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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지혜로운 삶 (엡 5: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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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박삼우 목사

우리나라에 예부터 전해오는 이야기 중에 이런 동화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꼬마 신랑 이야기입니다.  옛날에 남자가 어릴 때 장가를 갔던 때가 있습니다.  이제 일곱, 여덟 된 꼬마가 스무 살이 다 된 처녀와 결혼을 해서 부부가 되는 것입니다.  당연히 부부생활이 제대로 될 리가 없습니다.  남편 노릇은 제대로 못하는 주제에 부인의 속만 썩입니다.  걸핏하면 말 태워 달라고 그러고 부인에게 장난질만 칩니다.  부인이 속이 상하지만 시부모님이 계시니 꼼짝할 수가 없습니다.  모든 것을 참고 그저 나이 들기만 기다리며 삽니다.  그러던 중 하루는 시부모님이 외출을 나갔습니다.  속도 모르는 남편은 오늘도 여전히 말 태워달라고 조릅니다.  화가 난 부인은 남편을 지붕 위로 던져버렸습니다.  시골집 나지막한 초가지붕, 박이 주렁주렁 열려 있는 그 지붕 위에 던져버린 것입니다.  졸지에 지붕 위에 던져진 꼬마신랑이 겁이 나서 울면서 부인에게 내려달라고 하소를 합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부인은 그동안 쌓였던 분풀이를 합니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 갔는데 느닷없이 시부모님이 집으로 들이닥쳤습니다.  어떻게 해볼 겨를도 없이 꼼짝없이 들켜버렸습니다.  아들이 지붕 위에 올라가 있는 것을 본 부모님이 놀라서 묻습니다.  “얘, 너 왜 거기 올라가 있느냐?”  큰 일 났습니다.  이제 신랑이 입만 벙끗 하는 날이면 부인은 꼼짝 없이 보따리 싸 들고 친정으로 돌아가야 할 판입니다.  그런데 이 꼬마 신랑이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아버지 어머니, 큰 박을 딸까요, 작은 박을 딸까요?”     
 
  이것이 지혜입니다.  그 나이 몇 안 된 꼬마에게 이런 지혜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현대인들은 어떻습니까?  나이가 이보다 몇 곱절 되어도 이런 지혜가 없습니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것이 지혜입니다.  지혜가 있어야 인생을 지혜롭게 살 수 있습니다.  지혜가 없을 때 어리석을 수밖에 없고, 결국 인생을 잘못 살게 됩니다.  알고 보면 지혜가 없다는 여기에 오늘 우리의 문제가 있습니다. 

  지혜의 근본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아무리 공부를 많이 했고, 또 똑똑한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을 모르면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 모르면 인생을 완전히 잘못 사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잘못 사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멸망을 당합니다.  그러니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잠언에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과 지혜의 근본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를 얻고 난 다음, 이제는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구체적인 지혜가 또 필요합니다.  우리가 실제 살아갈 때, 바른 삶, 마땅히 살아야 할 적절한 삶을 살 수 있게 해주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이 지혜에 대해 가르치고 있습니다.

  15절 함께 읽겠습니다.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같이 하여.”  ‘그런즉’ 이라고 했습니다.  앞에 있는 말씀을 받는 접속사입니다.  우리 본문 앞에 있는 말씀은 한 마디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전에는 하나님을 몰랐고, 어두움에 살았는데 이제는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빛의 자녀가 되었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런즉” 다시 말해 이렇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이제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답게, 빛의 자녀답게 지혜롭게 살아야 합니다.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라고 했습니다.  하루하루 주어진 모든 일들을 그냥 되는 데로 살지 말고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자세히 주의해서 지혜로운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그렇게 사는 지혜로운 삶은 어떤 삶입니까?

