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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평안이 있는 삶 (대하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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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박봉수 목사 (상도중앙교회)
 
1995년 미국 정신 의학회는 ‘화병’을 정식으로 신경정신 질환의 일종으로 공인했습니다. 이 병을 소개하면서 한국 사람들만이 앓는 독특한 신경정신 질환으로 한국민속증후군이라고 정의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말을 그대로 영어로 ‘hwa-byung’이라고 표기했습니다. 그리고 이 말을 영어로 ‘anger syndrome’(분노증후군)이라고 번역을 했고, 분노를 지나치게 억제해서 생기는 병이라고 설명을 달았습니다. 이제 화병은 전 세계가 다 인정하는 한국 사람들의 속병이 된 것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유교적 전통으로 생긴 억압문화 속에 살아왔습니다. 억울하고 속상한 일이 있어도 그저 꾹꾹 눌러 참아왔습니다. 이것들이 가슴에 쌓이고 또 쌓이고 응어리져서 한(恨)이 되어갑니다. 이 한이 가슴 속에 남게 되고, 여기에 다시 울화가 치미는 일이 생기면 화병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수십 년 혹독한 시집살이에 여인들의 가슴에 한이 맺힙니다. 살림살이가 나아지지 않아 허리가 휘어 죽을 지경입니다. 겨우 견디고 있는데 남편이 바람을 피웁니다. 이 여인은 더 이상 삶을 지탱하지 못하고 쓰러집니다. 바로 화병 때문입니다.

화병이 생기면 이런 증상들이 나타납니다. 가슴이 답답하거나 숨이 막힙니다. 가슴이나 목에 뭉쳐진 응어리가 느껴집니다. 신체적으로도 두통이나 소화불량, 불면증이나 만성피로 등이 나타납니다. 정신적으로도 우울증이 심해지고, 잘 놀라고 짜증을 잘 내고, 늘 불안합니다.

이 화병은 한자어로 불 화(火)에 질병 병(病)을 씁니다. 가슴 속에 불이 있는 병이라는 뜻입니다. 가슴 속의 이 불이 사람의 정신을 고통스럽게 하고, 심지어 몸도 망가뜨립니다. 때로는 옆에서 잘 못 건드리면 그 불이 밖으로 폭발합니다.

이 불이 문제입니다. 이 불이 우리 심령 속에 평안을 빼앗아 갑니다. 마치 화재로 그 소중한 물건들 다 잿더미가 되듯이 이 화병의 불이 우리 심령 속의 평안을 잿더미로 만들어버립니다. 이 불을 꺼야합니다. 그래야 우리 심령 속에 평안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불을 끄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사람 밖에 있는 불이라면 소화기로 끄거나 안 되면 소방차라도 부르면 됩니다. 그러나 이 불은 사람 속에서 타오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이 불을 끌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불을 끌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화병을 치료할 수 있을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답은 간단합니다.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 심령 속에 들어오시면 됩니다. 요동치던 갈릴리 바다를 잔잔케 하신 주님께서 불로 끓고 있는 우리 심령 속에 오셔서 그 불을 꺼주시면 됩니다. 주님께서 우리 심령 속에 오셔서 불을 꺼주시면 우리 심령 속에 평안이 다시 찾아오게 됩니다. 참된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의 심령 속에는 주님이 주시는 참된 평안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사람들이 도무지 알 수 없는 하늘의 평안을 맛보게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평안이 있는 삶을 누리게 됩니다.

본문을 통해 이 사실을 확인해 보겠습니다.

평안이란 무엇인가

본문 1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비야가 그 열조와 함께 자매 다윗 성에 장사되고 그 아들 아사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 그 시대에 그 땅이 십 년을 평안하니라” 남 왕국 유다에 아비야가 죽고 그 아들 아사가 왕이 됐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사가 왕이 되고 난 뒤에 십 년 동안 전쟁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평안이라고 번역한 말은 히브리어로 솨크타(shakta)입니다. 이 말의 뜻은 전쟁이나 갈등이 없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아사 왕은 남 왕국 유다의 세 번째 왕이었습니다. 두 번째 왕 아비야 때까지 남과 북의 분열의 후유증으로 남 왕국 유다는 계속해서 북 왕국 이스라엘과 전쟁을 치렀습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아사가 왕이 될 때 북 왕국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나라가 혼란해졌습니다. 십년 동안 왕이 두 번이나 바뀌었습니다. 남 왕국과 전쟁을 치를 여력이 없었습니다. 그 덕에 남 왕국에는 일시적인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남 왕국 유다에는 정말 오랜 만에 찾아온 평화였습니다. 르호보암 시절 애굽과의 전쟁 때문에 힘들었던 시절과 아비야 시대에 북 왕국 이스라엘과의 전쟁으로 고통을 겪던 시절이 다 지나고 전쟁 없는 시절을 정말로 모처럼 맞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남 왕국 유다백성들에게 이 평안이라는 단어는 너무도 소중하게 생각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평안도 10년을 넘지 못하고 구스 사람 세라의 침입으로 깨지게 됩니다. 저들이 다시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리게 됩니다. 바로 여기 이 솨크타의 한계가 있는 것입니다. 진정한 평안이 아니고 일시적이고 부분적인 평안일 뿐이라는 말씀입니다.

