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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마 10: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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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이덕만 목사

옛날 서커스단이 동네에 들어오면 참으로 그것이 유일한 재미였습니다. 서커스단에서 외줄타기를 하는 곡예사는 공중에 매달린 줄 위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서 긴 봉을 손에 쥐고 기다립니다. 곡예사는 균형을 잡을 때까지 전진하지 않고 기다립니다.
신앙생활에도 균형이 무척 중요합니다. 한쪽으로 치우치면 안 됩니다. 제가 설교하면서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여러분은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은 균형감각을 잘 유지해야 합니다.

그래서 목사님들이 “머리는 차갑게 가슴은 뜨겁게”라는 말을 자주 사용합니다. 머리는 차가워야 합니다. 그리고 가슴은 뜨거워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이것을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는 말씀으로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생활 하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혜로움과 순결함입니다.

특별히 마태복음 10장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고 권능을 주시고 제자들을 보내시는 파송장입니다. 그런데 보냄을 받은 제자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함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보내시면서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양을 이리에게 보냄은 무모한 일입니다. 양을 이리에게 보내는 것은 양을 죽이는 일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그들이 파송되어 핍박을 당하고 잡힘을 당하고 미움을 당할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17절을 보십시오.
“사람들을 삼가라 저희가 너희를 공회에 넘겨주겠고 저희 회당에서 채찍질 하리라”(마 10:17)

18절에도 보십시오.
“또 너희가 나를 인하여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리니 이는 저희와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마 10:18)

22절에도 보십시오.
“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마 10:22)

그렇습니다. 복음을 증거 하는 삶이 쉽지 않습니다. 어렵습니다. 예수님은 한번도 복음을 증거 하는 것이 쉽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핍박을 받습니다. 잡힘을 당합니다. 미움을 받습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디모데후서 3장12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딤후 3:12)

예수 믿으면 복 받고 편하고 잘살고 그래야 될 터인데 오히려 핍박을 받습니다. 오히려 어려움이 있습니다.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데 자꾸 자꾸 어려운 일들이 생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뱀같이 지혜로워야 합니다.
뱀은 우리 신앙인들이 흔히 생각할 때 마귀의 상징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뱀은 혐오스러운 짐승으로 생각합니다. 뱀은 아마 땅꾼들과 또 뱀탕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뱀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뱀을 애완용으로 키우는 사람들도 있고 뱀하고 함께 노는 사람들도 있습니다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뱀을 징그러워합니다.

그러나 뱀은 간교합니다. 뱀은 지혜롭습니다. 그래서 창세기 3장 1절 상반절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창 3:1)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 ‘간교하다’는 말은 원래 “영리하다”, “지혜롭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전도자에게 필요한 것은 뱀 같은 지혜입니다. 지혜가 없으면 효과적으로 복음을 증거 할 수 없습니다.

특별히 모슬렘권이나 공산권의 선교사님들에게는 지혜가 많이 필요합니다. 복음의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무작정 선교하다가는 블랙리스트에 올라가서 감시 대상이 됩니다. 그러다가 추방당하여 귀국하는 경우들이 생깁니다. 이것은 지혜롭지 못한 것입니다. 선교하려면 정말 뱀 같이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선교사님들은 가명을 쓰고 자주 이사를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메일을 주고받을 때도 사장님! 선생님! 이라는 호칭을 사용하면서 조심을 합니다. 직접적인 선교보다는 의료선교나 긍휼사업으로 전도의 효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선교사역에 지혜가 필요합니다.

가정의 식구들을 전도할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무턱대고 전도하면 효과적이지 못합니다. 전략이 필요합니다. 지혜가 필요합니다. 사람마다 접근 방법이 다를 수 있습니다. 상황마다 전도방법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한가지 우리가 전도할 때 필요한 지혜는 절대 말싸움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도 폭발훈련을 받을 때에도 주의 사항 가운데 하나가 바로 말싸움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절대 유익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말싸움에서 이기면 상대방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여 전도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또 말싸움에서 지면 그들의 논리를 인정해 주는 것이 되기 때문에 절대 전도할 때는 말싸움을 피해야 합니다.

여러분 한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는 정말 많은 지혜가 필요합니다.
또한 상황마다 사람마다 전도의 방법이 다를 수 있습니다. 정도가 없습니다. 정석은 없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고구마전도법이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툭툭 찔러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 믿으면 참 좋습니다.”라고 찔러 보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간접적인 전도 방법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좋은 친분관계를 맺습니다. 맛있는 것 있으면 나누어 먹습니다. 어려운 일이 있으면 도와줍니다. 귀찮지 하지 않게 하면서도 호감을 갖게 만들어야 합니다. 요즘의 가장 효과적인 전도 방법은 이 관계전도입니다. 시간이 좀 걸리지만 가장 효과적이고 가장 확실한 방법이 바로 관계전도라는 것입니다.

