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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리스도인들의 물질관 (약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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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박춘수 목사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데 데 있어서 제일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사람들이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세상에서 제일 관심을 갖고 생각하고 시간을 투자하고 노력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아마도 돈일 것입니다.우리는 돈을 떠나 살 수 없습니다. 돈처럼 우리의 삶에 영향력을 끼치는 경우도 없습니다.과연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돈에 대해서 어떤 자세로 살아가야 합니까?

우리에게는 2가지의 극단적인 태도가 있습니다. 우선은 물질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물질숭배적인 인생관이 있습니다.지난 주간에 가족들과 함께 찜질방에 갔었던 적이 있습니다. 늦은 시간인지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습니다. 찜질을 하기 위해 한 방에 들어갔더니 30대의 젊은 두남자가 있었습니다. 그 옆에 앉아있으면 그들이 하는 대화를 듣게 되었습니다. 대화의 주제는 어떻게 하면 부자가 되는가? 하는 것이 주제였습니다. 둘중에 그래도 더 돈을 모은 것같은 좀 자랑스릅게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난 40까지 30억을 모으는 것이 목표다”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러자 반대편의 또래의 남자가 물었습니다.‘지금 얼마나 모았는데“라고 물었습니다. ’지금 1억원을 모았는데 이제 이것을 이용해서 30억을 모을 계획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어떻게 지금 1억을 갖고 30억원을 10년도 안되는 기간에 모을 수 있는 것인가? 에 대해서 자신의 계획과 방법들을 이야기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돈을 모으는 핵심은 이것이었습니다. “돈이 돈을 모은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적당한 곳에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자기는 돈을 위해서 모든 인생을 건다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돈을 버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고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돈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말씀하시고 합니다. 가령 잠언19:4에 “재물은 많은 사람을 더하게 하나 가난한즉 친구가 끊어지느니라”고 합니다.재물의 유익함을 말씀합니다. 재물이 있으면 친구를 모읍니다. 재물이 있으면 많은 친구를 모읍니다. 가난하면 친구가 떠납니다. 이처럼 돈이 우리의 인생에 유익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경에서는 돈을 나쁘게만 말씀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돈을 인생의 모든 가치를 대표하는 것으로 여기는 태도입니다.
두 번째로 극단적인 태도는 물질을 배척하는 사람들의 인생관입니다. 물질은 악한 것으로 여기고 돈을 부정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초대교회 당시에 영지주의라고 있었습니다. 영지주의는 인간을 파악할 때 영과육,영혼과 육체로 날카롭게 분리합니다.그리고 육체를 죄악시여겼습니다.영혼을 거룩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리고 물질과 관련하여서도 거룩한 사람은 돈근처에 가면 안된다.그러면서 목사는 돈에 관여해서는 안된다라고 하고 그리스도인들은 가난하게 사는 것이 영적인 것이라고 합니다.

성경에서는 돈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말씀하기도 합니다. 잠23:4에 “부자 되기에 애쓰지 말고 네 사사로운 지혜를 버릴지어다”라고 합니다. 즉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는 자는 망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돈을 모으는 것을 위해 이리저리 꾀를 쓰고 방법을 갖으면서 사는 삶의 태도는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이런 말씀들을 보면 돈을 부정시켜기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렇게 성경을 보면 때로는 돈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때로는 부정적으로 말씀하기도 합니다. 과연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물질에 대해서 어떤 자세를 갖아야 합니까? 믿음 생활을 성숙하게 살기 위해서는 물질의 문제를 잘 다루어야 합니다. 많은 경우에 현실의 믿음 생활에서 물질로 인하여 시험에 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돈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합니까? 저는 2가지 정도 생각을 해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왜 돈을 모으려고 하는가? 돈을 버는 목적이 무엇인가? 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과연 돈은 어떻게 벌어지는가? 하는 것입니다.우리는 “돈이 돈을 번다”라고 생각합니다. 돈은 내가 투자만 잘하면 얻어지는 것이다라고 합니다. 과연 이 생각은 올바른 생각입니까?

