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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정직한 지도자의 삶 (삼상 12: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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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황요한 목사

얼마전 뉴욕타임즈는 우리나라를 러시아와 더불어 세계에서 가장 부정과 부패가 심한 나라 중의 하나라고 소개한 적이 있었습니다. 국가적으로 그러한 부끄러운 뉴스를 접한 심정은 참으로 착잡하기 이를데 없었습니다. 흔히 우리를 가리켜 뇌물공화국이란 표현을 하고 있는데, 이는 무슨 일이든지 뇌물이 아니고서는 되는 일이 없는, 그래서 외국기업들이 한국에 진출하면 뇌물쓰는 법부터 가르친다는 어처구니 없는 현실이 세계의 언론에도 노출된 것입니다.

그러한 뉴스가 나왔을 때, ‘아닙니다. 그것은 잘못된 보도입니다.’ 라고 반박 한 마디 못하고 부끄러워할 수 밖에 없는 그런 우리의 현실을 참으로 가슴 아프게 생각합니다. 곳곳에서 부정부패로 끊임없이 공무원이나 기업인들이 구속되는 뉴스가 주종을 이루는 현실 속에서 본다면 어찌보면 그런 뉴스가 우리에게 일상생활이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어려서부터 머리가 희어질 때까지, 이제는 사역을 마치고 은퇴의 시간이 다가온 사무엘 선지자가 백성들을 길갈에 모아놓고서 마지막 결산을 하고 있는 장면입니다. 그는 백성들에게 이렇게 선언합니다. "이제 여호와 앞과 기름 부은 자 앞에서 내게 대하여 증거하라. 지금까지 너희들 가운데서 누구의 소나 나귀를 취하였다든지, 누구를 속였다든지, 누구를 압제하였으면 고하라"

잠언은 말씀합니다. " 무릇 이를 탐하는 자의 길은 다 이러하여 자기의 생명을 잃게 하느니라" (잠1:19) 고 하셨고, "속이는 저울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신다" (잠 11:1) 고 하셨습니다. 이는 곧 섬기는 자가 오히려 평안을 누리고, 정직한 자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 인정받는 사회를 주님께서 원하고 계심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때때로 성도 여러분의 가정이나, 회사에서 어떤 이유로 재판을 해야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는 관심이 무엇입니까? 이것은 정직하고 옳은 일이기에 정의가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는 확신보다는, 경력좋은 변호사만 잘 사면 이긴다는 가치관이 더 우세하지 않습니까? 전관예우라는 잘못된 전통이 존재하는 우리 법조계에서는, 변호사의 능력에 따라서 형무소에 갈 사람도 석방이 되고, 석방 될 사람도 형무소 가는 어이없는 현실이기에 돈은 얼마든지 줄 테니까 이기게만 해달라는 것이지요.

오래 전,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한 목회자가 은퇴하시자 모인이들이 한결같이 ‘목사님, 성공하셨습니다. 승리하셨습니다.’ 라고 하자 그 분이 손사래를 쳤어요. ‘아닙니다. 아직 아닙니다. 내가 은퇴하고 나서도 몇 년은 더 살지 모르는데.....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시는 날까지 평가는 아직 이릅니다"

저는 그 분의 말씀을 듣고서 그 분을 더욱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니까 그 분이 사무엘의 고백을 그대로 따라하신 것 같아요. 사무엘 선지자는 자신이 하나님 앞과 지도자들 앞에서 마지막 평가를 받기를 원했을 때, 4절에 보면 백성들이 한결같이 말하기를 ‘당신은 우리를 속이지 않았습니다. 압제하지도 않았습니다. 뉘 손에서 아무 것도 취한 것이 없습니다.’라고 응답하며 정직한 지도자임을 공인하였습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뇌물을 받았거나, 명예를 위하여 부당한 권력을 행사하였거나, 자신의 편의를 위하여 거짓된 삶을 산 적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백성들은 사무엘의 정직성과 청렴도를 높이 인정하고 존경했습니다. 우리의 삶의 결론이 이렇게 정리된다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하지만 사무엘은 그것으로 만족하지 아니하고 23절에서 이렇게 다짐합니다.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치 아니하리라" 죽음이 내게 찾아 올 때까지 내가 여러분들을 위해서 기도하면서 청렴과 결백으로 끝까지 살겠다는 다짐이지요.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저 역시 큰 도전이 되었습니다. "나도 내 임기를 마치고 은퇴하는 시간 뿐만 아니라 죽음이 다가오는 그 시간까지 사무엘의 고백처럼, 존경하는 그 목사님의 고백처럼 살아야 되겠구나....." 이 말씀을 듣는 성도 여러분들에게도 큰 귀감이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정직한 지도자가 없다고 불평하고, 이 나라는 썩었다고 이야기 하기 이 전에 내가 썩지 않았는지, 내가 정직하지 않았는지, 내가 뇌물을 더 좋아하지 않았는지를 뒤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온통 이 사회는 사람이 모이는 곳이면 대통령을 욕하고, 장관이나 국회의원을 욕하고 비난하는 분위기로 가득차 있습니다. 식사의 자리에 가도, 모임의 자리에 가도 온통 비난하는 사람들만 있는것 같은 착각을 받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비난과 비평이 아니라, 바로 오늘 내가 하나님 앞과 사람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삶을 다짐하고 실천하되 죽음이 다가오는 그 시간까지 그리 하겠노라고 하는 사무엘의 정직한 삶이 우리에게 필요할 줄로 믿습니다.

