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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다시 세우시는 하나님 (사 58: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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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곽주환 목사 (구로중앙교회) 

8.15 해방을 맞이한 우리 백성이 다시 주권을 맞이하며 부른 노래가 “흙 다시 만져보자”라는 말로 우리의 마음을 표현했다. 잃어버렸던 땅을 다시 되찾았지만 이미 땅은 얼마나 많이 황폐해 있는지 모른다. 6.25 전쟁 때에 집과 땅을 뒤로 하고 피난을 갔다. 돌아와 보니 집도 황폐해 지는 경우가 얼마나 많았겠는가? 홍수가 나고 태풍이 불면 많은 이재민들이 생긴다. 잠시 동안 집과 집에 있는 물건을 물에 빼앗긴 후에 집으로 돌아왔을 때에 황폐한 터를 밟을 때에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이스라엘 백성도 이러한 과정을 겪었다. 앗수르에 나라를 빼앗기고, 바벨론에 나라를 빼앗기고 뿔뿔이 흩어졌던 백성들이 고향 땅으로 돌아올 때는 좋았지만 이미 황폐해진 땅을 바라보면서 얼마나 많은 절망감 속에 잠겼겠는가? 이러한 백성들을 향하여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라”고 강조해서 희망의 메시지를 선포하셨다.
바로 이 말씀은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이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다시 세우시는 하나님이시다.” 창세기에 나타난 창조의 말씀을 읽어보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역사가 시작된다.

시편 기자의 고백을 들어보라. “주께서 옷을 입음 같이 빛을 입으시며 하늘을 휘장 같이 치시며... 땅에 기초를 놓으사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게 하셨나이다.” 아모스 선지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그의 궁전을 하늘에 세우시며 그 궁창의 기초를 땅에 두시며 바닷물을 불러 지면에 쏟으시는 이니 그 이름은 여호와시니라.” 하나님의 창조하심은 세우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 주셨다.
이렇게 세우시는 하나님의 일은 성전을 세우시면서 더욱 분명하게 나타난다. 성전을 건축하여 세우는 역사도 역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다. “내 아버지 다윗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할 마음이 있었더니 여호와께서 내 아버지 다윗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할 마음이 있으니 이 마음이 네게 있는 것이 좋도다.” 성전을 세우시는 이도 역시 하나님이시다.

지금 우리 교회는 한참 성전 건축이 진행 중에 있는데 이 과정을 통하여 우리는 세우시는 하나님을 체험하기를 바란다. 성전이 지어지는 과정을 통하여서도 우리에게도 새롭게 세워지는 축복이 있기를 바란다.
요즈음에 불황이 오래 되면서 여러 가지 이유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정들이 많다. 대학생들이 등록금이 없어서 휴학하는 학생들도 많이 생긴다고 한다. 자살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반포대교에서 자살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곳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어떤 사람이 반포 대교 다리에 이러한 글을 써서 붙혀 놓았다고 한다.
뛰어 내리기 전에 5분만 더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 마음의 고통이 계속될 것 같아도 1년 동안 가진 않을 겁니다. 하지만 당신의 폐에 물이 들어 찰 때의 고통과 후회는 영원처럼 길게 느껴질 겁니다. 세상이 까마득하고 속이타고 침이 마르고 이렇게 살아봐야 낙이 없을 것 같지요. 모든 것이 무너진 절망감... 저도 정말로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지금의 이 절망감은 어제보다 오늘이 못하기 때문일 겁니다. 가진걸 모두 잃은 상실감 때문일 겁니다. 그럼 오늘보다 내일이 나을 수 있다면 조금더 행복해지지 않을까요? 어차피 다 잃었는데 이제 하나씩 가져나간다면 좀더 행복해지지 않을까요? 포기하지 마세요. 포기할 때 진짜 실패합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던데. 회사가 망하고 10년을 사귄 여자가 떠날 때는 모든게 끝인 것 같더니 그렇지 만도 않네요. 그게 끝이 아니네요. 최소한 이 일 만큼은 제가 선배라 충고드리는 겁니다. 저 역시 한달 전에는 이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힘내세요!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아픔이 있을 때에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다시 세우시는 하나님이시다.” 더 이상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여겨질 때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다시 채워주시는 하나님이시다.” 우리 교회가 지금 한참 교회를 짓고 있는데 사랑하는 성도들의 믿음도 새롭게 세워지고, 삶의 현장에서도 잘되는 일로 세워지는 축복이 있기를 바란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시 세우시는 이유가 무엇인가?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고 있다. “처녀 이스라엘아 내가 다시 너를 세우리니 네가 세움을 입을 것이요 네가 다시 소고를 들고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춤추며 나오리라.” 왜 이렇게 하나님은 다시 세워 주시는가?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네가 눈먼 자들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감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앉은 자를 감방에서 나오게 하리라.”

여기에 바로 하나님께서 다시 세우시는 이유가 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신 것을 이 땅에 나타내 보여야 하는데, 하나님의 백성이 일어나지 못하고 황폐한 데로 그대로 남아 있으면 누가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인정하려 하겠는가? 예수를 잘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실패하고 넘어져서 고통 중에 있기만 한다면 그 모습을 보는 주변의 이웃과 친족들은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하나님이 어디에 계시단 말인가? 네가 믿는 하나님은 죽은 하나님이라고 비아냥 거릴 것이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예수를 모르는 자들에게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드러내기 위해서 다시 세워 주신다.

