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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모세 이미지 (민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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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창우 목사 (한남제일교회)

성공하는 사람은 능력도 뛰어나야 하지만 성격도 좋아야 한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카네기 공과대학에서 1만명의 능력있는 학생들에게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기술과 능력이 뛰어난 것과 온유하고 화평해서 성격이 좋은 것을 비교했을 때 어떤 것이 더 필요한가를 물었습니다. 85%의 학생이 성격좋은 사람이 성공할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15%만이 기술과 능력, 두뇌가 명석한 사람이 성공할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미국의 하버드 대학 직업보도부에서 졸업생 가운데 직업을 잃어버린 사람 가운데 삼천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기술부족으로 좇겨난 사람은 거의 없고 성격이 모가 나거나 화평치 못하고 원만하지 못하고 회사의 분위기를 망쳤기 때문에 좇겨난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능력이 중요합니다만, 이에 못지 않게 성격도 중요합니다. 성격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부부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가정의 남편이 사회적으로 대단히 성공한 분입니다. 그러나 그 아내와 자녀는 불만이 많았고 우울증까지 걸렸습니다. 밖에서는 잘하는데 집에서는 왜 잘 못하는가 말입니다. 밖에서 능력있는 남편, 돈도 잘 벌고, 사회적 지위도 있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 합니까? 그러나 이 집에서는 불만이 가득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아내와 자녀들에게 자상하지 못하다고 이야기하는데 이것은 무엇때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 아내가 이혼하기로 작정했다고 합니다.

심리학 이론에 보면 거래분석이론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이론에 의하면 나의 과거가 변하지 않는 것처럼 상대방도 절대 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내가 행복하려면 내가 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맞추어 살라는 것입니다. 제 눈에 안경이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안경이 비싸냐, 싸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맞추어 사는 것입니다. 칭찬하고 격려하고 감사하고 그렇게 살면 되는 것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저널리스트 바바라 윌터라고 하는 여자분이 있습니다. 그 남편도 유명한 기자요, 컴퓨터 전문가인데 이 부부가 이혼을 했습니다. 잘난 여자와 이혼하고 나서 새로운 사람을 찾는다고 광고를 냈습니다. 이 사람 저 사람이 추천을 해서 괜찮은 사람 열명을 골랐습니다. 그리고 그 열명의 조건을 갖고 자기와 잘 맞는 여자를 택했더니 자신과 이혼한 그 부인이 1위였다는 것입니다.

내가 변해야 하는 것입니다. 바꾸려고 하는 것은 잘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 사람 아니면 될 텐데, 그것이 아닙니다. 또 다른 사람에게도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내가 변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당신부터 먼저 변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먼저 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변하면 세상도 변하고 상대방도 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은 바로 그런 것을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모세는 출애굽의 지도자입니다. 바로와 이기고 백성들을 이끌고 40년동안 백성들의 훌륭한 지도자로 가나안땅 앞까지 인도한 사람이 모세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온유함이라고 했습니다. 온유함은 기술도 아니고 능력도 아닙니다. 그것은 성격이 대단히 좋은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온유라고 하는 것에는 몇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① 겸허함입니다.
자신을 낮추는 것입니다. 남의 이야기를 잘 듣고 수용합니다. 잘 받아들입니다.
반대로 남의 말을 잘 듣지 않는 사람은 절대 행복할 수 없습니다. 온유한 사람은 겸허한 사람입니다. 잘 들어주고 그것을 수용해서 자신을 고치려고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② 중용의 의미가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중용에 대해서 ‘대단히 흥분된 경로와 태평무사의 중간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겸허하거나 중용한 것이 온유인데,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런 온유함은 어떻게 가질 수 있겠습니까?

첫째, 온유는 천성이 아닙니다.
모세는 천성이 온유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굉장히 정의로운 사람이었으나 불같은 성격이 있었습니다. 매사에 바르게 하려고 했지만 상처도 많이 받은 사람입니다. 출애굽기 2장에 보면 동족을 괴롭히는 애굽사람과 대신 싸우다가 살인을 합니다. 그는 인권을 중시여겼습니다. 약한 사람을 돕고 특히 동족을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불같은 성격 때문에 사람을 죽여서 40년동안 광야에 좇겨나 살고 맙니다. 이것이 모세의 천성입니다.

