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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광복절]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 (삼상 10:17-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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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요한 목사 (평안의교회)

오늘은 감사하게도 8월15일이어서 광복절기념주일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지난 1945년 광복 당시의 역사를 살펴보면 수많은 국가들의 수고와 노력이 있었으나 결국은 모든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의 결과인줄로 믿습니다. 그 가운데서 신앙의 지도자들을 크게 쓰셔서 민족을 리더하고 세계 질서를 바로 세우는 데 큰 역할을 한 분들을 잊을 수 없습니다.

민족 대표 33인 중에서 많은 분이 성도라는 사실과 사회 각계각층의 지도자들의 대부분이 크리스챤이었음은 너무나도 자랑스러운 일이었습니다. 당시로서는 기독교인이 30 여만명일 때이기에 더욱 그분들의 영향력은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인구가 증가하였다고 하여도 오늘날 1000만을 넘는 성도를 가진 기독교가 그 당시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사회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음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기에 우리 모두가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를 뒤돌아보며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참고로 민족대표 33인의 명단을 소개합니다.
손 병 희 길 선 주 이 필 주 백 용 성 김 완 규 김 병 조 김 창 준 권 동 진 권 병 덕 나 용 환
나 인 협 양 전 백 양 한 묵 유 여 대 이 갑 성 이 명 룡 이 승 훈 이 종 훈 이 종 일 임 예 환
박 준 승 박 희 도 박 동 완 신 흥 식 신 석 구 오 세 창 오 화 영 정 춘 수 최 성 모 최 린
한 용 운 홍 병 기 홍 기 조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종 사무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미스바로 불러 제2차 총회를 갖는 장면입니다. 제1차 총회는 삼상 7장에서 이스라엘이 법궤를 블레셋에게 빼앗긴 이후 너무나도 부끄럽고 하나님을 볼 면목이 없어 방황하던 중, 결국 법궤가 벧세메스로 돌아왔으나 경솔한 처신으로 70인이 죽는 등 큰 환란을 겪고나서 법궤를 아비나답의 집에 모셔 놓은 뒤, 좀 더 우리가 하나님 앞에 준비된 모습으로 서야 되겠다고 하는 심정에서 미스바 광야로 모인 것입니다. 1차 미스바 집회의 목적은 철저하게 금식하며 회개하는 일이었습니다.

우리가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실패한 것이 칼과 창에 수효 때문이 아니고, 전쟁에 능한 군사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겼던 범죄로 인함이라고 하는 것을 인정하고 회개하는 운동이 미스바에서 일어난 줄로 믿습니다.

다시금 블레셋이 쳐들어 왔으나 하나님께서는 우뢰를 발하셔서 그들을 물리쳐 주셨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승리의 감격을 돌에 새겨 에벤에셀의 하나님 이심을 송축하였습니다. 삼상 7:13에 보면 "여호와의 손이 사무엘의 사는 날 동안 블레셋 사람을 막으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지도자가 있는 나라,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지도자가 있는 나라가 얼마나 견고한가를 잘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미스바 2차 집회가 소집되었습니다. 사무엘이 다시금 백성들을 미스바로 부른 것입니다. 오늘 두 번째 미스바 집회의 목적은 이스라엘을 다스릴 초대 왕을 선택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제 사사시대에서 왕의 시대로 넘어가는 아주 중요한 전환점에 있었습니다.

백성들이 모두 모이자 사무엘은 18- 19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먼저 영적 각성을 다시 한 번 촉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너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애굽인의 손과 모든 이방나라의 손에서 너희를 건져내신 구원의 하나님이시라"고 선언하고 그럼에도 너희가 어찌하여 그 구원의 하나님을 버리고 인간적인 방법을 의지하려고 하느냐고 반문하고 있습니다.

마치 지금의 대통령 선거처럼 왕을 선출하려고 모인 자리에서 먼저 영적 각성 운동을 위한 기도회를 갖고,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려는 겸손한 모습이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무슨 모임을 갖더라도 먼저 기도회를 해야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기도보다 앞서지 말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사무엘은 각 지파대로 1.000명씩 대표를 뽑아 보내도록 요구하고 있습니다. 마치 미국 대통령 선거를 위하여 각 주에서 선거인단을 뽑는 것처럼 말입니다. 12지파에서 1.000명씩 왕을 선택할 사람을 뽑아 보내었으니 12.000명의 대표들이 모였습니다. 제비를 뽑게 했던지, 아니면 우림과 둠림을 통해 했던지 그렇게 해서 한 지파가 정해졌는데 바로 베냐민지파가 뽑혔습니다.

베냐민 지파만 남은 가운데 또 가문별로 제비를 뽑았는데 마드리 집안이 뽑혔습니다. 마드리 집안 중에서 최종적으로 한 사람을 뽑았는데 놀랍게도 기스의 아들 사울이 뽑힌 줄 믿습니다. 얼나나 질서 정연하고 공명정대한 선거인지 모릅니다. 오늘날 까지도 부정선거가 만연하고 날치기 선거가 존재하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당시 사울왕을 뽑는 과정은 더욱 놀랍고 멋진 장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점점 선택의 범위가 축소 될 때에 사람들은 나름대로 ‘내가 어쩌면 왕이 될 수도 있겠다.’ 는 그런 기대를 가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기스의 집안이 뽑혔을 때 그 많은 형제들도적지않는 기대를 가졌을 것입니다. 마치 운동회가 끝날 무렵 실시하는 행운권 추첨에서 제일 마지막 추첨하는 상품이 제일 큰 상품이기에 누구나 한번은 기대를 갖는 것과 같이 말입니다. 뽑은 번호를 불렀으나 응답이 없으면 갑자기 기대가 커지지요. 아, 또 한 번 뽑겠구나. 그런데 뒤에서 ‘여기 있어요!’하고 나오면 어떻습니까? 맥이 탁 풀리지요.....

