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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창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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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영민 목사 (강남침례교회)

“아브람의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내가 내 언약을 너와 너 사이에 세워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라 하시니”

(서론)

  오늘은 창세기 17장 1-2절의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저는 성경이 일점일획도 오점이 없는 완전무결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데에는 여러 가지의 이유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중요한 한 가지는 성경은 매우 정직한 책이라는 사실입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아브람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믿음의 조상이라는 칭찬과 존경을 받고 있는 아브람에 대해서도 성경은 조금의 거짓도 없이 사실 그대로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아브람이 평생을 두고서 후회하고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는 사건 즉, 자신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 아내인 사래를 사람들에게 누이라고 속인 사실도 성경은 조금의 여과도 없이 그대로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끝까지 신뢰하지 못하고 하갈이라는 한 여종을 통하여 육신의 아들인 이스마엘을 얻은 사건도 성경은 그대로 증거하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하나님의 계명은 일부일처인데 그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아브람이 일부다처제를 둔 사실도 성경은 낱낱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아브람의 실수를 성경이 그대로 기록한 것은 바로 성경이 정직하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된 성경이야말로 역사상 그 어떠한 책보다도 정직하다는 진리를 먼저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아브람의 생애는 그 자체가 우리 기독교 교리를 실물로 보여주는 아주 중요한 예표가 됩니다. 예를 들자면 아브람이 갈대아 우르에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셔서 “아브람아 아브람아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신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악의 세상에서 건져 내신 유효적 소명의 교리를 예표하는 사건입니다. 지금 우리 믿음의 성도들이 하나님께 나아와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것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셨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스스로 원해서 된 지원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부르심을 받은 착출병 이라는 사실을 항상 명심해야만 할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가리켜서 영어로는 ‘처치(church)', 독일어로는 ’키르헤(kirche)’, 헬라어로는 ‘에클레시아(ecclesia)’라고 부릅니다. 여기에서 ‘에클레시아’라는 말의 의미는 ‘불러냄을 당한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즉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은혜로 이 죄많은 세상으로부터 불러냄을 당한 구원받은 백성들이라는 말씀입니다. 물론 오늘도 우리가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각자가 두 발을 움직여서 교회로 왔지만 사실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하셨고 성령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이곳으로 인도하셨기에 가능한 일임을 믿으시고 항상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언약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과 사래를 통하여 믿음의 후사가 이 세상에 태어날 것이라는 확실한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의 후사를 통하여 아브람의 자손들이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많을 것이라고 하는 확실한 언약을 체결하셨습니다. 이 약속의 언약을 아브람은 확실하게 믿었습니다. 그 결과 성경은 창세기 15장 6절에서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라고 증거하였습니다.  이 말씀에서도 우리는 사람의 의는 의로운 행위로 하나님 앞에서 의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받는 다는 ‘이신득의’, 혹은 ‘이신칭의’의 중요한 교리를  예표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을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내시고 의롭다함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인 창세기 17장에서는 그 이상의 명령을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창세기 17장 1절에서 하나님은 아브람을 향하여 “ ---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의롭다 칭함을 입은 사람에게 이제는 성결한 삶을 살아가라는 뜻입니다. 어떠한 사람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복음의 일꾼으로 쓰임받기 위해서는 성결한 삶(신학적인 용어로는 ‘성화’라고 함)을 이루어 가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1. 성화는 열매이다.

  그러나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이 ‘성화’에 대해서 매우 부담스러워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여 ‘거룩하라’고 하신 명령을 아주 어렵게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이 ‘성화’의 명령을 어렵게 생각하고 있을까요? 왜냐하면 ‘성화’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구원받은 그 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성도의 삶과 매우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화는 성결한 삶을 살아가는 성도에게 있어서 꽃이요 열매입니다. 성경이라고 하는 거룩이라고 하는 성화의 꽃을 우리가 피우기 위해서는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상으로부터 건져내시는 부르심의 은혜가 있어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지 못한 불신자들은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성결한 삶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절대적으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세상의 불신자들은 거룩과 성결에 대해서 조금도 이해할 수 도 없습니다.

