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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행복의 조건 (신 3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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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이근수 목사

할렐루야! 여러분 행복하십니까?

행복에 대해서 관심이 많은 시대입니다.
책 제목에 행복이라는 단어가 포함된 책이 현재 한 유명 서점에서만 904권이 유통되고 있습니다. 행복은 또 전파를 타고 흐릅니다. KBS 2TV의 “TV 동화 행복한 세상”과 “해피 투게더”, MBC의 “행복주식회사”, 그리고 CBS 라디오의 “행복한 책읽기”와 “고도원 이효연의 행복을 찾습니다” 등이 있습니다.
기업광고에도 행복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올 연초에는 한 카드회사가 “행복하세요. 부탁이예요.”라고 외쳤고 또 어떤 주유소 광고에는 “행복하셔야 해요. 다 잘 될 거예요.”라고 했습니다.
정치권에서도 행복을 매우 중요한 개념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열린우리당 당가 제목은 ‘행복한 대한민국’입니다. 그리고 최근에 제정된 특별법을 홍보하기 위해 정부에서 정한 캐치프레이즈는 ‘행복특별법’입니다. 지난 번 대통령 탄핵 때 한나라당이 초안한 탄핵소추문건에도 대통령을 탄핵해야 하는 이유 중에 국민들의 행복추구권을 짓밟았다는 표현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헌법은 제10조에서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모든 국민은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행복추구권이 있다고 행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닙니다. 추구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얻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습니다.
지난 26일(목) 허씨라는 사람이 “공중시설에서 흡연을 제한하도록 규정한 국민건강증진법 시행규칙은 흡연자의 행복추구권 등을 침해해 위헌”이라고 헌법소원을 냈습니다. 이에 대해 27일 헌법재판소가 판결을 발표했습니다. 재판부는 “흡연을 하지 않거나 흡연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인 혐연권은 흡연권보다 상위의 기본권”이라고 판결하였습니다.
ㄱ씨는 자신이 사귀고 있는 여자친구와 결혼을 약속했으나 애인의 부모가 결혼을 반대한다는 이유로 진정서를 인권위에 제출했습니다. “여자친구의 부모가 헌법에 보장된 ‘행복추구권’을 침해했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얼마 전에는 학교정화구역에서 극장 영업을 금지하고 있는 학교보건법(6조1항)이 위헌적 규정이라며 서울중앙지법 등이 낸 위헌법률심판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학교 경계선에서 최대 200m 안에 극장을 설치하지 못하도록 한 조항은 극장 운영자의 직업의 자유, 표현 및 예술의 자유를 제한하고 있으며, 극장을 이용하고자 하는 학생들의 행복추구권을 침해하여 헌법에 위반된다”고 밝혔습니다.
15개 동성애자 단체로 구성된 ‘동성애자 차별반대 공동행동’은 동성애를 변태적인 성행위로 규정한 청소년보호법 시행령 제7조가 “헌법이 명시하고 있는 개인의 행복추구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헌법소원을 냈습니다.

모든 국민이 헌법에 보장된 행복추구권을 가지고 열심히 행복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과연 무엇이 행복입니까? 어떻게 하는 것이 행복을 얻는 길입니까?
저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사는 것을 행복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안목의 정욕과 육신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 행복이라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잘 먹고 잘사는 것이 행복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갖가지 행복이 우리 가운데 넘쳐나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많은 사람이 쓰다 버린 일회용 행복들이 쓰레기처럼 쌓여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사람들은 새로운 행복을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일회용 행복에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끊임없이 새로운 행복이 생산되고 소비되는 피곤한 악순환에서 벗어나시기 바랍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의 참된 행복의 근거이신 예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영원한 행복의 조건인 구원의 삶을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1. 모세의 행복 선언

제가 시 한 편을 읽어보겠습니다.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 없는 이 발 길
지나온 자국마다 눈물 고였네.
선창가 고동 소리 옛 님이 그리워도
나그네 흐를 길은 한이 없어라

