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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오늘의 바벨탑 (창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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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이봉 목사 (상도교회)

(온 땅의 구음이 하나이요 언어가 하나이었더라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하고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또 말하되 자,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인생들의 쌓는 성과 대를 보시려고 강림하셨더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후로는 그 경영하는 일을 금지할 수 없으리로다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여 그들로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신고로 그들이 성 쌓기를 그쳤더라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케 하셨음이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창 11:1-9>

오늘의 과학 문명을 보면 지난 세기 사람들이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도록 발달하였습니다. 하늘을 새처럼 날아다니게 되었고, 땅 밑으로 두더지처럼 다니게도 되었고, 물고기들처럼 대양을 누비게 되었고, 이제는 그보다 더 한 걸음 나아
가, 인공위성을 띄워 지구를 한 눈에 살피게 되었고, 무선 통신기술은 전 세계를 하나로 묶어 놓았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그런데 이렇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발달해 가는 과학기술에도 언제나 역작용은 타나게 되었습니다. 도리어 인간이 만들어낸 가공할 무기들 앞에서 벌벌 떨고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인류과학문명의 발전은 인류를 복지 사회로 만들 수 있겠는가? 하는 의문이 제기 됩니다. 또 과학이 어느 지점까지 올라갈 수 있겠는가? 하는 것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문제에 대하여 성경은 벌써 말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재림할 때 세상은 마치 노아의 때와 같이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에 나타난 바벨탑의 교훈입니다.
창세기를 읽어보면, 사람들의 생각이 모두 악해졌던 때가 있었습니다.

창세기 6:5에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홍수로 세상을 깨끗이 쓸어버리겠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노아 시대의 시대상이었습니다.
그러나 당대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노아의 식구들만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노아가 하나님께로 부터 심판의 예고를 받고는 산에 올라가 방주를 지었는데, 아무도 노아의 말에 경청하지 않았습니다.
120년 동안의 세월이 흘렀지만, 아무도 노아를 따라 방주를 지은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비가 오기 직전 까지 사람들은 일상생활에 파묻혀서 사고 팔고, 시집가고 장가드는 일에만 열중하다가 홍수를 만났습니다.
40주야 비가 내리어 온통 세상이 물에 잠기게 되었습니다.
호흡이 있는 모든 생물들이 다 죽어버렸습니다.
5개월 동안 물에 잠겨 있다가 7개월만에 물이 빠져 꼭 1년 10일 동안 노아는 방주에서 있다가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방주는 5,185m 되는 아라랏산 꼭대기 머물게 되었습니다.
노아가 방주에서 나오자 하나님께서는 다시는 물로 멸하지 않기로 약속하시고 그 표로 무지개를 보여 주었습니다. 그 후 노아는 350년을 더 살면서 950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세월은 흘러 다시 지상에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여러가지 기술이 발달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들의 조상들이 물로 싹쓸이 당한 것을 생각하면서, 다시 그런 위기가 오면 살아 남을 수 있는 재난 방지를 위하여 높은 탑을 쌓으
면 되지 않겠는가? 그렇게 생각하여 탑을 쌓기 시작하였습니다.
창세기 11:3절에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또 말하되 자,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
더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과학 기술의 힘을 의미합니다.
흙과 돌을 대신하여 인간의 기술로 벽돌과 역청을 만들어 탑을 쌓기 시작하였다는 말입니다. 오늘도 과학기술로 만든 건축자재들이 얼마나 좋습니까?
그것을 보신 하나님은 저들의 언어를 혼잡케 함으로 뿔뿔이 흩어지게 만들어 오늘의 인종분포의 역사의 기원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가 이 바벨탑을 생각하면서 어떤 교훈을 받아야 하겠습니까?

1. 바벨탑은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불신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노아에게 다시는 물로 심판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증표로 하늘에 무지개를 보여 주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하나님의 언약을 믿을 수 없다고 불신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하늘에 닿는 탑을 쌓으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불신과 자신들의 힘으로 재난을 방지해 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도 이런 현상들이 우리들 가운데 얼마든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보다 인간적인 자기 능력을 앞세워 자신의 미래에 닥칠 위험과 재난을 방어해 보려고 힘씁니다. 그래서 온갖 노력을 다합니다.
오늘도 벽돌을 만들고 흙을 이겨서 성공의 탑을 쌓으려는 노력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신문에 보니, 영어발음을 잘하라고 혀를 수술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영재교육이라고 과외를 시키고, 남들 보다 앞서려고 합니다.
하늘에 닿는 탑을 쌓으려고 얼마나 힘쓰고 애쓰고 있는지 모릅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을 불신하여 오직 자신의 미래의 성공을 위해 온갖 노력들을 다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세상의 지식만 갖고 하늘에 닿는 탑을 쌓으려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은 아들을 믿는 자에게 영생을 약속했습니다.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도 그런 약속에 대한 것은 등한히 여기고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래서 멸망할 자들에게는 십자가는 미련하게 보인다고 하였습니다.

2. 바벨탑은 인간의 절대적 무능을 절감케 한 사건이었습니다.

인류의 독재자들과 부귀영화를 누린 왕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모두가 자신의 능력으로 하늘에 닿는 탑을 쌓아 보려고 하였습니다.
중국에 진시왕은 죽지 않는 약을 구해 보려고 하였습니다.
불로장생(不老長生)을 원했지만, 결국 그도 50살에 죽었습니다.

