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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인생의 갈림길에서 (신 30:15~20, 빌 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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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강석공 목사 (광야교회)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시인은 이 시를 통해서 선택하지 않은 인생길에 대한 아쉬움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한적한 시골 풍경을 실감나게 그리며 동시에 그 풍경과 인생을 대비시켜 복잡한 현대인의 마음 속에 숨어 있는 스스로 선택한 삶에 대한 회한과 같은 감정을 아주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 /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 바라다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보았습니다 /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 그 길에는 풀이 더 있고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어 / 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던 게지요 / 그 길을 걸으므로, 그 길도 거의 같아질 것이지만 / 그 날 아침 두 길에는 / 낙엽을 밟은 자취는 없었습니다 / 아, 나는 다음 날을 위하여 한 길은 남겨 두었습니다 / 길은 길에 연하여 끝없으므로 / 내가 다시 돌아올 것을 의심하면서... /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피천득 역)

  사람들은 순간순간 선택하며 살아가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어떤 선택을 했는가에 따라서 전혀 다른 길을 걷게 되고 또 전혀 다른 장소에 서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쉽고 편한 길을 선택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많은 사람들이 가는 길을 선택합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뭔가 유익을 줄 것 같은 길을 선택합니다. 우리도 모두 어딘가 목적지를 향하여 선택한 길을 가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길을 가다 보면 때로는 방황할 때도 있습니다. 또 우리도 때로는 고뇌하고 번민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스스로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길을 선택하여 걷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신명기 말씀을 통해서 본의 아니게 외롭고 고달픈 길을 선택하여 평생을 걸어온 한 인물, 즉 출애굽의 위대한 지도자 모세를 만나게 됩니다. 물론 히브리서 기자는 모세가 믿음으로 그 길을 선택했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가 처음부터 좋아서 그 길을 선택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출애굽기 3장, 4장 말씀을 보면 그가 여러 차례 사양한 것이 그대로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까? 그랬던 그가 그 힘들었던 인생길의 마지막 순간에 자신이 이끌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매우 귀중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특히 오늘 봉독한 본문 말씀은 모압 평지에서 행한 그의 설교의 결론과도 같은 부분입니다. 그는 지금까지 걸어온 인생길을 마감하고 이 세상을 떠날 때가 되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백성들에게 마치 유언과 같은 설교, 즉 가슴에 담고 있던 가장 중요한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인즉 백성들에게 인생의 갈림길에서 선택의 순간이 왔을 때 과연 어떤 길을 선택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것인가 하는 것을 가르쳐 주는 참으로 귀한 교훈이 아닐 수 없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지난 사십 년 동안 참으로 멀고 험한 길을 달려왔습니다. 웬만 하면 지칠 만도 했지만 그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약속하신 그 가나안을 향하여 앞만 보고 줄곧 달려왔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안타깝게도 그는 거기서 멈춰야 했습니다. 백성들과 함께 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기 때문에 백성들만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때문에 그는 계속해서 길을 가야 하는 백성들에게 이렇게 당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너희는 계속해서 길을 가야 한다. 그러므로 너희는 갈 길을 잘 선택해야 한다. 그리고 그 길을 바르게 가야 한다.” 마치 어버이와 같이 백성들을 사랑하는 모세의 마음이 참 잘 드러나 있지 않습니까?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모세가 걸어온 인생길은 참으로 고달픈 길이었습니다. 지난 사십 년 동안 걸어도 걸어도 끝이 보이지 않는 그런 길을 걸어왔습니다. 어떻게 해서라도 끝을 보고 싶어서 서둘러 그 길을 걸어왔습니다. 그런데 어느덧 날이 어두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아직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 그 길에서 내려와 쉴 때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돌이켜보면서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두움이 빛을 밝히는 등불의 심지와 같은 것이라는 사실을 그는 깨닫게 되었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그들에게 있어서 광야 생활은 매우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로 그 힘든 광야 생활을 통해서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다듬어졌습니다. 노예 근성을 갖고 출발했던 백성들이 광야 생활이라고 하는 인생의 지독한 어두움을 겪으면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빛나는 존재로 바뀌지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가나안의 새 시대가 활짝 열리는데 그들은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이 이제 눈앞에 펼쳐질 것이라는 황홀한 꿈에 젖어 있는 그들이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가나안은 결코 그냥 가나안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원하던 꿈이 어느 정도 이루어졌다고 해서 무조건 행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이제부터입니다. 그들이 어떤 길을 택하느냐에 따라서 그들의 삶은 사뭇 달라질 것입니다. 황량한 광야에서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만족할 수 있었던 것처럼 그들은 가나안에서도 그 하나님과 동행해야 합니다. 만일 그들이 그 하나님을 배반하고 멀리할 것 같으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이 오히려 광야보다 더 메마른 땅이 될 것이고 저주의 땅이 될 것이 분명합니다.