  또한 우리가 성결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께로부터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받은 이차적인 경험이 있어야만 합니다. 이차적인 경험이 없이 하나님께로부터 의롭다 하심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성화나 거룩한 삶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부르심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받은 상태에서 상승적인 효과로 인하여서 성화의 열매를 맺을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우리가 거룩한 삶을 통하여 구원함을 받는 것은 아니라는 진리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제 아무리 거룩한 삶을 날마다 살아간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통하하여 구원을 받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거룩함은 이미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거룩한 삶의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부르심을 받고 의롭다 함을 입은 사람들에게는 이제 하나님께서 그 사람들을 거룩한 삶으로 이끌어 가십니다. 그러나 이 성결한 삶이라고 하는 성화는 하루아침에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성화는 우리 믿음의 성도들의 아주 오랜 삶 속에서 발생하는 실수와 연단과 인내와 고난을 통하여 점진적으로 맺어지는 열매입니다.

  즉 어떠한 사람이 오늘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을 믿고서 구원을 받는다고 해서 유명한 성자처럼 하루아침에 거룩한 삶을 살아갈 수는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거룩과 성결한 삶의 열매는 아주 오랜 연단과 고난을 통하여 맺어진다는 진리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아브람도 나이 75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때에 아브람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로부터 의롭다 함을 입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믿음의 후사를 주겠다는 언약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10년이 지나도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믿음의 후사가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아내인 사래가 아브람에게 하갈이라는 여종을 통하여 후손을 볼 것을 제안하였습니다. 이때에 아브람의 믿음은 크게 흔들렸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끝까지 신뢰하지 인내하지 못하고 그만 사래의 말에 넘어가서 하갈이라는 애굽 여인을 통하여 육신의 아들인 이스마엘을 낳고 마는 큰 우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이 일로 인
하여서 아브람은 하나님 앞에서 성결한 삶에 관해서는 큰 점수를 잃게 됩니다. 또한 아브람은 죽을 때가지도 이스마엘과 이삭으로 인하여서 하나님 앞에서 면목이 없을뿐더러 그 가정에도 큰 분란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도 이스마엘의 후손들과 이삭의 후손들이 얼마나 큰 국제적인 분쟁을 일으키고 있습니까? 최근에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틴이 서로를 향하여 끔찍한 테러를 일으키는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아브람이 끝까지 인내하지 못한 일로 말미암아 일어난 결과입니다.  아브람은 85세에 하갈과 동침하여서 86세에 이스마엘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람의 생애에 있어서 이스마엘이 태어난 순간부터 집안에 평화가 깨어지고 말았습니다. 성경 어디를 찾아보아도 이 사건 이후로 아브람의 담대한 신앙의 용기와 기백을 우리는 읽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아브람의 그 어떠한 고상한 행동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아브람은 86세부터 99세까지 무려 13년의 시간 동안 신앙의 퇴보를 하게 되었습니다. 신앙이 퇴보하자 자연스럽게 아브람의 영혼도 시들어가고 말았습니다. 이 13년의 세월 동안 하나님께서는 단 한번도 아브람을 방문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전에는 하나님께서 자주 아브람을 찾아오셨고 임재하시고 말씀을 해 주셨는데 이스마엘 사건 이후로 하나님은 아브람을 단 한번도 찾아오시지 않으셨습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서도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지 못하고 영혼이 시들어가는 분이 계시다면 그분은 틀림없이 신앙이 퇴보하고 있다는 명확한 증거입니다.

  오늘 본문 창세기 17장 앞절인 16장 마지막절을 보시면 “하갈이 아브람에게 이스마엘을 낳을 때에 아브람이 팔십륙 세이었더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창세기 17장 1절에서는 “아브람의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스마엘의 사건 이후로 하나님은 아브람을 한 번도 찾아오시지 않으셨지만 본문은 놀랍게도 아브람의 나이 99세 때에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찾아오셨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아브람과 약속하신 그 언약을 이루시기 위해서 다시금 그를 찾아오셨습니다. 신앙이 퇴보하고 영혼이 시들어가고 있는 아브람을 회복시키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찾아오셨다는 사실입니다. 아브람을 향하여 하나님께서는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고 말씀하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가운데에 신앙의 퇴보와 영혼이 시들어가고 있는 분이 계신다면 이렇게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13년 동안의 적막을 깨시고 아브람을 찾아 오셨던 것처럼 오늘 이 시간에 시들어가는 저의 영혼에 임재하셔서 다시금 저의 영혼을 소생시켜 주시옵소서. 비록 저의 심령이 메마른 사막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면 향기나는 꽃과 무성한 열매를 맺을 줄로 믿습니다. 속히 저희 영혼과 심령에 임재하여 주시옵소서!”.
 
