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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위엣 것을 찾으라 (골 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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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박봉수 목사

성지 이스라엘에는 두 종류의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하나는 유대인들이고, 다른 하나는 아랍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여러 면에서 너무도 다른 사람들입니다. 특히 종교적으로 너무도 달랐습니다. 유대인들은 구약의 여호와를 믿고, 아랍인들은 코란의 알라를 믿습니다. 이 두 부류의 사람들은 결코 타협하거나 화해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성지 순례하는 우리 기독교인들을 보는 관점에서는 하나입니다. 도대체 팔레스틴 땅에 뭐가 볼 것이 있다고 그 먼 거리를 마다않고 찾아오느냐는 것입니다. 자기들에게 돈벌이가 되기 때문에 고맙기는 하지만 이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자리에 갔습니다. 아랍사람 몇이서 좌판을 벌이고 엽서와 기념품 몇몇 가지를 팔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태도에는 예수님이 누구신지 전혀 관심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 자리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그곳이 얼마나 귀하고 뜻 깊은 자리인지 알지도 못하고 알고 싶지도 않아 보였습니다. 그저 장사할 수 있는 장사 터일 뿐이었습니다. 안된 소리이지만 마치 돼지에게 진주가 던져진 것처럼 보였습니다.

저는 그들을 보면서 거룩한 것을 거룩하게 볼 수 있음에 감사했습니다. 그 소중한 의미를 찾아서 그 거룩한 뜻을 찾아서 그 먼 거리를 설레는 마음으로 달려올 수 있음에 감사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같은 것을 보면서 땅의 것을 찾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같은 것을 보면서 하늘의 것을 찾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의 영적 현실입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강권하고 있습니다. “위엣 것을 찾으라” 세상에는 아래 것을 찾는 사람들이 허다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처럼 아래 것을 찾지 말고 위엣 것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위엣 것이란 무엇인가?

위엣 것이란 글자 그대로 위에 있는 것을 말합니다. 1절을 보면 ‘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그러니까 위는 하나님의 나라를 말합니다.

2절을 보면 다른 관점에서 위엣 것을 설명합니다.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그러니까 위엣 것은 땅엣 것과 대조되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서 땅엣 것이란 땅에 사는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을 말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갖고 싶어하고 간절히 바라는 것들을 말합니다. 이것과 대조해서 위엣 것은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것들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들을 말합니다.

바울은 엡 4:22 이하에서 이것을 다르게 표현했습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는 새사람을 입으라” 여기서 땅의 것은 유혹의 욕심을 따르는 것을 말합니다. 반대로 위엣 것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을 말합니다.

바울은 롬 8:5-6에서 이것을 또 다르게 표현했습니다.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여기서 땅에 속한 것은 바로 육신이 바라고 생각하는 것을 말합니다. 반대로 위엣 것은 성령께서 이끄셔서 가지게 되는 소망과 생각하는 것을 말합니다.

저는 이번 성지 순례에서 유대 광야를 찾았습니다. 예수님께서 40일 금식하시던 유대 광야 바로 그 자리엘 갔습니다. 물도 없고 먹을 것도 없고 그늘도 없고 쉴 곳도 없었습니다. 가이드 설명이 얼마 전에 미국 청년들이 광야 체험을 하다 길을 잃은 뒤에 다섯 시간 만에 물이 없어 두 명이나 죽었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곳에서 40일을 금식하시며 기도하셨습니다. 인간의 한계 그 너머 상황까지 가신 것입니다. 먹고 싶고 마시고 싶고... 인간의 생존 욕구 그 마지막 너머까지 가신 상황입니다.

마 4장을 보면 그 때 마귀가 주님을 찾아와 시험했습니다. 세 가지입니다. 돌로 떡 덩이기 되게 하라는 것입니다. 물질적 소유에 대한 유혹입니다.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는 것입니다. 명예에 대한 유혹입니다. 그리고 자기에게 절하면 모든 권세를 다 주겠다는 것입니다. 권력에 대한 유혹입니다. 바로 여기서 마귀가 유혹하는 이런 것들 세상 사람들이 모두가 가지고 싶어 하는 것들 이것이 땅엣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 4:1을 보면 성령에 이끌리셨다고 되어있습니다. 성령께서 주님의 심령을 사로잡으셨습니다. 그래서 이런 육신이 바라고 소원하는 것들을 물리치셨습니다. 40일 금식하면서 인간적으로 육신의 욕망이 극에 달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그 심령을 주장하셔서 마귀의 유혹을 물리치셨습니다.