오늘 야고보 기자가 말씀을 주던 교회에는 이 물질로 인하여 어려움을 겪고 있엇습니다. 가난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부자들도 있었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가난함 때문에 물질의 유혹이 있엇습니다. 부자는 부자이기 때문에 물질의 유혹이 있었습니다.

1. 주신 물질로 자기를 자랑해서는 안됩니다.

1-2절을 봅니다.
여기 우선 “낮은 형제”에 대해서 권면합니다. 낮은 형제란 가난한 자입니다. 여기 “낮다”라는 말은 땅위에서 멀지 않은 자,즉 땅에서 밑바닥 인생을 살아가는 자란 말입니다.이 세상에서 사람을 평가할 때 가장 밑바닥 인생을 살아가는 경우는 대부분 물질로 인한 경우들이 많습니다. 여기 초대교회 중에 물질로 인하여 가난한 지경에 있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들 중에도 물질이 없는 가난한 지경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다 부자가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성경에 보면 예수님을 믿어도 가난한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할 것은 정말 가난한 것이 무엇인가? 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가난한 사람이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때로 물질이 없음으로 인해서 가난한 나의 삶에서 주님께 감사하고 기뻐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여기 “가난한 사람은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라고 합니다. 여기 “높다”라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높아진 것을 의미합니다. 땅에서는 물질이 없어서 땅바닥을 치는 낮아진 인생이지만 그 가난한 지경에서 오히려 하나님 앞에서 높아진 것을 자랑하라고 합니다. 물질이 없는 대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영생을 얻게 된 것을 자랑하라고 합니다. 물질의 가난함 때문에 오히려 하나님 앞에서 영적으로 인격적으로 더욱 성숙한 것에 대해서 자랑하라고 합니다. 주신 물질로 자기를 보지 말고 영적인 관점에서 자기를 보라는 것입니다. 주신 물질이 비록 적어서 삶에 고통이 있고 어려워도 그것으로 원망하지 말고 자기를 영적으로 높여주신 부요하신 하나님께 대하여 자랑하면서 자족하여야 한다고 합니다.

다음에 부한 형제들 즉 부자된 그리스도인들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예수님믿고 부자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믿고 부자될 수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믿음의 사람들 중에 부자들이 많습니다.아브라함도 이삭도 요셉도 솔로몬도 욥도 부자였습니다. 또 많은 현대의 그리스도인들 중에 부자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물질의 넉넉한 것으로 자기를 높이는 것은 어리석은 행위입니다. 물질의 부자된 사람은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하라고 합니다. 자기를 영적인 관점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가 어떤 존재인지를 평가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돈이 많고 부자되면 세상에서 얼마나 높임을 받는지 모릅니다. 사실 돈만 쓰면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높여줍니다. 그래서 돈있는 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높여주는 그 맛 때문에 돈을 씁니다. 얼마나 돈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자랑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영적인 관점에서 예수 안에서 부자된 그리스도인들은 비록 땅에서 사람들이 나를 높이고 인정하여줄지라도 나를 영적인 관점에서 내가 하나님 앞에 얼마나 낮은 존재인지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주안에서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해야 합니다. 내가 얼마나 하나님 앞에서 부족하고 못난 존재인가를 자랑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여기 인생의 가치를 인생의 평가를 물질로 하지 말 것을 말씀합니다.

