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성공의 3대요소 (마 4:12-25)

  • 잡초 잡초
  • 764
  • 0

첨부 1


- 노강국 목사 (신시내티교회)

계속해서 마태복음의 말씀을 생각하는 가운데 있습니다. 오늘은 그 일곱 번째 시간으로서 예수님의 사역의 모습을 총괄적으로 다루는 내용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들께서도 아시겠지만, 마태는 예수님의 활동하심을 기록하면서 태어나서부터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승천까지 다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마태는 이러한 예수님의 모습을 그저 순서적으로(연대기적으로, Chronical) 기록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활동과 이 모든 사역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마태 나름대로 이러한 예수님의 활동을 잘 정리하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모든 활동을 총괄적으로 묘사하는 내용이라고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겠습니다. 12절~17절, 18~22절, 23~25절로 나눌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이 세부분의 내용은 우리가 어떤 일을 하는데 있어서 성공의 3가지 요소라고 할 수 있는 내용이라고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신기하다고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갈릴리 사역은 성공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4~25절,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색 병과 고통에 걸린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저희를 고치시더라. 갈릴리와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강 건너편에서 허다한 무리가 좇으니라.” 이러한 성공적 사역이 이루어지는 데에 필요한 내용들이 오늘 본문에 담겨 있다는 것입니다.

흔히 성공의 3대 요소는, 어떤 일을 하는데 있어서 시기와 장소, 그리고 그 일을 수행하는 사람, 그리고 그 일의 내용에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시작하여 성공하고자 한다면, 먼저 그 일을 하게 되는 때와 장소가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어떤 종류의 물건이 잘 팔린다고 이미 소문이 난 다음에 그 물건을 팔려고 한다면 때는 이미 놓친 것입니다. 그리고 장소도 중요합니다. 한국의 어느 지역은 “먹자골목”이란 곳이 있습니다. 즉, 음식점만 즐비하게 들어서 있는 곳입니다. 이곳에 음식점을 차리면 잘 된다고 합니다. 이렇게 장소도 좋아야 합니다. 두 번째로는 그 일을 하는 사람이 중요합니다. 훌륭한 기업이 이루어지는 데에는 성실한 일꾼이 뒷받침되어야만 한다는 것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세 번째로는 그 일의 내용입니다. 한마디로 물건이 좋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건 자체가 부실하다면 성공을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세 가지 부분은 모두 이러한 내용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12절~17절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일을 시작하시게 된 때와 장소를 말씀하는 부분입니다. 18~22절은 그 일을 하시는데 있어서 필요한 일꾼을 세우시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23~25절은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의 내용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하신 일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세 포인트를 간추려서 말씀하는 내용인 것입니다. 이에 대해 하나씩 생각해 보도록 하십시다.

1. 예수님 활동의 때와 장소(12절~17절)

12~17절의 말씀에서 때를 의미하는 표현이 두 군데 나옵니다. 하나는 12절의 “요한의 잡힘을 들으시고”라는 표현이고, 또 하나는 17절의 “이때부터”라는 표현입니다. “요한이 잡혔다”는 표현은 세례 요한이 헤롯 왕에게 체포되었다는 내용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여기에는 어떤 상황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당시 상황과 분위기가 어떠하다는 것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17절의 “이때부터”란 표현은 구체적으로 말하면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으로 가서 살게 된 때부터”라는 의미가 되겠습니다. 이런 점에서 이러한 “요한이 잡힌 때”라는 것은 상황과 분위기를 알려주는 “큰 의미에서의 때”라고 한다면, 17절의 “이때부터”란 의미는 예수님의 개인에 적용되는 “작은 의미에서의 때”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경우의 때를 당하여서 취하신 예수님의 행동은 사뭇 대조적입니다. 12절의 “요한의 잡혔을 때”에 예수님은 “갈릴리로 물러 가셨다”고 기록하고 있고, 17절의 “이때부터”는 예수님께서 활동을 개시하게 되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시더라.”

