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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리스도인은 성령을 받은 사람입니다.(롬 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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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덕재 목사 (빛과소금의교회)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않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니라”  - 로마서 8장 9절 -

예) 핵심이 빠진 것

로마서 8장 9절이 가리켜 주는 멧세지는 명확합니다. 그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는 사람이 영에 속한 사람이고 그리스도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그 안에 그리스도의 영, 성령이 없으면 말짱 헛것이다, 아무 것도 아니다는 선언입니다. 즉 그리스도인은 성령을 받은 사람이고 거꾸로 성령을 받은 사람이어야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러면 당신은 성령을 받았습니까?

오순절 제자들의 체험처럼,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보이고 갑자기 배우지도 않았던 다른 방언(=외국어)으로 말하게 되는 현상이 성령을 받는 모든 사람에게 반드시 나타나는 것이라면, 내가 성령을 받은 사람인지 그렇지 않은 사람인지 쉽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유감스럽게도, 사람이 어떻게 성령을 받느냐, 성령을 받는 것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사실은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바람부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요3장에서 니고데모와의 대화 가운데 가르쳐 주셨습니다. 즉 바람이 어디서 시작해서 어디로 가는 지 알 수 없듯이, 사람이 어떻게 성령을 받는지 그 과정은 인간이 인지(認知)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사람이 성령을 받았는지, 그렇지 않은지 즉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인지 그렇지 않은지는, 바람이 불고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있듯이, 명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어떻게 압니까? 그 증거를 통해서 압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은 반드시 그 증거들이 나타납니다. 어떤 증거들이 나타납니까?

현대의 일부 교회들에서 체험을 근거로 하여, 성령을 받은 증거를 방언이라고 가르치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이 그렇게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이지만, 방언을 하지 않는 사람도 많고 도리어 방언을 해도 성령이 없는 사람도 많습니다. 성령을 받는 것과 성령의 많은 은사 중의 하나인 방언을 하는 것은 별개의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 안에 그리스도의 영, 성령이 계시는 증거는 무엇입니까? 성령이 그 안에 계시면, 당연히 다른 증거가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계시는 증거가 나타납니다.

예) 적과의 동침 - 왜 영화 중에 병적으로 결벽증인 남편과 아내의 이야기를 다룬 것이 있지요? 여자가 이런 결벽증인 남자와는 도저히 못살겠다 하여 도망갑니다. 어느날 남편이 자기 집에 왔다간 것같은 여자의 직감이 왔습니다. 그러자 싱크대 서랍을 열어 봅니다. 양념통들이 가지런히, 그 안에 포크와 나이프가 가지런히 정열되어 있는 모습을 확인하고 이 여자는 남편이 왔다갔음을 압니다.

밀가루 반죽에 팥가루를 넣으면 자주빛을 띠기 마련이고 고춧가루를 넣으면 빨간빛을 띠기 마련이고 녹즙을 넣으면 초록색을 띠기 마련입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도 당연히 성령님의 특징이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그러면 성령님은 어떤 특징이 있습니까? 성령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성령님이 어떤 분이신가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성령님의 본질에 대하여 가르쳐 준 요한복음 14-16장이 중요합니다. 그 가운데 다음의 세 가지 특징은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첫째로, 성령님은 진리의 영이십니다. “저는 진리의 영이라”<요14:17>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요16:13>처럼 성령님은 진리의 영이십니다. 진리를 깨우치시고 진리를 깨닫게 하시고 우리 마음에 진리를 좋아하도록 감동하시고 진리로 인도하는 영이십니다.

당연히 성령, 진리의 영을 받은 사람의 마음은 진리의 영이 그 마음을 주장하여서 그 마음에 거짓, 궤계를 미워하게 되고 진리를 사랑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오늘의 인간에게 객관적 진리로 주신 선물이 성경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받은 사람은 당연히 성경의 진리를 좋아하고 사랑합니다. 성경의 진리를 무시하고 더 나아가 성경의 진리를 거스리면서, 성령께서 행하셨다느니, 성령께서 인도하셨다고 여기거나 말하는 것은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에 대한 모독입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의 특징, 진리를 사랑하고 진리를 따릅니다. 이기적 욕망과 호기심을 자극하는 흥미만을 추구하지 않고 참된 것에 대한 갈망이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강해집니다.