사울입니다! 사울이 선택되었습니다! 라고 발표하는데 놀랍게도 정작 사울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의아한 사람들이 사울을 찾습니다. 도대체 사울이 어디 갔을까? 결국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께 그 사람이 여기 왔느냐고 물었고, 여호와께서는 대답하시기를 "그가 행구 사이에 숨어 있다"고 알려 주셨습니다. 행구란 짐이나 여행도구 같은 것을 쌓아놓은 자리를 말하는데, 그 틈새에 숨었다는 거지요.

성서학자들은 이 장면을 두가지로 해석을 합니다. 하나는 사울의 겸손한 삶의 태도 때문이요, 하나는 왕이라는 엄청난 사명을 감당하기 어려워 피하고 싶은 두려움 때문이라고도 말합니다. 하지만 겸손과 두려움은 때때로 이웃사촌일 때가 많습니다. 제가 깨닫기에는 이 두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행동이 아닌가 싶습니다.

삼상 10:27에 보면, 실제로 사울은 왕이 된 후, 많은 사람들이 그를 축하하고 칭송 하는 자리에서 일부 사람들이 그의 면전에서 "이 사람이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겠느냐?"며 면전에서 모욕을 주었을 때 그는 왕으로써의 권리를 행사하지 않고 조롱과 모욕을 감수했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사울의 겸손함과 넓은 도량을 인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른 한 편에서는 하나님 앞에서 이 엄청난 지도자의 사역을 감당해야 한다고 하는 부담감이 더 컸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백성들이 지도자를 뽑았습니다. 투표로 사울이 뽑혔습니다. 외형적으로 보면 사람들이 사울을 뽑은 것이요 제도를 통해서 선택이 되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사무엘상 9: 16절로 돌아가 보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기를 "내일 이 때쯤 베냐민 지파의 한 젊은이가 널 찾아올 터인데, 너는 그에게 기름을 부으라"고 말씀하셨고, 사울이 사환과 함께 자신을 찾아 왔을 때 사무엘은 주저없이 그에게 기름을 부었습니다. 기름부음은 곧 왕을 선택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적 행위였기에 우리는 사울의 선택이 미리 예비하신 하나님의 역사하심이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여러분들은 어떤 기준에 의하여 투표를 하셨습니까? 같은 고향 사람이라고, 같은 정당 사람이라고 투표를 하셨습니까? 지금까지 혹 잘못된 세속적 기준을 가지고 했다면 하나님 앞에 철저하게 회개하고 돌이켜야 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내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그 일에 도구로서 온전히 사용되지 못함에 대한 고백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게 지도자를 선택하는 기회를 주실 때 철저하게 하나님께서 지도자를 세우신다는 신앙고백적 입장에서 주님의 도구를 쓰임 받기를 축원합니다.

이제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신앙고백적인 결론을 얻기 원합니다. 하나님 앞에는 우연이라고 하는 것은 없다라는 사실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도들에게 일어나는 어떠한 일들도 우연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저는 그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작은 일에서도 위대한 의미를 창조하시고, 때때로 우리의 좌절과 실패라고 하는 것에서도 하나님은 우리를 당신의 뜻으로 인도하는 섭리의 발판으로 삼으시는 줄 믿습니다. 이제 우리의 인생을 하나님의 손에 맡기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가 언제든지 먼저 하나님 앞에 하나님의 뜻을 묻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면서 하나님의 자녀로써의 삶을 살아갈 때에 이 땅에 크던지, 작던지 지도자의 선택을 인간이 하는 것 같아도 섭리하시고 계획하시고 주장하시는 하나님의 그 역사를 기억하고 확인하면서 오늘도 우리의 삶, 이 나라 이 민족을 이끌어가시는 하나님 앞에 겸손히 엎드려서 하나님이여, 이 나라를 이 민족을 주님께 맡깁니다. 이 나라 아직도 일천만 기도의 사람이 남아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대적하는 적그리스도 횡행하는 사회이지만, 아직도 순결한 백성들이 남아있지 않습니까? 그것을 보시고 이 나라 이 민족을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육이오때 낙동강 전선만 남고서 공산당에게 온 천지가 점령을 당했을 때, 이제는 낙동강에서 현해탄으로 쓸어버리면 끝장이 난다고 그 긴박한 상황에서 이승만대통령이 라디오로 전 국민에게 호소한 내용이 뭡니까? 전국에 기독교인 여러분, 지금 이 나라가 풍전등화와 같은 위기에 처해 있는데, 살아있는 하나님께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기도해 주세요.

여기서 기도했더니 UN에서도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여기서 기도했더니 안정보장이사회가 연합군을 만들어 16개국이 동참하여 아 나라를 건진 사실이 비로 이 땅에서 기도하는 사람들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의 손길임을 고백하기 원합니다. 그들을 통해서 이 나라를 건지신 줄로 믿습니다.

오늘 우리는 주장하시는 하나님 앞에, 이 세상 역사 앞에 역사를 주관하시고, 민족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앞에 우리가 겸손히 두렵고 떨린 모습으로 온전히 서서 주의 뜻을 이루어 가며 주의 뜻을 언제나 찾아가는 평안의 성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을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자비하신 하나님, 사울을 택하신 일을 통하여 제비 뽑는 손길 위에 함께 하시고 주관하심을 인정하고 고백합니다.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이 나라 이민족을 불쌍히 여기시고 다시금 이 나라가 하나님 앞에 두렵고 떨린 모습으로 설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 사회 속에서 주도권을 갖기에 부끄러움이 없도록 우리의 삶을 주장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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