여기 돈에 대해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10절 하반절“이는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고 합니다. 여기 재물의 특성은 풀의 꽃과 같습니다. 풀의 꽃은 어떤 속성입니까? 11절에 “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 풀을 말리우면 꽃이 떨어져 그 모양의 아름다움이 없어지나니 부한 자도 그 행하는 일에 이와 같이 쇠잔하리라”고 합니다. 여기 꽃의 속성이 얼마나 속절없는 것인가? 얼마나 유한한 것인가? 이스라엘을 여행하면 우리는 이 속성을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봄이 되어 우기가 되면 이스라엘의 들판은 백합꽃,아네모네등과 같은 아름다운 꽃들이 들판 가득히 피어납니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정원같은 꽃들이 해가 돋고 아라비아 광야에서 열풍이 불어오면 순식간에 사라지고 없다는 것입니다.우리나라같은 경우와는 다르게 너무나 급속하게 꽃이 사라지고 없습니다. 이런 꽃과 같이 부자들의 부도 졸지에 사라지고 없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질 때문에 기죽어 있습니까? 어떤 지경에 있더라도 주신 물질로 인하여 감사하면서 영적인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진 것을 자랑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종종 보면 교회 속에서 물질없는 것으로 자기를 스스로 학대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나는 실패한 인생이다라고생각합니다. 그러면서 나도 나를 무시합니다. 내가 나를 무시하는 자신감없는 삶을 살면 결국 남도 나를 무시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혹 영적으로 미성숙하여서 그런 분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물질로 낮아진 지경에서도 나를 높여주신 하나님아버지로 인하여 나를 당당하게 높여갈 수 있는 영적인 자신감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물질을 주셨습니까?
그것으로 나를 자랑하지 말고 영적인 나를 세워가면서 하나님을 자랑하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물질의 가치는 물질을 바로 사용할 때 나타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물질을 주신 것을 바르게 잘 사용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주셧습니다. 그래서 물질에 부한 자들을 향해서 딤전6:18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라“고 합니다.한번은 웨슬레목사님이 돈에 대해서 설교하셨습니다. 사람들은 목사님이 어떤 설교를 할 것인가 굉장한 관심을 갖고 들었습니다. 웨슬레목사님이 설교대지는 첫째가 ”할수 있는한 돈을 많이 버십시오“하였습니다.그러자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목사님이 현실감이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그리고 설교의 두 번째 대지는 ”할수 있는한 돈을 많이 저축하십시오“라고 했습니다.그러자 사람들은 목사님이 정말 센스가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세 번째 대지가 ”그것을 다 써버리십시오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여러분이 모아둔 돈을 다 쓰십시오“라고 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물질을 자랑할 수 있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구체적으로 쓰는 것이 무엇입니까? 가장 좋은 것은 헌금을 통해서 사용되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내가 개인적인 명목으로 선을 하고 의를 행하는 것은 자칫 나의 이름이 드러날 위험이 큽니다. 그래서 공적으로 헌금을 통해서 나의 이름은 죽고 주님의 이름이 드러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의 인생이 덧없는 인생임을 바라보시면서 영원하신 하나님 앞에 잠깐의 인생을 바른 물질로 영광을 돌리면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2. 물질의 욕심을 버리셔야 합니다.

14-15절을 봅니다.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시험이란 유혹의 의미로서 시험입니다. 야고보서 1장2절에 시험이란 시련의 의미로서 시험입니다.외적인 시련의 시험은 기쁘게 여기면서 우리가 믿음으로 인내하면서 이겨야 합니다. 그러나 내적인 시험은 유혹은 자기 자신에게 달려있습니다.
왜 사람이 유혹을 받습니까?
우리는 모두 욕심의 유혹에 실패한 죄성이 있습니다.
하와가 욕심 때문에 마귀의 유혹에 넘어갔습니다.왜 넘어갔습니까? 우선 참지 못하기 때문에 옵니다.그래서 12절에 시험을 참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합니다. 유혹을 참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왜 참지 못합니까? 대개 사람들이 유혹을 받는 것은 자기의 마음을 지키지 못하고 생각을 다스리지 못하는데서 오는 것입니다.

첫사람 하와가 사탄에게 유혹을 받았을때를 보십시오. ‘선악과 열매를 따먹지 말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명령을 지켜야 하는데 하와가 유혹을 했습니다. 그때 가장 먼저 하와는 마음을 지키고 참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유혹을 받을때 마음에 동요가 일어났습니다. 창3:6에 보면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지라”라고 합니다. 여기 보면 마음에 먹음직 보암직 탐스러운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선악과열매를 내가 소유하면 그렇게 되어질 것으로 여기는 것처럼 우리는 물질을 소유하면 이런 우리의 삶이 되어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물질이라는 것이 우리의 삶을 얼마나 낭만스럽게 환상적인 꿈을 갖게 유혹을 합니까? 네가 어렷을적 남진이란 가수의 노래 중에 “저 푸른 초원 위에”라고 하는 노래가 있습니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님과 함께 한평생 살고 싶네”라고 합니다. 물론 사랑을 노래한 노래이지만 거기에 수반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림같은 집을 지어야 합니다. 그림같은 집은 그냥 짓습니까? 땅도 있어야 하고 집을 지으려면 돈을 모아야 합니다. 그런데 행복이란 것이 이렇게 그림같은 집을 짓고 살 때 주어지는 것으로 우리의 마음 속에는 일반적으로 유혹을 합니다. 요즘은 어떻게 우리를 유혹합니까? 내가사는 아파트가 어떤 아파트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우리를 증명하려고 합니다. 우리의 정욕으로 쓰려고 우리는 욕심을 갖습니다.