타관 땅 밟아서 돈지 십년 넘어 반평생
사나이 가슴 속에 한이 서린다.
황혼이 찾아들면 고향도 그리워져
눈물로 꿈을 불러 찾아도 보네

낯익은 거리다마는 이국보다 차가워라
가야할 지평선에 태양도 없어
새벽별 찬 서리가 뼈골에 스미는데
어디로 흘러가랴 흘러갈소냐

나그네 설움(고려성 작사 이재호 작곡 백년설 노래)

슬픈 나그네, 서러운 나그네, 한 많은 나그네, 갈 곳이 없는 나그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광야에서 40년 동안 나그네 생활을 하였습니다. 물이 없어서 고생하기도 했고 먹을 것이 없어서 힘들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40년 동안 천막을 치고 살면서 아무 것도 없는 광야를 떠돌아 다녔습니다. 온갖 고생과 어려움을 헤치고 40년을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광야에서 나그네로 살고 있습니다.

신명기 33장은 모세의 유언적 축도입니다.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백성들을 축복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모세는 이스라엘을 여수룬이라고 부릅니다. 정직한 자라는 뜻입니다. 70인역은 사랑스러운 자라고 번역합니다. 하나님 앞에 정직하여 사랑스러운 이스라엘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3절 말씀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호와께서 백성을 사랑하시나니......”
이 사랑스러운 백성들이 모세의 축복의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120살의 노쇠한 지도자 모세는 이 사랑스러운 백성들을 지파별로 일일이 축복한 후에 선언합니다.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

만일 현대인이 이 모세의 선언을 들었다면 당황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행복자라구? 뭐가 행복하다는 거야? 40년을 광야에서 온갖 고생을 다했는데 행복하긴 뭐가 행복하다는 거야? 그렇게 고생해서 지금 나아진 게 뭐가 있어? 나도 사람이야. 그런 거짓말을 참는 데도 한계가 있다고.”

여러분들은 이 모세의 선언을 들으시면서 어떤 마음이 드십니까? 이 모세의 선언이 나를 향한 것이라고 할 때 어떤 반응을 보이실 겁니까?

모세는 이 사람들을 축복했습니다. 40년 나그네 생활로 지친 백성들의 고단한 삶을 위해 축복을 선언했습니다. 죽기 전에 힘을 다해 그들을 축복했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느냐가 중요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행복한 사람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선언했습니다.
“너희는 행복자로다!”

여러분,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보시느냐 입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불행하다고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돈이 없어서, 실패해서, 못 배워서, 못 생겨서, 뚱뚱해서, 줄이 없어서, 행운이 없어서, 건강을 잃어서… 불행하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의 생각과 상관없이 우리 하나님의 선언에 우리의 삶을 맡기시기 바랍니다.
“너는 행복자로다!” “너는 행복자로다!”
이 말씀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멘하시기 바랍니다.

2. 행복의 조건: 구원

팔리옌너(pollyanna)라는 말이 있습니다. 맹목적인 낙천주의자를 뜻하는 말입니다. 앵무새처럼 맹목적으로 따라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우리가 행복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맹목적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행복한 이유가 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이 행복한 이유를 분명히 말했습니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뇨?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오 너의 영광의 칼이시로다.”

이것이 행복의 조건입니다. 여호와의 구원을 얻었다는 말입니다. 구원이 바로 행복의 조건입니다. 이스라엘은 구원받았기 때문에 행복한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왜 구원이 행복의 조건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구원받은 사람이 어떻게 행복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이 방패와 칼이 되어주시기 때문입니다. 방패처럼 보호해 주시고 칼처럼 승리를 주십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구원받은 사람, 행복한 사람의 과거의 특징과 미래의 특징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행복한 사람의 과거는 방패처럼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한 삶입니다.
행복한 사람의 미래는 영광의 칼로 승리케 하시는 약속의 삶입니다.

