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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당신은 길을 아는가? (요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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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이용호 목사

  속담에 '길이 아니면 가지 말고 말이 아니면 듣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길은 보이는 길과 보이지 않는 길로 나뉘어 집니다. 길이라는 개념은 정신세계나 영적 세계에 함께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다니는 길은 눈에 보입니다. 등산객이 등산하는 길도 보입니다. 비행기가 다니는 하늘에도 항로가 있습니다. 배가 다니는 바다에도 뱃길이 있습니다. 이렇게 사람이 만든 길이 있는가 하면 본래부터 하나님이 내신 길이 많이 있습니다. 모든 만물 속에는 여호와 하나님이 내신 창조의 길이 있습니다. 그것을 창조의 법칙 혹은 창조의 질서라 표현합니다.

  자연질서의 길

  지금 지구촌의 가장 골치 아픈 병이 에이즈입니다. 이 병은 동성연애를 하는 나라, 일부다처를 허용하고 있는 나라에서 더 많이 성행합니다. 그래서 일부다처가 성행하는 아프리카 지역에 에이즈의 발생률이 제일 높습니다. 또 동성애를 허용하는 구라파에도 많은 에이즈 환자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역행한 하나의 재앙입니다. 일남일녀로 건전한 가정을 이루라는 창조의 명령을 역행하는 인류의 범죄를 인하여 에이즈라는 재앙이 왔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광우병이라는 것도 초식을 해야 할 소에게 동물사료를 먹여서 일어난 창조의 질서를 거스린 재앙으로 나타난 병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의 모든 현상을 보면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거스려서 일어난 온갖 재앙들이 수도 없이 많습니다.
  지금 사스병도 아직도 그 바이러스가 어디서 왔는지 발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루머까지 생겼습니다. 사스 바이러스가 외계에서 왔다, 혹성에서 온 것이다, 또 들짐승에게서 왔다, 고양이에게서 왔다는 등 연구가 있지만 아직도 공인된 이론이 없습니다. 그래서 약품을 개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좀 미신적인 이야기이지만 요즘 이런 이야기가 또 들려옵니다. 사스가 처음 발생한 지방이 중국의 광둥지방인데 여기서 환자가 제일 많이 났고 지금 광둥지방은 이 사스로 인하여 마치 전쟁을 만난 것처럼 황폐화 되어 버렸습니다. 초기에 사스에 감염된 자들이 요리사들인데 그것을 다스리지 않고 계속 요리를 하다가 이게 확산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광둥요리라 하면 중국요리 가운데도 가장 유명한 요리로 알려져 있는데 광둥요리의 특징은 못 먹는 게 없는 요리라는 것입니다. 모든 야생동물들을 잡아 요리를 만들어서 세계적으로 그 요리를 자랑하는 광둥지방입니다. 벌레도 요리가 안되는 게 없다고 합니다. 바퀴벌레, 굼벵이, 지렁이까지 안되는 게 없답니다. 그래서 요즘 이런 말이 생겼습니다. '야생동물들이 광둥지방 사람들 앞에 화풀이를 하는 것이다, 하도 야생동물들을 무참하게 잡아먹으니까 야생동물들이 반란을 일으켜서 보복을 하는 것이다'라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사스 바이러스로부터 면역이 잘 된 것이 김치덕분이다 마늘덕분이다 라는 말이 있지만 이런 미신적인 이야기지만 사실 우리 배달민족은 야생동물들을 아끼고 사랑합니다. 요즘 일부의 정신나간 사람들이 야생동물들을 잡아서 보양식으로 먹지만 일상적으로 우리는 야생동물들을 사랑합니다. 까마귀 고기나 고양이도 어쩌다 약하려고 잡아먹지 일상적으로 잡아먹는게 아닙니다. 우리 조상들이 신었던 짚신은 개미를 밟아도 죽지 않습니다. 구둣발로 밟으면 개미는 당장 죽어버립니다. 많은 벌레들이 우리 조상들이 신었던 짚신 때문에 밟혀도 희생이 안될 만큼 우리는 야생동물들을 사랑하는 민족입니다.
  인류의 재앙은 모두 하나님이 내신 창조의 길을 역행하기 때문에 오는 재앙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에게도 인생이 살아가는 길을 만들어 놓고 그 길대로 살아가라고 요구하는 것입니다. 마음대로 살라고 하는 게 아닙니다. 이렇게 만물들에게는 삶의 법칙이 있고 하나님이 내신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시간을 만드시고 시간을 운행하시고 다스려 가십니다. 하늘의 해와 달과 별을 지으시고 천체를 통치하고 운행하십니다. 만물을 지어놓고 시간 속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인도해 가십니다. 창조의 길을 따라서 만물들을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모든 영역에 있는 길

