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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유쾌하게 되는 날 (행 3: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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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이동아 목사 (분당제자교회)

증참이라고 하는 사람은 공자보다 마흔 여섯 살이나 어린 나이로 공자의 손자뻘 밖에는 안 됩니다. 그는 아주 젊은 제자였습니다만은 공자선생님께서는 이 증참을 가르쳐서 늘 훌륭한 사람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이 증참이라고 하는 제자가 남긴 중요한 말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일일삼성(一日三省)입니다.  매일같이 세 가지를 반성한다는 겁니다.  첫째, 남을 생각하고 행동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린 언제나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고 말하는 거나 행동하는 거나 자기 이익을 생각하고 자기 기분을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분은 매일같이 생각합니다. '나는 남을 생각하고 살았는가? 그것에 대해서 진실하고 충성되었는가?' 그런 생각을 했어요.

두 번째, '친구와의 교제에 있어서 신의를 저버린 일은 없는가?' 신의. 신실한 교제의 기본인 믿음을 저버린 일이 없는가?

셋째는 '배우지도 않고 자기도 모르면서 남을 가르친 일은 없는가?' 모르면서 아는 척, 그렇게 남을 가르치며 위선적으로 살아간 일은 없는가?

증참은 이 세 가지를 매일같이 반성해서 공자로부터 칭찬을 받는 제자가 되었다 하는 얘기입니다.

서양 사람들은 늘 입버릇처럼 두 말을 많이 하고 잘할 줄 알아야 인격이 세워질 수 있다고 합니다.

Thank you! 여러분은 하루에 고맙다는 말을 몇 마디나 하고 삽니까? 작은 일에도 큰일에도 중심에서부터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그 감사, Thank you! 라는 말을 항상 잘할 수 있어야 그게 바로 인격자입니다.

또 하나는 I'm sorry. "죄송합니다" "미안합니다"라는 말을 잘 할 수 있어야 해요. 그런데 우리는 공자의 유교문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마치 고맙다고 하면 자기 인격이 내려가는 줄 알아요. 게다가 "내가 잘못했습니다" 라는 말을 하면 아주 족보가 망가지는 줄 알고 죽을 때까지 I'm sorry 한 번도 못해보고 죽는 사람도 있답니다.  불행한 사람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고맙습니다" 그리고 "미안합니다. 그건 제 잘못입니다." 이것을 아주 쉽게, 또 자주 그렇게 마음에서부터 말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훌륭한 인격자란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하실 때 첫 번 말씀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하고 말씀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내가 잘못했습니다" 내 탓이요 하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오직 회개뿐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것도 회개요, 응답받고 복 받을 수 있는 비결도 내 인격을 높이 세울 수 있는 것도 바로 이 회개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위로부터 공급받은 신령한 은혜도 기쁨도 안식도 평안도 회개에 달려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베드로의 첫 번째 설교에서 회개를  말하고 있습니다.

오순절사건은 모든 사람들이 방언을 하는 사건입니다. 바벨탑 사건 때 구음을 흩어 놓았다가 오순절 성령을 받은 순간에 모든 귀가 열리고 입이 열림으로 방언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각 나라사람들이 모였지만 통역 없이 전부 그들의 말로 들을 수 있었습니다. 언어를 통일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본 것입니다.  특히 베드로가 설교할 때 모든 사람들이 각기 그들 나라의 말로 듣게 됩니다. 이렇게 언어의 장벽이 일시에 무너지는 것을 보고 유대인들은 깜짝 놀랍니다.  베드로는 이 사건은 구약 요엘서의 예언이 성취되는 사건으로 해석을 합니다. 이것은 유대인들이 십자가에 죽인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사 승천하시고 약속한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는 설교를 전합니다.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고 증거합니다. 

이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자 너희가 각각 회개하여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고 선포합니다. 이 때 회개하고 주앞에 돌아온 사람이 3천명이었습니다. 이 약속은 후대의 모든 믿는 이에게 적용된다고 말씀하십니다.(행2:36-39) 주의 이름을 부르고 회개하여 돌이키면 부활하신 주님을 보혜사 성령으로 선물을 받는 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두 번째 설교도 회개를 외치고 있습니다.

성전 미문 앞에 앉은뱅이 치유사건의 의미를 설교합니다, 성전 미문 앞에 날 때부터 거지 앉은뱅이를 성령으로 충만한 베드로는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여 앉은뱅이가 벌떡 일어나 기적을 목도한 낳은 사람들이 깜짝 놀라 솔로몬 행각에 모여들어 베드로의 사건의 의미를 설교합니다. 역시 이 능력의 주인공은 자신 속에 내주하신 부활하신 주님이 역사하시어 병이 낫게 된 것입니다. 우리를 주목할 것이 아니라 치유 자를  십자가에 내어 주어 나사렛 이단으로 죽였던 예수를 우리의 조상의 하나님이 영화롭게 하여 살리는 영으로 지금 제자들 안에서 역사하시는 사건으로 설교하자 모인 유대인들이 마음에 찔려 말씀 앞에 굴복하여 5000명이 회개하고 주앞에 돌아오는 역사가 나타납니다.