이스라엘의 과거는 애굽에서의 고달픈 노예생활과 광야의 고단한 삶으로 가득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러한 삶을 구원을 통해 은혜의 삶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애굽 군대의 칼에 죽게 되었을 때 홍해 바다를 갈라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목이 말라 죽게 되었을 때는 반석에서 물을 내었습니다. 양식이 떨어져서 죽게 되었을 때는 하늘에서 양식이 내렸습니다. 길이 없는 광야에서 불기둥과 구름 기둥으로 인도했습니다. “이 사십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고 네 발이 부릍지 아니하였느니라”(신8:4)는 말씀처럼 하나님의 보호를 받았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가르치는 것처럼 사랑으로 보살피며 지도하셨습니다. 고난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습니다. 고난 속에 언제나 있었던 하나님의 은혜를 볼 수 있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또한 이스라엘의 미래는 막막한 두려움과 걱정으로 가득했습니다. 강하고 무서운 적들이 난공불락의 요새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이기겠습니까?
그러나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하나님께서 영광의 칼을 들어 이기게 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두려운 미래 속에 승리를 약속하신 하나님의 칼을 볼 수 있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을 행복자라고 선언했습니다. 과거 광야 40년은 하나님의 은혜로 가득했고 앞으로 다가올 미래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승리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지나간 여러분의 삶을 어떻게 보기를 원하십니까? 혼자 발버둥 치며 살았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은혜로 살았습니까?
앞으로 다가올 여러분의 미래를 어떻게 보기를 원하십니까? 두려움과 실패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이 약속하신 승리의 삶입니까?

구원받은 사람은 알고 있습니다.
인생을 보는 눈을 바꿔야 합니다. 지금까지 우리와 함께 하신 하나님을 보아야 합니다. 그 은혜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함께 하시며 그 분의 약속을 이루실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결론

이스라엘이 왜 행복자입니까?
뒤를 보면 팍팍한 광야 40년이요 앞을 보면 막막한 낯선 땅인데 뭐가 행복합니까?
구원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뒤를 보면 하나님의 도우심이요 앞을 보면 하나님의 이기게 하심입니다.
뒤를 보면 하나님의 은혜요 앞을 보면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뒤를 보면 사랑이요 앞을 보면 소망입니다.

행복한 삶을 사는 10가지 원칙(아서 칼리안드로․ 배리 렌슨 지음)
예배가 끝난 후 축하 오찬이 열렸다. 그때 나는 처음 보는 사람들과 같은 테이블에 앉게 되었는데 그들 중에 60대로 보이는 한 여성이 인상에 남았다. 그는 매우 사랑스럽고, 따뜻하고, 점잖고, 품위 있어 보이는 여성이었다. 그러나 그의 얼굴에 진 주름에서 고된 인생의 자취를 엿볼 수 있었다. 대화가 무르익자 그는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10대였을 때 그는 독일의 강제수용소로 끌려간 적이 있었는데 그곳 가스실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보는 순간 그것이 자기 가족의 것이라는 사실을 직감할 수 있었다고 했다. 결국 그는 혼자 살아남았고 전쟁이 끝나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되었지만 입고 있는 옷 외에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던 그때의 비참한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그는 당시가 자기 인생에 있어서 ‘선택의 갈림길’에 놓인 순간이었다고 했다. 그때의 선택이 자신의 인생을 결정적으로 바꿔 놓았다는 것이다. “나는 결정을 해야만 했습니다. 앞으로 살아갈 인생이 남아 있었으니까요. 행복한 삶을 살 수도 있고, 후회와 증오로 가득 찬 불행한 삶을 살 수도 있었습니다. 난 행복해지기로 했죠. 하지만 쉽지는 않았어요. 단 하루도, 그 당시 4년간의 악몽과 끔찍한 기억들이 나를 괴롭히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른 지금 나는 가치 있는 인생을 살아왔고 감히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결정해야 합니다. 행복하게 살 것인지 아니면 후회와 증오로 가득한 불행한 삶을 살 것인지를 선택해야 합니다. 어느 쪽을 원하십니까? 만일 행복을 원하신다면 오늘 모세가 이스라엘을 향하여 선언한 말씀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돕는 방패처럼 고난 중에 은혜로 채워주신 주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영광의 칼로 승리를 약속하신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너는 행복자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뇨?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오 너의 영광의 칼이시로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 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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