2. 성화의 모본

  그렇다면 우리가 추구해야만 하는 거룩한 삶의 유형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을까요?

첫째, 거룩한 삶은 하나님에 대한 바른 인식에서부터 출발합니다. 우리가 거룩한 성화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최우선적으로 하나님을 올바르게 인식을 해야만 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을 향하여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고로 아브람을 향하여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생각할 때에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과 자비하심에 관하여 올바른 인식을 하지 못하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거룩한 삶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이 세상에 죄가 범람하고 있는 원인은 바로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능력을 낮게 생각하고 하나님의 존재를 무시하고 적대시하는 데에 있습니다. 틀림없이 그런 사람들이 있는 곳에는 죄가 번성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우리 믿음의 성도들이 거룩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각 개인이 ‘나의 하나님은 과연 어떠한 하나님이신가?’에 대한 확실하고도 올바른 인식이 있어야만 합니다. 아브람의 가정에 일어난 불화의 씨앗도 바로 그가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망각하였기에 일어났습니다. 아무리 자신이 나이가 들어서 늙어가고 아내인 사래의 태의 문이 닫히고 경수가 끊어진다 할지라도 아브람이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올바른 인식만 있었다고 한다면 그같은 현실의 어려움은 조금도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떠한 불리한 상황에서도 아브람은 끝까지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의지했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사업이든 가정이든 건강의 문제이든지 간에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현실이 다가온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끝까지 의지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해야만 할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믿고 있는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미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어려운 순간에 믿고 의지할 수 있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세상의 사람들은 불행한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절망의 순간에 믿고 의지할 수 있는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믿음의 성도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고 섬기고 있습니다. ‘엘 샤다이’(히브리 말로,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뜻임)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 항상 우리의 삶을 주관하시고 보호하시고 인도하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처럼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바로 거룩한 삶을 위한 첫 걸음이 됩니다.

  둘째, 거룩한 삶을 하나님 앞에서 행하는 일입니다. 오늘 본문 17장 1절의 후반부를 보시면 “너는 내 앞에서 행하라”고 증거 합니다. 즉 거룩한 삶이란 하나님 앞에서 행하는 것입니다. 항상 하나님 앞에서 행동하는 사람은 실수하는 우를 범하지 않습니다. 아브람이 큰 실패와 낭패를 경험하게 된 이유는 하나님 앞에서 행한 것이 아니라 아내인 사래 앞에서 행하였기 때문입니다. 아브람은 사래의 합당치 못한 권면에 그만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아내인 사래의 말을 더 경청하고야 말았습니다. 아무리 밝은 대낮이라고 할지라도 사람 앞에서 행하는 자는 반드시 죄를 범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사방이 막혀 있는 캄캄한 골방에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자는 결코 죄를 범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한 우리 모든 믿음의 성도님들은 항상 하나님 앞에서 행동하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사람을 바라보지 마시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만 행동한다는 신앙의 자세를 가지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구약에 등장하고 있는 사무엘은 비록 어린 나이에 이스라엘의 사사요 대 선지자가 되었습니다마는 하나님께서 항상 사무엘에게 임재하시고 말씀하셔서 모든 외적의 침입을 다 물리쳐 주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참된 평강과 안식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도대체 사무엘이 어떠한 삶을 살았기에 하나님께서 그와 같은 축복을 주셨을까요? 그 이유는 바로 사무엘이 항상 하나님 앞에서 행동하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어릴적 부터 사무엘은 항상 하나님 앞에서 행하는 믿음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무엘의 그러한 믿음을 보시고 이스라엘의 대 사사요, 대 선지자로 세워 주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거룩한 삶이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올바르게 인식하고 하나님 앞에서 행하는 삶인 줄로 믿습니다.