  저가 어느 곳에 가서 세미나를 인도하는데 사회 맡은 분이 갑자기 "시간이 되었으므로 세미나를 시작하겠습니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을 치고 기도가 시작되었습니다. 내 시계를 보니까 5분이 남았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왜 그렇게 하나 의아해 했는데 마치고 나서 보니까 사회하는 그분 시계가 5분이 빨랐던 것입니다. 
  시계와 시간은 다릅니다. 내 시계가 11시이기 때문에 11시라는 시간이 있는 게 아닙니다. 이 시계는 시간과 다릅니다. 시간은 시계가 없어도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만든 창조물입니다. 시간은 하나님이 만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시간이 흘러가는 질서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만든 시간은 우리 시계를 가지고 멈추게 할 수 없습니다. 내가 시계바늘을 고정시킨다고 시간이 고정되는 게 아닙니다. 또 내 시계가 정각이라 해서 표준치를 생각하면 안됩니다. 내 시계가 표준이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시간을 역행하는 행위, 하나님이 내신 이 시간은 인간이 조정할 수도 없고 거역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시간에다가 우리를 맡겨야 됩니다. 그리고 그 분이 이끌어 가시는 데로 살아가야 되지 내가 시간을 역행하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시간 뿐 아닙니다. 우리 삶의 현상적인 모든 영역에도 창조주 하나님이 내신 법칙이 있습니다. 법에도 정치에도 경제에도 교육에도 외교에도 전쟁에도 이 땅위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 속에도 하나님의 주권이 간섭하시고 하나님이 내신 창조의 질서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역행하는 사람, 역행하는 권력, 역행하는 민족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뉴스를 보니까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속이 좀 상하였습니다. 우리 대통령이 한 주간 전에 미국을 다녀오셨는데 어제 부시와 고이즈미가 크로포트 목장에서 회담하는 장면을 비춰주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대통령은 왜 저 목장에 초대를 못받았을까 속이 상하였습니다. 그 두 사람이 마치 신혼부부가 신혼여행을 가서 재미있게 보내는 것처럼 어떻게 부럽고 시기가 나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대통령은 워싱턴에 가서 부시와 30분 회담하고 끝냈습니다. 그것도 통역까지 해서 30분입니다. 그런데 고이즈미는 부시가 트럭을 직접몰고 3시간 동안이나 드라이브 하면서 이틀간에 걸쳐서 밀회를 하는 것을 보니까 속이 상합니다. 우리 집의 어른도 밖에 나가서 대접 못 받고 들어오면 자식으로서 속상하지 않습니까? 바로 그 기분입니다. 우리의 지도자는 홀대를 받고 온 것처럼 서운하였습니다.
  여러분, 월드컵 4강이라고 너무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이제는 외교 4강이 되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외교 4강에 들어가야 합니다. 푸틴도 초대받고 장쩌민도 초대받고 고이즈미도 초대받았는데 우리만 빠졌습니다. 그 사람들이 거기서 무슨 이야기를 합니까? 북한핵이야기 합니다. 북한핵이라는 공을 가지고 자기들끼리 공놀이 하고 있고 우리는 빠져 있습니다. 부시가 영국의 블레어 총리를 초대해놓고 "원래 귀한 손님은 집으로 모시는 법이오" 그러면서 목장으로 초대를 했습니다. 우리의 통치자를 위해서 진정으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사명입니다. 그런데 어땠습니까? 대통령이 돌아오시고 난 후에 우리 신문들이 눈치보고 왔다느니 아양떨고 왔다느니 속상하다느니 여당과 시민단체에서는 반민족적 외교를 했다, 굴욕적인 외교를 했다, 미국의 나팔수 외교를 했다는 등 아니 한 집안에서 그 야단입니다. 5·18광주행사에 대통령을 뒷문으로 들어가도록 그렇게 대접하는 백성들입니다. 그러니까 대통령이 못해 먹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떤 분이 대통령을 변명하는 글을 썼습니다. '외교는 낚시와 같다.' 낚시꾼이 미끼를 던질 때 낚시꾼이 좋아하는 미끼를 던져서는 성공이 안된다, 고기가 좋아하는 미끼를 던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대통령이 9·11테러를 당한 그 나라에 가서 반미 미끼를 던져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대통령을 뒷문으로 출입하게 하는 이런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여러분, 우리 정부도 신중해야 합니다. 정도를 가야 합니다. 정치도 외교도 군사도 정도가 있고 길이 있습니다. 지름길로 가도 안되는 것이고 역행을 해도 안되는 것입니다. 밖에서도 대접 못받는 모습이 있는데 안에 들어와서 치이는 우리 통치자의 그런 모습은 우리의 불행입니다. 우리의 통치자는 존귀함이 있어야 됩니다. 그래야 우리 국민도 존귀해지는 것입니다. 전의 대통령도 멍에가 있었습니다. IMF 멍에, 아들멍에 다 있었지만 그래도 막장에 가서 그랬는데 지금 대통령은 초장부터 형님멍에다 무슨 측근멍에다 해서 너무 힘든 것 같습니다. 우리의 통치자를 위해 진심으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주권이 이 나라를 간섭하시고 다스리시고 하나님이 내신 살아있는 그 진리의 법이, 그 공의가 이 나라를 다스려 주시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진리는 오직 한 길뿐