많은 경우에 우리는 욕심으로 인하여 유혹에 실패하면서 넘어질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유혹에 넘어져서 실패할 때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처리합니까? 그 책임을 전가시키려고 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자기 욕심으로 유혹에 넘어가 실패하고 나서 그 문제를 어떻게 처리합니까? 하나님께서 범죄한 아담과 하와에서 찾아와서 죄를 추궁할 때 아담은 책임을 누구에게 돌립니까? 창3:12 “아담이 가로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주므르ㅗ 내가 먹었나이다”라고 합니다. 여기 하나님에게 하와에게 책임을 전가합니다. 하와는 누구에게 전가합니까? 뱀에게 전가합니다. 하와가 뱀에게 전가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왜 하나님께서 뱀을 만들어서 나를 유혹하게 하는 것입니까/? 라고 하는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사람이 미혹을 받고 욕심에 넘어지는 것은 하나님때문이 아닙니다. 그래서 13절“사람이 시험을 받을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찌니”라고 합니다.그러면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시험 유혹은 바로 우리의 욕심에 문제가 있음을 말씀합니다. 특별히 돈의 욕심은 엄청난 문제를 일으킵니다. 바울은 돈을 사랑함이 일만악의 뿌리가 된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욕심이란 무엇입니까? 자기의 옛사람의 헛된 소욕의 열심입니다. 우리의 옛사람의 욕심,탐심의 핵심은 자기를 위해서 더 많은 것을 소유하는 것입니다.왜 그렇게 더 많이 쇼유하ㅕ려고 합니까? 그것이 나의 인생을 안전하게 보장하여 주고 내 인생의 미래가 안전하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얼마나 어리석을 일입니까?

누가복음 12장16-19절에 보면 한 어리석은 부자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부자는 자기를 위해서 “내가 곡식 쌓아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내가 이렇게 하리가.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합니다.여기서 우리는 어리석은 욕심의 부자에게 어떤 의식을 볼 수 있습니까? 오직 나입니다. ‘자기’를 위하여 욕심을 갖고 부자가 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이렇게 되면 돈이 우상이 됩니다. 그렇게 되면 결국 인생에 사망의 길로 가게 됩니다.“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다”라고 본문은 말씀합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가롯유다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얼마 안되는 돈에 자기가 믿고 따르던 예수님을 팔고 그러나 양심의 가책 때문에 결국 자살하고 맙니다. 오늘날 현대판 가롯유다의 비참한 결과가 얼마나 우리 주변에 많이 일어납니까?
종종 믿음 생활을 하다가 떨어져 나가는 핵심이유 중에 하나가 물질에 대한 욕심 때문입니다. 믿음 생활에서 더 이상 성장이 멈추는 이유가 바로 물질의 욕심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이땅에서 부자일지라도 오늘날 하나님이 우리 생명을 거두어가시면 그 물질은 나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쓸까 구하는 어리석음이 없기를 바랍니다. 성경은 부자되는 것을 금기시여기지는 않습니다. 나를 위해 부자가 되지 말라고 합니다. 남을 위해 부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부자가 되어야 합니다. 물질에 대한 욕심은 우리의 삶은 죄를 낳습니다. 물질의 욕심은 우리를 파멸로 인도합니다.

3. 모든 부가 하나님께로 옴을 인정하셔야 합니다.

