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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심히 좋았더라” (창 1:3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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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명혁 목사 (강변교회)

  “하님은 사랑이시라.” “하님은 사랑이시라.” 사도 요한이 평생 중얼거리며 고백한 말입니다. “His love endures forever.” “His love endures forever.” 다윗이 평생 중얼거리며 고백한 말입니다. “예수님은 사랑이십니다.” “예수님은 사랑이십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평생 중얼거리며 고백한 말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오늘 아침에는 창조세계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설교를 합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천지 만물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느낍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사람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느낍니다. 하나님이 지어서 입히신 가죽 옷을 보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느낍니다. 이것이 오늘 아침 설교의 요점입니다.

  하나님은 자기가 지으신 천지 만물을 바라보시면서 “심히 좋았더라”고 말씀했습니다. 영어로는 it was very good, it was very beautiful 이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심히 좋고 선하고 아름다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자기가 지으신 사람을 바라보시면서 “심히 좋았더라”고 말씀했습니다. 심히 좋고 선하고 아름다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자기가 지어서 입히신 가죽 옷을 보시면서도 “아주 좋았더라”고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창조세계에 하나님의 좋으심과 선하심과 아름다우심과 사랑이 나타나 있습니다. “좋으신 하나님, 선하신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 한번 부르겠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창조계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설교를 합니다.

  첫째 하나님이 지으신 천지 만물 안에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지으신 천지와 만물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영광과 함께 하나님의 사랑을 느낍니다. 영안이 뜨여진 사람은 하늘과 구름과 해와 달과 별들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영광과 함께 하나님의 사랑을 느낍니다. “나는 걸으면서 하늘과 구름을 쳐다보았다. 그때 내 마음 속으로 하나님의 영광스런 엄위와 함께 은혜에 대한 달콤한 느낌이 쏟아져 들어왔는데 그것을 말로 표현하기는 힘들다. 모든 사물 안에 하나님의 영광의 고요함과 은혜의 달콤함이 나타나 보이는듯했다. 해와 달과 별들 안에, 구름과 푸른 하늘 안에, 풀 포기와 꽃들과 나무 안에, 그리고 물들과 모든 자연 안에 하나님의 아름다우심이 나타나 보이는듯했다.” 미국교회의 아버지 요나단 에드워즈의 고백입니다.

