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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장 큰 환난 (마 24: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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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정필도 목사 (수영로교회)

본문 :

15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16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17 지붕 위에 있는 자는 집안에 있는 물건을 가지러 내려가지 말며 18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지어다 19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20 너희의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 21 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22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할 것이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마태복음 24:15-22)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환난과 시험이 많은 세상입니다. 그러나 인류역사를 되돌아보면 환난은 늘 있었고 어려움은 늘 있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세월이 갈수록 더 심해진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로는 그저 죄악이 그만큼 관영하기 때문입니다. 너무 도덕적으로 타락할수록 죄악이 더 심해지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창세부터 지금까지 없었던 그런 환난이 온다고 말씀합니다. 환난이 오면 살아남을 사람이 없으므로 택하신 백성들에게는 감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생각만으로도 떨리지 않습니까? 얼마나 큰 환난이기에 구원 얻을 육체가 하나도 없다고 하십니까!

  그러나 저와 여러분들은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이유는 환난을 주장하시는 분이 우리의 아버지이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은 완전하시고 전지전능하셔서 실수하시지 않으므로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또 다른 이유는 하나님이 이 환난을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 만든 것이므로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성경에는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서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말씀하십니다. 예를 들면 엘리 제사장 같은 사람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특별한 경우입니다. 이스라엘 왕들, 우상 숭배하는 그런 왕들에게 하나님은 심판을 미리 경고하십니다. 개인에게 하나님은 수난에 대해서 미리 말씀하지 않으시지만 이 세상에 올 환난에 대해서는 아주 구체적으로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므로 우리에게 유익이 더 큰 것입니다. 이것을 앎으로써 우리에게 유익이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환난을 주는 것은 아무도 멸망치 않고 구원 얻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첫 번째 이유로는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 3:9)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아무도 멸망치 않고 구원 얻기를 원하시는 그런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어떤 나쁜 목적으로 큰 환난을 준비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행하시는 것은 모두 목적이 선합니다. 하나님은 좋으시고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환난을 당하면 환난 가운데 고생하면서 겸손해지기도 합니다. 고생 중에 인심이 좋아지고 끈기가 생겨서 웬만한 고생은 넘어가는 끈기가 생깁니다. 그리고 환난 가운데 회개하면서 좋은 사람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정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점점 악해지고 강퍅해져서 더 못된 짓을 하는 그런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도 아주 큰 환난을 당하게 되면 결국 하나님 앞에 무릎 꿇는 경우가 있습니다. 큰 환난을 통해서 이런 강퍅한 사람들이 주님 앞에 돌아오게 되는 목적을 가지신 것입니다.
  므낫세 같이 우상 숭배를 심하게 하고 죄를 많이 지은 왕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몇 번의 경고 후에 앗수르가 쳐들어와서 그를 쇠사슬로 끌고 갈 때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무릎을 꿇고 하나님을 인정합니다. 하나님은 너무 사랑이 많으셔서 이런 사람이 이렇게 엎드리면 용서해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아무리 악하고 죄가 많아도 하나님 앞에 진심으로 회개하고 부르짖으면 살길을 열어주십니다.

[우리에게 환난을 주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정결케 하기 위해서입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정결케 하기 위해서입니다. 택함 받은 백성들은 믿음이 있는데 이들의 특징은 환난이 오면 하나님을 찾고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너무 큰 환난이 오면 더 간절하게 기도합니다. 그러다가 정결케 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만이 유대인들을 다 죽이려고 결심했을 때 에스더는 죽을 각오로 기도를 합니다. 옷을 찢고 금식하고 애통하며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전국의 유대인들이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결국 하만이 대신 죽게 되는 것을 우리는 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찾게 되면 민족 전체가 정결해지는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우리나라도 6.25전쟁 때 부산만 조금 남게 됐을 때 이승만 대통령이 목사님들에게 부탁했습니다. 그래서 초량교회에서 목사님들과 성도님들이 부르짖기 시작했습니다. 작은 예배당이어서 그렇게 많은 숫자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기도를 통해서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는 것을 봅니다. 극적으로 우리나라가 적화되지 않고 살아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기회로 하나님의 백성을 정결케 하시는 것입니다.

