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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21세기 다윗(삼상 17:4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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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경택 목사 (종로교회)

오늘 본문의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사건입니다.
블레셋나라는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오기 전부터 이스라엘 서해안 지역에 살고있는 강력한 민족입니다. 블레셋은 지금의 팔레스타인입니다.(지중해 동쪽 해안의 이스라엘·요르단·이집트로 둘러싸인 지역. 지중해 연안의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으로 되어 있다. 면적은 요르단강 서안 5800㎢, 가자 365㎢. 인구는 331만 1000(2001). 수도 예리코.) 지금까지도 그 민족은 이스라엘과 공존하면서 다투며 살고 있습니다.

어떤 역사가들은 우리 민족이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930여번 이상의 크고 작은 외침을 받았다고들 합니다. 말이 930번이지 엄청난 숫자입니다. 우리 대한민국의 역사가 반만년이라고 잡아도 대략 4,5년에 한 번 꼴로 외국의 침략이 있었고 이 땅에 크고 작은 전쟁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처럼 많은 외침 속에서도 꿋꿋하게 살아온 우리 민족의 저력은 대단합니다만 엄밀히 말하면 나라의 힘이 약했던 까닭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도 우리 못지않게 전쟁으로 얼룩진 역사입니다.
이 블레셋이라고 하는 민족은 아주 문화가 발달한 민족이고 군사력으로도 대단한 민족입니다. 이스라엘은 항상 졌습니다. 엘리 제사장도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자녀들을 잃었고 사울왕도 아들들과 함께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죽었습니다. 삼손도 블레셋에 가서 두 눈이 뽑히고 연자멧돌을 돌리다가 비참하게 죽습니다.
수백년 동안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민족이 블레셋입니다.

본문을 보니까 이 블레셋의 장군 골리앗이 소고라는 곳에 나와서 진을 치고 큰 소리로 욕을하고 하나님을 모욕합니다. 삼상17: 9-10절 “그가 능히 싸워 나를 죽이며 우리가 너희의 종이 되겠고 만일 내가 이기어 그를 죽이면 너희가 우리의 종이 되어 우리를 섬길 것이라 그 블레셋 사람이 또 가로되 내가 오늘날 이스라엘의 군대를 모욕하였으니 사람을 보내어 나로 더불어 싸우게 하라 한지라”
온 이스라엘 군대가 그와 싸우기를 두려워했습니다. 골리앗은 키가 6규빗 하고 한 뼘, 약 3m에 가까운 거인입니다.
북한 농구의 간판스타 이명훈(28)이 키 2백35 cm에 몸무게 1백28kg . . 제자리에 선 채 덩크슛이 가능하답니다. 그렇다면 얼마나큰지 이해가 되십니까? 갑옷의 무게가 5000세겔, 57kg정도 . . .창날만 해도 철이 600세겔입니다. 어른의 몸무게 만큼 됩니다. 블레셋은 당시 철무기를 사용했습니다. 그 시대 신라는 토기를 사용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유목민 생활을 오래 해 왔기 때문에 그런 문화는 아예 없었습니다.

이렇게 문화가 발달한 블레셋을 이스라엘이 어떻게 당해내겟습니까? 골리앗앞에 사울과 백성들은 고양이앞에 생쥐처럼 떨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지금 골리앗이 버티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의 대적 골리앗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직장과 생업의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가정의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가족이나 친구의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신앙의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쓰러뜨려야 하지만 우리 앞에 닥친 문제가 너무나 크고 높고 심각한데 비해서 상대적으로 우리 자신은 작고 부족하고 연약하여 고민하고 방황하고 불안과 두려움 가운데 있습니다. 골리앗, 우리가 보기에는 다윗이 전혀 상대 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골리앗을 쓰러뜨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도 이길 수 있을 줄 믿습니다.

순종과 말씀의 훈련을 철저히 받아야 합니다. 날마다 적극적으로 철저한 순종의 훈련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다윗은 골리앗을 만난 것이 인생의 성공의 기회가 된 것입니다. 다윗의 생애에서 가장 큰 축복의 길을 걷게 된 순간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닭과 독수리는 폭풍을 만났을 때 취하는 행동이 서로 다르다고 합니다. 폭풍이 닥쳤을 때 닭은 날개를 접고 꼼짝 않고서 주저앉아 있습니다. 그러나 독수리는 이와 반대로 날개를 펴고 폭풍을 헤치면서 안전한 곳으로 피한다고 합니다.
우리도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려운 일을 만나거나 고통을 당하거나 환난을 만났을 때 겁에 질려 꼼짝못하는 닭과 같은 삶이 아니라 오히려 날개를 펴고 바람을 헤치며 안전한 곳으로 찾아가는 독수리와 같은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다윗은 특별한 삶을 산 사람이 아닙니다. 영성신학자 유진 피터슨에 의하면 그의 삶에는 신비스러운 기적의 역사가 한번도 없었다고 합니다. 그의 삶도 우리들의 삶처럼 고난이 많았습니다. 죄악에 빠져 후회하며 산 사람입니다. 사울에게 쫓겨 다니며 고통스러워하며 인생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 위기의 순간을 영광스러운 역사로 바꾸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축복을 받을 수 가 있었을까요?