먼저 “갈릴리로 물러 가셨다”는 내용을 보십시다. 예수님께서는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자 유대 지역으로 내려오신 것을 우리는 압니다. 세례를 받으신 후, 시험을 받으시고 유대 광야에 머무르신 것으로 짐작이 됩니다. 아마 유대 지역에서 사역을 하시려고 준비하시고 계획하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세례 요한이 잡힌 사실을 들으시고는 유대지역에서 예전에 살던 마을인 갈릴리 지역으로 물러 가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여기서 “물러 가셨다”는 말은 “퇴거하다, 철수하다”라는 의미의 말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예전에 사시던 갈릴리 지역에 오셔서는 지금까지 자랐던 고향과 같은 나사렛에서 떠나서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의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이란 곳으로 가셨습니다. 예를 들어 말씀드리면, 갈릴리 지역을 오하이오 주라고 한다면, 나사렛이나 스불론, 납달리,  가버나움은 이 오하이오 주에 있는 데이튼이나 신시내티나 하는 도시들을 말한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세례 요한이 잡힌 것을 아시고 갈릴리로 물러 가셨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상황이 좋지 않을 때에는 물러 나셨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의 생각에는 상황이 어렵고 힘들 때에 물러나는 것을 비겁하거나 용기 없는 모습으로 여길 때가 있습니다. 물론 상황이 자기에게 불리하다고 무조건 피하는 것은 비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물러나는 것도 용기의 한 모습인 것을 우리는 알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예수님은 세례 요한이 잡힌 소식을 듣고, 유대 지역에서 갈릴리 지역으로 철수하셨습니다. 아직 때가 아니라고 그리고 장소가 마땅치 않다고 여기신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렇게 때와 장소는 잘 맞아야 합니다. 사실, 이 둘은 상호보완 관계에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결정적인 때를 만나신 것은 장소의 도움을 받은 후라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본래 자라나신 나사렛에 오신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이 나사렛 마을을 떠나서 가버나움으로 이사하셨습니다. 나사렛을 왜 떠나셨을까 질문할 수도 있겠습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눅 4장에서 도움을 얻을 수 있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느 안식일에 나사렛의 회당에 들어가셨습니다. 거기서 이사야 선지자의 글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간단하게 설교를 하셨는데, 이 설교를 듣고 나사렛 사람들이 예수님을 산으로 끌고 가 낭떠러지에 밀어 죽이고자 하였습니다. 아마 이런 사유로 인해 정든 나사렛을 떠나신 것으로 짐작이 됩니다. 하지만, 가버나움으로 옮기신 예수님은 “이제부터는 내가 나서서 일 할 때가 되었다”고 여기신 듯 합니다. 그래서 17절에서 “이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라고 기록된 것처럼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가신 것입니다. 이렇게 장소 또한 중요한 것입니다. 마태는 이러한 예수님의 가버나움 거주는 구약성경 이사야 예언자의 말씀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설명하는 것입니다.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취었도다’ 하였느니라.”

이렇게 예수님은 일 하실 수 있는 장소와 때를 얻으셨습니다. 우리들도 어떤 일을 시작하는 데 있어서 이렇게 하나님의 뜻과 어우러질 수 있는 때와 장소를 지닐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성공하는 첫 비결입니다.

2. 예수님의 일꾼 선정(18~22절)