출애굽기 32장에 보면 시내산에서 40일 금식기도를 하고 하나님에게서 십계명 돌판을 받아 내려옵니다. 그것이 얼마나 귀합니까? 그러나 이것을 집어 던져서 깨뜨리고 맙니다. 하나님과의 약속을 어긴 이스라엘 백성 때문입니다. 금송아지를 만들어놓고 하나님이라고 제사드리는 모습에 화가 났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지키려는 자세, 하나님의 백성의 정의를 중시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의 십계명 돌판을 깨뜨린 것은 결코 잘한 일이 아닙니다.
민수기20장에 보면 백성들에게 화를 냅니다.
지팡이를 두들깁니다. 백성들이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고 하나님까지 원망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모세는 이러한 백성들의 모습에 화가 났습니다. 애굽에서 인도하시고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을 보호해 주시고, 적군을 물리쳐 주시고, 농사를 짓지 않아도 만나를 주시고 메추라기를 주시고,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로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데 왜 또 불평하느냐 말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너무나도 죄송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이런 사람들을 위해서 이날까지 수고했는가 하는 섭섭함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불평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아무 말씀도 아니 하시고 물을 주라고 하는데 모세가 자신의 감정을 삭이지 못하고 지팡이를 두 번이나 두들깁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모습을 보고 ‘너는 나의 거룩함을 드러내지 못했다’고 하십니다.
자신의 성격을 죽이지 못하고 자기 마음 먹은대로 행동하면 하나님 앞에 거룩함을 드러내지 못하는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이라 하십니까? ‘너는 가나안땅까지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해 냈으나 가나안 땅에는 들어가지 못하리라’, 사명이 끝나는 것입니다. 모세는 굉장히 정의로운 사람이었으나 불같은 성격 때문에 얼마나 많은 손해를 보고 있습니까? 모세는 천성적으로 온유하지 못합니다. 모세는 온유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온유는 성령의 열매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22절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성령의 열매는 성령충만, 성령에 의해서 다스림의 결과로 나타난 것이 온유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람들은 다 온유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를 믿지 않았습니까? 구원받아서 천국백성 되지 않았습니까? 예수를 믿는 즉시, 성령님이 우리 안에 계시는 줄로 믿습니다. 이 성령님의 다스림을 받으면 온유함이 나타난다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너희는 내게 배우라’, 그 예수님의 온유함이 무엇입니까?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철저하게 하나님의 뜻대로 사셨던 주님, 그래서 십자가의 고통까지도 감당하셨던 예수님은 참으로 온유하신 분입니다.

우리는 천성적으로 온유할 수 없습니다. 성령의 충만함, 성령의 다스리심 안에서만 온유하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이 온유라고 하는 말은 잘 길들여 졌다는 뜻이 있습니다. 짐승을 잘 길들입니다. 집에 있는 소도 잘 길들여야 농사도 지을수 있고, 짐도 실어 나르는 것입니다. 서커스에 가게 되면 호랑이, 사자, 곰 등 사나운 맹수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나운 맹수들을 천성적으로 보면 사람 잡아먹고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얼마전 태국에서 한국 관광객이 코끼리에게 밟혀 큰 상처를 입었다고 합니다. 천성이 그렇습니다. 그런데, 조련사에 의해서 사나운 맹수들이 길들여 지는 모습이 바로 온유함입니다.

오늘 우리들은 성령의 다스림을 받아서 성령의 조련에 의해서 온유해 질수 있는 것입니다. 모세에게 그런 온유함이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이런 온유함을 귀하게 여기셨습니다.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에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그에게도 천성이 있습니다. 가끔 불같은 천성이 드러납니다. 그러나 항상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려고 애를 쓰는지 모릅니다. 이 온유함이라고 하는 것은 천성이 아니기 때문에 예수그리스도로 옷 입는 것처럼 온유도 입었다 벗었다 하는 것입니다. 입고 있을 때에는 온유해 집니다. 성령의 다스림을 받을 때에는 온유해 집니다. 그러나, 성령을 멀리하고 내 감정에 충실하다 보면 온유해 질수가 없습니다. 사람은 천성이 그렇습니다.