요즘 시대를 가리켜서 웰빙 (Well-being)시대라고 그러지요. 풍요로운 삶에 대한 욕구가 사람들로 하여금 웰빙에 관심을 갖게 하였는데, 웰빙도 두 가지로 나누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즉 과거의 웰빙은 개인적인 삶을 위주로 하여 어떻게 하면 보다 더 나은 삶을 영위할 수 있을까 하고 고민했다면, 최근의 흐름은 자신 뿐만 아니라 가족, 직장을 아우르는 분위기가 지배적입니다.

과거같으면 집에 KT 전화 한대면 행복했는데, 이젠 가족 수대로 핸드폰이 있어야 하는 시대이지요. 한 달에 전화요금 만 오천원이면 족했는데, 다섯식구 모두 휴대폰을 가진 후에는 아무리 절약해도 20만- 30만원은 쉽게 나오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거 감당하려니까 아르바이트나 부업 해야지요? 엄마라고 집에 편안히 있을 수 없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과거에는 자기 중심의 웰빙이었는데, 최근의 웰빙은 조금 달라졌어요. 자기 자신 뿐만 아니라 이제는 범위가 점점 넓어져서 스포츠, 레저, 친환경적인 삶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진보적 개념의 웰빙시대가 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의상의 흐름도 스포츠 의류에 도시적 감각을 가미한 의상이 유행을 이루고 있습니다. 회사에 출근했다가 퇴근 하면서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도 괜찮은 복장, 혹은 가까운 주변의 산을 올라도 괜찮은 복장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도시화된 복장과 환경친화적인 복장이 가미된 것을 '아웃트로 룩'이라고 합니다.

또 하나 있습니다. '타임리스 웨어'라고 하는 것인데, 이것은 시간이나 장소등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분방한 스타일의 복장들을 의미합니다. 정장인지 무슨 스포츠 웨어인지 아니면 캐주얼인지 뚜렷한 구별없이 다양한 기능들을 소화할 수 있는 것을 선호하는 시대를 위한 컨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슨 이야기입니까? 점점 자신을 중심으로 하여 웰빙의 범위를 넓혀나가는 추세를 모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이제는 좀더 진보된 의미의 영적 웰빙 시대를 맞았으면 좋겠다"고 말입니다. 전에는 자기 중심적인 신앙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였지만, 이제는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헌신적인 삶을 살아가는 전천후 영적 웰빙의 주역들이 되었으면 하고 소망해 봅니다.

지난 금요일, 8월27일에 광주에서 큰 사건이 있었습니다. 감리교회 145만 성도가 전국의 191개 지방을 중심으로 광주에서 역사적인 모임을 갖었습니다. 10개 연회 감독님과 191개 지방의 감리사님, 그리고 선교의 열정으로 가득한 교회의 성도들이 광주광역시 염주 실내체육관으로 모였습니다. 수백대의 관광버스와 교회버스들이 금요일 오후 1시를 기점으로 광주로 모여들기를 시작 하는데 그 모습이 장관이었습니다.

1시간 동안 광주 전역을 지방별로 나누어 전도사역을 한 뒤, 오후 3시에 체육관으로 모여 지난 119년 전에 이 땅 광주에도 복음을 허락하시고, 특별히 아펜젤러선교사를 통하여 놀라운 역사를 이루시던 중, 인천에서 목포로 가던 아펜젤러선교사가 군산 앞바다에서 풍랑으로 44세에 순직한 지역이기에 더욱 의미가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어제, 토요일 아침에 숭의교회 전도집회를 인도했습니다. 숭의교회 교역자와 장로 , 조장과 전도요원들이 모두 모인 집회였습니다. 1층 성전을 가득 메운 가운데 기도와 찬양, 그리고 말씀으로 충만한 은혜를 나누는 자리는 그 열기가 대단했습니다.