  첫째는 세월을 아끼는 것입니다.  16절 함께 읽습니다.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지혜의 첫째는 세월을 아끼는 것입니다.  시편 90편에도 “우리에게 우리의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라고 했습니다.  시간을 계수 할 줄 아는 것이 지혜입니다.  특별히 여기 본문에 세월을 아끼라는 말은 헬라어 원문에는 ‘시간을 사라’는 뜻으로 되어 있습니다.  사정없이 흘러가는 시간을 돈을 주고 사듯이 내 것으로 만드는 사람, 그가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시간은 모든 사람에게 똑 같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그 시간을 효과적으로 사용할 때 그 시간은 내 것이 되고, 내가 사용하지 아니할 때 그 시간은 버린 시간입니다.  하루가 24시간이라고 해도 잠자는 시간, 식사하는 시간, 쉬는 시간, 왔다 갔다 하면서 빼앗기는 시간 제하고 나면 몇 시간 남지 않습니다.  이 시간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잘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인생이 결정 됩니다.  그러니 돈을 주고 사듯이 시간을 귀중하게 생각하고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본문에는 세월을 아끼라고 하면서 특별히 때가 악하다고 했습니다.  때가 악하기 때문에 세월을 더 아껴야 한다는 뜻인데, 때가 악하다는 말은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말 그대로 때가 선하지 않고 악하다는 것입니다.  악한 세상이 우리로 하여금 주의 일하지 못하도록 선한 일하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있습니다.  그렇잖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면 이 세대가 악하기 때문에 방해를 받고 쉽게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물쭈물하다가 아무 일도 못하고 세월을 다 빼앗기고 맙니다.  환경이 악하기 때문에, 세상이 악하기 때문에 지혜롭기 위해서는 더욱 더 세월을 아껴야 합니다.

  또 한 가지 때가 악하다는 말은 세월은 인간의 사정을 보아주지 않고 매정하게 지나간다는 뜻도 있습니다.  세월은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세월을 향해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아무리 사정을 해도 세월은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사정없이 지나갑니다.  세월이 가는 것은 악할 정도로 사정이 없기 때문에 아껴서 잘 이용해야 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살인마 고재봉이 사형을 선고받고 감옥에서 예수를 믿었습니다.  그리고는 감방에서 전도를 하는데 어떻게 급하게 전도를 하는지 아무나 붙잡고,  “야 너 예수 믿을래 안 믿을래” 강압적으로 다그칩니다.  마침 곁에 어떻게 잘못되어 감방에 갇힌 한 집사님이 있었는데 “그렇게 전도하면 전도되겠습니까?  좀 순순히 하세요.”  그랬더니 오히려 더 급하게 “예수 믿을래 안 믿을래“ 다그치면서 한다는 말이 ”때가 악하니라”고 했답니다.  “좀 천천히 하시오” 라고 하기만 하면 그 때마다 고재봉이는 “때가 악하니라” 말했다고 합니다.  고재봉으로서는 ‘자기가 살아있을 시간이 얼마 없다’ 그겁니다.  그래서 ‘예수 믿어’라고 하고는 상대방이 어물어물하면 머리를 탁 치면서 ‘때가 악해 이놈아’라고 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해서 고재봉은 많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는 사형선고를 받을 때까지, 아니 예수 믿기 전까지 너무 많은 세월을 허송했습니다.  그랬기에 그는 남은 시간이 정말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그 남은 세월을 아껴서 많은 사람에게 그리스도를 전하는 아름다운 생애를 살았습니다. 

  여러분의 시간은 어떠합니까?  지난 세월들은 어떻게 보냈습니까?  후회가 있습니까?  그렇다면 더욱 남은 시간을 아껴야 합니다.  때가 악합니다.  여러분의 남은 날들을 계산해 보십시오.  우물쭈물하고 옥신각신할 시간이 없습니다.  무엇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가시겠습니까?  살같이 빠른 세월 지나가면 돌이킬 수 없습니다.  귀한 세월 허비 말고 주님의 일에 힘쓰는 지혜로운 성도 되어야 할 것입니다.

  지혜로운 자는 둘째 주님의 뜻을 이해하고 일합니다.  17절 함께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아무리 시간을 쪼개어 잘 사용해도 그 많은 시간 내 욕심 이루기 위해서만 사용했다면, 하나도 지혜로울 것 없습니다.  100년을 살아도 내 마음대로 살았다면 아무 소용없고, 아무리 위대한 업적을 쌓아도 하나님과 상관없는 것이라면 어리석은 일 했을 뿐입니다.  오직 주님의 뜻대로 산 삶이 지혜로운 생이요, 세월을 잘 아낀 삶이 됩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주의 뜻을 알고 그 뜻을 이루어드려야 합니다.
 