  셋째, 거룩한 삶이란 완전을 목표로 하는 일입니다. 물론 우리가 아무리 거룩하게 살아간다고 할지라도 인간의 삶에는 죄악이 역사하기에 이 땅에서는 결코 완전한 것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불완전한 존재라고 할지라도 완전한 삶을 살아가는 자세를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예를 들자면, 우리의 자녀들이 붓글씨를 배우고 있다고 칩시다. 그런데 붓글씨를 쓰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입니까! 따라서 우리 아이들의 글씨는 비뚤하고 아주 엉망으로 쓰게 마련입니다. 그때에 부모들이 어디에서 이상한 싸구려 붓글씨 교본을 구해 와서 자녀들에게 ‘너희들은 글씨를 잘 못 쓰니까 이거라도 보면서 글씨를 배워라!’고 할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비록 자녀들이 붓글씨는 못 쓸지라도 교본만큼은 최고로 좋은 책을 구해 와서 주는 것이 올바른 부모의 마음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우리 믿음의 자녀들이 완전한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완전한 곳에 삶의 목표를 두고 날마다 거룩한 삶을 살아가기를 간절히 바라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음의 성도들은 어떠한 순간에도 거룩한 삶을 목표로 한 신앙의 자세를 중지해서는 안 됩니다. 제가 바라고 믿고 원하기로는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한 모든 믿음의 성도님들은 하나님이 부르시는 최후의 순간까지 완전한 삶을 추구하면서 살아가는 신실한 하나님의 자녀들이 다 되실 줄로 믿습니다.
 
3. 성화의 방편

  그럼, 우리의 생활 속에서 거룩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방편은 무엇일까요?
첫째, 거룩한 삶은 하나님과의 교제에서 시작이 됩니다. 하나님과 날마다 영적으로 교제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성결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창세기 17장 3절을 보시면 “아브람이 엎드린대 하나님이 또 그에게 일러 가라사대”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아브람이 하나님께 엎드렸다는 말씀은 바로 아브람이 하나님과 영적인 교제를 나누었다는 의미입니다. 이처럼 우리도 아브람처럼 하나님과 사귐을 자주 가질수록 그 사람은 거룩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자주 만나면 만날수록 그 영혼은 거룩한 능력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읽으면 읽을수록 그 사람의 영혼은 맑아집니다. 하나님께 기도를 많이 하면 할수록 놀라운 능력과 은혜를 체험할 수가 있게 됩니다. 혹시 여러분 가운데에 주일마다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일이 힘들다고 불평하는 분이 계십니까? 그런 분들은 한 2주 만 주일날 예배를 빠져 보십시오. 과연 그 영혼에 참다운 평강과 안식이 찾아올까요? 절대로 그렇지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제를 통하여 참다운 마음의 안식과 쉼을 얻을 수 있는 거룩한 존재임을 항상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정기적으로 하루에 10분 이상씩 하나님께 기도 하지 못한 분들도 오늘 이 시간에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제에 힘쓰기 위해서 날마다 시간을 정해놓고 지속적으로 기도하는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기도하는 사람의 영혼에는 어두움이 물러가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리고 그 영혼에는 하나님의 밝은 빛이 임하게 됩니다. 바로 그런 삶을 살아갈 때에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신령한 능력을 덧입게 되고 그 능력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원하시는 거룩한 삶을 살아가게 될 줄로 믿습니다.

  둘째, 거룩한 삶은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믿음에서 시작이 됩니다. 지금 현실은 우리가 거룩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암담하고 불가능하게만 보인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언약을 믿고 의지하는 자에게는 가능케 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들을 담대한 믿음으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불신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의 사건을 절대로 믿지를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들은 하나님의 언약을 불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 믿음의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역사성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바로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우리는 믿고 따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확신합니다. 이 온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능히 십자가의 죽음을 이기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셨다고 하는 부활의 역사성과 사실성을 우리 믿음의 성도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과 언약을 체결하십니다. 창세기 17장 4-5절을 보시면 “내가 너와 내 언약을 세우니 너는 열국의 아비가 될찌라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로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함이니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또한 창세기 17장 6절은 “내가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니 나라들이 네게로 좇아 일어나며 열왕이 네게로 좇아 나리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창세기 17장 8절은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너의 우거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일경으로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신기하고도 놀라운 아브람을 향한 하나님의 축복입니까! 이 약속의 말씀을 아브람은 그대로 믿었습니다. 그리고 아브람의 믿음을 하나님께서는 크게 칭찬을 하셨습니다. 아브람의 믿음을 기쁘게 보신 하나님께서는 그 믿음 위에다가 신령한 축복을 더하셔서 아브람의 나이 100세에 독자 이삭을 허락하여 주신 줄로 믿습니다.

