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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빚진 자의 심정으로 (롬 1: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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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유재명 목사 (안산빛나교회)

                  빚진 자의 심정으로

한 가정에 있어 가장 큰 기쁨이요 행복은 어린 생명을 선물로 받은 것일 것입니다.
저는 교회에서 아이들을 보면 만져보고 싶고 안아보고 싶곤 해서 한 아이를 엄마에게 받아 안아봅니다. 그런데 잘 안기던 아이가 어느 날에서부터인가 엄마가 아닌 다른 사람이 안을려 하면 울기 시작합니다. 이때 무어라 합니까? “어! 이 아이가 엄마를 아네” 합니다. 아이가 엄마의 고향이나 몸무게 가문을 아는 것은 아니지만 아이가 엄마를 아는 것에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우리가 누군가을 안다고 할 때에도 이와 같은 맥락일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타인에 대해 안다는 것은 고작 그 사람의 학력이나 그리고 취미 그리고 직업이나 사는 아파트 정도이니 말입니다. 예수그리스도에 대해서도 말입니다.

두 종류의 삶이 있다 합니다. 하나는 시계적인 삶이고 또 하나는 나침반적 삶입니다. 시계 적 삶은 시계바늘이 시마다 때마다 움직이듯 늘 변하는 사람을 두고 말을 합니다. 나침반적 삶은 원칙이 있습니다. 무엇이 중요한지 기준을 삼고 있는 상태입니다. 나침반은 땅에 떨어뜨리면 어느 순간 흔들릴 수는 있으나 곧바로 무너지지 않고 정리된 삶을 삽니다. 이처럼 모든 환경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절대적으로 복음이라는 기준을 가지고 나침반 적 삶을 살아간 바울은 13절에 그렇게 복음을 위하여 로마에 가기를 원했습니다.

첫째: 로마에 대한 비젼이 바울에게는 있었습니다.

많은 것들로 고비가 있지만 반드시 로마에 가야겠다는 것입니다. 1:9절에‘ 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 라 했습니다. 지금 에베소교회를 세우고 섬기면서도 지금 빌립보교회를 세우고 섬기면서도 자나깨나 바울의 가슴에는 로마가 있었고 그의 삶의 방향에는 로마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몸에 병이 있다고 먹을 양식이 떨어졌다거나 해서 울며 기도한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의 가슴속에는 흐려지지 않는 기도제목이 있었으니 바로 로마였습니다. 바울의 가슴속에 있는 로마는 하나님이 주신 소원이며 하나님이 주신 부담이었습니다. 행23:11절에 ‘ 바울아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 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 하였습니다. 지금 이 말씀은 바울이 감옥에 갇혀 내일이면 죽을지 모르는 사형위기에 있을 때 성령께서 주신 음성입니다. 이처럼 바울뿐만 아니라 참 그리스도인라면 하나님의 소원과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부담이 있어야 합니다. 빌2:13절에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라고 말씀합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하나님이시니’ 이제 나만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하나님의 소원에 우리의 소원을 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복음적 그리스도인의 소원에는 하나님의 뜻이 하나님의 비젼이 담겨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복음의 은혜를 입은 사람임에는 불구하고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면 결국 내 생각만 하게 됩니다. 잠언 29:18절에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했습니다. 이 묵시는 바로 비젼이요 꿈입니다. 그리고 내안에 담겨진 하나님의 기쁘신 소원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꿈과 하나님이 주신 꿈과 비젼은 시작부터가 다릅니다. 이 비젼을 가슴에 담고 살아가는 사람은 하나님의 소원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로마에 가기를 원하는 분명한 목적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주기 위해 가고 싶다는 것입니다. 내게 있는 은혜를 나누어 주고 싶다는 것입니다. 내게도 복음이 되었듯이 너희에게도 복음 되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로마를 통해 세계선교의 비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로마가 가진 경제적 그리고 지리적 그리고 정치적인 영향력을 통해 로마를 넘어 이 땅에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게 하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1:14절에‘ 헬라인에게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 라 고백합니다. 이처럼 바울은 로마를 넘어 헬라인에게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들 모두를 가슴에 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우리가 가진 신앙의 품을 넓혀야 합니다. ‘나와 우리’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모두를 품을 수 있는 예수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져야 합니다. 창49:22절에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합니다.  샘 곁의 무성한 가지처럼 복음안에서 복음이 되는 그런 교회, 그리고 그 가지가 담을 넘었듯이 나와 우리를 넘어 모두를 품을 수 있도록 넘는 가지가 되어야 합니다.