오늘 성경에 보게 되면 모세의 누이 미리암과 형 아론이 모세를 비방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비방하는 이유인즉, 왜 구스 여자와 결혼했냐 하는 것입니다. 구스는 오늘날의 에디오피아입니다. 에디오피아의 새카만 얼굴을 가진 여자와 왜 결혼했느냐는 것입니다. 구스여자는 당시 낮은 신분의 계층입니다. 노예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과 왜 결혼했느냐, 네가 지도자이면 신분이 있는 사람과 결혼해야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구실입니다. 2절에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느냐 하매 여호와께서 이 말을 들으셨더라’
누나 미리암도 출애굽기15장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선지자입니다. 민수기 2장에 보면 형 아론은 모세와 함께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너만 하나님을 만났고 너만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냐? 나도 그렇다.” 구스여자와 결혼했다는 것을 빌미로 모세의 지도자권을 향해서 반역을 하는 것입니다. 나도 지도자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이야기를 들으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셨지, 미리암이나 아론을 지도자로 세우신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의 부족과 허물을 들추어 내면서 ‘나도 너 못지 않다’고 하나님께 대항하는 것입니다. 미리암이 온유하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생각하면 절대 그럴 수 없는 것입니다.
온유하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들으셨습니다. 미리암은 하나님의 벌을 받아 문둥병자가 되는 것입니다. 온유하지 못하고 자기 기분대로 성격대로 욕심대로 사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다 들으시고 그만한 응분의 댓가를 주신다는 것을 알수 있는 것입니다.

모세는 이러한 사실을 너무나 잘 압니다. 자기의 성격대로 살다가 40년 광야의 생활을 합니다. 낮아지는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40년동안 훈련을 받았어도 천성이 쉽게 고쳐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성령님을 늘 의지하고 살지 않으면 살아갈수 없는 인생임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모세가 어떻게 합니까? 모세는 누나 미리암과 형 아론의 비난에 대해 대항하지 않습니다. 싸우지 않습니다. 그리고 너그럽게 그것을 봐주고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럴수 있습니까? 그럴 수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7절 ‘내 종 모세와는 그렇지 아니하니 그는 내 온 집에 충성함이라’
모세는 하나님에 대해서 충성한 사람이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충성이라고 하는 것은 믿는다, 신뢰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충성이라고 하면 일을 생각합니다. 내가 이사람을 믿지 않으면 일할 수 있습니까? 충성할 수 있습니까? 내가 열심히 일해도 봉급도 안 준다면 충성할 수 있습니까? 충성이라는 말은 믿는다, 신뢰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모세가 성령의 열매인 온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 속에 하나님의 신뢰, 하나님의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것이 모세의 온유의 근거입니다. 예수님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그 속에는 하나님에 대한 충성, 믿음이 있습니다. 내가 죽지만 다시 살려주실 줄 믿습니다. 그것을 보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 장로교의 창시자인 요한 칼빈 선생님은 온유하신 분이었습니다. 스위스 제네바에서 3년동안 제네바 시를 다스렸습니다. 제네바 시를 다스리는 칼빈의 목표의 비전은 제네바를 하나님의 도성으로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거룩함이 있고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축복의 땅이 되어야 겠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강력하게 이 도시를 다스렸는지 모릅니다. 술, 담배, 창녀들을 없이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서 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하는데, 얼마나 강도가 셌던지 어떤 사람은 말 안 듣는다고 불에 태워 죽이는 화형식까지 했습니다. 이것은 칼빈의 생애에 있어서 오점이라고 평가하는 분들도 있습니다만 하나님의 도성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래야만 했다고 하는 것이 칼빈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반대세력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제네바 시의회가 모여서 칼빈을 추방하기로 결의합니다. 그래서 칼빈은 그곳에서 좇겨나게 됩니다. 자기를 추방한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그냥 물러나 다른 곳에 가서 목회를 했었습니다. 그런데, 3년이 지난 어느날 제네바 시에서 다시 와달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제네바 시가 그새 엉망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당신이 와야 이 도시가 살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언제는 좇아보내고, 이제는 다시 오라니 안 갈수도 있습니다.
나를 필요로 한다면 가야지 하고 다시 제네바로 갑니다. 이것이 칼빈의 위대함입니다. 칼빈은 온유한 사람입니다. 온유한 사람은 자기의 사사로운 감정이나 인간적인 격정을 불식하고 주님의 뜻에 조용히 순종하는 충성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온유는 성령의 열매임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이 온유함으로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 온유라고 하는 것은 사람을 살리우는 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성령의 열매로 온유해지면 온유한 자는 당연히 사람을 살리우는 일을 합니다. 그런 사람이 교회에 있으면 교회 살리우는 일을 합니다. 그런 사람이 가정에 있으면 가정 살리우는 일을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살리우셨던 것처럼 살리우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기억하실 것은 정죄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이 들으셨고 하나님이 심판 하실줄로 믿습니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심판도 하나님이 하시고 역사도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보기도를 합니다.

