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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념되는 삶 (막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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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고신일 목사

3  예수께서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리고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4  어떤 사람들이 분내어 서로 말하되 무슨 의사로 이 향유를 허비하였는가
5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며
  그 여자를 책망하는지라
6  예수께서 가라사대 가만 두어라 너희가 어찌하여 저를 괴롭게 하느냐
    저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7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아무 때라도 원하는대로 도울 수 있거니와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8  저가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사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9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 하시니라 (마가복음 14장 ~ 21절) 
 
<목회기도>
 
살아 계신 하나님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고,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며
우리의 찬양을 기뻐하심에 감사 드립니다.
오늘 거룩한 주일, 기둥교회에서 드리는 예배에 참석케 됨을 감사드립니다.
여기 모인 이들 모두의 형편과 사정이 다릅니다.
어떤 이는 눈물이, 어떤 이는 한숨이, 어떤 이는 기쁨이
어떤 이는 감사가 넘치는 마음으로 여기 앉았습니다.
하나님, 저들의 중심에 담긴 신령과 진정을 보시옵소서.
세상이 줄 수 없고, 세상이 알 수도 없는 평안을 가지고
세상으로 나갈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이름 없이 빛 없이 예수님 이름으로 땀흘리는 이들의 수고를
기억해 주시고 저들에게 섬김의 기쁨이 넘치게 하여 주시옵소서.
기둥교회 성도들 중에 황금 같은 젊음을 조국을 위해 쓰는 군인들이 있습니다.
사고 많고 위험한 군생활 평안하게 지켜 주시옵소서.
객지에, 외국에 나간 이들, 선교 현장에서 땀흘리는 이들…
병상의 환자들… 오늘도 저들에게 은혜와 평강의 복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부족한 종이 이 시간 말씀들고 섰습니다. 붙들어 주시옵소서.
목소리에도 기름 부어 주시옵소서. 능력을 주시옵소서.
영육간에 치료와 회복의 시간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할렐루야!
이 9월의 삶이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오늘 마가복음 14장 3~9절을 중심으로 말씀을 전할 것입니다.
그러면서 마태복음 26장 1~13절과
요한복음 12장 1~8절 말씀을 참고하여 소개하려고 합니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 보면 오늘 소개하려는 사건의 내용이 비슷합니다.
그러나 동일한 사건을 소개한 것 같은데…
요한복음에 나온 내용을 보면,
그 시기나 장소 그리고 소개된 인물들을 표현한 방법… 등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마태/마가복음에 소개된 사건과
요한복음에 소개된 사건이 '동일한 것이다/아니다'라고 말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마태/마가복음과 요한복음을 비교해 보면…
어느 정도 그 당시의 현장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잔치집에 초대 받아 가신 예수님
 
고난주간 전,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기 전에(요12:1, 막14:1)
한 집에 들러 식사를 하시게 되었습니다.
그 집을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는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마26:6, 막14:3) 이라고 했고,
요한복음에는
  "베다니… 나사로의 있는 곳"(요12:1) 이라 했습니다.
 
그때 그 집에 오신 손님을 위해 준비한 식사는(마26:7, 막14:3)
잔치수준이었습니다.(요12:2에는 잔치로 번역되어 있음)
누구를 위한 잔치입니까?
신랑신부의 결혼식이 아닙니다.
백일, 돌잔치가 아닙니다.
회갑, 칠순, 팔순 잔치가 아닙니다.
예수님을 대접하기 위한 잔치였으니 세상 최고의 잔치였습니다.
잔치의 수준, 잔치를 하는 집의 수준은
잔치의 주인공과 잔칫집에 오는 손님으로 판명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잔치를 준비하면서 신경 쓰는 것이
'누구를 초청할 것인가', '누가 올 것인가'…입니다.
이왕이면 귀한(?) 손님이 많이 참석해야 잔치의 격이 높아지는 것이고…
잔치를 준비한 사람도 신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주인공, 대접받는 손님은 누구입니까? 예수님이었습니다.
그 당시에 예수님은 복음을 전하신 지 오래 되었고
많은 기사와 이적을 행하셨고, 병자들을 고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이미 사람들에게 유명 인사였습니다.
그런 예수님을 대접하기 위해 얼마나 최선을 다했겠습니까?
예수님의 심방을 받은 그 집의 식구들에게는
얼마나 감사한 일이며, 얼마나 기쁜 일이었겠습니까?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의 기록대로 그 집이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이라면
그 문둥이는 예수님께 치료 받은 사람이었고…
요한복음의 기록대로 베다니 나사로의 집이라면,
죽은 나사로를 살려주신 분이 예수님이셨으니…
두 사건이 서로 다르게, 다른 집에서 있었던 일이라도
그 가족들에게는 기쁨의 자리였을 것입니다.
목사가 심방을 가도 예수님을 맞듯이 정성을 다하는데…
그들은 예수님을 맞았으니 얼마나 기뻐했겠습니까.
 
