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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행복의 본질 (마음의 청결) (마 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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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신삼철 목사

시작하는 말 

행복은 마음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누차 말씀드렸습니다. 특히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행복의 본질을 "마음의 청결"에서 찾으셨습니다. 마음의 청결은 "청소된 마음, 악에서 자유로운 마음"을 말합니다.

미국 오클라호마 주립대의 한 연구팀이 동물의 지능한계를 알아보기 위해 15세 된 침팬지에게 수화를 가르쳤다고 합니다. 갖은 노력을 다해서 140여개의 단어를 가르치고 이 단어들을 자기 생각에 따라 결합할 수 있도록 해보았습니다.

이 침팬지가 수화를 통해서 어떤 의사를 표현하는지가 중요한 관심사였습니다. 그랬더니 이 침팬지가 맨 처음으로 표현한 말은 이것이었습니다. “Let me out.” "나를 놔달라, 나에게 자유를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제발 당신들 때문에 귀찮아 죽겠으니 "나를 좀 자유롭게 해달라"는 의사를 표현한 것입니다.

"패트릭 헨리"가 말한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라는 말처럼 인간은 누구나 자유를 갈망하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그 자유는 "진리 안에서의 자유이고 예수님 안에서의 자유"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죄악과 세상과 악마와 더러움에서의 자유"를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5: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마음이 자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라고 달리 말할 수 있습니다.

1. 마음이 악에서 자유한 자는 행복할 수 있습니다.

마음이 악한 자들은 마음이 악에게 얽매인 자들을 말합니다. 악의 쇠사슬에 얽매여 악의 지배를 받는 마음의 소유자들을 말합니다.

노아 시대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창6:2)는 말씀대로 "자기들 좋아하는 대로" 살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았습니다. 육체를 따라 자기들 좋아하는 대로, 자기들 뜻대로 살았다는 말입니다.

그때의 사람들은 네피림이었고, 용사요 유명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생령의 모습을 상실했습니다. 타락한 인간의 육체뿐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창6:5-6)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의 날들은 120년이었습니다. 

사사시대의 말기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삿17:6)고 했습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산 결과는 하나님을 분노케 했고, 결국은 대적을 스스로 일으키고 말았습니다.

전도서 9:3절에 이런 자들은 "인생의 마음에 악이 가득하여 평생에 미친 마음을 품다가 후에는 죽은 자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평생에 미친 마음을 품다가 죽은 자에게로 돌아갑니다. 산자에게로 돌아가지 못합니다.

바울 사도는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갈5:19-21)고 말했습니다.

육체를 따라 사는 것은 순간쾌락을 가져 올 수는 있습니다. 잠시 기분을 좋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불행을 초래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악에 서 자유로울 때에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2. 마음이 강퍅함에서 자유한 자들은 행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이 자손은 얼굴이 뻔뻔하고 마음이 강퍅한 자니라 내가 너를 그들에게 보내노니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하라 그들은 패역한 족속이라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들 가운데 선지자 있은 줄은 알지니라 인자야 너는 비록 가시와 찔레와 함께 처하며 전갈 가운데 거할지라도 그들을 두려워 말고 그 말을 두려워 말지어다 그들은 패역한 족속이라도 그 말을 두려워말며 그 얼굴을 무서워 말지어다 그들은 심히 패역한 자라 듣든지 아니 듣든지 너는 내 말대로 고할지니라"(겔2:4-7)고 말씀하셨습니다.

강퍅한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로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마음이 강퍅한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기는커녕 가시와 같이 찌르고, 찔레와 같이 할퀴고, 전갈과 같이 쏩니다.

어느 교단 신문에 "전쟁과 평화"라는 제목의 공익성 광고가 게재됐습니다. 그리고 그 내용에 두 교회의 당회실 풍경이 소개되어 있었습니다.

별명이 "법이요"라는 장로가 있는 당회가 있었습니다. 반면에 "법을 잘 알고 지키시오. 그러나 주장하지는 마시오."라는 장로가  있는 당회도 있었습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법이요" 장로가 있는 교회는 오히려 탈법 행위가 많아서 항상 전쟁 분위기였고 "법을 잘 알고 지키시오. 그러나 주장하지는 마시오."라고 하는 장로가 섬기는 교회는 항상 평화로웠다는 이야기입니다.

