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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무엇을 요구하시더냐? (신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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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세종 목사 (울산소망교회) 

할렐루야!
여름휴가 잘 보내셨습니까?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만나 뵈니까 행복합니다.
오늘은 신10:12-13의 말씀으로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더냐?"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눌 때 우리를 위해 예비해 놓으신 하나님의 크신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학생부 수련회를 끝으로 2004년도 여름 수련회를 잘 마쳤습니다.
고쳐야할 점. 보완해야 될 부분들을 잘 기록으로 남겨서 올 겨울 동계 수련회 때에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수련회 준비 자료로 사용되게 될 것입니다.
아동부 여름 여름성경학교
청년부 수련회
학생부 연합수련회 그리고
교우들 여름 휴가에 이르기까지 모든 부서에서 정성을 다해 수고와 헌신을 아끼지 않으신 교사들과 선교회원 여러분 모두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면서 이 수고와 헌신 위에 우리 당대에도 잘되고 우리 후손들 시대에는 수많은 축복의 열매가 맺히고 하나님 앞에서는 그날 잘했다 칭찬 받으면서 면류관을 받아쓰시고 서로를 위해 축복해 주는 멋있는 삶의 시작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 서로를 바라보며 축복의 인사를 나눕시다. 축복합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는 축복의 통로
당신을 통하여서 열방이 주께 돌아오게 되리

이번 수련회를 통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고 계신 것일까요?
또 이번 수련회를 통해서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앞에서는 그날까지 무엇을 준비해야 합니까?

첫 번째로>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우리들이 반드시 준비해야 할 것은 하나님 말씀 앞에서 예하고 아멘 하는 믿음입니다.
언제까지 하나님의 말씀에 예하고 아멘 해야 합니까?
신 17:18에서는 항상 옆에 두고 읽으라고 하였습니다.
신 12:32, 4:2에서는 이 말씀에서 한 획이나 한 점이라도 가감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모든 질병과 재앙을 물리쳐서 멸망시켜 주신다 하였고 신 7:15에서는 "질병에서 우리를 멀리하게 해주시며 너와 네 후손이 영영히 복을 누릴 것이라고 신 12:28에서 약속하여 주셨습니다.
신 17:20에서는 그냥 지키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왕위를 지켜 주시며 장구케 하여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왜 우리는 이런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예, 아멘 하지 않는 것일까요?
심지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으면 모두 저주가 네게 임한다고 하셨는데도 왜 우리는 예 그리고 아멘 하지 못하는 것입니까? 또 반대로 이 말씀을 지키면 만사가 형통해 진다. (신 28:9)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아닙니다.
신 30:11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명령은 너에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먼데 있는 것도 아니라"
어려운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내 멍에는 쉽고 가볍다"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왜! 왜 예! 아멘 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왜 못하냐고 묻기보다는 어떻게 해야 예! 아멘 할 수 있을까요?
사실 "쉽다" "가볍다"라고 말씀하셨던 예수님 조차도 십자가를 지라 백성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라 하신 하나님의 말씀 앞에 결코 쉽게 예! 아멘 하지 못하셨습니다.
쉬운 것이 아니라 아예! 십자가를 지기 싫습니다! 라고 밤을 새우시며 떼를 쓰셨는데 얼마나 얼마나 떼를 쓰셨는지 이마에 흐르는 땀방울이 핏방울로 뒤범벅이 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무엇이었나요?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다시 말하면 예! 아멘 하셨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예! 하기가 쉽지 않죠
아멘 하기가 어렵조
싫다고 떼를 쓰고 싶죠 거부하고도 싶죠
그러나 떼를 쓰더라도 기도하면서 고집을 부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라는데 어떻게 기쁘게 아멘 할 수 있습니까? 네가 가진 모든 재물을 다 바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오라는데 어떻게 스텝 밟는 마음으로 가볍게 따라갈 수 있습니까?
오죽하면 "무거운 짐을 나 홀로 지고 견디다 못해 꼬꾸라질 때"라고 부르겠습니까?

이스라엘 민족은 46년 동안이나 광야에서 텐트를 치고 살았습니다.
지난번 미국 랑카스타에 있는 성막을 소개하는 곳에 가보니까 46년 동안 약 30번 정도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움직였다고 하더군요
텐트 치고 사는 것도 휴가 기간 몇 박 몇 일이지 4주도 아니고 4개월도 아니고 4년도 아니고 자그만치 46년 동안 텐트에서 생활한다. 여러분 지금부터 46년 동안이다 라고 한다면 우리 중에 몇 사람이나 예! 아멘! 할 수 있습니까?
기도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라는 것입니다.