  성도들을 더럽게 만드는 것은 우리 마음속의 욕심입니다. 야고보서 말씀처럼 욕심이 죄를 낳고 사망을 낳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속에 탐심과 탐욕을 조심해야 합니다. 특별히 돈을 많이 벌어 잘 살자는 생각은 아주 잘못된 것입니다. 그렇게 마음먹는 순간 사단과 손잡는 것입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은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고 했습니다. 솔로몬은 왕이 되고 너무 잘 살 때 ‘어떻게 하면 내 육신이 쾌락을 누리며 살꼬?’ 하는 욕심을 가졌습니다. 이것은 아주 더러운 욕심입니다. 이런 욕심을 가지면 사단이 질질 끌고 다닙니다. 결국 솔로몬은 육신의 정욕에 사로잡혀서 비참한 종말을 맞는 것입니다. 우리가 늘 조심해야하는 것은 욕심, 육신의 정욕을 조심해야 하는 것입니다. 특히 젊은 사람들이 힘든 것은 자신을 이기는 것입니다. 욕심, 야망 이런 것들로 마음이 더러워지고 신앙이 자리 잡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디모데전서 5:9절에 과부의 명부에 올릴 수 있는 사람은 나이 60이 넘어야 올라갈 수 있다고 합니다. 『젊은 과부는 거부하라 이는 정욕으로 그리스도를 배반할 때에 시집가고자 함이니 처음 믿음을 버렸음으로 심판을 받느니라』(딤전 5:11) 젊은 과부들이 정욕을 못 이겨서 안 믿는 집에 시집가고 교회에서 멀어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너무 편하게 살면 더러워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힘들 때에는 하나님을 찾고 세상쾌락과 멀어집니다. 그 뿐 아니라 환난이 올 땐 밤새 기도하고 부르짖으면서 반드시 은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 은혜 속에 깊이 들어가기 시작하면 정결한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환난을 주는 것은 우리의 믿음을 더욱 온전케 하시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로 하나님께서 이런 환난을 예비하시는 이유는 우리의 믿음을 더욱 온전케 하시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 전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40년을 머물게 하십니다. 광야라는 곳은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입니다. 왜 이들에게 광야가 필요했느냐하면 이들에게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광야는 믿음의 학교입니다. 여러분들이 살아가는 동안 광야길 같이 어려움을 겪으시는 분은 광야의 믿음의 학교를 다니고 계시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그 목적을 알고 믿음이 온전해지기만 하면 그 학교를 빨리 졸업하게 됩니다. 환난이 클수록 누구나 하나님 앞에 크게 부르짖습니다. 그러면 큰 은혜를 받고 믿음이 커집니다. 그러므로 이 마지막 때에 우리의 믿음의 온전함을 위해서 환난을 주시는 것입니다. 환난을 이기면 큰 믿음의 사람이 됩니다. 우리의 믿음은 편안할 때는 현상유지하기도 힘듭니다. 솔로몬같이 잘 살지 않는 것에 감사드립니다. 저는 지금도 잘 사는 목사 중의 하나인데 되도록 없이 살려고 합니다. 너무 세상에서 잘 살기를 바라지 마시기 바랍니다. 유럽이나 미국같이 잘 사는 나라를 보면 교회만 있지 사람들은 모이지도 않습니다. 잘 사는 것이 복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은 그 동안 6.25도 있고 큰 환난을 당해서 어려운 일이 생기면 살려달라고 난리를 치고 해서 이 남한의 교회들은 기도 많이 하는 교회가 됐습니다. 76년도에 여의도에 백만 성도가 모여서 기도했을 때 1년 사이에 백 몇 십만 명이 늘었습니다. 우리 성도들이 깨어 기도하면 지금의 상황도 유익이 될 줄 믿습니다. 개인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우리에게 환난을 주는 것은 하나님만 바라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네 번째로 하나님만 바라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만 보고 살면 하나님을 잊기 쉽습니다. 너무 세상 재미에 빠지면 신앙을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너무 잘 되고 바빠지면 자연히 주일도 예배도 지키지 않고 하나님과 멀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잘 나가는 사람들을 보면 나사가 하나씩 풀려있습니다. 기도생활도 없고 교회도 한 달에 몇 번 나올까 말까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환난이 필요한 것입니다. 큰 환난을 당하면 피할 길이 없고 해결할 길이 없어서 하나님만 전적으로 바라고 찾게 되는 것입니다. 큰 환난을 당하면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내세를 믿지 않으므로 자살을 선택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정반대로 어서 주님이 오시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것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 22:20)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주님이 재림하시기만을 기대하므로 자연히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잘 하고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3:13절처럼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면서 주님 앞에서 흠도 없기 위해서 준비를 잘 하시는 것입니다. 제가 우리 교회를 개척을 시작했을 때 권사님께서 계셨는데 연세가 많으신 분이 기도를 정말 많이 하시는 분이었습니다. 항상 수첩을 들고 다니면서 기도가 필요한 사람을 적고 늘 기도하시는 분이셨습니다. 주일학교 교사할 때도 애를 업고 교사하시고 새벽에 예배 나올 때도 목사님이 늦으시면 깨우시는 그런 대단한 분이셨습니다. 그 권사님 이야기 들으니까 힘들었을 때 예수님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옷도 늘 입고 주무셨다고 합니다.