성공의 비결, 두 번째로는 일꾼을 선정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일꾼을 선정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무엇보다도 일꾼을 뽑는 주인의 마음가짐이 중요합니다. 그것은 무슨 일이든 나 혼자서는 할 수 없다는 자세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저 심부름꾼으로 부려먹을 사람을 뽑기 위해 일꾼을 선정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일꾼 선정의 바른 자세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써먹다가 이용가치가 없어지면 팽개치면 되겠다는 마음으로 일꾼을 선정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크게 잘못된 것이라 하겠습니다. 일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라면 그 일을 하게 되는 일꾼에 대한 자세를 바로 갖는 것이 무엇보다도 선행되는 일이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런 입장에서 일꾼을 부르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베드로와 안드레, 그리고 야고보와 요한을 부르시면서 하신 말씀에서 이를 알 수 있습니다. 19절,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여기서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는 이 말씀은 무슨 의미입니까? 사람을 다루는 일은 기계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어떤 물량적인 생산의 마음가짐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더더군다나 아닙니다. 한마디로 이러한 일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것도 사람다운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이런 점에서 예수님은 후에 제자들을 “너희는 나의 친구”라 하신 것입니다(요 15:15). 이렇게 일꾼을 뽑고자 하는 자세는 비단 종교적인 영역에서만의 모습은 아닙니다. 우리가 비록 물건을 팔고, 기술자로 일한다든지, 우리의 삶의 영역 모든 부분에 해당되는 마음과 자세입니다. 물건 사러 오는 사람을 대하는 자세나, 내 집에서 일하는 종업원에 대한 자세나, 또 내가 일하는 사업체의 동료들을 대하는 자세나 이 모든 부분과 영역에 필요한 자세인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모습은 눈에 보이지 않는 방법으로 이 네 사람의 모습에 전달되었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이들을 같이 일하자고 부르셨을 때, 이들이 취한 행동에서 발견됩니다. 20절과 22절의 모습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모습에서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곧”이라는 말과 “버려두고”라는 말입니다. 이 표현들은 이 네 사람의 제자들의 결단을 암시하는 표현입니다. 우리는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여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남자에게 정조를 바치고, 남자는 자기를 믿어주는 상관에게 충성을 다 한다.” 이 말이 맞는다면, 이 베드로와 안드레와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과의 만남에서 자기들을 신뢰하는 예수님의 모습을 발견했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부르셨을 때, 확실한 결단으로 따라 나선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신뢰구축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입니까? 그것은 바로 인간답게 대해주고자 하는 바로 그러한 모습에서 비롯되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무슨 일을 하든지, 이러한 인간다운 자세와 모습을 지니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번보고 다시는 안 볼 사람처럼 대하거나 여기지 말고, 귀하고 바른 인간관계를 지닐 수 있는 마음가짐과 자세가 필요하다고 하겠습니다. 이것 역시 성공의 귀한 비결 중의 하나인 것입니다.

3. 예수님의 하신 일의 내용(23~25절)

오늘 본문에서 발견하는 성공의 세 번째 비결은 바로 일의 내용입니다. 예수님의 사역의 내용을 마태는 23절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예수님께서 하신 일의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면, “가르치고, 전파하시고, 고치신 일”이라 하겠습니다. 복음서에 나타나는 예수님의 하신 일들은 이 말씀을 실제로 어떻게 나타난 것인가를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일은 이렇게 “가르치고, 전파하시고, 고치신 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일은 그 당시에 아주 절실하게 필요했던 일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특히 병을 고치신 일은 그 당시로서는 아주 절실했던 문제였음을 24~25절에서도 알게 됩니다.

성공하는 데에는 이렇게 하는 일의 내용이 중요합니다. 무슨 일을 하여도 그 일에 의미가 중요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에는 나름대로의 정당성이 필요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이러한 “가르치고, 전파하시고, 고치신 일”은 하나님의 나라의 일이었기에 더욱 정당성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하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일의 내용에 대한 정당성이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이런 일들을 우리는 “의미 있는 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먹고 살기위한 생존의 수단으로서의 의미를 넘어서서 귀한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그러한 정당성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가치를 부여하는 기준을 우리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습니까? 그것은 누구를 위해서 그 일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보겠습니다. 나를 위해서 그 일을 하느냐, 아니면 다른 사람을 위해서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예수님의 일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하는 그러한 모습인 것을 우리들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일의 내용에 있어서 영원성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같은 물건이라도 오래 쓸 수 있는 물건, 고장이 안 나는 물건을 사려고 합니다. 그것은 우리 사람의 마음에는 영원함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서 일본차가 잘 팔리는 이유는 바로 고장이 잘 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일리가 있는 이야기입니다. 오늘 본문의 예수님의 일도 이러한 영원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가르치고, 전파하시고, 고치신 이러한 예수님의 일”은 오늘날 교회가 해야 할 일들로 우리들에게 주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바로 예수님께서 하신 이러한 일들을 계승하고자 하는 공동체인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일들은 나름대로의 영원성을 지니고 있다 하겠습니다.