둘째로, 성령님은 보혜사(保惠師), 위로의 영이십니다<요14:16,26>. <요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요14:16>은 보혜사 성령께서 오시는 것은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하여 주시기 위함임을 가르쳐 줍니다. 또 <요14:26> 말씀은 이렇습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보혜사, 문자 그대로 하면, 은혜를 보장해 주시는 선생님이라는 뜻입니다. 우리 마음이 예수님의 은혜 가운데 거하도록 붙들어 주시고 위로해 주시고 어루만져 주시는 좋은 스승님이시라는 뜻입니다.

예) 산속에 사는 스승을 찾아가듯이....

그러면, 보혜사 성령님이 우리와 함께 하셔서 무엇을 하십니까? 우리를 가르치시고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십니다. 예수님의 어떤 말씀을 생각나게 하십니까?

<요14:26> 말씀 다음, <27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어떤 말씀을 하셨습니까? <요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위로의 성령님께서 예수님의 이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고 가르쳐 주십니다. 세상에 성도로 살아가고자 할 때에 얼마나 속상한 일이 많습니까? 그냥 살아갈 때에도 마음 상하는 일이 많지만,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을 따라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가려고 하면, 사실은 속상한 일, 마음 상하는 일이 더 많습니다.

마음이 상하는 것, 상처라고 하지요? 상처가 풀어지지 않고 쌓이고 쌓이면, 성격이 구겨져서 성격장애가 됩니다. 예수님 따라서 참되게 살아보고자 했는데, 속상한 일을 더 많이 겪어서 성격장애가 되면 안 되지요? 하나님은 우리의 그런 사정을 아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똘만이로 생활하면서 마음 상하고 속 상하는 일 겪을 때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께서 무엇을 해 주십니까? 위로해 주십니다. 다가와 잔잔히 말씀하시며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며 “그것은 이런 것이다” 가르쳐 주시며 어루만져 주시며, 예수님이 약속하신 평안을 누리게 하십니다.

세상에 성도로서 살아갈 때에 마음 상하는 일이 더 많지만, 그러나 그 모든 것을 넉넉히 이기게 하시고 치유하시고 붙들어 주시는 위로하시는 성령님이 계시기에, 성도는 근심하지 않고 염려하지 않고 환난 가운데서도 항상 감사하며 기뻐하며 담대함을 잃지 않고 살아갑니다.

성령님이 이렇게 보혜사, 위로하시는 성령님이시기에, 성령을 모신 사람들의 한 특징이 밴댕이 속처럼 쉽게 삐지지 않는 것, 쉽게 낙심하지 않는 것입니다. 쉽게 시험에 들지 않습니다. 쓴뿌리에 연연하고, 용서하지 못하여 두고두고 마음이 꼬집혀 있고, 한이 맺혀서 성격이 구겨지고, 얼굴이 찌그러지고 그러지 않습니다.

성령님의 위로를 경험하기에 많은 환난 가운데서도 부드러운 마음, 온유한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예) 벳시 텐 붐 - 하나님의 사랑이 미치지 못할만큼 깊은 지옥은 없다.

성령님을 모신 사람은 위로하시는 성령님의 은혜를 경험하며 살아갑니다. 여러분도 이 은혜를 경험하며 살아가십니까?

셋째로, 성령님은 문자 그대로 성(聖), 령(靈), 거룩한 영입니다<요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오늘날의 교인들이 성령님에 대하여 오해하는 것이 성령을 능력의 영으로만 치우쳐 생각하는 것같습니다. 더 나아가 능력의 영은 다 성령인 줄 착각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물론 성령께서 능력을 행하십니다. 그러나 모든 능력이 다 성령의 역사는 아닙니다. 또 능력을 행하시는 것이 성령의 본질도 아닙니다.

성령은 성령입니다. 거룩한 영입니다. 거룩함을 무시하고 성령님의 역사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이다 운운하는 사람은 성령님을 사실은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당연히 성령님을 모신 사람은 거룩함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죄와 악을 미워하고 바른 마음, 바른 관계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성령을 모신 사람은 세속적인 것을 물리치고 하나님의 것을 추구하는 거룩한 열망이 그 안에 있습니다.