[우리에게 환난을 주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장차 하나님 앞에 설 때 큰 영광을 받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다섯 번째로 장차 하나님 앞에 설 때 큰 영광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양자의 영을 받아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로 부른다고 로마서 8:16절에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그 새 하늘과 새 땅을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양자로서 똑같이 예수님과 함께 하나님의 것을 상속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영광을 받기 위해서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한다고 17절에 말하면서 그 다음에 현재 받는 고난은 장차 받을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도 없다고 말합니다. 이 고난은 첫째로 환난 중에 낙심치 않고 굴복하지 않고 신앙의 지조를 지킨 고난입니다. 순교를 각오하고 믿음의 산 사람은 반드시 상급이 있고 영광이 있습니다. 두 번째로 예수님이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받으신 십자가 고난처럼 우리도 많은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수고할 때 받는 고난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을 피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단기선교를 나가는 분들 정말 힘든 길을 가는 것입니다. 선교라는 것이 멋진 것은 아닙니다. 옛날 우리나라에 왔던 선교사님들, 토마스 선교사님 같은 분들은 성경만 나누어주시다가 참수 당하셨습니다. 또 우리 목회자님들 중에 시골에서 평생 고생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사도 바울같이 전도자로 고난 받으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특히 큰 환난 때에 헌신하는 분들이 많아집니다. 우리나라의 목사님이 늘어난 때가 6.25때였습니다.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하나님께 헌신기도하고 피난 나오신 분들이 신학교에 많이 들어가신 것입니다. 이 분들은 죽음에서 살아나셔서 6.25사변 이후에 교회가 많이 늘었던 것입니다.
  제 조카 중의 하나는 미국에서 미식축구를 하는 아이여서 덩치가 아주 큰데 브라질 선교를 갔다가 말라리아모기에 물려서 발작도 일으키고 난리였다고 합니다. 얼마나 아팠는지 살려만 주시면 주를 위해서 산다고 소리 질렀습니다. 그래서 치료를 받고 나아서 지금 이란 같은 곳에 선교하러 가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죽을 고비를 겪은 가운데 하나님께 헌신하려고 마음먹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때에 목숨을 걸고 충성하는 사람들은 괜찮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고생을 많이 하게 됩니다. 사업을 해도 잘 되지도 않고 대학에 떨어져서 신학과에 들어가서 목사가 되는 사람들은 평생 고생 많이 합니다. 큰 믿음 큰 능력도 없이 신학과에 들어온 사람들 고생 많이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주의 일을 한다고 고생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되지 않고 생활비가 없어서 고생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을 위해서 죽고자 하는 사람들은 큰 능력, 믿음으로 목회를 하고 선교를 해도 크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목숨을 아끼고 살려는 사람들은 오히려 망하고 죽는 것입니다. 제가 목회의 축복을 받고 지금껏 있는 이유는 어렸을 때부터 어떻게 하면 나를 24시간 하나님의 집에서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살 것인가를 고민하고 기도했던 것입니다. 또 주의 일을 하면 살고 그렇지 않으면 저를 데려가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저는 병들어 죽는 것을 원치 않고 순교하고 싶습니다. 저는 그런 결심이 있습니다. 그것이 제가 축복 받는 이유인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목회 중에 고생이 있어도 문제로 삼지 않았습니다. 어떤 교회는 한 달, 두 달, 석 달이 되도 사례비를 주지 않았지만 그냥 봉사하겠다고 열심히 봉사했습니다. 그 때 처음으로 세탁기를 받았습니다. 엉뚱한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살림할 때 필요한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저는 아주 죽도록 기쁨으로 충성했습니다.
  이런 환난의 때는 오직 믿음과 성령으로만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들은 큰 믿음과 능력이 필요합니다. 앞으로 점점 더 환난은 심해질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그 때를 대비해서 지금부터 큰 믿음을 가지고 충성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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