오늘날 우리들 역시 우리가 하는 일이 이러한 의미와 가치 그리고 정당성과 영원성을 지니고 있다면 성공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이렇게 오늘 본문은 한편으로는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 성공을 거두게 된 그 비결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때와 장소에 대한 문제, 일꾼을 선정하는 문제, 일의 내용의 문제 - 이 세 가지를 예수님께서는 잘 감당하셨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세 가지 요소만 간직한다고 해서 성공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는 않다고 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 가지 요소를 가지고 이러한 성공으로 나아가는 데에는 적어도 두 가지의 원칙이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는 적합성입니다. 때를 분별하고, 장소를 선택함에 있어서의 적합성입니다. 그리고 일꾼을 선정하는 데에 있어서의 적합성입니다. 그리고 하시고자 하시는 일의 내용이 그 당시의 필요에 적합하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적합성이 꼭 필요합니다. 오늘날 우리들 역시, 이러한 적합한 삶의 자세를 지녀야 합니다. 말과 행동과 어떤 결정을 내리는 데 있어서 적합하게 적용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또 하나는 목적을 이탈하지 않고자 하는 자세입니다. 예수님은 그의 모든 사역의 목표를 “하나님의 나라”에 두었습니다. 이는 17절에 나와 있는 내용입니다. “회개하라. 하늘나라(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왔느니라.” 예수님은 그의 모든 활동의 목표를 바로 이 “하나님의 나라”에 두었습니다. 성공 자체에 둔 것이 아닙니다. 만일 성공 자체에 두었다면 “갈릴리 성공”으로 그 삶이 끝났을 것입니다. 아마 예수라는 이름도 남지 못했거나, 아니면 그저 “성공한 종교 지도자 중에 하나”로 기억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성공 자체에 목적을 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에 그 목적을 두었기 때문에 순간순간의 성공에도 교만하여 타락하지 않을 수 있었고, 주어지는 비판과 공격에도 기죽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요새 “목적이 이끄는 삶”이란 책이 유행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하나님의 나라”라는 목적에 지속적으로 이끌림을 받는 삶을 사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있어서 성공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진정 성공으로 나아갈 수 있는 삶이 어떤 삶인지를 발견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소위 “갈릴리 성공”만으로 성공의 기준을 삼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돈을 많이 버는 것으로, 권세와 명예를 지님으로 영향력을 넓히는 것으로 성공의 기준을 마련하게 됩니다. 이러한 모습은 교회에도 들어와 교회와 목회의 성공 기준처럼 행세하게도 된 현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이러한 성공을 위한 조건들뿐만 아니라, 이러한 성공에 머무는 성공이 아닌 진정한 성공에게로 향할 수 있게 하는 이러한 모습이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어진 일에 대한 적합한 모습과 목적에 이탈하지 않는 모습을 같이 지닐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적합성의 지혜와 목적에 이탈하지 않을 수 있는 힘의 근원은 바로 성령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고 따르는 자에게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성령의 인도하심과 지시하심을 늘 간직할 수 있는 신앙의 긴장 속에 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들께서 무슨 일을 하시든지, 그 일에 꼭 성공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때와 장소를 잘 택할 수 있는 지혜, 일꾼을 선정하는데 필요한 바른 마음가짐, 그리고 하시고자 하시는 일의 내용을 잘 갖추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에 성령의 인도하심을 통하여 간직할 수 있는 일에 대한 적합함과 더불어 “하나님의 나라와 뜻”이라는 목적에서 이탈되지 않는 자세를 간직하심으로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진정한 성공의 길로 가시게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은 예수님의 활동하신 모습을 “성공”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성공을 꿈꾸는 현실 속에서 진정한 성공이 무엇인가도 같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들도 이렇게 성공하신 예수님을 본받아 끝까지 하나님의 나라의 길을 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에게 부족한 부분들을 성령의 인도와 도우심을 채워주셔서, 저희들의 모든 일들에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실만한 성공의 모습들로 채워주시기를 간절히 바라오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