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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영적 웰빙의 사람 (요삼 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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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임경택 목사 (종로교회)

오늘은 교역자 보건주일입니다. 기독교대한 감리회가 교역자들의 건강이 교회의 건강에 지대하기 때문에 정한 주일입니다. 교역자의 건강과 영혼이 늘 맑아 하나님의 진리를 선포하고, 성도의 영혼을 보살피는데 활력이 넘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해마다 건강진단을 하게하고 온 성도들로 하여금 기도와 순종과 협력을 하도록 권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목자의 열심과 능력있는 목회의 삶을 위해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준종해야 할 것입니다. 협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 성도여러분 영과 육이 건강한 모습으로 하나님께 헌신하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의 영적 건강을 위해 설교하고자 합니다. 이것이 교역자의 건강이 되기 때문입니다.
요즘 웰빙(well being)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합니다.
웰빙이란? 사전을 찾아보면 "행복", "안녕"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삶의 조화와 균형, 그리고 정신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생활을 말합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육체적인 질병뿐 아니라 정신적 사회적 질병도 없는 상태가 건강하고 행복한 삶이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것이 웰빙의 삶입니다.
‘웰빙’이라는 말은 쉽게 말해 단순한 의식주 해결을 넘어 ‘질병 없이 건강한 인생을 살자, 잘 먹고 잘 살자’라는 뜻이다.
요즘, 웰빙족들이 많이 생기고 있다고 합니다.
오늘, 웰빙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대개 아래의 세가지를 균형있게 갖고 싶어합니다.
1) 육체적 웰빙-건강 증진을 위한 생활습관-균형 잡힌 식사, 규칙적인 운동, 충분한 휴식.
2) 정신적 웰빙 - 자신에 대한 만족과 자부심 중요 - 명상과 요가 등 정신수양, 독서와 사색을 통해서 스트레스를 이기고 정신건강을 추구합니다.
3) 사회적 웰빙 - 직장 또는 공동체에서 소속감과 함께 성취감을 느끼는 상태.
이 웰빙 생활의 단점은 이기주의에 빠질 우려가 있습니다. 자기만 잘 먹고 살면 된다는 의식 . . .
그러나 오늘 우리가 사는 사회는 여러 가지로 힘들고 피곤하고 찌든 삶을 살아가면서도 보통 사람들이 늘 추구하는 일반적인 삶의 가치는 잘사는 것, 훌륭하게 사는 것, 행복하게 사는 것 등일 것입니다. 모든 현대인들의 마음에는 이런 웰빙의 소망을 다 가지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요즘, 교회도 웰빙교회(Well Being Community Church)도 생겨났습니다. 동숭동에 있습니다. 웰빙교회는 대형 교회들이 갖지 못하는 최대의 강점인 ‘소규모’교회로서의 장점을 살리는 ‘성도들이 행복한 교회’의 꿈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축제의 예배,, 행복한 주말교회 추구, 전인적 치유를 통한 아름다운 대인관계의 교회를 추구하는 교회라고 합니다.
요즘 유명한 새안산교회는 불신자가 좋아서 스스로 찾아오는 교회로 유명합니다. 다양한 레포츠 시설(체육관, 헬스실, 스쿼시실, 수영장, 사우나, 카페 등)과 문화시설(소극장, 콘서트 홀, 세미나실, 컴퓨터실, 연회장 등) 그리고 복지시설(장애우 교실, 놀이방, 이동목욕차량, 편의시설 등)을 바탕으로 지역주민들이 가까이 할 수 있는 문화교실, 다양한 문화 행사, 세미나, 음악회, 놀이 이벤트 등으로 건강한 생명문화를 만들어가는 센터가 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안에서 참으로 행복하게 기쁨으로 감사하게 사는 것을 영적인 웰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육체적으로는 가난과 환란과 핍박이 닥치는 삶이었지만 영적으로는 웰빙의 삶을 살았던 무리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시대는 물질적으로 영적으로 사회적으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축복을 주신 때라고 봅니다.
오늘 본문에는 “네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간구하노라”(2절) 사도 요한이 소아시아 교회 가이오에게 축복하는 내용입니다.
이 내용은 바로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를 향해 그렇게 되기를 원하는 마음일 것입니다.
우리는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라는 말의 뜻은 헬라어의 어원적 의미는 “잘, 좋게, 행복하게, ” 즉 웰빙입니다.