  세례 요한을 보십시오.  그가 세상에서 복음을 증거 하면서 일을 한 시간은 6개월 정도 밖에 안 됩니다.  그는 겨우 6개월 일하다가 간 사람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를 칭찬하시기를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마 11:11)고 하셨습니다.  비록 육 개월 밖에 일 못하였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린 것이기에 가장 큰 일을 가장 위대하게 이룬 것이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살피는 것이 지혜입니다.  주님의 뜻에 합당한 것이 무엇이냐, 주님이 무엇을 기뻐하느냐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롬 12:2에도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뜻을 압니까?  먼저 말씀을 깊이 상고해야 합니다.  말씀 속에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말씀이 곧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먼저 말씀을 잘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말씀을 잘 들으십시오.  말씀을 열심히 배우십시오.  교회 성경공부 프로그램에도 열심히 참여하십시오.  말씀을 모를 때 하나님의 뜻을 알 수가 없습니다.  말씀에 깊이 잠겨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해야 주의 뜻을 알 수 있습니다.  기도하지 않을 때 내 고집 내 주장을 하나님의 뜻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도하면서 겸손하게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합니다.

  여러분, 주님의 뜻을 살피고 있습니까?  주님의 뜻과 상관없이 살았기에 남는 것이 없습니다.  주님의 뜻이 아니었기에 상처 밖에 남은 것이 없습니다.  이제 남은 생애는 주님이 원하시는 것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 분별해서 이루어드려야 합니다.  주의 뜻을 알고 그것을 이루어드리는 여기에 지혜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지혜로운 자의 삶은 세 번째는 성령충만한 삶입니다.  18절 함께 읽겠습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  악한 세상에서 세월을 아껴 주의 뜻을 이루며 사는 것이 지혜인데, 문제는 이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내 힘으로 감당하기가 어렵습니다.  “할 일은 많은데 인생은 짧고 세상은 악하고 나는 약합니다.”  주의 뜻을 살펴서 시간을 선용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또 다른 능력이 필요합니다. 

  여기에 우리가 이용할 수 있는 능력이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술의 힘이고, 다른 하나는 성령의 힘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늘날 스스로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어서 술을 마십니다.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마시고, 힘을 얻고 용기를 얻기 위해서 마십니다.  오늘 현실을 볼 때 술을 마시는 그들의 심정을 이해할만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술은 방탕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술은 힘과 능력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을 망친다는 뜻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술이 힘을 주는 것은 술 취한 그 순간뿐이요, 그것도 바른 힘이 아니라 잘못된 힘입니다.  술 취한 사람이 술의 힘을 빌려 하는 일을 보십시오.  전부 방탕한 일입니다.  실제 오늘 우리 사회를 보십시오.  술 때문에 생기는 나쁜 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모든 방탕한 것들이 다 술로 인합니다. 

  어느 의사가 쓴 수필에 보니, 술을 마시는 것은 사람의 간장(肝腸)을 알코올에 푹 담갔다가 꺼내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한 잔씩 마실 때마다 간장이 얼마나 수고를 하는지 모른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술 마신 다음에는 피 속에 있는 T임파구까지 술기운으로 취하게 된다고 합니다.  병균과 싸우는 백혈구까지 술이 취해 정신이 해롱해롱해집니다.  그래서 균을 제대로 구별하지 못하고, 균과 싸우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술에 취한 상태에서 좋지 못한 음식을 먹으면 영락없이 식중독에 걸리고, 또 병균이 들어오면 그 병균에 감염된다고 합니다.  얼마나 무서운 이야기입니까?

