교회 일을 시키게 하는 것은 자기 영광을 부추기는 세상적 방법입니다. 사람들이 그것을 원하기 때문에, 특히 세상에서 방귀 꽤나 뀐다는 사람들이 자기를 인정해주고 자리를 마련해 주는 것을 좋아하니까,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식으로 자기 연민과 자기 영광을 주고받는 공동체에는 성령께서 교통하시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그 바리새인의 신앙에 대하여 신랄하게 비판하셨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모든 교인이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 앞에서 자기를 잊어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며 섬기는, 무대 앞에서든 무대 뒤에서든 어떤 모습으로 섬겨도 자유하며 기뻐하며 섬길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된 교회가 곧은 길, 맑은 물입니다.

3. 우리 교회생활의 적용 - 어떻게 담아내며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우리 교회가 이러한 생명과 정신을 잘 배양하고 강건하게 세워나가도록, 그 구체적 적용으로서 실행하는 것이 신앙입문과정(복음과 인생, 새생명반, 새가족반, 새생활반)을 통하여 교인을 명확히 구분하는 것과 교회의 생활로서 예배의식, 성경학교, 신앙훈련, 작은공동체, 기도모임을 행하는 것입니다.
저희는 여전히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는 예배, 의미를 깨우쳐 주는 가르침, 마음과 삶을 나누어 성령의 교통하심을 느끼는 교제의 질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예배의식이든, 가르침이든, 교제이든 우리의 과제는 리차드 포스터가 우리 시대의 저주라고 표현한 피상성(superficiality)을 극복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초월에 대한 욕구는 초자연적인 호기심의 충족에서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때에 비로소 채워집니다. 예배의식에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주된 관건은 교회 가족들이 방관자로 임하느냐 참여자로 임하느냐, 예배 보느냐, 예배 드리느냐의 차이에 달려 있습니다.
예수님이 길이고 진리이며 생명이심을 목소리만 크게 높이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정말로 길이고 진리이고 생명이심을 전율을 느끼도록 가르치며 깨우쳐 줄 때에 의미에 대한 충족이 채워집니다. 우리 교회의 성경공부가 쉽지만은 않은 한 이유입니다.

감사한 것은 우리 안에서, 조각 구름 보듯이, 교회생활이 이런 것이구나 깨달음이 더하여가고 피상성을 극복한 모습을 보이며 나아가 그 맛을 점점 더 누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가 자고 깨는 중에 자라나듯이, 이렇게 피상성을 극복한 교회생활의 과정 가운데 성령께서 우리 안에 치유하시는 은혜, 변화의 능력을 베풀어 가심을 경험하고 목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중요한 모임이 기도모임입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세워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사역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함께 기도하는 일입니다. 우리의 기도모임은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기도를 가르쳐 주셨던 예수님의 가르침에의 순종입니다.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하는 강건하고 맑은 통로가 되도록, 이 민족과 나라에 하나님의 다스림이 있도록, 온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도록, 혼란한 세상을 대항하여 손을 들어 기도하는 중보기도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중보기도를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의 비전에 더욱 마음이 넓혀지고 눈이 떠짐을 경험합니다. 또 하나님의 나라의 비전이 있는 사람은 더욱 힘써서 인내하며 기도합니다.
이러한 교회생활은, 신앙을 취미나 여가처럼 자신을 즐기기 위한 사람이나, 혹은 신앙을 교양처럼 여기는 사람이나, 또 열심을 내지만 결국은 자신의 성공, 복을 위하여 신앙생활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새 부대에 헌 포도주 담을 수 없듯이, 적응하기 어려운, 아니 고역스러운 것일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으로서의 부르심을 받고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그를 따르는 제자로서의 삶에 헌신한 사람에게는, 이러한 교회생활은 신나고 즐거운 행복이며 참된 삶의 능력입니다. 우리는 지금 그 맛을 경험해가고 있으며,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곧은 길, 맑은 물 근원”을 만들어 가고 계십니다.

중요한 원리는 이것입니다. 곧은 길, 맑은 물 근원이 된다는 것은 교회생활의 틀, 프로그램을 잘 만드는 것만이 아닙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관건은 이 정신과 꿈에 물든 사람들이 한 사람, 한 사람 세워지고 이것이 공동체의 물결을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듯이, “참신하게” 교회를 세워가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에 우리가 함께 기뻐하며 더욱 아름다운 믿음의 응답을 드려갑시다. 그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참되게 살아가는 능력, 신나게 살아가는 기쁨을 더하실 것이며 “맑은 물”을 흘러내는 근원으로서 우리 공동체를 세워가십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