영혼이란 무엇일까요? 육체에 생명이 있으면 심장이 뜁니다. 이와같이 영혼이 생명이 있으면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심장이 멈추면 호흡이 그치듯이 하나님이 영혼을 거두시면 멈춥니다. 현대인들은 육체를, 건강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 모릅니다.
인생에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 물음에 1위 건강, 2위 돈 3위 인간관계라고 .
육체가 중요하듯이 영혼이 중요합니다. 영혼이란 보이지 않는 내면의 자아입니다. 속사람입니다. 영혼은 하나님과 만나는 가장 적합한 장소입니다. 찬양과 감사와 기쁨이 충만하여 하나님께 거룩한 제사를 드릴 수 있는 우리 내면의 깊은 곳에 자리잡은 지성소입니다. 그러므로 영혼이 잘 된다는 것(영혼이 건강하다는 것)은 그 영혼이 하는 일 즉, 하나님께 기도 찬양 예배하는 일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시42:1을 보면, 이러한 영혼의 갈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하나님을 찾아 갈망하는 내면의 자아, 이것이 바로 영혼의 건강한 모습입니다.
몸에 좋다면 이것 저것 가리지 않고 먹어대는 보양식으로는 우리나라게 세계에서 제일 갈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건강에 얼마나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나라입닏다.
그러면서도 영혼에 대해서는 무관심합니다.
누가복음 12장에 어리석은 부자가 나옵니다. 그는 젊고 건강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하는 일마다 잘되어 재산이 점점 불어났습니다. 농사를 지으면 다른 사람보다도 2-3배 많은 수확을 거두었습니다. 나중에는 쌓아놓을 창고가 없을 정도로 곡식이 넘쳐 났습니다. 그는 가끔 자기의 배를 두들기면서 이런 노래를 불렀습니다. "내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영혼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부자를 어리석은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영혼에 대해 무관심한 어리석은 사람의 결과입니다.
우리의 영혼은 죄로 인해서 병들고 부패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흘리신 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씻어 주시고, 성령을 주셔서 우리의 망가진 영혼의 기능을 다시금 회복시켜주셨습니다.
이제는 영혼이 우리 영혼의 지성소가 올바르게 기능을 발휘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나는 어떤 종류의 교인인가? 교인의 종류를 흥미있게 묘사한 것이 있습니다.
1) 뒤에서 밀어 줘야 간신히 앞으로 가는 휠체어 교인
2) 등을 두드려 줘야 칭얼거리기를 그치는 어린애같은 교인
3) 도무지 언제 어디로 튈지 예상할 수 없는 미식 축구공같은 교인
4) 바람만 잔뜩 들어서 언제 터질지 모르는 고무풍선같이 불안한 교인
5) 끌어 주지 않으면 꼼짝도 하지 않는 트레일러같은 교인
6) 항상 불이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깜빡등과 같은 교인
7) 성령 안에서 믿음을 가지고 꾸준하게 자기 몫을 감당하는 성실한 성도.
당신은 . . . .?
꾸준히 자기 몫을 감당하는 성령충만하고 건강한 교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일년에 한번씩 건강 진단을 해 봐야 하듯이 우리 영혼의 건강진단도 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간암말기 진단을 받았습니다. 모두들 좀 일찍 검사를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토로했습니다. 사실 그 사람은 몇 년 전부터 검사를 한번 해야지 해야지 하면서 계속 미루다가 장에 혹이 생겨 증상이 나타나서야 병원을 찾았다고 합니다.
그 사람은 젊어서부터 줄담배를 피우고 폭음을 해왔는데 건강을 생각해서 절제하라고 권하면 ‘담배 피우고 술 마셔도 오래 사는 사람 많더라, 이런 재미도 없이 어떻게 사냐'면서 듣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당장 문제가 생기지 않으니까 안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영적 생활에서도 이런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 뭔가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당장 문제가 없으니까 그 자리에 계속 머물러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죄를 짓고 불순종할 때마다 당장 무슨 일이 생기기라도 한다면 금방 돌이킬 텐데, 하나님은 여전히 사랑하시고 은혜를 베푸시기 때문에 그 은혜를 악용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영적인 진단도 정기적으로 해봐야 합니다.
그럼 영적으로 건강진단을 할 수 있는 그 기준은 무엇입니까?

1. 예배가 즐거운가?
예배는 영적 건강진단에 가장 중요하고 첫 번째가는 것입니다.