성령님은 이렇게 진리의 영, 위로의 영, 거룩한 영이십니다. 당연히 성령님을 모신 사람은 진리의 영, 위로의 영, 거룩의 영이 계신 증거들이 나타납니다.

여러분에게도 이런 증거들이 있습니까? 여러분 마음에 진리를 사랑하는 열망이 자라고 있습니까? 여러분 마음에 위로하시는 성령님을 더욱 더 경험하십니까? 그리고 거룩하게 살고자 하는 열망이 더욱 더 커가고 계시는지요? 성령을 받은 사람은 이렇게 영적인 것을 추구하는 열망으로 그 특징이 나타납니다.

그러면 사람은 어떻게 성령을 받을 수 있습니까? 저 뿌리에서부터 거슬러 올라가면, 사람이 사람이 된 것은 하나님께서 그 코에 숨을 불어 넣으셔서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영을 주셔서 사람이 되었는데, 그 영적인 존재가 하나님을 거역함으로 하나님의 사랑의 창조목적에서 빗나가게 되었고 결국 죽을 수 밖에 없는, 타락한 영혼이 된 것입니다.

그 타락한 영혼으로는 인간답게, 하나님의 뜻하시는 선한 모습, 아름다운 모습으로 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죄인된 인간을 새롭게, 아름답게 하시는 당신의 사랑을 약속하실 때,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겔36:26>

새 마음을, 새 영을 주신다고 합니다. 이전의 타락한 영으로서는 죄와 사망의 굴레를 벗을 수 밖에 없었지만,  하나님의 자녀로서 아름다운 사람으로 살아가도록, 새 마음과 새 영을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처음 인간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숨을 나누어 주셔서 아담, 사람이 되게 하셨듯이, 이제는 성령을 불어 넣으셔서, 성령께서 들어오셔서, 마지막 아담의 후예들,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게 하십니다.

이렇게 성령께서 죄인된 인간의 마음에 들어올 수 있도록, 가로막고 있던 죄의 장애물을 해결한 사건이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예수님의 희생이 성령께서 인간의 마음에 들어올 수 있는 길을 만드셨습니다. 새 마음과 새 영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생명의 약속을 예수님께서 이루신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는 어떻게 성령을 받을 수 있습니까?

성경에 명확하게 나와 있는 한 말씀, 이 말씀 기억하십시오. <행2:38>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회개하고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그 믿음의 마음으로 침례를 통하여 공개적으로 고백한 사람이 성령을 선물로 받습니다.

회개와 믿음이 성령을 받는 우리의 응답입니다. 종교적 열심이, 마구 떼쓰는 기도가 성령을 받게 하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고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음에 성령께서 임하십니다.

회개가 무엇입니까? 마음의 태도, 생각을 바꾸는 것입니다. 사람이 얼마나 이기적입니까? 그리고 사람이 얼마나 못됐습니까? 그래서 심지어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도 다들 자기 마음대로, 자기 기분대로 하려고 하지요?

그 자기 중심적 마음과 태도, 이기적인 지독히도 이기적인 나의 모습을 인정하는 것에서 회개는 시작됩니다. 모든 사람이 참 성실하고 한결같은 영역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자기 자신의 행복과 이익을 위하는 마음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한결같습니다.

그렇게 나의 행복과 나의 이익의 방향만 추구하던 그 방향을 돌이켜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예수님을 배우고 따라서 “하나님 사랑하고 이웃 사랑하는” 삶으로의 방향전환이 회개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전 것은 문제 삼지 않으십니다. 어떻게 죄를 지었든, 얼마나 큰 죄를 지었든, 하나님께서 그것을 문제삼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옆에 달려서 죽어가는 강도, 막판에 회개한 강도를 보십시오. 그가 어떻게 강도짓을 했고 얼마나 많이 했고 사람은 몇 명이나 죽였고 이런 것은 예수님께서 묻지도 않으십니다. 심지어 왜 그랬느냐도 묻지 않으십니다.