기도하라 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그 어마어마한 축복을 기억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신 8:2에서도 "기억하라" 18절에서도 기억하라고 계속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셨던 예수님도 무엇을 기억하셨을까요?
아마! 예수님께서 본래 계셨던 그 자리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그 자리를 기억하셨을 것입니다.
예하고 아멘 하는 것이 결코 쉬운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기도하면서 살면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축복이 기억이 나므로 쉽지 않은데도 예, 아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시 119:147에서는 "내가 새벽부터 부르짖어 기도하나이다"라고 하였고
사도바울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가르쳤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아멘 할 수 있는 힘은 기도를 통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예! 아멘! 하셔서 말씀대로 성취되는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입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 하나님을 기도로서 기억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법도나 규례가 기뻐하고 즐거워지므로 예! 아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무엇을 준비해야 합니까?
첫째> 하나님의 말씀에 예, 아멘 이고
둘째> 그러기 위해 기도하는 삶으로 이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저희에게 종교 철학을 가르쳐 주신 선생님 댁에서 1주일 동안 도와드리면서 같이 지낸 적이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기도의 삶을 굉장히 강조하셨던 선생님이셨는데 사모님께서 돌아가신 다음 혼자 사셨기 때문에 밥도 준비하고 빨래도 해드리면서 한 주간을 지내면서 선생님의 삶의 모습을 보며 닮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죠.
정말 선생님은 삶 전체가 기도하는 삶이셨어요 아침에 일어나셔서 저녁에 주무실 때까지 심지어 화장실에 문을 열고 들어가시는데도 신발을 신으시면서도 현관문을 열고 나가시면서도 그럴 때면 아주 잠깐이지마는 머리를 숙이시고 기도하시면서 행동을 취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린 하루의 삶을 어떻게 지내고 있습니까?
어떤 교회의 여전도사님의 기도 제목이 하나 있었어요.
주여! 기도하다가 내 영혼을 거두어 가 주시옵소서 하루는 새벽 기도 시간에 평상시처럼 무릎을 꿇으시고 엎드리셨는데 아! 일어나시지를 않더라는 거예요.
전도사님! 하고 부르는데도 대답이 없으시더라죠.
그래서 손으로 흔들면서 전도사님하고 부르는데 그 모습이 그 전도사님의 마지막 모습이었다는 겁니다.

잊지 마세요!
왜 기도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예하고 아멘 하기 위하여 기도하는 것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의지를 확고하게 다지려는 것은 기도가 아니예요!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예! 하고 아멘 하도록 나를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변화시키는 능력이 바로 기도의 힘에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여름 휴가도 이제 지나갔습니다.
무슨 재미로 사시렵니까?
기도하는 즐거움으로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 예! 아멘 하시므로 말씀에 약속하신 기적과 능력을 나타내시면서 사시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로> 찬양하며 사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시 119:164에서는 "하루에 7번씩 찬양을 하나이다"하였습니다.
또 시 126:2에서는 "우리의 혀에는 찬양이 가득찼도다"하였습니다.
"항상 기도하며 종일토록 찬송하리로다"라고 시 72:15에서 고백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요즘 찬양은 너무나도 흥미 위주의 찬송이 많은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찬미하기보다는 사람의 감정만을 자극하는 혼에 속한 것이 너무 많은 것처럼 들립니다.
찬양은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찬양은 나를 기쁘게 하는 행위가 아니예요. 찬양은 하나님이 기뻐하실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발표회입니다.
시편에 보면 「여호와를 찬양하라」
「하나님의 하신 일을 찬양하라」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찬양하라」
「찬송 받으실 하나님을 찬양하라」
「하나님에게 극진히 찬송하라」
「하나님의 하신 일을 찬송할찌어다」
「모든 백성들아 하나님을 찬미하라」
시편에 기록된 모든 말씀! 그 어디를 찾아봐도 다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찬송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향하신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크고 크도다 크시도다 크고 크도다 크시도다"

언제 찬송해야 합니까?
종일토록 찬송해야 합니다.
어떻게 찬송을 불러야 합니까?
극진하게!
악기를 울리면서!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이 모습을 보면 어떤 교회가 기억나십니까?
소망교회라고 꼭 집어 말하지 않아도 아마 다 아실 것입니다.
왜 찬양해야 합니까?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받으시는 가장 아름다운 제사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아름답고 가장 향기로운 제사이기 때문에 찬양과 경배로 하나님께 제사 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아세요.
"찬양이 언제나 넘치면 은혜로 얼굴이 환해요"
여러분은 매주 저녁 성도들의 뒷모습만을 보시기 때문에 잘 모르시지만 이 앞에서 찬양을 인도하면 천사의 얼굴을 매주 볼 수 있답니다.

신 11:26에 보면 "너희 앞에는 복과 저주가 있다"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복을 몇 가지로 구분해 보면
첫째> 신 28:8에서는 꾸어줄지언정 꾸러 다니지 않는 복을 주신다 하였습니다.
둘째> 요삼 2절에서는 "잘되는 복" 다같이 "잘된다"
셋째> 신 2:7과 시 23편에서는 "부족함이 없는 복"을 주신다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다른 행동을 하면 저주를 받는다 어떤 저주?
신 11:27-28입니다.
"너희가 만일 너희에게 명하는 떠나 지키지 않으면 여호와께서 너를 치시리니 마침과 눈멂과 경심증으로 차시리라"

"네 자녀를 다른 민족에게 빼앗기고
내 소산과 네 수로로 얻은 것을 다른 민족이 먹겠고
너는 항상 압제와 학대만을 받으리라"

"네가 만일 여호와 하나님 외에 다른 신들을 섬기면 네가 주리고 헐벗고 목마르고 모든 것이 핍절한 중에서 너를 치는 대적을 섬기게 되며, 철 멍에가 내 목에 매어져 필경 너를 멸할 것이라" 하였습니다.

자! 복과 저주가 우리 앞에 놓여져 있습니다.
무엇을 선택하시렵니까?
무엇으로 준비하시렵니까?
우린 하나님의 말씀 앞에 예와 아멘 할 수 있게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고 밤하늘의 별처럼 빛나게 하시는 전도의 모습으로 준비하시면서 하나님의 복을 선택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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