첫째, 다윗은 안에 있는 것을 더 소중히 여겼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보이는것을 더 중요히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안에 역사하시면서 보이는 것들을 두려워 말라고 하십니다.
지금은 21세기입니다. 20세기에는 보이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20세기에는 강한 것, 일류학교, 좋은 대학, 학력을 중시 했습니다. 경험, 전통 등이 중요했습니다. 이런 것들이 없으면 알아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21세기에는 보이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한 때입니다. 실력이 더 중요한 때입니다. 학력보다 아이디어가 더 중요합니다. 정보가 더 중요합니다. 경험보다 용기가 더 중요합니다. 다윗 자신은 사자와 곰 같은 강한 적과 싸워 본 경험이 있는 훈련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경험 때문에 승리한 것은 아닙니다.
밖으로 나타난 실력 보다는 안에 감추인 영성이 더 중요합니다.
다윗은 밖으로 볼 때는 내 놓을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언제나 든든했습니다. 사무엘상 17장 '다윗의 말' 중에서 그에게는 “사시는 하나님”(26절)이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시는데 하나님의 백성들은 왜 두려워하는가? 하나님께서는 다윗 자신을 도와 하나님을 모욕하는 골리앗을 반드시 이기게 하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는 또 이스라엘 백성들이 단순한 백성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군대”라고 표현합니다.(26절) 즉,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의 연합체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블레셋 사람들이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것은 곧 하나님을 모욕한 것으로 보았기에 이 전쟁은 하나님이 보호해 주실, 하나님이 싸워 주실 전쟁임을 믿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보이는 것에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우리 속에 하나님이 살아 역사함을 믿고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다윗의 이 믿음은 어제의 지켜주심이 오늘의 믿음이 된 것입니다.
바로 체험신앙인 것입니다. 아무리 지식적으로 안다할지라도 체험이 없으면 믿음은 확실해 지지않습니다. 신앙은 경험적입니다. 다윗이 이처럼 고백을 하였다는 것은 도우시는 하나님에 대한 체험이 있었고, 그 하나님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함께 하신 하나님은 지금도 함께 하십니다. 지금 함께 하신 하나님은 미래에도 함께 하십니다. 사시는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들의 삶 전체를 주관하십니다. 공간을 초월하여, 시간을 초월하여 . . .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미래에 대한 확신을(37절) 가지고 살아간다면 골리앗도 아무것도 아닙니다.
다윗은 사자와 곰을 이기게 하셔서 양을 구해주신 그 하나님은 골리앗과의 싸움에서도 반드시 이기게 도와주실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다윗은 군인도 아닙니다. 그는 아직 나이도 어리고 미처 군대에 징집도 되지 못한 어린 아이에 불과하였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렇게 자신을 합리화시키지 않았습니다.‘나는 아직 어리니까’용기를 가지고 도전했습니다. 우리는 흔히 합리화 하기를 잘 합니다. 스스로 합리화 하지 마십시오. 도전하십시오.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일만 한다면 거기에는 별다른 용기가 필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믿음도 필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실패의 위험도 많지 않을 것입니다. 여기에는 특별한 하나님의 역사를 만들어 가실 일이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특별한 일을 이루실 일에 믿음의 도전을 하십시오. 어렵고 힘들어 보이는 일이지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믿음과 용기만 있으면 됩니다. 거기에는 실패의 위험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이루시는 것입니다.

둘째. 그는 정체성이 분명했습니다.
다윗은 정체성이 분명했습니다. 45절에 “너는 . . .나는 . . .”이런 문구들을 찾아봅니다. 분명한 자기 정체성이 있었습니다.
다윗은 당당했습니다. 삼상17:26,36 “26 다윗이 곁에 섰는 사람들에게 말하여 가로되 이 블레셋 사람을 죽여 이스라엘의 치욕을 제하는 사람에게는 어떠한 대우를 하겠느냐 이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이 누구관대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겠느냐 . . . 36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
. 할례없는 블레셋 사람”, . . .그는 너무도 겁이 없었습니다. 어린 것이 나서지말라는 형들 앞에서도 아랑곳하지 않았으며 왕인 사울에게마저 “그를인하여 낙담하지말라”고 당당하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에게는 두려움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그의 정체성 때문입니다.
정체성이 중요합니다. 나는 누구인가? 어떤 사람인가? . . .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특히 이 정체성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인가 마귀의 사람인가?
구원받고 하나님의 것이 되었는가? 아직 구원받지 못하고 교회에는 있지만 구원과 상관 없는 사람인가? 말입니다.
다윗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살았습니다. 여호와의 대행자로 살았습니다.