16-18절을 우리가 함께 봅니다.
여기 먼저 16절에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고 우리에게 속지 말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할때 많은 경우에 우리가 속습니다. 미성숙한 그리스도인일수록 잘 속습니다. 특별히 욕심이 많은 사람일수록 잘 속습니다. 스스로를 지혜롭게 여기고 자기를 자랑하는 자들이 잘 속습니다. 그중에서 우리가 가장 잘 속는 것은 모든 삶의 문제를 나에게서 남에게 돌리고 하나님에게 돌리려는 태도입니다. 물질의 문제도 사실은 하나님께서 이미 좋은 것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우리의 욕심으로 그 물질을 잘못 사용하여서 우리가 고난을 당하고 어려움을 당하는 경우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반드시 인정해야 할 분명한 것이 있습니다.
모든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다 위로부터 하나님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의 영적인 은사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데 좋은 선물인 물질도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물질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돈이 돈을 버는 것같지만 돈은 하나님이 주십니다. 돈은 내 노력만으로 벌려지는 것같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모든 물질의 복을 주십니다.

여기서 우리가 다시한번 인정해야 할 것은 물질이 돈이 악한 것인가? 선한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돈의 주인이시고 하나님이 돈을 주셨다면 물질은 선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다음에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자수성가란 말은 없다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자신이 자수성가하였다고 합니다.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자수성가라는 말이 없습니다. 내가 물질을 얻기까지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주었습니다. 하나님이 위에서 건강을 주셨고 여러 환경을 허락하여 주신 것입니다.하나님이 물질을 주셨습니다.

내가 열심히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을 해서 내가 물질을 얻은 것처럼 혹시 생각하지 않습니까? 내가 열심히 고생하여서 얻은 것이므로 내가 이 물질의 주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솔로몬은 이렇게 고백합니다.전도서9장 11절 “내가 돌이켜 해 아래서 보니 빠른 경주자라고 선착하는 것이 아니며 유력자라고 전쟁에 승리하는 것이 아니며 지혜자라고 식물을 얻는 것이 아니며 명철자라고 재물을 얻는 것이 아니며 기능자라고 은총을 입는 것이 아니니 이는 시기와 우연이 이 모든 자에게 임함이니라”고 합니다. 로마서 11: 28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고 합니다. 모든 세상 만물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그분은 변함이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다도 없으신 온전하신 분이십니다. 우리를 첫열매로 삼으려고 우리를 진리의 말씀으로 창조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만드셨습니까?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가운데서 그 진리의 말씀들을 좇아서 우리를 만들어냈습니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무에서 유를 창조하실 때 말씀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를 새롭게 창조하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를 첫열매로 삼기 위함입니다. 즉 이 세상에 많은 족속 많은 사람들 중에서 우리를 첫열매삼으셔서 하나님을 증거하기 위함입니다. 이렇게 선택하시고 하나님이 자녀삼으신 자기 백성들에게 우리 하나님께서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마태복음 6장에서 말씀하십니다. 우리에게 공중에 나는 새를 보라고 합니다. 들에 피는 백합화를 보라고 합니다. 이런 피조물이라고 먹이시고 입히시거든 하물며 예수님 안에서 자기 백성으로 삼으신 백성들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중에는 물질적인 어려움을 당하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특별히 요즘같은 불경기의 시기에는 직장을 다니시는 분들은 괜찮지만 자기 사업을 하시는 분들은 많은 영향을 받습니다. 특히 남의 건물을 세를 내어서 사업을 하시는 분들은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수입은 없는데 달마다 고정적으로 내는 세의 부담이 이만 저만한 것이 아닐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당할때에 우리의 직업과 사업터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원망하기보다는 감사하고 불평하기보다는 찬송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저는 개인적으로 지금 우리나라가 이 정도의 상황에서도 잘 사는 나라요 하나님이 엄청난 복을 주셨다라고 생각합니다. 힘들다,어렵다,못살겠다 라고 하지만 우리가 먹고 입고 쓰고 사는 것 과거와 비교하여 생각하여 보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여러분 주시는 이가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주어진 삶 속에서 최선을 다하여 일하시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구하시기를 바랍니다. 요즘같은 때에 저는 우리가 꼭 기억하고 묵상할 하나님의 말씀이 하박국서3장17-18의 말씀입니다.우리 다함께 이 말씀을 읽으면서 말씀을 결론짓기로 합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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