  이삭을 낳은 이후로 아브람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기 시작합니다. 이삭을 낳고 나서 아브람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참된 거룩한 삶을 살아갈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우리 믿음의 성도들도 아브람처럼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그대로 신뢰하는 자세를 가져야만 하겠습니다. 비록 우리의 이성으로는 잘 이해가 안 되고, 때로는 납득이 잘 안 된다고 할지라도 아브람처럼 끝까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신뢰하는 삶을 살아가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이 반드시 임한다는 진리를 항상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셋째, 거룩한 삶은 아브람에게 있어서 육적인 몸을 벗는 할례에서 시작이 되었습니다. 여기에 대하여 창세기 17장 10절-11은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너희는 양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 할례의 언약은 아브람과 그의 후손들 모두가 지켜야만 하는 하나님과의 약속의 행위입니다. 그렇다면 이 할례란 도대체 무엇일까요? 무엇이길래 하나님과 아브람의 관계에 있어서 할례가 그토록 중요한 비중을 차치하고 있을까요? 이 질문에 관하여 신약 성경인 골로새서 2장 11절은 다음과 같이 답변하고 있습니다.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적 몸을 벗은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여기에서 할례란 죄를 단념하는 것입니다. 육체의 더러운 모든 것을 포기하는 일입니다. 아무리 애지중지하던 것이라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것이라면 과감히 버릴 수 있어야만 합니다. 아직도 예수님을 믿기 이전에 행하던 세상의 악습을 좇아가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회개하시고 믿음으로 담대히 잘라 버리십시오. 과거에 먹고 마시던 술과 담배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해서 포기해야만 합니다. 이전에 모시고 있던 집안의 우상이 있다고 한다면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서 과감히 버려야만 합니다. 아무리 귀한 금과 은으로 만들어진 우상이라고 할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과 주님의 기쁨을 위해서 담대히 포기해야만 합니다.

  제가 알고 있는 어떤 분은 예수님을 믿기 이전에 자신의 집 안에 모시고 있던 우상이 있었습니다. 그 우상은 아주 값비싼 금으로 만들어진 것이었습니다. 가격으로 따지면 수천만원어치가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분이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을 믿게 되자 마음속에 갈등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양심과 세상의 물질을 추구하는 욕심이 내면에서 서로 싸우기 시작합니다. 마음은 그 우상을 녹여서 다른 좋은 곳으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아니면 다른 사람에게 팔아서 돈으로 바꾸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법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자 배를 타고서 바다로 나가 깊은 바닷물 속으로 집어 던지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날 이후로 이분한테는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이 임하게 되었습니다. 사업이 크게 형통하게 되고 집 안에 항상 웃음꽃이 피고 가족들이 늘 건강하고 잘 되는 축복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한 우리 믿음의 모든 성도님들도 혹시라도 그 마음속에 이 세상의 우상이 조금이라도 존재한다고 한다면 지금 당장 과감히 버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원하시는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하여 육신의 모든 더러운 것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모조리 못 박아 버리시기 바랍니다. 바로 그러한 신앙의 결단을 품고 살아가는 믿음의 성도들에게 우리 하나님의 신속한 응답과 축복이 틀림없이 임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4. 성화의 열매

  이와 같이 아브람이 하나님께로부터 거룩한 삶을 살아가라고 하는 명령을 받고 그 명령에 철저히 순종하여 거룩한 삶을 살아가게 되자 아브람에게 거룩한 열매의 증거들이 많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거룩한 삶의 열매는 과연 어떠한 것들이 있을까요?