출애굽기32장에도 금송아지를 하나님이라고 섬겨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버림을 받지 않습니까? 그때에도 내 목숨을 가져가는 한이 있어도 이들을 생명책에서 지우지 말아달라고 합니다. 온유한 사람은 살리우는 일에 앞장 섭니다.
오늘 우리 교회에는 이런 그리스도인들이 필요한 시대가 된 것입니다.

우리는 그래야 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성령받아서 온유해 지니까, 초대교회가 어떤 일을 합니까? 사람들이 누구나 할 것 없이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는 일을 합니다. 우리 한국교회가 앞으로 복지하는 일에 더 많은 힘을 써야 합니다. 그 이유는 성령받아서 온유하면 당연히 사람 살리우는 일을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많이 도와 주어야 합니다. 많이 살려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인줄 믿습니다. 예수님도 우리를 향해서 정죄하지 않으셨습니다. 간음하다 현장에 잡힌 여인을 정죄하지 않았습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다시는 가서 죄를 짓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런 분이 예수님이고 이런 분을 따라가는 것이 성도의 마땅한 자세인줄 믿습니다.

오늘은 8.15광복주일입니다. 1945년 8월15일 지금부터 59년전 이 나라가 일본의 식민지에서 해방된 날이 오늘입니다. 자그만치 36년 기나긴 세월 식민지 생활에서 해방되었고,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는 해방이 있을 수 없기에 즐거운 날이요 감사해야 하는 날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종되었던 애굽땅에서 구출받아서 그것이 너무나 기뻐서 유월절 잔치를 일주일동안이나 합니다. 해방의 기쁨이 너무나 크다는 것입니다.
나는 온 세계를 다 알지 못합니다만, 이렇게 해방되고 독립되면 그 날은 축제일로 정해서 공휴일 뿐만 아니라 온 나라가 이 일을 감사하고 축하하고 영광돌리고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지난 59년동안 8.15 해방 광복일의 행사는 어떠했습니까? 과연 온 국민이 온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크신 은혜에 감사영광 찬송 돌리는 일을 했던가 말입니다. 지금 우리의 신문과 잡지와 방송에서는 수년째 친일청산의 문제가 8.15즈음해서 항상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매국노 친일파를 찾아내서 벌을 주자는 것입니다. 이들을 정죄하겠다는 것입니다.

그 일도 틀린 일은 아닙니다만, 저같이 38따라지 이북에서 피난내려와서 고향도 없이 친척도 없이 외롭게만 살아왔던 입장에서는, 왜 공산주의는 청산하지 않습니까? 이 땅에 전쟁을 일으켜 수많은 사람들을 죽게 하고 수많은 사람들을 아픔과 상처 속에서 살게 하는 공산주의는 청산하지 않고 그들과는 통일해야 한다, 도와주어야 한다, 물자와 돈을 보내고 무엇이든지 받아들여야 한다고 하면서, 왜 친일만은 청산해야 한다고 합니까?