성경에는 이 솨크타 말고 평안을 말하는 단어로 우리가 너무 잘 아는 샬롬(shalom)이 있습니다. 이 샬롬의 의미 안에서 진정한 평안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게 됩니다.

1. 샬롬은 온전함입니다.

샬롬은 그 본래 뜻이 ‘완전성’, ‘총체성’, ‘통합성’입니다. 동사형인 샬렘은 ‘완전하게 하다’, ‘끝마치다’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샬롬은 부분적인 평안이 아니고 온전한 평안을 말합니다. 일시적인 평안이 아니고 항구적인 평안을 말합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솨크타와 샬롬을 다시 비교해 보면 이렇습니다.

여인이 고된 시집살이로 시어머니에 대한 분노가 한이 되어 가슴에 응어리져 있습니다. 그것을 지켜보면서 어머니 편만 들었던 남편에 대한 분노도 한으로 가슴에 사무쳐있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설상가상으로 바람을 피웠습니다. 울화가 치밀어 오르고 그 한이 폭발해서 화병이 생겼습니다.

이 때 남편이 잘못했다고 무릎 꿇고 사죄하면서 바람피우던 것을 정리하고 여인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화병의 표면적인 원인이었던 바람피우는 일은 해결이 됐습니다. 일단 사태가 진정됐습니다. 이런 상태가 솨크타입니다.

차제에 남편이 그 동안의 모든 잘못을 사죄하고 용서를 빌었습니다. 여인이 진심으로 뉘우치는 남편의 사과를 받아들이고 용서했습니다. 남편이 어머니께도 말씀드려서 시어머니도 여인에게 따뜻한 손을 내밀었습니다. 여인이 그 손을 잡았습니다. 시어머니와의 관계도 회복되었습니다. 이런 상태가 샬롬입니다.

그래서 우리말로 다시 번역을 해 보면 솨크타는 ‘편안’이고, 샬롬은 ‘평안’입니다.

암 환자가 밤에 열이 오르고 통증이 극에 달했습니다. 간호사가 달려와서 해열제 주사를 놓고 진통제를 주었습니다. 일시적으로 열이 떨어졌습니다. 통증도 멈췄습니다. 이것이 편안입니다. 의사의 올바른 처방으로 수술이 잘 돼서 암세포를 다 제거했습니다. 더 이상 암세포 때문에 열이 오를 일도 통증이 생길 일도 없습니다. 이것이 평안입니다.

그러니까 솨크타 즉 편안은 소극적인 태도입니다. 일단 겉으로 드러난 증상만 처리해 놓은 상태입니다. 그러나 샬롬 즉 평안은 적극적인 태도입니다. 속에 감춰져있던 문제의 원인을 다 제거하고 그래서 증상도 나타나지 않게 된 상태를 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에게 편안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평안입니다. 여러분 모두 평안하시기 바랍니다.

2. 샬롬은 관계 회복에서 옵니다.

샬롬은 하나님이나 이웃과의 관계에서 관계가 회복되어질 때 이루어집니다.

우선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죄를 짓고 하나님을 피해 도망칠 때 샬롬은 없습니다.

창 3:8을 보면 “그들이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고 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 죄를 짓고 하나님을 피하려고 몸부림치고 있는 모습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심령 속에 이미 샬롬은 다 무너져버렸습니다.

눅 8:36절 이하를 보면 주님께서 한 동네 바리새인의 집에 계실 때 그 동네에 죄 지은 한 여인이 향유를 담은 옥합을 가지고 주님을 찾아온 사건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여인이 주께 나와서 눈물로 주님의 발을 적시고 머리털로 씻고 그 발에 입 맞추고 향유를 부었습니다. 그 때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죄 사함을 얻었느니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죄 용서를 받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자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샬롬이 회복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진정한 샬롬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다른 것이 다 좋아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막혀있으면 샬롬은 없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온전치 않다든지 서먹서먹하다면 샬롬은 회복될 수 없습니다.

다음으로 이웃과의 관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이웃과 관계가 깨져있다면 진정한 샬롬은 없습니다.