한 병사가 사막에서 생활하는 어느 수도사를 찾아가 하나님이 자신의 회개를 받아 주실지 물었다. 수도사는 그에게 많은 것을 설명한 후 다음과 같이 물었다. "친구여, 자네는 옷이 찢어졌을 때 그것을 버리는가?” 그 병사가 대답하기를, "아닙니다. 그것을 다시 수선해서 입곤 합니다.” 그러자 늙은 수도사가 그에게 반문한다. "자네가 옷에도 그렇게 신경을 쓰는데 하나님이 자신의 피조물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이지 않으시겠는가?” 여러분은 돈이 찢어지면 그냥 버립니까? 찢어진 부분을 붙여 다시 사용한다. 이것은 돈의 가치 때문이다. 가치 없는 것은 버리고도 아쉬움이 없지만 가치 있는 것은 버리지 않고 어떻게 해서든지 고쳐서 다시 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시 세우시는 이유는 그만큼 우리가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다시 세워서 하나님이 살아 지금도 일하고 계심을 온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게 하려 함이다.
그러면, 좀더 구체적으로 하나님은 어떻게 다시 세우시는가? 본문의 말씀을 보라. “여호와가 너를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모든 것이 황폐한 상황에서도 주변의 상황을 변화시켜 주시기 보다는 우리의 마음을 먼저 잡아 주신다. 우리의 마음을 먼저 세워 주신다.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케 하신다. 풍성한 곳에서만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부족한 곳에서도 만족하게 하신다. 기름진 곳에서만 만족하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메마른 곳에서도 만족하게 하신다.

모든 것을 잃었을 때에 하나님은 먼저 우리의 마음을 붙잡아 주신다. 먼저 우리의 마음에 자족할 수 있는 마음으로 우리를 세워 주신다. 바울이 감옥에 있으면서 빌립보 교회에 편지를 썼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넘어진 자를 다시 세우시는데 하나님은 먼저 자족할 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을 먼저 붙잡아 주신다. 어떤 사람이 사업을 하다가 실패하고 병까지 들어서 병원에 입원하고 퇴원하게 되었다. 너무 고통스러운 시간을 지내고 있는 중에 친구를 만난다. 그 친구는 두 다리를 잃고서 휠체어를 타고 있었다. 사업에 실패한 이 사람이 생각하기를, 만약에 내가 두 다리가 없다면 두 다리를 회복하기 위해서 내가 있는 모든 재산을 다 털어서라도 건강한 다리를 소원하겠지? 그래도 아직 나에게 건강한 두 다리가 남아있으니 하나님께 감사한다.
완전히 잃어버리고 넘어지고 깨어진 것 같지만 다시 세우시는 하나님은 먼저 우리의 마음을 붙잡아 주셔서 자족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신다.

다시 일어서게 하시는 하나님은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라.” 뼈를 견고하게 한다는 말씀이 얼마나 소중한가? 우리의 육신이 강하게 서려면, 우리의 뼈가 튼튼해 지려면 먼저 마음이 평안을 얻고 마음이 기쁨을 얻고, 마음이 용기를 얻을 때에 육신의 뼈도 튼튼해 지게 되어 있다.
다윗이 고통 중에 있을 때에 이렇게 부르짖는다. “내가 근심 때문에 눈과 영혼과 몸이 쇠하였나이다. 내 일생을 슬픔으로 보내며 나의 연수를 탄식으로 보냄이여 내 기력이 나의 죄악 때문에 약하여지며 나의 뼈가 쇠하도소이다.”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지만 다시 세워주시는 주님은 나의 뼈를 견고하게 붙잡아 주신다고 약속하셨다.

다음의 말씀을 보라.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하나님의 계속되는 축복을 의미한다. 시카고에 있는 윌로우크릭 담임하는 빌 하이벨 목사님의 책을 읽어 보면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에 연결되는 통로라는 표현이 있다. 지붕에서 물이 고여있다. 이 물이 흘러 내려가야 하는데 만들어진 통로를 통하여 물이 흐르게 되어 있다. 하나님의 축복이 어디로 흐르겠는가? 기도의 통로를 준비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축복의 물이 흐르지 않겠는가?

다시 세우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다시 세우시는 하나님을 향하여 기도할 때에 하나님의 능력과 축복이 우리에게 임할 줄로 믿는다. 행복은 영어로 happiness라고 하는데 이 단어는 본래 happen, '우연히 발생하다'라는 뜻의 동사에서 나왔다. 그렇다면 우리들의 인생 목표가 우연하게 일이 잘되고, 우연하게 돈이 벌리고 우연하게 성공하는 것이 되어야겠는가? 산상수훈에서 복은 happiness가 아니라, blessing이라는 단어를 들어 말하고 있다. Blessing이란 단어는 본래 bleed, '피를 흘리다'라는 단어에서 나왔으며, 고대 앵글로색슨족은 피의 제사를 통해서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맺는 것을 축복으로 간주했다. 바로 축복이라는 것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는 것이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유지할 때에 계속되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다. 다시 세우시는 하나님은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사랑하는 성도여!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다시 세우시는 하나님이시다. 그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을 때에 하나님은 우리를 다시 세워 주신다. 우리에게 자족할 수 있도록 마음을 붙잡아 주시고, 마른 뼈를 견고케 하여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주신다. 그리고 우리에게 축복의 문을 열어 주실 줄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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