모든 것은 공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나라의 모든 일이 정말 공산당이 잘못했더라도 그들을 용서하고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온유하면서 그들을 살려주는 일이라고 한다면 친일청산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나라 팔아먹은 사람을 찾아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독립 운동했던 가족을 찾아서 먹을 것 주고 입을 것 주고 공부시켜 주고 나라위해 희생하니까 이렇게 위해주는구나 하면 나라 위해 목숨 안 바칠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6.25전쟁 때 우리를 위해 싸웠던 선배들이 아직도 있는데 그들이 지금까지 아무런 혜택도 입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민주화 운동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에게는 수억씩 갖다 주고, 이렇게 독립운동, 6.25전쟁을 위해서 애썻던 이들을 애면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나는 해방기념을 이렇게 보내는 나라는 비극이라고 생각합니다. 언제까지 칼질을 하고 정죄를 하고 살아가야 합니까? 그 일은 그일대로 하되 우리는 나라 위해서 정말 애쓰고 수고한 분들을 이런 날 초청해서 상금도 주고, 축하도 해주고, 박수도 쳐 주어야 진정한 이 땅의 해방과 자유의 기쁨이 있지 않겠습니까?

얼마나 수많은 신앙인들이 교회를 지키고 복음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쳤습니까? 순교자들의 자녀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그들을 모셔다가 축하해주고 잔치해 주고 그 모습을 보면서 나도 그렇게 살아야지.
나라의 공무원을 20년만 하면 평생 먹고 살게 나오는데, 나라 위해 목숨 바친 이들을 위해서는 그런 대책이 시원치 않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 아닐수 없습니다. 이 나라가 8.15해방일에 일주일 이상 잔치하고 기쁨을 나누는 그런 광복의 날이 되기를 기원하는 바입니다. 이런 일은 온유한 자를 통해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오늘 이 시대는 온유한 사람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썩어져가는 세상 속에 소금으로 맛을 내고 빛이 되어 이 세상의 어둠을 몰아내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밝히우는 것이 온유한 성도들의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남과 북으로 이념적으로 갈라서 있습니다. 동과 서가 지역적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나이 많은 사람과 젊은 사람이 세대차로 나뉘어 있습니다.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반미와 반김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언제까지나 우리는 분리하는 일만 할 것입니까?

온유한 사람, 사람 살리우는 사람, 용서하고 위로하고 격려해 주는 사람, 나라가 될 때 이 나라의 진정한 소망과 기쁨이 있을 줄로 믿습니다.

이야기 하나 하고 마치겠습니다. 종교 개혁 당시 큰 일군이었던 독일의 루터와 스위스의 쯔빙글리가 서로 다른 견해로 인해서 좋은 일을 하면서도 사이가 나빠졌던 적이 있습니다. 하루는 쯔빙글리가 산에 올라갔다가 이 장면을 보고 하나님 앞에 회개했다는 것입니다. 무엇인가 했더니 이 산으로 가는데 짐승 한 마리 다니기 힘들 정도로 좁은 산길에 자기가 보니 위에서 산 염소 한 마리가 내려오고 아래에서 산염소 한 마리가 내려오는데 둘 다 뿔이 나 있는 수염소 입니다. 둘이 마주쳐서 뿔을 부딪히더니 서로 뒤로 가는 것입니다. 서로 몇 번을 부딪히더니 쏜살같이 달려가는데 아래에서 올라가던 염소가 땅에 바짝 엎드리니까 위에 있는 수염소가 펄쩍 뛰어 가는 것이었습니다.

낮은 자가 올라갈 수 있는 비결은 내가 낮아지는 것입니다. 내 생각, 내 겸손, 내가 갖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온유하심으로만 가능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정치적 논쟁을 안하면 좋겠습니다. 경제적 걱정거리 이야기 안하면 좋겠습니다. 어떠한 상황에 처하든지간에 우리가 온유함으로 남편의 부족함을 채워주고, 아내의 부족함을 채워주고 가정을 살리우고 교회에 온유한 성도가 되어 교회를 살리는 일을 생각하고 충성하고 하나님 앞에서 이 나라를 위해 온유함으로 헌신할 때 이 나라가 하나님이 기뻐하는 축복의 나라, 은혜의 나라가 될줄로 믿습니다.

모세처럼 우리가 주안에서 승리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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