남편과 아내가 각방을 쓰고 있는 부부에게 샬롬은 없습니다. 부모와 아이들이 몇 년째 대화를 하지 못하는 가정에는 샬롬이 없습니다. 목회자와 교우 사이에 관계가 삐걱거리는 교회, 교우와 교우 사이에 관계에 문제가 있는 교회 그곳에는 샬롬이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샬롬은 상대적입니다. 부부가 싸웠습니다. 남편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그 문제를 덮었습니다. 그래서 편안해 졌습니다. 그러나 아내는 여전히 그 문제 때문에 밤에 잠을 자지 못합니다. 이 때 남편의 편안함은 샬롬이 아닙니다. 그저 평안이 아니고 편안일 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랑으로 화목해서 피차가 함께 샬롬을 누리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가정이 샬롬으로 가득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가 진정한 샬롬이 가득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평안을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유다 왕 아사가 어떻게 평안을 얻게 되었는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얻을 교훈이 있습니다.

본문 7절 하반절을 주목해야 합니다. “우리가 주를 찾았으므로 주께서 우리에게 사방의 평안을 주셨느니라” 평안은 하나님께서 주신다는 것입니다.

아사 왕은 왕이 된 후에 북 왕국 이스라엘의 내부적인 상황 때문에 10년 동안 평안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이 때 이 평안을 항구적인 평안으로 만들기 위해서 철저하게 노력했습니다. 그러면서 그가 철저하게 깨닫고 고백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샬롬은 하나님께서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런 깨달음이 그와 유다 땅에 샬롬이 임하게 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평안을 찾으려 해 보지만 이 세상 그 어느 곳에서도 평안은 찾을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로부터만 올 뿐입니다.

요 20:19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유대인이 두려워서 문을 걸어 잠그고 불안해하던 제자들을 찾으셨습니다. 그리고 하신 첫 번째 말씀이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입니다. 제자들의 심령 속에 무너진 평강을 회복시켜주신 것입니다.

요 14:27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주님께서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드시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이별을 앞두고 불안해하는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평안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평안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오직 주님만이 간직하고 계신 그 평안을 제자들에게 나눠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진정한 샬롬은 오직 예수 안에만 있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만이 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샬롬은 사사기 6:24에서 기드온이 말했던 것처럼 여호와 샬롬이라고 해야 합니다. 주님이 주시기 때문에 샬롬은 주님의 샬롬이요, 하나님의 샬롬입니다.

찬468장 4절을 보면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이 평화를 얻으려고 주 앞으로 나아갈 때 주 예수님 우리에게 이 평화 주리로다 평화 평화 하나님 주신 선물 오 크고 놀라운 평화 하나님 선물일세”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에게 이 하나님의 샬롬이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샬롬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만 온다고 한다면 우리가 이 하나님의 샬롬을 누리기 위해 어떻게 해야할까요?

1. 여호와를 찾는 것입니다.

본문 7절을 보면 “우리가 주를 찾았으므로 주께서 우리에게 사방의 평안을 주셨느니라”고 했습니다. 4절에도 아사 왕은 유다 백성들에게 여호와를 구하게 했다고 했습니다. 아사 왕과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의 샬롬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저들이 여호와를 찾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찾는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다라쉬(darash)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질문하다’, ‘요구하다’ 그런 뜻입니다. 그러니까 여호와를 찾는다는 말은 하나님께 기도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본문 이하 9절부터 살펴보면 구스 사람 세라가 군사 백만과 병거 삼백 승을 거느리고 공격해 왔습니다. 이 때 아사가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부르짖음에 응답하시고 저들을 물리쳐 주셨고 그로 인해 유다에 다시 샬롬이 찾아오게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기도하는 사람들 그들에게 하나님의 평안이 찾아옵니다. 기도의 우선적인 응답은 평안입니다. 이 평안은 기도하는 그 시간에 먼저 응답으로 체험할 수 있습니다.


2. 여호와의 말씀을 행하는 것입니다.

본문 4절을 보면 “그 율법과 명령을 행하게 하고”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샬롬을 얻기 위해 아사 왕이 유다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하게 지키라고 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샬롬이 기로로 주어졌으면 이제 그 하나님의 샬롬이 우리 삶 속에 누려지기 위해서 우리가 할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형제를 사랑하라는 말씀을 순종하고 지킬 때 하나님 앞에서 우리 심령 속에 채워진 하나님의 샬롬이 그 형제와의 관계 속으로 퍼져가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살 때 기도하며 충만케 된 여호와의 샬롬이 이 세상의 삶 속에 스며들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어디에서나 하나님의 샬롬을 누리며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세상 사람들이 가지고 있지 못한 그리고 알지도 못한 너무도 소중한 선물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평안입니다. 이 평안을 받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 이 평안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만 온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여호와를 찾을 때 온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실천할 때 풍성하게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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