우리 교회 성도들도 심방 간다고 하면 대청소를 한다고 합니다.
제가 듣기로는 장롱 안까지 정리 하고, 화장실 청소도 한답니다.
어떤 집은 아침에 남편이 화장실 청소를 하고 출근하고는
퇴근 후에 집에 와서 아내에게 "목사님 화장실 다녀가셨어?"라고
확인하는 분도 있다고 합니다. 심방가는 집마다 화장실에 갈 수는 없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화장실에 안갔다'고 하면 '열심히 청소해 놓았는데… '하며
굉장히 서운해 한다고 합니다.
다음부터는 심방 가면 화장실에 꼭 가겠습니다.
복음 전하는 사도들을 대접한 사람들처럼,
베드로를 맞은 고넬료 가정처럼… 목회자를 맞아주시니 감사합니다.
 
고넬료는 자기 집을 찾아 준 베드로 앞에서
"오셨으니 잘 하였나이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행10:33)  했습니다.
심방을 온 베드로가 전할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앉았습니다.
여러분도 목회자의 심방을 받을 때 고넬료와 같은 마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머리에 향유를 부은 여인
 
그런데 본문에는 누가 심방을 했습니까?
예수님이 직접 심방하셨습니다.
그 복된 자리, 그 기쁜 자리에서 특별한 일이 있었습니다.
한 여자가 예수님께 값지고(비싸고, expensive) 귀한
나드(nard) 향유(perfume)를 가지고 왔습니다.
요한복음에는 그 여인을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라고 했습니다.
나드(nard)는 히말라야 산맥에서 자라는 나드의 뿌리와 잎사귀에서 뽑은 향유입니다.
그 향유는 옥으로 만든 뚜껑이 있는 작은 그릇, 옥합(玉盒)에 담겨 있었습니다.
 
여인은 그 귀햔 향료가 담긴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습니다.
손님의 머리에 향유를 붓는 것은
유대의 절기 식사 때 흔히 있었던 관습입니다.(시23:5, 눅7:46)
요한복음에는 예수님의 발에 부었다고 했습니다.
그 향은 예수님이 계신 집에 가득할 만큼 진한 냄새가 났습니다.(요12:3)
그러자 그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분을 냈습니다(마26:8, 막14:4)
그리고 그 향유를 팔면 300데나리온 이상 받을 수 있는데(막14:5)
그 귀한 것을 왜 허비하였느냐고(막14:4) 책망했습니다(막14:5).
요한복음에 보면 계산에 정확했던 사람
그러면서도 공금에 손을 대었던, 공금을 횡령했던 가룟 유다가(요12:6)
그 향료의 값이 300데나리온 이라고 정확하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300데나리온이란 돈이 어느 정도 되는 돈 인줄 아십니까?
마가복음에 보면 오병이어의 기적에 대해 나와 있습니다.
여자와 아이들을 제외하고 어른 남자들만 세어 5000명이나 되는 군중(막6:44)을
한 끼 먹이는 데 드는 돈이 200데나리온이었습니다.<막6:37>
데나리온은 당시 팔래스틴에서 사용되던 로마 은전인데
노동자의 하루 임금에 해당됩니다.
그러니 300데나리온이라면 300명의 하루 일당에 해당됩니다.
보통 노동자의 1년 임금을 말할 때 300데나리온이라고 합니다.
 