둘째: 복음의 은혜를 입은 바울은 모두에게 빚진 자의 심정으로 삶을 살았습니다. 

14절에 ‘ 헬라인에게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빚진 자의 심정으로 삶을 살았습니까? 남다른 복음의 은혜를 입은 사람들입니다. 바울은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아도 세 번 태장으로 맞았어도 그냥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주님의 남다른 은혜를 입었으니 갚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은혜는 선물로 주어지나 그러나 은혜는 대가없이 주신 하나님에 대한 거룩한 빚입니다. 성 프란시스의 제자가 환상 속에서 천국에 가게 되어 가니 높은 보좌가 있어 “이 보좌에는 누가 앉게 되는지요?” 물으니 천사가 복음을 위해 많이 수고하고도 가장 겸손한 성프란시스가 앉을거라 대답합니다. 환상에서 깨어난 제자는 스승 프란시스에게 시험합니다. “선생님 당신은 자신을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이때 프란시스가 대답하니 “나는 세상에서 제일 악한 사람이라네” 하니 제자가 “그것은 위선입니다. 사람들은 당신을 성자라 말을 합니다.” 합니다. 이때 성 프란시스가 답을 하니 “그것은 사람들이 나에 대해 잘 모르는 것이라네, 내가 받은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크고 많은 줄 아는가, 내게 입히신 은혜를 다른 사람에게 주셨다면 그 사람은 나보다 훨씬 더 복음을 위해 그리고 하나님의 비젼과 소원을 위해 수고했을 것이네 그러나 나는 이 정도 밖에 안 되니 하나님 앞에 아주 게으르고 악한 사람이라네...” 라고 복음에 가장 큰 빚진 자임을 고백 했답니다. 고전9:16절에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 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 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라” 바울은 고백합니다. 복음에 빚진 자의 심정으로 산다는 것은 남다른 은혜를 입은 자가 아니겠습니까! 바울은 이 빚진 자의 심정으로 정신없이 복음을 전했습니다.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그리고 태장을 맞아도 광야에서 고통을 당한다 하더라도  부득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빚을 받을 자처럼 산다면 이는 잘못하는 것입니다.

셋째: 복음에 빚진 자로 산다는 것은 남다른 은혜를 입은 사명으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빚을 받을 자처럼 산다면 이는 잘못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보여주는 헌신으로 보상을 바라거나 대가를 기대하기보다는 은혜에 대한 반응이 헌신이 되어야 합니다. 신앙은 앞으로 있을 것 같은 보상에 반응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내게 임한 은혜에 대해 반응하는 것입니다. 어느덧 과거에 내가 받은 은혜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었습니다. 남 다른 은혜를 입은 사람입니까! 이제는 사명으로 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분명한 사명입니다. 15절“그러므로 할 수 있는데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합니다. 로마는 하나님이 주신 거룩한 부담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로마였으나 바울에게는 부담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은 로마에 자신을 위해 가는데 바울은 복음을 안고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무에게나 부담을 주시는 것은 아닙니다. 기도에 대한 부담, 헌신에 대한 부담, 전도에 대한 부담 고잔 신도시에 대한 부담 등 이 부담에 대하여 복음의 빚진 자의 심정으로 사명을 다하는 바울을 봅니다. 부담이 없다면 괜찮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의 마음에 부담이 있다면 복음에 빚진 자의 심정으로  은혜에 빚진 자의 심정으로 사명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께 사랑을 입은 자의 특권입니다. 

                                      -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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