다윗이 정체성이 분명하게 된 것은 그가 사무엘로 부터 기름부음을 받고 나서 부터입니다. “다윗이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니라”(삼상16:13) 그리스도인들은 성령 충만 할 때 정체성이 분명해 지고 강해집니다.
위대한 성경의 인물들은 예외엾이 하나님의 영으로 감동되었던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떠나버릴 때 그렇게 힘이 있던 사람이 마른 막대기처럼 쓸모없는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을 볼수 잇습니다.
사울이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했을 때 승승장구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서 하나님의 영이 떠나자 그는 악신으로 충만해서 미치광이가 되고 맙니다. 삼상16:14 “여호와의 신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의 부리신 악신이 그를 번뇌케 한지라”
삼손이 하나님의 영에게 감동을 받았을때 얼마나 힘이 강했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영이 떠나버리자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하고 비참하게 넘어지고 맙니다. 그러나 회개하고 하나님의 영을 받았을 때 새로운 힘이 생겨서 우상의 신전의 두기둥을 잡고 밀어서 원수들을 갚았던 사실을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영이 우리안에 있을때만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다윗은 겉으로 나타난 것은 검을 가졌다든가 투구를 썼다든가 가슴에 방패를 붙였다든지 그런 것은 없습니다. 그는 한 소년 일 뿐입니다. 양을 치는 어린 소년이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영이 그를 충만케했습니다. 그것이 다윗으로 하여금 지혜를 얻게 하고 힘과 용기를 가지고 승리할수 있게 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이길수 있는 비결은 성령충만의 길받게 없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네 증인이 되리라"

세째. 다윗의 무기는 믿음이었습니다.
전쟁에서 이기려면 무기가 좋아야 합니다. 골리앗은 갑옷과 투구와 칼, 창, 방패 등으로 완전무장을 하였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뜨릴 수 있었을까요? 다윗이 사용한 무기는 무엇이었습니까? 고작 물매와 돌맹이 다섯 개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믿음의 용기가 있었습니다. 전쟁에서 중요한 것은 ‘내가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필요합니다.
지금 올림픽이 열리고 있습니다. 올림픽에서도 중요한 것은 자신감입니다.
우리의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요? 믿음입니다. 믿음은 불가능을 가능케 합니다.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게 해 줍니다.
사람이 꾸지람을 들으면 마음이 상하게 되고 힘을 잃게 됩니다.
다윗은 “들에 있는 양은 누구에게 맡기고 전쟁을 구경하러 왔느냐?”는 큰 형 엘리압의 꾸중을 들었습니다(28절),
또 “너는 소년이고, 골리앗은 어렸을 적부터 용사이어서 너와는 상대가 안 된다”라는 사울 임금의 부정적인 말을 들었습니다. (33절)
그리고 골리앗의 우렁친 말을 들었습니다. 삼상17:8-9 “그가 서서 이스라엘군대를 향하여 외쳐 가로되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서 항오를 벌였느냐 나는 블레셋 사람이 아니며 너희는 사울의 신복이 아니냐 너희는 한 사람을 택하여 내게로 내려보내라 그가 능히 싸워서 나를 죽이면 우리가 너희의 종이 되겠고 만일 내가 이기어 그를 죽이면 너희가 우리의 종이 되어 우리를 섬길 것이니라”
그리고 다윗은 골리앗의 장대한 외모와 전신갑주로 완전 무장한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골리앗의 창과 칼을 보지 않았습니다. 사울 임금의 부정적인 말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이 항상 나와 함께 하시므로 이 전쟁에서 반드시 이길 수 있다는 믿음만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그는 항상 사용하던 물매와 돌을 준비했습니다. 다윗이 무기가 좋아서 승리한 것일까요? 아닙니다. 다윗은 무기를 의지한 것이 아닙니다. 다윗은 자기와 함께 하시고 도우시는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나갔기 때문에 돌 한 개만 있어도 골리앗을 넘어뜨리기에 충분했던 것입니다.
다윗은 믿음의 눈으로 골리앗을 보았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골리앗을 볼 때 “너무 크다. 나는 도저히 그를 이길 수 없다.” 라고 생각했지만 다윗은 “골리앗은 엄청나게 크다. 그러므로 나는 물맷돌로 충분히 맞출 수 있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믿음의 눈은 긍정적인 생각을 갖게 합니다. 다윗은 긍정적 사람이었습니다. 믿음의 눈을 가진 사람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며 불가능을 가능케 합니다.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들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일이 어려울 때 문제를 보지 마시고 하나님을 보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사람들처럼 보지 마시고 하나님의 눈, 믿음의 눈, 기독교세계관을 가지고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힘으로, 도우심으로 승리하는 비결을 배우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승리하는 체험을 많이 가진자가 힘이 있는 자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슥4:6)
우리의 무기는 하나님이 되어야 합니다.
골리앗을 쓰러뜨리고도 다윗의 호주머니에는 사용하지 않고 남은 4개의 공기돌(조약돌)이 남아 있었습니다. 다윗에게는 아직도 힘이 남아 있었습니다. 앞으로 골리앗 같은 적이 얼마든지 나타나도 두렵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무기로 삼는 자는 이와 같은 것입니다.
겨우 겨우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지 마시고 다윗처럼 넘치는 능력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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