 
여인을 비난한 가룟 유다
 
그렇게 귀한 향유를 예수님을 위해 쏟은 여인에게 비난했던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마태복음에는 제자들(마26:8) 이라 했고
마가복음에는 예수님 곁에 있었던 "어떤 사람들"(막14:4)이라 했고
요한복음에는 예수님의 제자 "가룟 유다"(요12:4)라 했습니다.
 
그들은 "허비"라고 생각했고, 분을 내었습니다.(마26:8, 막14:4)
그리고 책망했습니다.(막14:5)
그들은 예수님 곁에서 예수님을 가장 귀히 여겨야 할 예수님의 제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주님보다 물질에 더 많은 관심을 두었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위해 드리는 봉헌을 허비로 보았습니다.
그들은 그 돈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다는 합당한 관심을 가졌으나
그 이면에는 봉헌을 자선보다 못하게 여기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천국을 소망하는 성도라고 해도 현실을 외면하고 살아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현실에 집착해서도 안됩니다.
이웃을 보는 것 때문에 하나님을 보지 못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여인의 봉헌을 못마땅하게 여긴 사람들은
봉헌을 받으시는 하나님은 보지 못하고 이웃만 보았습니다.
그들 중에는 가룟 유다처럼 탐욕스런 마음을 숨기고 있는 이들도 있었습니다.(요12:6)
"아이구 아까워라. 저걸 날 주었더라면….
저걸 내가 쓸 수 있었더라면…" 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도 주님을 향해, 주님을 위해… 드려지고 쓰여지는 것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가 하는 일에 대해… 성도들이 정성으로 섬기고 봉사하는 일에 대해
'교회가, 교인이 뭐하느냐고?' 함부로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값있게 쓰여지는 것에 대해서는 함부로 말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값있게 쓰여지는 것이라고 하여 아무때나, 아무 곳에나 쓰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5000명을 먹이실 만큼 능력있는 분이셨습니다.
그 당시는 먹고 살기가 어려웠던 때였습니다.
보리떡 다섯 개는 어린아이도 가질 수 있는 것이었고
갈릴리 호수에는 물고기가 많았습니다.
그러니 제자들에게 매일 아침마다 먹을 것을 구해오라고 하는 일이
얼마든지 가능한 일 아닙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그 당시에 모든 사람들에게 매 끼를 먹여 주시지는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의 병을 고쳐 주셨습니다.
그렇다고 당시 유대 팔레스타인 지역에 있는 모든 병자들을 고치시지는 않았습니다.
 
우리 기둥교회도 할 수 있는 대로 최선을 다하여 건축도 하고,
도와주고, 지원하며 선교합니다. 더 하고 싶습니다. 더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사람들의 비난에 대해 자유로운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다 할 수는 없습니다.
최선을 다하고 더 못하는 안타까운 마음을 가질 뿐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모든 것을 다할 수도 없고 다 해야만 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 교회가 Vision Center를 건축한다고 교회를 옮긴 가족이 있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교회를 떠나가면서 '건축할 돈 있으면 어려운 자기 가족이나 도와 주지
건축을 왜 하느냐'고 했답니다. 죄송합니다. 그렇게 할 수 없어서...
그런가 하면 기둥교회에는 헌금하지 말라고,
헌금할 필요 없다고 말한 이도 있었다는 소리도 들었습니다.
그 소리를 듣고 얼마나 마음에 상처가 되었던지요.
그런데 오늘 설교 준비를 하면서 저는 마음에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은 예수님 곁에도 있었습니다.
그런 생각의 대표가 누구입니까? 가룟 유다였습니다(요12:4~6).
그러니 제 곁에도 있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예수님이 어떤 분입니까?
5000명을 먹이고 남은 부스러기 조차도 버려지지 않도록 모으라고 하셨던 분입니다.
그런 예수님이 여인의 기름부음에 대해
"가만 두어라…  저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막14:6)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메시야로, 구세주로 알고…
다가오는 온 인류를 위한 자신의 죽음을 위해
미리 준비하여 향을 부은 여인의 헌신을 칭찬하셨습니다.
그 향유는, 그 비싼 향유는 낭비된 것이 아니라
값있게 쓰여진 것이라고 칭찬하셨습니다.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보람된 의미 없이 지나가 버린 시간, 낭비입니다.
보람된 의미 없이 써버린 재산(돈), 낭비입니다.
보람된 의미 없이 집중된 지식, 낭비입니다.
보람된 의미 없이 발휘한 권력… 낭비입니다.
그러나 값있게 쓴 시간, 값있게 쓴 재물, 값있게 쓴 재능…
그것은 낭비가 아닙니다. 그것은 쓸 곳에 쓴 것입니다.
 