그러면서 주님께서 택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택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주님께서 택하신 것 바로 이것이 위엣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에게도 위엣 것이냐 땅의 것이냐를 선택해야 할 상황이 자주 닥쳐옵니다. 우리 주님은 인간의 극한의 상황에서도 성령의 인도를 따라 위엣 것을 찾으셨습니다. 우리도 위엣 것을 찾아야 하겠습니다. 육신의 욕망을 따르기 보다는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 하겠습니다.

왜 위엣 것을 찾아야 하는가?

오늘 본문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위엣 것을 찾아야 하는 이유를 명확하게 밝혀주고 있습니다. 1절에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기 때문에 위엣 것을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존재적으로 옛 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해서 새롭게 태어난 새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옛 사람 시절에는 땅엣 것을 찾았지만 이제 새사람이 됐으니 더 이상 땅엣 것을 찾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땅엣 것 대신 이제 위엣 것을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려서 누에 키우는 것을 본 일이 있습니다. 누에는 뽕잎을 먹습니다. 먹성이 얼마나 좋은지 뽕 잎을 순식간에 먹어치웁니다. 그런데 이 누에가 고치에 들어간 뒤 시간이 흘러 나방이 됐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나방은 뽕 잎을 먹지 못합니다. 나방은 꽃을 찾아 꿀을 빨아 먹습니다. 누에 시절에 먹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을 먹게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누에가 나방이 된 것과 같은 변화를 체험한 사람들입니다. 고후 5:17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을 영접함과 동시에 주님과 아주 특별한 관계를 맺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주님과의 아주 특별한 관계 속에서 우리는 과거에 다른 전혀 새로운 존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에 관해서 몰랐던 지식을 가지게 된 정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새롭게 어떤 사람을 사귀어서 그 사람과 알고 지내게 되는 그런 예수와의 새로운 관계를 가지게 된 정도를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를 믿고 나서 내가 달라졌습니다. 예수를 믿고 나서 내 존재가 새롭게 변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바울 사도는 이런 존재의 변화를 롬 6:6 이하에서 설명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우리가 예수 믿고 나면 먼저 우리 옛 사람이 죽는다는 것입니다. 마치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처럼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는 것입니다.

한 번은 부모님 산소에 성묘 간다고 가 보니까 옆에 산소에도 한 가족이 성묘를 오셨더라구요. 기도하고 잡초를 뽑으면서 산소를 살피면서 옆 자리 분들을 보게 됐습니다. 잔에 술을 따르고 북어포를 찢어서 먹기 좋게 상석 위에 놓더라구요. 고인이 평소에 북어 안주에 소주를 즐겨 드셨던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담배에 불을 붙여서 역시 상석에 올려놓더라구요. 고인이 담배를 피울 수 있게 해 드리려는 것 같습니다.
이 세상 살 때 술을 즐겨 마셨다고 세상 떠난 고인이 술을 마실 수 있습니까? 세상 살 때 담배를 즐겨 피웠다고 세상 떠난 고인이 죽어서 담배를 피울 수 있습니까?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는 것은 과거에 즐겨하던 것 더 이상 즐겨 할 수 없게 된 것을 말합니다. 과거에 그렇게 가지고 싶었던 것 더 이상 가지고 싶지 않게 된 것을 말합니다. 과거에 그렇게 가고 싶었던 곳이 더 이상 가고 싶지 않게 된 것을 말합니다.

바울 사도는 롬 8:8에서 또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줄을 믿노니” 우리가 주님과 함께 옛 사람이 죽었으면 이제는 주님이 부활하신 것처럼 새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한 교장 선생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 분은 늦게 안수 집사로 임직을 하셨답니다. 훈련 과정 중에 전철역에서 노방 전도하는 숙제가 있었답니다. 과거 같으면 부끄러워서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었답니다. 자기 학교 학생들이 다니는 길 몫입니다. 교사들 학부모들이 보는 자리입니다. 그곳에서 띠를 두르고 전도지를 나누면서 예수 믿으라고 전도를 해야 했답니다. 그 분 말씀이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았는데 자기가 해 냈다고 감격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성령께서 도와주셔서 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으면 새사람이 됩니다. 성령께서 인도하셔서 과거에 도저히 할 수 없었던 일도 할 수 있게 됩니다. 과거에 도저히 생각하지 못했던 것도 생각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가 위엣 것을 찾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새사람이 됐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예수 믿으면서 사람이 달라졌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달라지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떻게 위엣 것을 찾아야 하는가?

오늘 본문에서 구체적인 방법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위엣 것을 생각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위엣 것을 추구하는 것 곧 위엣 것에 인생의 목표를 두고 사는 것입니다.