너희들이 모르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못 박혀 생명의 주를 죽였으니 회개하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유쾌한 날이 다가오리라고 약속하십니다.

두 사건의 메시지의 결론의 핵심은 동일합니다. 회개하고 주님을 영접하여 세례 받고 죄 사함을 얻으면 성령을 선물로 받아 유쾌한 날이 주께로부터 도래한다는 말씀입니다. 주의 말씀의 핵심은 회개하는 것입니다. 가슴을 찢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찢고 주님 앞에 나오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은 사람들이 3000명에서 5000명으로 불어납니다. 돌이켜 회개하고 세례 받아 죄 사함 받고 성령으로 세례 받아 유쾌하게 된 사람들입니다.

행2:42-47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는 주이 나타나며 믿는 이들이 모든 물건을 유무상통하고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은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유쾌하게 된 사람들은 교회생활에서 주님의 생명을 누림이 풍성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나사렛 예수는
하나님의 종,
의로운 분,
거룩한 분,
생명의 기원자,
선지자,

그분 안에 하나님의 복 받을 씨를 두어 모든 사람에게 생영으로 생명 공급자로 오순절에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사건과  그 능력으로 앉은뱅이를 고친 표적의 주인공인 치유자 나사렛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인 장본인들로 고발하고 있으니 두렵고 떨리는 현장에 선 모든 유대인들은 자신의 행위와 십자가와 상관관계를 생각하면서 회개하여 죄 사함을 받아야 하는 상황을 설정하셨습니다. 십자가와 나 바로 십자가는 나 때문에 내가 주님을 못 박았다는 자아의식을 회개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멜깁슨이 제작한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를 할리우드에 유대인들은 이 영화제작을 저지하기 위하여 갖은 압박을 다 하였습니다. 수난의 6시간은 유대인들의 잔악상이 극악하게 표출되기 때문에 세계영화 팬들에게 유대인를  고발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제작을 만류한 사실이 보도 된 적이 있었습니다. 오늘 베드로는 두 가지 사건을 통하여 부활하여 오순절사건과 성전 미문 앞에 사건으로 유대인들을 십자가 앞으로 주 앞에 무릎을 꿇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너희가 알지 못하여서 그리하였으니 회개하고 돌이켜 죄 사함을 받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생명의 주를 죽인 것은 알지 못하고  무지해서 저질렀으니 회개하고 돌이키면 죄 사함을 얻어 유쾌한 날이 주앞으로부터 이를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십가가에 못 박은 죄를 회개하는 것입니다. 모든 죄의 원인은 무식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가장 상식적인 이야기를 모르고 있다가 뒤늦게 후회합니다.  가장 상식을 잊어버리고 시시한 일에 시간과 물질을 다 소비하고 젊음을 낭비하면서 살아왔습니다. 저들은 무지하였기에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하고 십자가에 못을 박았습니다.  몰랐기에 엄청난 죄를 지었습니다.  지난날의 모든 것이 잘못되었습니다. 이제는 깨달았습니다. 이것이 회개입니다.  지난날의 무지를 오늘에야 깨닫고 돌이키는 것입니다. 끝까지 알고  지었다면 그 죄는 사함을 받을 수 없습니다. 베드로는 “너희가 알지 못하여 그리하였으며“ 바울사도 내가 알지 못하고 그리스도를 핍박했다고 회개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신비로운 말씀이 있습니다,

18절 그러나 하나님이 모든 선지자의 입을 의탁하사 자기의 그리스도의 해 받으실 일을 미리 알게 하신 것을 이와 같이 이루셨느니라“ 사람들의 엄청난 잔악과 궤계와 반항과 죄가 있었지만  하나님의 구원의 사역이 방해받지 않습니다.  인간의 무지 인간의 악 인간의 간악함은 십자가에 까지 뻗쳐 있습니다. 가롯유다의 죄, 가야바의 죄, 빌라도의 죄 다 거기에 들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는 초월적으로 역사합니다.

죄가 크지만 그 은혜는 더욱 큰 것입니다, 죄의 무게보다 은혜는 더욱 큰 것입니다. 이것이 회개의 근거입니다. 내가 회개하고 뉘우친다고 회개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용서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죄 사함은 십자가의 은혜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뉘우침이나 후회나 가슴을 치는 행위가 결코 회개를 이룬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께서 더욱 큰 은혜로 우리의 회개를 받아주심으로 수용해주심으로 전적 수용하심으로 비로소 회개가 되고 죄 사함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부모는 자식이 잘못했을 때 그들이 스스로 잘못을 뉘우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잘못했다는 말이 없었을 때는 어쩔 수 없이 매를 듭니다. 잘못했다고 한마디만 하면 용서해 주겠다고  회개를 촉구합니다. 바로 이것이 은혜입니다. 절대적인 은혜입니다. 