  하나님은 우리에게 중요한 길을 가르쳐 주십니다. 주님이 제자들을 모아놓고 "내가 가는 길을 너희가 알리라"고 하셨습니다. 도마가 말하기를 "주님 가시는 곳도 모르는데 어떻게 우리가 길을 알겠습니까?" 주님의 대답은 "내가 곧 길이다"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영생의 길이다, 내가 천국가는 길이다, 내가 구원의 길이다 라는 것을 주님이 제자들 앞에 분명하게 선언해 주십니다.
  사도행전 16장31절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로마서 10장 13절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내가 구원의 길이니라, 내가 영생에 이르는 길이니라, 천국에 이르는 길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이 예배에 초대받은 여러분, 인생으로서 이 길을 알고 사시기 바랍니다. 이 길을 당신은 알아야 됩니다. 구원에 이르는 길, 천국에 이르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길밖에 없습니다. 정문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천국에 이르는 문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예수 외에는 구원이 없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이 말은 헬라문장으로 보면 내가 그 길이다, 하나님이 내신 그 길이다, 나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는 말입니다. 예수님만이 구원의 길입니다. 예수님만이 영생의 길입니다.
  불교는 그 근본사상이 범신론입니다. 불교는 모든 사람을 신으로 봅니다. 그러므로 모든 종교도 다 범신론 입장에서 인정을 합니다. 기독교도 좋고 도교도 좋고 힌두교도 좋고 천주교도 좋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원론에 있어서도 범신론적으로 동일시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 어디를 보아도 다른 종교의 원리가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암시하고 있는 성구가 한 구절도 없습니다. 한 단어도 없습니다. 그러나 불교학자 법정스님은 천국과 극락은 같은 곳이라고 범신론적으로 접근을 했습니다. 천국과 극락은 같은 곳이 아닙니다. 그는 이렇게 비유했습니다. 산이 있는데 동쪽에서 올라가든지 서쪽에서 올라가든지 올라가는 길은 다르지만 꼭대기에 가면 같은 봉우리다, 그래서 천국과 극락은 같은 곳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성경에는 불교와 기독교가 같은 산이라는 전제가 없습니다. "나 외에는 다른 신을 내게 두지 말라" 구원의 산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불교는 같은 산이 아닙니다. 불교는 우리와 다른 산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올라가도 꼭대기가 다릅니다. 구원은 한 길밖에 없습니다. 이것을 믿어야 합니다.