유한한 생명을 가진 인간에게
하나님을 향해 헌신할 수 있는 기회가 언제나 보장된 것이 아닙니다.
7절에 뭐라 했습니까?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아무 때라도 원하는대로 도울 수 있거니와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막14:7)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우리에게 허락하신 기회는… 다음이 약속되어 있지 않습니다.
봉사할 기회, 헌신할 기회, 성전 건축할 기회, 헌금할 기회… 기회를 갖는 것이 복입니다.
 
기둥교회를 건축하고 봉헌 하던 날, 저는 하루종일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건축할 기회를 주셔서 아름다운 성전을 건축케 하셨으니
감사합니다. 건축하는 교회의 목사가 되게 하셨으니 감사합니다.
하나님 이제 저는 건축하고 더 이상 상관이 없겠지요."하는 마음을 가졌었습니다.
건축하면서 너무나 힘들고 어려웠기 때문에…
그런데 생각지도 않게 비전센타를 건축하게 되었습니다.
건축을 해 놓고 그 뒷감당을 하느라고 지금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지 모릅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얼마나 감사한지요.
이 세상의 목사라고 해서 다 건축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세상의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해서 다 교회 건축하는 일에 동참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 기회가 모두에게 다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축복의 기회인데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런데 우리들 주변에는 그런 기회를
이런 저런 이유로 못 들은 척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중에]라는 생각을 갖는 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축복의 기회를,
섬김의 기회, 봉사할 기회, 헌신의 기회를 외면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본문의 여인은 예수님께 드릴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도 기회를 놓치지 않는 신앙생활 하시기 바랍니다.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세상을 물로 심판하시기 전에
당대 "의인이요 완전한 자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던" 노아에게(창6:9)
큰 배를 지으라고 명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노아가 480세 때 방주를 지으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노아의 나이가 480세라니까 믿지 못하겠다고 하는 분들이 있다면
믿으시기 바랍니다. 당시에 노아의 나이는 과학자들도 인정한 사실입니다.
그러니 이제 그런 것 가지고 의심하여 "성경을 못 믿겠다" 하면…
무식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노아는 480세 때 방주를 짓기 시작해서 600살까지
120년 동안 방주를 지었습니다(창6:3, 벧전3:20, 창7:6)
그런데 노아는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다~ 준행했습니다(창6:22).
여러분, 120년 동안 배를 짓는다고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어려웠겠습니까? 사람들로부터 얼마나 조롱받았겠습니까?
노아를 한심하게 생각한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도 노아는 하나님의 명령에 다 순종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있다면
사람들이 조롱하고 비난한다 할지라도 하나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여러분도 지금, 주님의 몸 된 제단에 값비싼 향유를 뿌리는 성도들입니다.
몸과 마음과 정성을 다해 시간을 드리고,
재능을 드리고, 물질을 드리며… 예배드립니다.
비록 작은 것이지만 그것은 우리가 가진 향유입니다. 주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300데나리온의 나드향…
그것은 예수님을 모르는 이들에게…,
예수님의 희생을 모르는 이들에게…,
그 자신의 죄됨을 모르는 이에게…,
세상만 바라보고 비교하는 이들에게는 낭비로 보여지고 조롱거리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보시기에 귀한 일을 하는 것이면… 오히려 감사한 일입니다.
 
헌신에는, 선행에는… 비난이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을 향한 행위에조차 비난이 있었으니,
이 세상에 아무리 귀하고 선한 일이라도 오해가 있고, 반대가 있고,
다른 의견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선행을 할 때… 헌신을 할 때…
좋은 말만 들으리라고 기대 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다만 주님으로부터 칭찬 받으면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뭐라 하든지 신경 쓸 필요가 없습니다.
 