예배드리는 이유는 너무나 자명합니다. 하나님이 좋아서 모인 것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우리를 창조하시는 하나님, 우리를 구원해주신 하나님,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너무나 좋기 때문에 나와 예배 드리는 것입니다.
예배드리는 성도는 일찍 일어나야 하는 불편이 있을 수 있습니다. 불신자들의 대부분은 휴일이니까 잠도 푹- 많이 잡니다. 그래서 교회가는 것이 즐겁지 않을 수도 있을 지 모릅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예수 믿는 분들 가운데 많은 분들이 주일날 하나님 앞에가서 에배드리는 것을 즐거워하지 못하는 성도가 있는것 같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건강하면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 가는 것을 즐거워합니다. 할머니 사랑을 맛본 손자 손녀는 할머니집에 가는 것이 즐겁습니다.
시 84:1-2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생존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시편기자는 “시 84:10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라고. . .
시 84:3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성전에 거하는 참새와 제비가 부럽다고까지 하였습니다.
2. 하나님 말씀의 맛이 단가?
시편기자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시 119:103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하니이다” 영적으로 건강한 성도는 첫째, 말씀의 맛이 좋은 것입니다. 몸이 아프면 입맛이 딱, 떨어집니다. 마찬가지로 영적으로 침체되거나 병들면 말씀의 맛부터 잃어버리게 됩니다. 설교시간이 가장 힘든 시간이 됩니다. 가장 졸린 시간, 가장 괴로운 시간이 됩니다.
연애하는 중에 조는 사람 있습니까? 만약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 사랑하는 사이가 아니겠죠?
어떤 분은 설교시간에 껌을 짝짝 씹는 사람이 있습니다.
목사를 무시하는 행위라고 생각 할 수 밖에 없는 행위입니다.
옆사람과 얘기 하는 사람. . .그렇게 이야기 할 시간이 없습니까?
다 병든 사람들입니다. 어떤 사람은 목사의 설교를 평가하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갈망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심령이 병들고 메마른 사람들입니다.
어떤 성도가 매일 성경을 20장을 읽기로 작정했습니다. 며칠 지나니까 부담스러워 10장으로 줄였습니다. 그런데도 부담스러웠습니다. 5장, 1장으로 줄였습니다. 이 사람은 이것도 귀찮아서 ‘하나님이 많이 읽기만 해야 기뻐하시냐? 말씀대로 살아야지’하면서 그날 그날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말씀 한절만 확실히 읽고 확실이 지키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는 탁 펴서 손가락으로 집히는곳을 읽기로 했습니다.
어느날입니다. 손가락으로 짚은 말씀이 마27:5절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 이상하다. 싶어 다시 한번 짚었습니다. 그랬더니 눅10:37절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그렇게 되니까 빨리 가서죽으라는 말 같이 들렸습니다. 그래서 한번 더 했습니다. 손가락으로 탁 짚었습니다. 그랬더니 요13:27절 "네 하는 일을 속히 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이것은 성경을 바르게 잘 읽자는 이야기입니다.
말씀은 우리의 에너지입니다. 말씀은 묵상해야 힘이 됩니다. 묵상은 우리 영혼을 위한 좋은 약입니다. 묵상은 영적 건강을 위한 유산소 운동이다. 묵상을 생활화합시다.
묵상하지 않고 많이 읽는 것 보다 성경 한 구절을 읽고 그 구절을 묵상하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성경은 묵상에 필요한 양식을 공급하고 묵상은 기도에 필요한 양식을 제공합니다.
닭이 알을 품어 알을 까듯이 성경말씀을 마음에 품고 깊이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것이 묵상의 기본이다. 그래서 묵상은 ‘되새김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되새김질은 단맛을 냅니다.
사골의 깊은 맛과 묵상은 같은 원리입니다. 구수하고 깊은 맛이 나는 것입니다.
복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 . . 오직 말씀을 주야로 묵상 . . .
여러분 영혼이 건강하고 잘 되시기를 바랍니다.
3. 무시로 기도하고 있는가?
기도는 영혼의 호흡입니다. 사람이 숨을 쉬지 않으면 죽은 것처럼 영혼의 호흡인 기도가 끊어지면 영적 건강을 상실한 증거가 됩니다. 기도는 아무리 커도 큰 기도가 없고, 아무리 작아도 작은 기도가 없습니다. 처음에는 시시한 것을 가지고 기도하지만, 시시한 기도가 신령한 기도로 위대한 기도로 변화되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시한 것 같은 기도라도 많이 해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필요를 아뢰라고 하신 약속을 의지하여 간구합시다.