또한 어떤 사람에게는 직접적인 전도 방법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천국과 지옥을 말하면서 직접적으로 복음을 제시할 필요가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방법 저 방법 직접방법 간접방법 고구마 전도. 노방전도, 방문전도, 때를 얻던지 못 얻던지 항상 복음을 전하는 일에 지혜를 모아야 합니다.

여러분 지혜가 부족합니까? 주님은 지혜를 구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 1장 5절의 말씀입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약 1:5)
복음을 위해서 지혜를 구하십시오. 주님이 후히 주시고 넉넉히 주실 것입니다.

전도자에게 필요한 것은 비둘기 같이 순결함이 필요합니다.
사람들은 우리의 깨끗함을 봅니다. 크리스천이기 때문에 다른 점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그래서 “당신을 보고 하나님을 알 수 있소.”라고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순결함은 그리스도인의 무기입니다. 깨끗함이 우리의 무기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착한 행실이 무엇입니까? 바로 순결한 삶입니다.

진흙 구덩이에 빠졌을 때 양과 돼지는 각기 다르게 반응합니다. 진흙탕에 빠진 양은 그곳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양은 그곳에서 몸이 빠져 나을 때까지 울며 몸부림칩니다.
반면에 돼지는 진흙 구덩이를 찾아 돌아다닙니다. 구덩이를 찾으면 만족스럽게 꿀꿀거리며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갑니다. 실제로 구덩이에서 끌어내려고 하면 쾍쾍 소리를 지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양입니다. 양은 자기의 몸을 더럽히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우리는 비둘기처럼 순결함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말로만 해서는 전도가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너무 많이 실망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왜만한 말을 가지고는 ‘그래 예수 믿는 사람들은 말은 잘 하더라’라고 취급하며 외면합니다. 그러나 참 진실 된 삶, 순결한 삶을 보여 줄때 사람들은 우리를 보고 예수님을 믿는 계기가 되는 것입니다.
순결함이 없습니까? 날마다 주님의 말씀으로 우리를 씻고 또 씻으십시다. 에베소서 5장 26절의 말씀입니다.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엡 5:26)

말씀으로 깨끗하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비둘기 같은 순결함이 우리에게 베어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나의 순결함을 통하여 잃어버린 영혼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여 복음을 증거 하는 일에 열심을 다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많은 사람들이 전도하라고 말하면 부담스러워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무엇을 말할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전해야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렇기 때문에 전도 폭발이라든지 전도의 여러 가지 방법들을 공부합니다.
다리예화 전도방법, 사영리 전도방법, 글 없는 책 전도방법 등 여러 가지 방법들을 공부합니다. 그렇습니다. 기회만 있으면 전도의 방법을 공부하십시오.

그러나 오늘 본문은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전도할 때에 말할 것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 함께 마태복음 10장 19절 20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너희를 넘겨 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치 말라 그 때에 무슨 말할 것을 주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마 10:19-20)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말할 것을 주시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께서 말씀하시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베드로를 보십시오. 그가 성령의 충만을 받고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본래 학문이 없는 범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말씀을 잘 전합니다. 기탄없이 말합니다.
사도행전 4장 13절을 읽겠습니다.
“저희가 베드로와 요한이 기탄없이 말함을 보고 그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또 그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고”(행 4:13)

스데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스데반의 행적이 사도행전 6장 8절부터 나오는데 그는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였습니다. 사람들이 함께 변론합니다. 그런데 스데반이 성령에 충만하기 때문에 당하지 못합니다.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저희가 능히 당치 못하여”(행 6:10)

그렇습니다. 성령님이 복음을 전하는 자에게 말할 것을 주십니다.
여러분 전도해 보십시오. 그러면 이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전도해 보십시오. 기발한 아이디어들이 떠오를 것입니다.

우리가 나가서 전하고자 할 때 성령님은 우리의 말할 것을 주신다고 주님이 분명히 약속하셨습니다.

모든 전도자들의 고백이 무엇입니까? 처음에는 한마디도 못했었는데 전도하는 현장에 가니까 할말이 생각난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말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다른 사람 앞에서 나서지 못하는 사람이었는데 순종하여 나갔더니 이제는 베드로처럼 기탄없이 전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성령님을 의지하고 나가면 성령님께서 말할 것을 주실 것입니다. 성령님이 역사하실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결론을 말씀합니다.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견딘다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주님께 끝까지 충성하는 것입니다. 끝까지 사명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복음을 증거 하는 일에 정진하는 것입니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계 2:10)

주님은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권능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믿고 사명을 맡기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게 사명을 감당해야 될 줄 믿습니다. 우리가 순종하여 나가면 말할 것은 성령님께서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끝까지 사명을 잘 감당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어 나로 하여금 하나님께 돌아오는 잃어버린 영혼들이 많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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