본문 8절에 보면 여인은 힘을 다하였습니다. 우리도 힘을 다하면 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하면 됩니다. 남과 비교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이 보시는 것은 "얼마나 최선을 다했느냐?" 하는 것이지
"얼만큼 했느냐?"가 아닙니다.
 
 
기념이 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9절에 보세요.
예수님께서는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 하시니라"(막 14:9)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도 기념이 되는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 여인은 기념이 되는 삶을 살았습니다.
성경에 보면 작은 동전 두 개를 드렸던 과부의 헌금도 기념이 되었습니다.
지극히 적은 소자에게 대접하는 냉수 한 그릇도 그 상을 잃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바울을 도운 자주 장사 루디아의 봉사도 기억되고 있습니다.
모두 기념되는 행위였습니다.
 
여러분의 가정에서 맡은 일, 교회에서, 일터에서 주님 뜻대로 살려고 애쓰며
자신의 귀한 옥합을 깨는… 자신의 귀한 것을
주님을 위해 희생하는… 삶이 되시지 않으렵니까?
오늘도 이런 저런 비난을 받아가며 주일 지키고,
예배드리고, 봉사하고, 헌금하고, 섬기는 자리에 있습니까?
예수님께만, 주님께만 칭찬 받기를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이 몰라주면 어떻습니까.
 
오늘도 우리 주변에는 가룟 유다와 같은 소리를 내며
우리가 주님 뜻대로 좁은 길을 향하여 가는 길을 가로막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헌신할 기회를 빼앗아 가는 유혹이 있습니다.
여러분 그런 유혹에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 주변에도 가룟유다 같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신앙생활하면서도 어울리는 사람을 잘 택해야 합니다.
 
어떤 책에서 읽은 내용 하나를 소개합니다.
 
아침마다 조깅하는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목사님은 늘 개를 데리고 조깅을 하셨습니다.
하루는 장로님이 조심스럽게 목사님께 말씀드렸습니다.
"목사님, 조깅하실 때 제발 개는 데리고 다니지 마세요"
목사님이 왜 그러냐고 이유를 물었더니 이렇게 답을 하셨습니다.
목사님이 개와 같이 뛰시면 사람들은 목사님을 향해 "저 개 같은 목사"이라고 말합니다.
목사님이 개보다 앞서면 사람들은 "개보다 더한 목사"라고 하고
개보다 뒤쳐지시면 "개보다도 못한 목사"라고 합니다.
"그러니 제발 개와 같이 뛰지 말아 주십시오."
물론 지어낸 우스갯소리겠지만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누구와 어울려 뛰느냐에 따라 평판이 다릅니다.
여러분은 누구와 어울리십니까?
여러분의 주변을 맴돌고 있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여러분의 가정에서 가정을 지키려고 화목하려고 애쓰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자녀를 기르며, 부모님을 공경하고, 형제간에 우애하고
화목하게 지내려고 애쓰는 여러분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교회에서… 이름 없이, 빛 없이… 섬기며 봉사하는 자리에 있으십니까?
일터에서… 예수님 향내 풍기며 살려고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사십니까?
그렇다면 사람들이 알아 주든지, 알아 주지 않던지
여러분은 주님께 향유를 붓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뭐라고 칭찬하든지, 비난하든지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 주님이 뭐라고 하시는 지가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분의 섬김과 드림의 삶이…,
가정에서, 교회에서, 일터에서의 삶이… 빛되고 소금되어,
훗날 하나님 앞에 갔을 때 "잘 했다. 너 참 멋있게 살다 왔다. 기념되는 삶을 살다 왔다"고
칭찬 받는 자리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은혜와 사랑을 감사합니다.
이 거룩한 주일 기념되는 삶이 되고 싶습니다.
기념되는 삶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이름없이 빛없이 섬기고, 봉사하며, 헌신하고
향유를 쏟는 삶이 되기 위해 주저하지 않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오늘도 주님 뜻대로 사는 길을 가로막고
헌신할 기회를 빼앗아 가는 유혹에서
승리하는 믿음의 일꾼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귀한 시간 정성으로 모은 물질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려고 합니다.
하나님 받아 주시옵소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004년  9월  5일 주일 낮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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