  모세는 그들 앞에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이 놓여 있다고 선포합니다. 그들은 얼마든지 생명의 길을 택할 수도 있고 사망의 길을 택할 수도 있습니다. 그들의 눈에 좋게 보이는 대로 어느 쪽이라도 선택할 수 있지만 그 결과는 전혀 다를 것입니다. 생명의 길은 좁고 험해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지만 사실은 그 길이 바로 행복의 길입니다. 그렇다면 생명의 길은 택하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바로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구속하고 얽어매는 짐스러운 그 어떤 것이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주기를 원하시는 풍성한 생명의 선물입니다.

  때문에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분명히 외치고 있습니다. “너희 하나님의 백성들아, 생명의 길을 택하여라! 너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 너희를 입히시고 먹이시는 하나님, 너희에게 약속의 땅 가나안을 주시는 하나님, 이 세상에 사랑할 사람이라고는 오직 너희밖에 없는 것처럼 너희를 사랑하시는 그 하나님을 사랑하며 살아가거라! 하나님께서 왜 말씀을 주셨는지 아느냐? 그 까닭은 너희를 얽어매기 위한 것이 아니라 번성하기를 바라시기 때문이다. 그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그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 하나님과 동행하여라! 너희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 말씀에 순종할 수 있고, 그 때 비로소 너희에게 생명의 길이 열릴 것이다!”

  그들은 광야를 지나온 백성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들로서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가나안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불순종하다가 광야에서 죽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들이 어떻게 살아왔느냐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진짜 중요한 것은 이제부터입니다. 다시 말해서 지나온 시간이 얼마나 훌륭했는가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이제부터 살아갈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라는 말입니다. 이제 그들은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것을 분명히 선택해야 합니다.

  때때로 과거 때문에 자신을 미워하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살면서 결코 되돌릴 수 없는 것이 분명히 있습니다. 누가 흘러간 시간을 되돌릴 수 있습니까? 어리석은 사람들은 이미 흘러간 시간에 대해서 못내 아쉬워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진짜 중요한 지금이라는 시간을 소홀히 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과거는 아무리 좋은 것이라 해도 다시 돌아오지 않는 흘러간 물과 같습니다. 과거가 아무리 최악이라고 할지라도 지금의 자기 자신을 어떻게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때문에 오늘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지나온 시간이 얼마나 훌륭했는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토록 바라는 찬란한 미래는 과거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 현재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인생의 진정한 목표는 지금까지가 아니라 지금부터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인의 재물을 훔쳐 달아났던 오네시모의 경우가 좋은 예가 아닙니까? 그는 전에 다만 무익했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 안에서 새롭게 태어난 오네시모는 바울 사도 뿐 아니라 빌레몬에게도 아주 유익한 인물로 변했습니다.
 
  여러분은 과연 어떤 길을 택하겠습니까? 혹시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가 그립습니까?(출 16:3 참조) 그러나 결코 거기로 다시 돌아가서는 아니 됩니다! 바울 사도의 고백이 저와 여러분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빌립보서 3장 13절, 14절 말씀입니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아울러 주님이 친히 하신 말씀도 잊지 말고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마 7:13~14)

  인생의 갈림길에서 오직 생명의 길을 선택하고 주님과 동행하되 그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며 그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여러분의 삶 속에 주님이 주시는 하늘 나라의 신비한 기쁨과 사랑과 평강이 항상 넘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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