북미의 최대 부흥집회 때 설교하러 강단으로 올라가는 피니 목사님에게 군중 틈에서 낮선 거인이 험상한 얼굴을 하고 나타나 피니 목사님의 팔을 잡고 "당신이 피니요?" 하고 물었습니다. "예" 하니 "만날 수 있소?" "이 시간을 마친 후 뒷문에서 기다리고 계셔요" 하니 제직들이 위험하니 만나지 말라고 권하나 약속했으니 만나야 한다며 갔습니다.

설교 후 우람차고 시커먼 그림자가 나타나면서 따라오라고 하듯이, 육중한 건물로 들어가 넓은 방문을 잠그고 안주머니에서 권총을 꺼내들고 묵중한 입을 열어 "당신 어젯밤 설교한 것 사실이요?" "무얼 말이요? 잘 기억이 안 납니다." 이 거인은 침묵을 지키더니 "당신, 우리가 죄를 자백하면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해준다고 하지 않았소? 그 말이 사실이요?" "예,사실입니다" 하니 괴한은 권총을 더 가까이 들이대면서 "이 총으로 다섯 사람을 죽였소. 셋은 내 부하가 죽이고 둘은 내가 직접 처리했소. 이래도 그렇다고 확신할 수 있다는 말이요?" 그러자 피니 목사님은 "예,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라고 분명하게 대답했습니다.

그러니 이 거인은 실내 칸막이를 걷고 노름기구, 술병 등을 보이면서 "누구든지 내 집에 들어오면 빈털털이로 나가서 미치지 않으면 자살을 하고 마오. 이래도 그 말이 사실이요?" "예, 사유함을 받습니다"

거인은 또 커튼을 걷어 치며 "저 좋은 2층집이 내 살림집이요. 10년 전 뉴욕에 사업차 갔다고 미모의 여인을 꾀어 내 아내로 삼고, 처자를 때리고, 딸이 달려들자 난로에 내동댕이쳐 팔이 부러져 불구자가 되었소, 내 집은 완전히 지옥이요, 이래도 그 말이 사실이요?" 그러자 피니는 벌떡 일어나 그의 손을 잡으며 "듣기 참 민망하오. 그러나 요한일서 1장 9절은 분명한 사실이요" 하니 털썩 주저앉아 "알았소, 고맙습니다"라고 하며 피니에게 감사했습니다.

다음날 머리는 산발하고, 두 눈은 너무 울어서 충혈이 되고, 얼굴은 땀과 눈물로 뒤범벅이 된 채, 집안의 부정한 세간들을 모조리 때려 부숴 전쟁 치른 집처럼 되었으나, 처자를 얼싸안고 목 놓아 우니, 부인은 "당신은 이제부터 가장 좋은 남편이요" 하고, 딸은 "아빠는 이제부터 가장 좋은 아빠야"하고 좋아하게 되었으며, 그는 새로운 사람 거듭난 사람이 되었다고 합니다.

탕자가 집에 돌아 온 것이 회개가 된 것이 아니고 그런 아들을 영접해 주십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돌이키는 것입니다.   

회개는 과거로부터 돌아서는 것 벗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세상으로 가던 길을 돌이켜 아버지께서 나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유쾌함은 아버지 집에서의 잔치와 송아지의 누림입니다. 아버지와 관계가 정상화 되는 것입니다. 아들이 아들 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은혜로 알고 누리는 것을 말합니다. 

유쾌하게 되는 날

개역성경」에는 “유쾌하게 되는 날”이라고 했습니다.
「공동번역성서 개정판」에는 “위로의 때”라고 했습니다.
「표준새번역성경 개정판」에는 “편히 쉴 때”라고 했습니다.
「현대인의 성경」에는 “새로워지는 때”라고 했습니다.

이 말에는 ‘다시 시원하게 되다’ ‘신선하게 되다’ 이런 뜻도 있습니다.

그래서 영어성경은 이 말을 “the time of refreshing"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새롭게 되는 날”은 ‘회복되는 날’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새롭게 되는 날”은 ‘문제 해결의 날’ ‘기도 응답의 날’ ‘시원해지  는 날’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다시 김을 불어넣다 다시 숨을 불어넣다 는 의미입니다.  창2:7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가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신성한 공기로 신성한 영으로 재창조된다는 말입니다. 유쾌한 생명은 회개한 다음에 성령의 내적 호흡이며 역사이며 성령께 완전히 정복된 생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할 수 있는 말이 없을까?’ 하다가 발견했습니다.