  우리는 성령의 힘을 빌려야 합니다.  술에 취한 자가 술의 능력을 의지하는 것처럼 성령충만해서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도움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성령님의 도움을 받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충만 받는 것이 지혜입니다.  가장 큰 지혜가 여기 있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명령형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누구나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받아도 그만, 받지 않아도 그만, 자유 선택이 아닙니다.  능력 있는 삶, 승리하는 삶, 지혜로운 삶을 살려면 누구나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어떻게 성령충만 받습니까?  성령충만을 받는 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만 가장 보편적이고 확실한 방법은 사모하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1장 13절에도 말씀했습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자식에게 좋은 것으로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성령충만 아니면 안 되는 줄 알고 간절한 마음으로 사모하는 마음으로 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성령충만 받아야 합니다.  한 번 받았다고 끝나는 것 아닙니다.  여기 받으라는 동사는 시제가 현재형입니다.  헬라어의 현재형은 영어의 현재 진행형과 같습니다.  계속되는 동작, 반복되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계속해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계속해서 우리가 밥을 먹듯, 계속해서 성령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한번 기도하고 은혜 받았다고 끝나는 것 아닙니다.  한번 말씀에 은혜 받았다고 다 되는 것 아닙니다.  시시때때로 성령충만 받고 그래서 항상 성령충만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확실히 스스로의 힘으로 살기 어려운 세상입니다.  힘들고 괴롭고 스트레스는 쌓이고 내 능력으로 이겨나갈 수가 없습니다.  성령충만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성령충만 속에 능력이 있습니다.  성령충만 받음으로 모든 어려움을 이기며 세월을 아끼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을 살게 됩니다. 

  지혜로운 삶의 마지막 한 가지는 찬송하는 생활입니다.  19-20절 함께 읽겠습니다.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며.”  한 마디로 찬송하며 감사하는 삶을 살아라는 말씀입니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자세는 두 가지입니다.  괴로워하며 비관하면서 살 수 있고 기뻐하며 즐거워하며 살 수 있습니다.  환경이 문제가 아닙니다.  삶의 근본 자세가 문제입니다.  기뻐하며 감사하는 사람은 어떤 환경에서도 감사하고, 불평원망하는 사람은 어떤 환경에서도 불평합니다.  어느 편이 지혜로운 것입니까?  그리스도인은 어렵고 괴로운 환경에서도 주님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찬송하며 기뻐하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어떤 환경에서도 찬송하는 것,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또 하나의 지혜입니다. 

  어느 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목사님께서 어느 가정에 심방을 가셨는데 집에서 예배라고는 드린 적이 없고 찬송도 물론 불러본 적이 없습니다.  소리가 크게 났다면 부부싸움 했을 때뿐이었습니다.  그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는데, 찬송을 부르기 시작하니 졸던 개가 갑자기 짖기 시작합니다.  너무 시끄러워 예배드리기가 어려울 정도입니다.  예배를 마치자 열두어 살 되어 보이는 그 집 사내아이가 뛰어나가더니 개를 발로 차면서 하면서 한다는 말이 “야, 이놈아! 오늘도 우리 엄마 아빠 싸우는 줄 아냐?  이번에는 쌈 하는 게 아냐.”  찬송이 없으니 싸움이 있는 것입니다. 

  정말 우리는 찬송을 잃으므로 얼마나 많은 것을 잃었는지 모릅니다.  찬송을 회복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찬송을 다시 불러야 합니다.  찬송할 때 악한 것들이 물러갑니다.  찬송할 때 죄의 유혹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찬송할 때 마음에 기쁨이 가득해지고 능력이 충만하게 됩니다.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여러분, 찬송하십시오.  어떤 환경에 있든 찬송하면 승리한 것입니다.  찬송할 때 세월을 아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을 살게 되고 찬송할 때 성령충만한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니 생각해보면 오늘 본문의 지혜는 연결되어 있습니다.  세월을 아끼는 것이 지혜입니다.  세월을 아껴서 주의 뜻을 이루어드려야 합니다.  그런데 그러기 위해서는 성령충만 받아야 합니다.  성령충만 받아야 그 능력으로 세월을 아껴 주의 뜻을 이루며 살 수 있습니다.  나아가 성령충만 받으면 찬송하고 감사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이제 생각하십시다.  여러분은 지혜롭게 살고 있습니까?  이대로 가면 마지막에 후회는 없겠습니까?  세월을 아끼십시다.  때가 악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야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항상 성령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찬송생활 하십시다.  이 말씀에 순종함으로 지혜로운 생을 사시는 여러분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 바른 삶, 하나님 기뻐하시는 지혜로운 삶을 가르쳐주신 것 감사합니다.  하나님 저희들에게 악한 세월 아낄 줄 아는 지혜를 주시옵소서.  아낀 세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이루어드리는 지혜를 주시옵소서.  저희들 약합니다.  성령충만을 통하여 그러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하여 주시옵소서.  나아가 찬송함으로 기뻐하며 찬송함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은총 내려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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