  다윗도 하늘과 땅과 하늘의 일월 성신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영광과 함께 하나님의 선하심과 사랑을 깊이 느끼며 노래했습니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시19:1).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을 하늘 위에 두셨나이다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의 베풀어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 발 아래 두셨으니 곧 모든 우양과 들짐승이며 공중의 새와 바다의 어족과 해로에 다니는 것이니이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시8:1-9).  저는 시편 8편을 읽으면서 천지 만물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과 사랑을 다윗이 어쩌면 그렇게도 깊고 넓고 웅장하고 정확하게 묘사했는지를 생각하며 감탄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떻게  창조에 관한 설교를 그렇게 멋지게 쓸 수 있었을 가를 생각하며 다윗의 영성에 감탄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하나님 자신을 위해서 지으셨지만 우리 사람을 위해서도 지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좋고 선하고 아름다운 천지 만물을 우리 사람을 위해서 지으셨고 우리 사람에게 주셨다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 식물이 되리라”(창1:28,29). 식물과 동물과 땅 뿐이 아닙니다. 하늘의 해와 달과 별들도 우리 사람을 위해서 지으셨다고 말씀했습니다. “하늘의 궁창에 광명이 있어 주야를 나뉘게 하라 하시고 또 그 광명으로 하여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이 이루라 하시고”(창14). 사실 하나님에게는 주야나 사시나 일자나 연한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우리 사람을 위하여 주야나 사시나 일자나 연한을 주장하는 일월 성신을 지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늘의 일월 성신을 바라보면서 다윗처럼 이렇게 감탄해야 할 것입니다.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의 베풀어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저는 과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이 만드신 천지 만물의 신비를 제대로 설명을 할 수는 없습니다. 그저 상식적으로 간단간단히 설명해보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첫째 날에 빛과 어두움을 창조하셨다고 했습니다.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창1:5). 빛이 없으면 사람은 살 수가 없습니다. 빛은 생명의 원동력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최근에 과학자들이 발표한 바에 의하면 어두움이 없으면 사람은 쉴 수도 없고 치료를 받을 수도 없다고 했습니다. 빛은 물론 어두움도 사랑의 표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빛과 어두움을 보면서도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느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둘째 날에 하늘과 하늘의 물들을 창조하셨다고 했습니다. 하늘은 우리를 덮어주는 지붕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대기의 지붕이 없으면 사람은 살 수가 없다고 랍니다. 하늘의 물은 우리 사람들과 동식물들의 생명 줄의 역할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늘과 하늘의 물들을 보면서 하나님의 포근한 사랑을 느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셋째 날에 땅과 바다를 창조하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칭하시고 물을 바다라 칭하시니라”(창1:10). 그리고 땅에 각종 풀과 채소와 과목을 자라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과목을 내라 하시매”(창1:11). “모든 채소와 열매 맺는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 식물이 되리라”(창1:29). 땅과 바다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거주지와 생활의 터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다와 산과 들과 산천 초목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세밀한 사랑을 느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넷째 날에 해와 달과 별들을 창조하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두 큰 광명과 또 별들을 만드시고”(창1:16). 해와 달과 별들은 주야와 일자와 사시와 연한과 징조를 주관한다고 했습니다(창1:14). 만약 일월 성신이 없다면 우주는 무질서와 혼돈에 빠져서 사람은 살 수가 없게 될 것입니다. 모세는 후에 이렇게 설교했습니다. “눈을 들어 일월 성신 곧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천하 만민을 위하여 분정하신 것을 보라”(신4:19). 그러므로 우리는 하늘의 해와 달과 별들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신비한 사랑을 느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섯째 날에 바다의 물고기들과 하늘의 각종 새들을 창조하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물에서 번성하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창1:21). 그러므로 우리는 바다의 물고기들과 하늘의 각종 새들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넓은 사랑을 느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섯째 날에 땅의 각종 육축과 기는 것과 짐승을 창조하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육축을 그 종류대로, 기는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창1:25). 그리고 그 동물들을 다스리며 살라고 분부했습니다(창1:28). 바다와 공중과 땅의 모든 동물들은 보기에도 마름다운 존재들이지만 동시에 사람에게 식물로도 주셨습니다. 창세기 1장과 2장에 동물을 식물로 먹으라고 분부하지는 않았지만 아브라함이 송아지를 잡아서 손님을 대접했고 에서가 사냥한 고기로 아버지 이삭을 대접한 것을 보면 사람이 처음부터 동물을 식물로 사용한 것은 분명합니다.

  하나님은 천지와 만물을 사람들을 위해서 지으셨습니다. 사람들에게 주시기 위해서 지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위해서 한 가지를 더 지어주셨습니다. 창2:8을 읽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고.” 하나님께서 사람을 위해서 에덴 동산을 지어주셨습니다. 그곳에는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실과 나무들이 있었고 강과 동산이 있었고 땅 속에는 정금과 호마노가 있었고 아름다운 동물들이 있었고 그리고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인 돕는 배필이 있었습니다.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지극하고 자상하고 풍성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천지와 그 가운데 있는 모든 만물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크고 깊고 넓고 세밀한 사랑을 느끼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노래하고 찬양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자연을 보호하고 지키고 다스리면서 감사하며 행복하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이 지으신 사람 안에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을 흙으로만 만드시지 않고 그 코에 하나님의 신을 불어넣어 만드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창2:7).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서 하나님의 모양대로 창조하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1:26,27). 남자만 그렇게 만드시지 않고 여자도 그렇게 만드셨다고 했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흙으로 사람을 지으신 하나님”을 김혜은 양이 한번 부르겠습니다.

  이 우주 만물 가운데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서 하나님의 모양대로 창조하신 피조물은 사람밖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이것은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지극했음을 말해 주는 대목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바라볼 때 우리가 하나님을 닮은 존귀한 존재인 것을 볼 수 있어야 하고, 다른 사람들을 바라볼 때에도 하나님 닮은 존귀한 존재인 것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야곱이 형 에서를 보면서 하나님을 보는 것 같다고 말한 것은 좀 과장되기는 했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습니다. “내가 형님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사오며”(창33:10). 다윗은 하나님 닮은 인간의 존재를 이렇게 존귀하게 묘사했습니다. “주께서 저를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아니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시8:5). 