  첫째, 아브람은 기도의 용사가 되었습니다. 창세기 17장 이전까지는 아브람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장면이 그렇게 많이 나오지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아브람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거룩한 삶을 살아가자 그는 기도의 사람으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아브람은 비록 하나님이 약속하신 믿음의 후사는 아니지만 육신의 아들인 이스마엘을 위해서도 하나님께 기도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자신의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도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자세를 우리들에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창세기 18장을 보시면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하시는 장면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때에도 아브람은 여호와 앞에서 간절히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아브람은 그곳에 살고 있는 조카 롯의 가족을 생각하면서 창세기 18장 23절에서 “가까이 나아가 가로되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시려나이까”라고 하나님께 매어 달렸습니다. 계속해서 아브람은 창세기 18장 24절에서 “그 성중에 의인 오십이 있을찌라도 주께서 그곳을 멸하시고 그 오십
의인을 인하여 용서치 아니하시리이까”라고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그런데 아브람이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소돔 성에 의인 50명은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45명, 40명 30명, 20명, 10명까지 그 숫자를 낮추어 달라고 무려 6번씩이나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고 결국에는 하나님의 승낙을 받고야 마는 끈질긴 기도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소돔과 고모라가 의인 10명이 없어서 하나님의 불 심판으로 멸망하고 말았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의 신앙생활의 본질은 영적인 싸움입니다. 그런데 이 영적인 싸움은 세상에 속한 총과 칼로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고도의 작전과 권모술수로 임하는 육적인 싸움이 아닙니다. 우리의 싸움은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과의 치열한 영적인 전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강력한 무기는 오직 기도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기도의 무기로써 악한 영들과의 싸움에서 담대한 승리를 거둘 수가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한 모든 믿음의 성도님들도 아브람처럼 날마다 하나님께 간절히 간구하는 기도의 삶을 살아가시는 가운데에 하나님의 신속한 기도의 응답과 신령한 축복을 풍성히 받으시는 복된 믿음의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스코틀랜드의 메리 여왕이 통치하던 1560년대에 시대는 개신교가 많은 핍박을 받았던 시기였습니다. 칼과 무력으로 메리 여왕은 수많은 개신교 신자들을 사정없이 탄압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토록 막강한 권세를 쥐고 있던 메리 여왕도 무서워하던 존재가 있었습니다. 그 존재는 바로 존 낙스라고 하는 한 사람의 종교 개혁가였습니다. 메리 여왕은 존 낙스를 가리켜서 “강력한 군대의 힘 보다 저 존 낙스 라고 하는 한 사람의 기도의 힘이 훨씬 더 무섭다”라고 고백을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존 낙스가 한 기도의 내용은 무엇일까요? 그 기도의 내용은 바로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 이 나
라에 복음의 진보를 반대하는 통치자들을 하나님의 능력을 손으로 다 물리쳐 주시옵소서!”. 그 결과 피의 여왕이라는 메리는 하루아침에 무너지게 되었고 스코틀랜드의 땅에는 하나님의 복음의 기쁜 구원의 소식이 전곡 방방곡곡에 울려 퍼지는 승리의 개가를 존 낙스는 울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우리 믿음의 성도들도 아무리 현재의 시국이 혼란스럽고 무질서하다고 할지라도 존 낙스처럼 이 나라와 민족과 국가를 위해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삶의 자세를 놓지 말아야 될 줄로 믿습니다. 지금의 사회가 힘들고 어렵다고 할지라도 물리적인 힘과 수단을 통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로 나아와 아브람처럼 기도하는 가운데에 모든 삶의 문제들을 해결함 받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에 위대하신 하나님의 권능의 손길이 이 나라와 민족과 국가에 임하여 모든 무질서가 잘 정돈되어지고 사회의 전반적인 문제들이 신속하게 고침과 해결을 받는 치유와 회복의 역사가 일어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둘째, 아브람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접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신앙이 훌륭하게 성장하여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잘 대접할 수가 있습니다. 나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극진하게 잘 대접하는 사람은 틀림없이 신실한 그리스도인이 될 충분한 자격을 갖춘 사람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성화의 열매이자 꽃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교회를 다니면서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면서도 다른 사람을 단 한번도 돕지 않고 불쌍한 이웃들을 보아도 조금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성화의 삶, 즉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창세기 18장을 보시면 어떤 세 사람이 불시에 아브라함의 집을 방문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아브라함이 얼핏 보기에도 그 세 사람이 보통 사람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눈치 채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창세기 18장 2절을 보시면 “눈을 들어 본즉 사람 셋이 맞은편에 섰는지라 그가 그들을 보자 곧 장막 문에서 달려 나가 영접하며 몸을 땅에 굽혀”라고 기록된 말씀처럼 아브라함은 그 세 사람을 향하여 땅에 엎드려 절하고 자신의 집으로 모시고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아내인 사라에게 명하여 최고의 음식을 정성을 다하여 준비하게 하였습니다. 좋은 송아지도 잡고 떡도 준비하고 양질의 버터와
우유를 마련하여 최고의 서비스를 그 세 사람에게 제공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세 사람 중에 한 분이 바로 하나님이셨습니다. 아브람은 부지중에 접대를 하였는데 놀랍게도 하나님을 접대할 수 있는 축복을 받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제가 바라고 원하기는 우리 강남중앙 침례교회의 성도님들도 날마다 만나는 이웃들과 동료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최선을 다하여 섬기시고 대접하는 나눔의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우리들의 신앙의 성장은 다른 사람을 섬기고 대접하는 마음과 정비례한다는 사실을 항상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도 살아생전에 사회에서 소외받고 무시당하는 계층의 사람들을 찾아가서 그들의 상처를 어루만져주시고 함께 눈물을 흘리시면서 아픔과 슬픔을 나누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사랑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부르심을 받고 자녀로 인정받은 여러분도 주위에서 힘들게 고생하고 있는 사람들을 찾아가서 따뜻한 밥 한끼라도 정성을 다하여 대접하고 복음의 능력으로 위로하는 삶을 살아가는 가운데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원하시는 거룩한 삶의 열매들을 주렁주렁 많이 맺어 가시기 바랍니다.