  어떤 말일까요? ‘엄청나게 좋은 날’ ‘수지맞는 날’ 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엄청나게 좋은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예수 믿는다는 것은 엄청나게 수지맞는 일입니다.

어떤 아이가 아버지한테서 조그마한 도끼 하나를 선물 받았습니다. 이 아이가 이것도 찍어보고 저것도 찍어보며 들로 산으로 신나게 돌아다닙니다. 거기까진 그런 대로 괜찮은데 어느 날부터인가 서부활극에서본대로 도끼 내더지는 것을 하게 되었습니다. 바람벽을 향해서 던지면 가서 팍 꽂힙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서 키우는 거위를 향하여 도끼를 던졌는데 그만 목에 맞아 그 거위가 맞아 죽었습니다. 아버지에게 꾸중들을 것을 걱정한 아들은 몰래 나무 밑에 파고 그 거위를 나무 밑에 묻어버렸습니다. 그것을 본 가정부는 자신이 다 보았노라고 놀려댑니다. 그 아이는 무슨 요구라도 다 들어 줄 터이니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협정을 맺었습니다. 심술궂은 가정부는 가끔 용돈이 필요할 때면 “저 나무 밑에....” 하면서 그 아이에게 돈을 뺏는 것입니다. 게다가 요구하는 그 돈의 액수는 날로 커나갑니다.  할 수 없어서 그 아이는 부모님의 돈을 훔쳐서 그 돈을 해댑니다. 더는 견딜 수없어서 이 아이는 결심을 하고 서재에 계신 아버지에게 들어가 그 사실을 털어놓고 용서를 구했습니다. 그랬더니 아버지는 “그렇지 않아도 내가 너의 행동인줄 알고 네가 스스로 뉘우치고 회개하기를 기다렸단다”  하면서 아들을 안아 주며 기도해주었습니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서재를 나왔는데 그 가정부가 기다리다가 다시 “나무 밑에...” 하면서 돈을 달라고 협박을 합니다. 이에 그 아이는 그녀에게 마음대로 하라고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대꾸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마음이 바로 유쾌한 마음입니다. 이제는 협박에 쫒길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정죄하리요 누가 송사하리요 누가 대적하리요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유쾌하다는 말은 죄로부터 자유함이요 온전히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 온전히 누리는 자유와 안식과 평강을 말하는 것입니다.   

모든 합당한 회심은 유쾌하게 되는 시기입니다. 모든 참된 거듭남은 누림의 때인 것입니다. 구원받을 때 우리는 누림의 때를 가졌습니다. 그때에 우리에게 기쁨과 평강이 넘치게 되었습니다. 

회개를 위하여 우리의 할일은 오직 죄를 시인하고 공감하고 십자가를 감사하며 죄 사함을 확신하는 일인 것입니다.

그리하면 유쾌한 날 성령의 내주 인도 충만한 생명을 누리게 되는 풍성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베드로의 사실상 유쾌하게 되는 시기는 그리스도 자신입니다. 베드로 사도가 소유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유하며 주님을  확대하는 증거의 삶을 통하여 능력을 체험하게 됩니다.

베드로는 밤새도록 고기를 잡았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한 실패한 베드로를  믿음이 없는 것을 알고도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기적을 보여줍니다. 그가 나는 죄인입니다, 나를 떠나소서 회개할 때에 예수님 말씀하십니다. "너는 사람 낚는 어부가 되리라. 내 제자가 되라." 베드로는 예수를 세 번이나 모른다고 한, 큰 죄를 지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예수는 그 과거를 묻지 않았습니다. "너는 나를 사랑하라.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내 양을 먹이라" 그것으로 끝입니다. 베드로는 이에 감격해서 예수를 위해 삽니다. 닭 우는 소리가 날 때마다 닭 울기 전에 '네가 나를 세 번 모른다고 하리라' 한 말씀을 생각하면서 닭소리만 나면 엎드려 회개했다는 겁니다.

그는 예수를 위하여 거꾸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됩니다. 내가 회개하기도 전에, 내가 죄를 다 회개하기도 전에 벌써 용서하시고 은총을 베푸셨어요. '그 은혜에 감격해서 이제 회개합니다. 아니 일생을 회개합니다.' 바로 그 회개 속에 창조가 있고 능력이 있고 위대한 역사가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앉은뱅이는 유쾌하게 된 날을 맞고 회개하고 주입에  돌아옵니다. 치료를 받고 은혜를 깨닫고 주의 이름을 찬미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은 은보다 금보다 존귀한 생명이요 구원이요 응답이요 치유였던 것입니다. 

이처럼 부활의 주님을 소유할 때 우리는 그분을 우리의 신선함으로 누리게 됩니다.  그분은 우리의 누림이요 안식이요 평강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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