집회 중 제가 한가지를 물었습니다. 어제 광주대회 다녀온 사람 손들어 보라고 말입니다. 제 생각에는 이중에서 일부가 다녀오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이었는데 놀랍게도 전원이 손을 드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사실 저도 금요일 오후11시40분에야 도착을 하였고, 주보 마무리를 위해 사무실에 들러 정리한 뒤 새벽 1시 30분에야 집으로 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늘 성도들의 모습을 보고 들으니 그만 감동의 물결이 저를 엄습하는듯 했습니다. 그들이 점심식사 후 인천 지역 곳곳에 전도를 위해 나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이렇게 고백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 여기 세상사람들이 감당할 수 없는 주의 군사들이 여기 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당시 기독교 핍박이 극심하여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같은 핍박과 이로 인하여 궁핍과 환란과 학대를 받았으나 끝까지 신앙을 지키기 위해 지하동굴이나 갑바도기아 산울로 피신한 성도들을 가리켜 세상이 감당치 못할 자라고 고백한 적이 있었습니다. (히 11:33- 38)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자신을 위해서 취한 신앙적 행동들을 뒤돌아 보면 좋겠습니다. 때로는 우리는 이해득실을 따져가면서, ‘이번 모임은 내게 도움이 될 거야....' 그래서 참석한다거나 ‘오늘 모임은 내게 부담이 될지몰라.....’ 그래서 빠지는 등 신앙조차도 이해득실을 따지면서 살아오지 않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저는 숭의교회 집회를 인도하면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 그래, 이 교회가 이만큼 성장한 데는 저들의 한 영혼을 구원코자하는 열정과 눈물겨운 헌신의 땀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여호수와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세겜이라고 하는 곳으로 불러 모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언약 갱신을 선포합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성실과 진정으로 그를 섬길 것이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백성이 대답하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는 일을 우리가 결단코 하지 아니하오리니..." (수 24: 1-18) 여호수아가 백성들에게 하나님 앞에서 새롭게 언약을 갱신하도록 촉구하자 백성들은 순결한 신앙으로 살 것을 결단하며 화답하고 있는 장면입니다.

오늘 사무엘 선지자 역시 이스라엘 백성들을 길갈에 모아놓고 언약의 갱신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지도자 자신이 먼저 깨끗해야 지도력이 생기고 권위가 따르는 것이기에 지도자의 정직성과 청렴도는 너무나도 중요한 요소인 것입니다. 그럴때에 비로소 백성 앞에서 당당하게 말씀을 권면하며 새로워지기를 촉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권을 갱신해보면, 5년 전의 사진을 가지고는 않된다고 하여 새롭게 사진을 찍어 제출하게 됩니다. 여전히 같은 사람이지만 5년 전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은 조금이라도 달라져 있다는 전제에서 수긍이 가는 제도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언약을 갱신한다는 의미는, 5년 전의 나의 모습이 그 때는 그만하면 괜찮은줄 알았는데 이제 생각해 보니까 그 때에는 너무나 어린아이와 같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어 이제는 어린 아이의 모습을 버리겠다는 다짐인 것입니다.

주님, 5년 전에도 헌신했지만 오늘 다시금 주님 앞에 언약을 갱신하기 원합니다. 성장한 모습으로, 장성한 사람의 모습으로 언약을 감당하기 원합니다. 매년마다, 시간 시간마다 하나님 앞에 언약을 갱신하기 원합니다. 성도여러분, 성장해야 합니다. 변화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자신의 삶을 내어놓고 때로는 회개하며 언약의 새로운 갱신을 통해서 온전한 삶으로 나아가기를 촉구하는 사무엘, 그 정직한 지도자의 삶을 바라보면서 오늘 이 시대가 요구하는 정직한 지도자의 삶을 살아가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고마우신 하나님, 공동체의 언약 갱신을 통하여 하나님과 사람 앞에 부끄러운 삶이 되지 않기를 다짐하는 이스라엘 공동체를 기억합니다.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모습으로 사무엘은 자신의 물질적, 정치적, 인격적 삶에 있어서 모든 백성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영적으로 다시금 인도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부족한 종에서 사무엘의 이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우리 모든 평안의 성도들이 이 사무엘의 정직한 삶을 따라가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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