또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혀온 여인에게 대하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그의 과거를 들춰내는 아무런 시도도 하지 않으십니다. 이 “너 왜 그랬니?” 묻지도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강도에게나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혀온 여인에게나 오늘 우리에게나 문제 삼으시는 것은 과연 돌이킬 의사가 있느냐입니다. 강도처럼 돌이킬 기회가 박탈당한 경우에도 돌이켜 회개할 마음이 있느냐 그 한 가지 마음을 주목하여 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에게도 이전 것은 어떤 모습일지라도 문제삼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은 과연 당신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따르느냐입니다. 당신의 마음이 이기적인 상태에서 돌이켜 예수님을 배우고 따르고 싶느냐입니다.

일주일에 한번씩 꼬박꼬박 예배당에 출석 잘 하고 있느냐가 아닙니다. 당신의 인생의 목적이 바뀌었느냐입니다. 나의 만족과 행복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와의를 구하는 것으로 바뀌었느냐가 중요합니다.

당신이 얼마나 큰 성취를 하였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어느 방향을 향하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성령님은, 회개하고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따르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선물로서 오십니다. 진리의 영으로서, 위로의 영으로서, 그리고 거룩의 영으로서 그 마음에 임재하시고 내주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성령님을 선물로 받아 그 마음에 모신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은 성령을 받으셨습니까?
여러분은 회개하고 예수님을 주님으로 받아들이셨습니까?
오늘도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며 그분을 배우며 따르고 계십니까?

회개하고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이제는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나는 죽고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심을, 침례를 받음으로 공개적으로 고백한 마음에는 성령님이 계십니다.

회개하고 오늘도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따르는 사람은, 성령께서 내 안에 계신 증거들, 진리의 영, 위로의 영, 성령이 내 안에 있음을 거듭거듭 확인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성령님이 믿는 자의 마음에 들어오셨을 때, 성령님은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성령님은 일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신자들 마음 안에서 가만히 계시지 않습니다.

성령임은 믿는 우리를 적극적으로 인도하고,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며, 우리에게 은사를 베풀어 주십니다.

하나님이 선한 목자되어 주심을, 하나님께서 우리의 최선의 삶, 아름다운 삶, 사랑하는 삶으로 인도하심을 성령께서 실현시켜 주십니다.

가진 것없는 우리로 세상을 이기며 진리를 따라, 거룩함을 추구하며 살아갈 능력을 성령께서 베풀어 주십니다.

연약한 우리로 낙심하지 않고, 근심하지 않고 기쁨과 감사, 평안과 담대함으로 살아가는 생명의 능력을 베풀어 주시며, 다른 사람을 사랑하도록, 공동체의 유익을 위하여, 잘 섬기도록 성령께서는 은사를 베풀어 주십니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이 삶이 신나는 삶, 아니겠습니까? 혼돈의 세상에서 진리로 인도하시는 성령님을 따르는 삶/

쉴 곳 없는 세상에서 우리와 항상 함께 계셔서 우리를 넉넉히 위로해 주심을 누리는 삶/

거룩과 사랑의 아름다운 삶, 당당한 삶을 살도록 넉넉히 능력과 은사를 베풀어 주시는 성령님과 동행하는 삶이

진정으로 신나는 삶이고 아름다운 삶이지 않습니까?

당신은 이 삶을 맛보셨습니까?

당신은 이 성령을 모시고 사는, 성령님과 동행하는 생명의 삶에 오늘부터 함께 하시지 않겠습니까?

적당히, 대충 신앙생활하는 마음에서 회개하고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으십시오. 내 생각과 판단, 느낌에 따라서 나의 명철을 의지하며 살았던 마음에서 돌이켜 정직하게 예수님을 배우고 따르는 삶에 헌신하십시오.

그리고 당신의 진실한 회개와 믿음의 마음을 침례를 통하여 당당하게 고백하십시오.

“이제는 내 맘대로의 마음과 삶에서 돌이켜 예수님의 뜻을 배우며 따르겠습니다. 성령님께서 제 안에 들어오셔서 저를 인도해 주십시오.” 생애 최고의 아름다운 결단을 드려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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