그야말로 "전쟁과 평화"로 대비될 만한 교회들의 이야기였습니다. 그리고 광고는 "전쟁과 평화"는 "군림과 섬김"의 차이라는 한 마디를 덧붙이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마음 아프게도 분쟁에 사로잡힌 교회들을 종종 봅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으레 "군림의 횡포"가 자리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먼저 된 자의 본이 아쉽습니다. 주님은 섬기려고 오셨습니다. 크리스천은 섬김의 사람들입니다. 네피림들이 아닙니다. 용사들이 아닙니다. 유명한 자들이 아닙니다.

강퍅한 마음을 가진 자들 속에는 가시와 찔레가 있습니다. 전갈과 독사가 있습니다.  바로가 그랬습니다(출9:12). 예레미아 시대의 백성들이 그랬습니다(렘3:17). 에스겔의 예언을 받는 백성들이 그랬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이 그랬습니다.

하나님께서 욥에게 "그 마음이 돌같이 단단하니 그 단단함이 맷돌 아래짝 같구나"(욥41:2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맷돌 아래짝 같은 강퍅한 마음은 행복의 씨앗이 자랄 수 없습니다.

3. 마음이 죄악에서 자유한 자들은 행복할 수 있습니다.

후진국의 특성은 "목소리가 크고, 부패지수가 높고, 우상숭배와 미신이 성하다"고 하는 것은 누구나 다 잘 아고 있습니다.

고려의 멸망도 불교의 미신화와 관계가 깊습니다. 요승 신돈이 공민왕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고려의 조야를 온통 무당사상으로 병들게 했기 때문입니다.

제정러시아도 같습니다. 1905년 시베리아 출신 수도승인 라스푸틴이 제정러시아의 수도 페테르부르크에 나타나 요사스런 예언으로 사회를 혼미케 하고 급기야는 황제 니콜라이 2세와 황후 알렉산드라의 총애를 받아 내정과 외교정책을 좌지우지했습니다. 그는 1916년까지 무려 10년간 무당정치를 했습니다.

시편기자는 "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시66:18)고 말했습니다.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습니다. 기도를 거절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아에게 "나 여호와가 이 같이 말하노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혈육으로 그 권력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는 사막의 떨기 나무 같아서 좋은 일의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간조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거하지 않는 땅에 거하리라"(렘17:5-6)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하나님에게서 떠납니다. 하나님도 그러한 마음에 이상 더 계실 수 없으십니다. 하나님과 멀어지면 좋은 일의 오는 것을 절대로 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죄악을 품은 마음은 간교한 마음이 됩니다(렘23:26). 교만한 마음이 됩니다(왕하14:10). 형제를 마음으로 미워하게 됩니다(레19:17).

4. 마음이 청결한 자는 행복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5:8)라고 가르치셨습니다.

1). 도덕적으로 정결한 마음을 말합니다. 도덕적으로 켕기는 것이 없는 마음을 말합니다. Plato은 도덕적으로 불의와 부정에서 자유로움을 뜻하며, 깨끗하고 부끄러움이 없는 것을 말한다고 했습니다.

2). 윤리적으로 정결한 마음을 말합니다.  윤리적으로 정결한 마음을 말합니다. 다윗은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누구오며 그 거룩한 곳에 설자가 누군고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데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치 아니하는 자로다 저는 여호와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으리니"(시24:3-5)라고 말했습니다. 

3). 영적으로 정결한 마음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을 시켜서 "맑은 물로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케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을 섬김에서 너희를 정결케 할 것이며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겔36:25-27)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 내지 마시고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키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시51:10-12)라고 기도했습니다.

끝맺는 말

예수님께서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5: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율법의 창시자 모세는 하나님의 등만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등도 사실은 지나가는 천사의 등이었습니다.

욥은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욥42:5)라고 말했습니다. 욥이 보았다는 주님이 과연 하나님의 본체 이었을까요? 물론 아닙니다.

요한복음 1:18절에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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