  천국에 이르는 길

  저가 아는 의사 한 분은 하늘나라를 이미 갔습니다. 일류대학을 나와서 외국가서 5년간 유학을 했습니다. 훌륭한 의사이자 대학교수입니다. 그러나 이 사람이 자기 병을 모르고 췌장암으로 죽었습니다. 그는 죽기 보름전에 죽음이 두려워서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교회를 다녔고 집사이면서도 자기 죽음이 앞에 다가왔는데 천국에 갈 확신이 없는 것입니다. 구원의 확신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음 앞에 벌벌 떨고 있는 것입니다. 그에게 복음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게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생명을 맡기라고 했습니다. 예수가 천국에 이르는 길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죽기 3일전에 "목사님,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이제는 주님이 내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라는 고백을 했습니다. 주 안에서 그는 하늘나라 간 것을 믿습니다. 구원의 길은 한 길 밖에 없습니다. 천국에 이르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그 길을 확신하고 그 길을 모르는 자들에게 가르쳐 주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태신자의 열매로 찾아온 여러분들은 진정으로 인생의 길을 아시는 그 예수님께 우리의 생애와 생명을 맡기고 천국에 이르는 길이 되시는 그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시기 바랍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감시를 떠날 수 없습니다.
  요즘 불황이라고 합니다. 장사하시는 분들이 참 힘들다고 합니다. 부산에 가면 달맞이갈비촌이라는 아주 유명한 식당가가 있습니다. 고급 손님이 많이 오고 피서객이 많이 오는 식당가입니다. 별장처럼 되어 있는 그 식당들이 한 오륙십개 정도 될 것입니다. 거기에 얼마 전에 회의가 있어서 갔는데 골목에 사람들이 거의 없었습니다. 식당에도 우리 팀과 다른 몇 사람밖에 없었습니다. 종업원 이야기가 손님이 안온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불황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불황인데도 한 가지 사업은 불황이 아닙니다. 스파이용품 사업입니다. 그중에 감시카메라가 불티나게 계속 팔려나갑니다. 오늘 현대사회는 감시카메라 문화입니다. 우리는 문만 나서면 이제는 감시카메라의 감시를 받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차를 몰고 길에 나가보면 시내든지 국도든지 고속도로에 감시카메라가 다 있습니다. 관공서에 가도 감시카메라가 다 있습니다. 버스나 전철을 타도 다 있습니다. 왠만한 빌딩의 엘리베이터나 주차장에도 감시카메라가 다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감시카메라 문화는 우리의 불행입니다. 알고보니 우리 하나님도 감시카메라를 가지고 우리를 감시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일생을 감시하고 있습니다.

  맺는 말

  요한계시록에 보면 하나님이 인간들을 심판하실 때 책을 펴놓고 심판하신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이 책에 무엇을 기록해 놓았느냐 하면 우리의 일생동안 살아온 행위가 기록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시면서 심판한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현대말로 하면 하나님은 감시카메라를 가지고 필름을 돌리면서 심판할 것입니다.
  여러분, 한 가지 믿읍시다. 하나님의 감시카메라는 우리를 망하게 하는 카메라가 아닙니다. 천국가는 길을 잃어버릴까봐 바로 안내하시는 사랑의 카메라입니다. 그 하나님의 카메라 앞에 믿음으로 살아가는 인생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내신 창조의 길, 축복의 길, 구원의 길, 우리 하나님이 명하고 있는 그 길로 우리 인생이 살아가는 축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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