오늘도 인간의 힘으로 불로장생 해보려는 노력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한 동기로 시작된 것이 어쩌면 과학기술인지도 모릅니다.
건강하게 오래 살려고 좋은 보약들을 먹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의 주권에 대항하여 바벨탑을 쌓으려는 노력들이 계속됩니다.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도전이 과학 기술분야에서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생명공학과 우주개발이 그런 측면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의 영역을 인간의 과학적 지식으로 풀어보려고들 얼마나 노력들을 합니까? 언필칭 생명공학이 인류의 복지증진을 위한다고 하겠지만, 노벨이 다이나마이트를 만들고 후회했듯이 복제인간, 유전자 변형 등이 불치의 병을
고칠 수 있다는 희망도 있지만, 타락한 죄된 인간의 손에서 그것이 결국 좋게만 이용된다고 누가 보장하겠는가 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오늘도 그러한 노력은 헛수고일 뿐입니다.
인간의 자신과 교만은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세계 최대의 여객선으로 2,300명의 승객을 태우고 '타이타닉호'는 유유히 바다 한가운데로 항해하고 있었을 때 통제소로부터 "빙산 주의!"라는 무전을 받았지만 거대한 '타이타닉호'를 너무 신뢰한 나머지 묵살해 버렸습니다.
설마 이 '타이타닉호'가 빙산 따위에 눈깜짝이나 하겠는가?"
"하나님이라도 감히 이 배를 어찌할 수 없을 걸세. 항해를 계속해!" 라고 선장은 명령했습니다. 결과는 어떠했습니까? 인간의 교만이 얼마나 처참한 결과를 초래케 하는가 하는 사실을 보여 주었습니다. 
오늘의 정치, 경제, 과학, 기술 분야에서도 이 교훈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인간 능력으로 하늘로, 바다로, 바다 밑으로, 땅으로, 땅 밑으로 다닐 수 있게 하였어도 ① 인간의 사상과 ② 정신적 가치와 ③ 윤리와 도덕에서는 혼돈과 혼잡과 후퇴를 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왜 점점 인간의 지식도 높아가고, 과학적 기술도 발달해 가는데, 왜 사람들의 정신은 후퇴하여 가는가? 말입니다.
오늘도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는 전쟁, 테러, 분쟁, 마약, 살인, 가정파괴들을 어떻게 설명하려고 하십니까? 인간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3. 바벨탑은 인간으로 하여금 하늘을 쳐다보면서 살도록 하였습니다.

땅만 보고 사는 인간처럼 동물적이고, 무의미하고, 허무한 존재는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땅에서 하늘에 닿는 탑은 쌓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하나님 없는 사상들, 하나님과 대항해 보려는 정권들,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
을 등한히 여기는 크리스천들에게 말합니다.
제아무리 하늘에 닿을 창고를 짓고, 부귀영화를 쌓아둘 더 큰 곡간을 지으려고 해도, 그것이 얼마나 무의미한 노력인가? 하는 것입니다.
높아 가는 바벨탑만 쳐다보면서 그 위에 계신 하나님을 잊고 사는 사람들처럼 불쌍한 존재들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오늘도 불신앙의 바벨탑을 쌓으면서 자신들의 미래의 행복을 무지개처럼 바라보면서 살다가 ① 서로의 갈등으로 가정이 깨어져 나가고, ② 누구를 진실되게 사랑도 해보지 못하고, ③ 또 사랑도 받아보지 못한 채, ④ 그리고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께 대한 진실한 대화도 한번 해보지 못한 인생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 없는 바벨탑은 모두 산산이 부셔지고야 만다는 진리를 일찍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늘의 바벨탑을 쌓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던져야할 질문은 당신들이 쌓으려는 행복의 탑이 얼마나 높이 올라갈 것 같으냐?고 물어야 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구름 속에 무지개를 두었다고 하였습니다.
창세기 9:13절에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의 세상과의 언약의 증거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구름이 우리의 생활에 덮히면,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 하겠다고 하면서 다시 세상으로 나가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고통 중에 있을 때 당신의 약속을 바라보며 사는 우리들을 기억해 주시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약속을 믿지 못하고 형식적으로만 믿음으로 사는체 하는 체신자들이 있습니다.

아르헨티나에서 된 이야기입니다.
처음 TV 수상기가 생기면서 모두 텔레비전을 신기하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한 가정에서 그것을 먼저 구입했습니다. 지붕 위에 안테나를 세우고 영상이 나오는 것을 보면서 모두가 다 부러워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도 이것은 마찬가지
였습니다. 1960년초 처음 흑백 TV가 나왔을 때, 모두 구경하려 갔었습니다.
그런데 자존심 강하고, 체면치레를 중시하는 한 부인이 남편에게 조릅니다. 우리도 텔레비전을 사자고...그러나 남편은 우리 생활형편에서 불가능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니 그 여인이 안테나만 사다 매어 달았습니다.
체면으로, 자존심 지키려고 말입니다.

오늘 신앙생활에서도 이런 경우가 있을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구름 속에 당신의 무지개의 약속을 두었습니다.
우리는 그 약속을 자존심이나 체면으로 지키려는 척만 해서는 안됩니다. 자존심, 체면이 깨어져 나가야 참 신앙인이 됩니다.
우리 모두 오늘의 바벨탑의 교훈을 바로 받아들여 진실한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지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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