  셋째, 아브람은 순종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창세기 22장을 보시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순종하시기 위하여 독자 이삭을 모리아 산에 올라가서 바치라고 하는 명령이 나오고 있습니다. 여러분 한번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브람은 나이 100세에 독자 이삭을 얻었습니다. 정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이 바로 사랑하는 아들 이삭 입니다. 천하보다 귀하고 자신의 생명보다도 훨씬 더 귀한 존재가 아들 이삭 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 이삭을 지금 제물로 바치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더 놀라운 사실은 이 명령에 아브라함은 기꺼이 믿음으로 순종을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을 한 것이 아니라 그 즉시 집을 떠나 삼일 동안을 걸어가서 모리아 산에서 이삭을 제단 위에 눕혀 놓고 하나님께 산 제물로 드리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아브람의 행동이 바로 거룩한 성화의 열매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의롭다 칭함을 받고 거룩한 삶을 살아가고자 아브람이 결심하고 살아간 결과 이와 같은 놀라운 성화의 열매가 그의 삶에 나타나게 되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오늘 이 시간에 부르심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입은 우리 모든 믿음의 성도들을 향하여 신앙의 퇴보를 중지하고 거룩한 삶을 살아가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아브람에게 나타나셔서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의 명령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도 동일하게 주어진 말씀임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거룩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야만 합니다. 각자의 삶의 모습 속에서 성화의 열매와 꽃을 피우기 위해서 최선의 삶을 살아가야만 합니다. 혹시라도 여러분 각자의 삶의 모습 속에서 세상의 죄악 된 부분들이 조금이라도 있다고 한다면 과감히 버리십시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원하시는 거룩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날마다 하나님과 영적으로 친밀하게 교제하는 삶에 힘을 기울이십시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대한 변함없는 신뢰를 가지십시오. 비록 현재의 삶이 고달프고 힘들다고 할지라도 여러분 각자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끝까지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아브람처럼 어떠한 순간에도 하나님의 언약을 믿음으로 의지하고 바라보시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성화의 열매를 풍성하게 거두기 위해서 항상 하나님께 기도하는 삶을 살아가시고 주위의 이웃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정성을 다하여 섬기시기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처럼 어떠한 경우에도 하나님의 명령에 절대적인 순종의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이와 같은 거룩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거룩한 삶의 열매와 꽃을 피우기로 작정한 위대한 신앙의 결단을 품고 실천하는 여러분 모두에게 아브라함처럼 하나님 앞에서 완전한 자로 행하는 축복이 임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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