먼저 위엣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2절에 “위엣 것을 생각하고”라고 말씀했습니다. 위엣 것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생각하고’라는 말은 헬라어 원어로 “프로네이테”라는 말입니다. 시제 상 현재 명령형입니다. 계속해서 생각하라는 말입니다.

선교사면서 비행기 조종사인 버니 메이라는 분은 후배들 비행 조종을 가르치면서 경험했던 것을 신앙생활과 견주어 설명한 바가 있습니다. 신참 조종사들이 착륙을 어려워하는데 그 이유는 활주로에 안전한 부분을 봐야 하는데 자꾸 장애물들 위험한 요소들을 주목해 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장애물이 나타나면 피해 가려하고 그 때 자꾸 그 장애물에 집중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활주로의 안전한 부분을 놓치게 되서 위험한 상황이 발생된다는 것입니다. 이 분은 그래서 노련한 조종사는 시선을 비행기가 착륙을 위해 따라야 할 궤도에 두고 위험물은 주변 시야에만 둔다고 말합니다.

우리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자꾸 피해야 할 것들 그것들을 주목하다 보면 우리 삶이 그쪽으로 빠지게 됩니다.

청소년들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컴퓨터 스팸 메일 중 음란한 영상을 보게 됩니다. 그 영상이 머리 속에 남아서 지워지지 않습니다. 다음에 컴퓨터를 키면 자기도 모르게 그 쪽으로 마우스를 클릭하게 됩니다. 점점 그 음란 영상에 빠져들어서 중독이 되어버립니다.

주부들에게 드라마도 그렇습니다. TV 드라마에 중독이 되면 기도시간을 빼앗깁니다. 예배시간도 아까워집니다. 성경 읽는 것을 전혀 할 수 없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땅엣 것을 주목하고 땅엣 것을 생각하다보면 결국 거기에 빠져들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땅엣 것을 지나치게 주목하지 마십시오. 땅엣 것에 생각을 빼앗기지 마십시오.

모세는 시내 산에 올라가 40주야를 하나님 생각만 했습니다. 바울은 아라비아 광야로 가서 3년 동안 예수만 생각했습니다. 저들의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저들의 행동이 변했습니다. 저들이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를 이룰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위엣 것을 생각하십시오. 하나님의 나라를 묵상하십시오.

다음으로 위엣 것에 인생의 목표를 두십시오.

위엣 것을 찾는다는 것은 위엣 것에 몰두하는 것을 말합니다. 위엣 것 찾는 것에 인생의 목표를 두는 것을 말합니다.

미국의 전설적인 부호 록펠러는 남달리 건강하고 몸집이 컸습니다. 그런데 어려서 너무 가난해서 어떻게 해서든지 돈을 벌어보겠다고 인생의 목표를 정했습니다. 돈만 바라보고 최선을 다해 뛰었습니다. 33살에 백만장자가 되었고, 43살에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회사를 경영하게 됐고, 53살에 세계 최고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악성 피부병에 걸렸습니다. 머리카락과 눈썹이 빠지고 점점 쇠약해져만 갔습니다. 세계 최고의 부자지만 먹는 것은 비스켓 한 조각과 우유 한 잔이 전부였습니다. 의사 이야기가 한 해를 넘기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시 그가 살고 있던 펜실베니아 지방에 그를 미워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경호원 없이는 살수 없었습니다.
어느 날 밤 가만히 생각하게 됐습니다. 도대체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그 많은 돈 어디에 쓸 것인가? 그 밤에 돈이 인생의 전부가 아님을 깨닫게 됐습니다. 인생의 목표가 바뀌게 됐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게 됐습니다. 교회를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가난한 사람을 돕기 시작했습니다. 록펠러 재단을 만들어 사회봉사를 하시 시작했습니다. 마음에 평안이 찾아왔습니다. 인생의 의미가 되찾아졌습니다. 못하던 식사도 하게 됐고, 잠도 잘 자게 됐습니다. 미워하던 사람도 하나씩 둘씩 없어졌습니다. 칭찬하는 사람들이 늘어났습니다. 더 이상 경호원이 필요 없게 됐습니다. 1년 밖에 살 수 없다던 진단이 무색하게 99살까지 오래 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의 목표가 달라지면 그 인생이 달라집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땅엣 것에 인생의 목표를 두어서는 안됩니다. 위엣 것에 인생의 목표를 두어야 합니다. 생각을 바꾸면 행동이 바뀝니다. 인생의 목표를 바꾸면 인생 자체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늘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또한 땅도 볼 수 있습니다. 하늘을 보느냐 땅을 보느냐에 따라 그 인생이 결정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하늘을 보라고 말씀하십니다. 위엣 것을 생각하라 말씀하십니다. 위엣 것을 찾으라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하늘로서 난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들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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