  하나님은 사람을 존귀한 존재로 만들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image of God, imago Dei) 이란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 신학자들이 많은 연구를 했습니다. 그 결론은 간단합니다.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존재로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존재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아무리 악하고 못되었어도 그 속에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있고 하나님을 사랑할만한 것이 있고 하나님과 교제할만한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지적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 속에 보이셨느니라”(롬1:19). 그래서 하나님을 떠났던 모든 종류의  죄인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 하나님을 알게 되고 하나님을 믿게 되고 사랑하게 되고 하나님과 교제하기 됩니다. 그 이유는 사람 속에 하나님을 알만한 그 무엇이 있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제할 만한 그 무엇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어떤 신학자는 하나님의 씨앗이라고 말했습니다. 사람 속에는 하나님의 씨앗이 심어져 있습니다. 이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입니다. 

  저는 지난 십 수년 동안 여러 종류의 사람들을 만나고 바라보면서 사람들이 선하게 보이고 불쌍하게 보이고 착하게 보이고 애처롭게 보이고 아름답게 보이는 것을 느낍니다. 탈북자들도 그렇게 보이고 조선족들도 그렇게 보이고 외국인 노동자들도 그렇게 보이고 모슬렘도 그렇게 보이고 심지어는 북한의 공산주의자들도 그렇게 보입니다. 사람들이 불상한 존재로 선한 존재로 아름다운 존재로 보입니다. 어린 아기들과 아이들은 두 말할 것도 없습니다. 너무 착하고 선하고 아름답게 보입니다. 우리 성가대원들도 너무 착하고 선하고 아름답게 보입니다. 사람들 속에 하나님의 씨가 심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형상이 많이 손상된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형상이 완전하게 파괴된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바라보면서 우리 자신 속에 심어주신 하나님의 씨앗을 더듬어 만져보면서 우리 사람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극진한 사랑을 느끼며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우리를 바라보시면서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고 잠잠히 사랑하시며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신다고 말씀했을까요? 우리 속에 하나님의 형상이 나타나 있고 우리 속에 하나님의 씨앗이 심어져 있기 대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복음찬송17장)를 다같이 부르겠습니다.

  셋째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위하여 만들어 입혀주신 가죽 옷에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나 있습니다. 

  창세기3:21을 읽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창세기 3장은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범죄의 사건을 기술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분부하심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 먹었습니다. 죄를 지었습니다. 죄의 값은 사망입니다. 심판과 저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심판을 선언하시면서도 그들에게 긍휼을 베푸셨습니다.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않으시는”(합3:2) 하나님의 사랑을 여기서부터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해산의 고통과 수고의 고통과 죽음의 심판을 선언하시면서도 구원의 서광을 비추어주셨습니다.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양을 잡아서 그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아담과 하와에게 입혀주셨습니다. 가죽옷은 하나님의 사랑의 품을 상징합니다. 죄를 범한 아담과 하와에게 매를 치시면서도 품에 안아주시는 장면입니다. 가죽 옷은 어린 양 되시는 예수님이 자기 몸을 찢어서 만들어 입혀주실 의의 옷을 상징합니다. 박윤선 목사님은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 옷을 지어 입히신 것은 장차 인생들이 구속함을 받아 그리스도를 옷 입듯 하게 될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것이 아담과 하와에게도 적용되었을까요? 그렇습니다. 그것은 아담과 하와에게도 그리고 아브라함에게도 적용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 옷을 지어서 입혀주신 것을 바라보면 하나님의 지극하신 사랑을 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오늘 아침 창조세계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세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 보았습니다. 첫째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에 있는 모든 만물 안에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이 나타나 있음을 보았습니다. 물론 마음이 굳은 사람은 아무것도 보지 못하지요. 둘째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주신 사람 안에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이 나타나 있음을 보았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자기와 같은 폐인 속에도 하나님의 씨앗이 심겨져 있었다는 놀라운 비밀을 발견했지요. 셋째 아담과 하와에게 만들어 입혀주신 가죽 옷에 무한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나 있음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에 흠뻑 빠져서 그 사랑에 붙잡혀서 한 평생을 울면서 살아가고,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지도 받지도 못하고 오히려 못마땅하게 여기면서 한 평생을 불행하게 살아갑니다. 오늘 아침 설교를 들은 여러분은 모두 우주에 가득한 사람의 사랑을 보고 느끼고 받고 감사하고 찬양하면서 살아가는 행복한 사람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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