렘33: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기도는 그 사람의 영적 건강의 척도 가운데 하나입니다.
꾸준히 운동을 해야 하듯이 꾸준히 기도해야 합니다. 요즘 기도에 게으른 성도가 많습니다.
마음은 기도해야 하는데 . . .그런 마음만가지고는 안됩니다.
TV보고, 신문과 잡지는 다 읽으면서 기도할 시간이 없다고 하면 되겠습니까?
평소에 기도하십시오. 무슨 문제를 만나고, 어려운 일을 만나야 기도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도하도록 하시기 위해 계속 문제를 허락하시지 않겠습니까? 그럴 수는 없으실 것입니다.
기도는 급할 때만 사용하는 비상벨이 아니라 매일 승리하는 삶의 원천이 됩니다.
이 세상 험한 나그네의 길입니다. 이 길은 잘 가려면 하나님과 기도 중에 만나고 내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 아뢰고, 하나님의 도움을 받고 하나님의 품안에 안겨 살 때 우리는 능력 있는 삶, 어떤 시험에서도 승리하는 복된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기도는 말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그 말씀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기쁨과 즐거움이 뒤따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입니다. 지금은 이처럼 기도하며 살아갈 때입니다.
3. 즐거운 마음으로 봉사하는가?
여러분은 즐거운 마음으로 주님을 위해 봉사하십니까? 억지로 짜증스럽게 하십니까?
봉사가 즐거운 사람이 건강한 사람입니다.
본문의 주인공은 가이오라는 분입니다. 가이오는 당시 순회 전도자를 잘 대접한 분입니다. 순회전도자가 누구입니까? 당시에는 한 곳에 상주하는 목회자가 많지 않아서 순회하는 전도자들이 많았습니다. 교회는 그들을 대접하고 다음 순회자까지 갈 수 있도록 후원합니다.
가이오는 선한 일을 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고, 나그네를 대접하고 이런 것이 영혼이 잘되는 증거입니다.
그러나 모든 이들이 가이오와 같지 않았습니다. 디오드레베 같은 사람이 있었는데 가이오 같은 분을 멸시하고 교회에서 쫓아내기까지 했습니다. 왜냐하면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자였기 때문입니다. 악한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돕고 협력하는 자가 아니라 방해하고 허물어뜨리는 자입니다. 교회를 파괴하는 자들입니다. 우리의 영혼은 어떠합니까?
항상 기뻐하는 자세는 건강을 가져옵니다. 기쁨은 바로 우리 마음에 가장 중요한 비타민입니다. 이것이 없기 때문에 시험들고 넘어지고 비난하고 중심을 잡지 못하고 비틀 거리는 것입니다.
잠언17:22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 기쁨으로 주의 일을 하십시오 이것이 양약입니다. 힘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너무나 사랑한 왕입니다. 너무 사랑한 나머지 최고의 성전을 지어 드리고 싶었습니다. 다윗도, 백성의 지도자들도 즐거움으로 헌신했습니다. 대상29:9 "백성이 자기의 즐거이 드림으로 기뻐하였으니 곧 저희가 성심으로 여호와께 즐거이 드림이며 다윗 왕도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니라" 모두가 하나님의 성전을 위해 즐겁게 헌신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드리고도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14) 라고 고백합니다.
억지로 하지말고, 기쁨으로 해야 합니다. 열심히 일하면서도 즐거운 마음으로 그 일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즐거움으로 헌신할 때 기뻐하십니다. 주님의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나주님의 기쁨되기 원하네- 네마음을 새롭게하소서- 새부대가 되게하여 주사
주님의 빛 비추게하소서- 내가 원하는 한가지 주님의 기쁨이 되는 것
내가 원하는 한가지 - - 주님의 기쁨이 되는 것
4. 예수를 자랑하고 싶은가?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은 사람은 그 하나님을 자랑하고 싶은 것이 당연지사입니다.
교회가 무엇입니까? 구원받은 사람들을 말합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닙니다. 교회는 구원받은 사람들입니다. 구원받은 사람들의 의무는 무엇일까요? 구원시키는 것입니다. 전도입니다. 이것이 의무입니다.
우리는 여러 가지의 의무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교육의 의무", "병역의 의무", "납세의 의무"입니다. 이것을 지키는 것이 국민의 의무입니다. "전도"도 성도의 의무중에 하나입니다.
따라서 구원받은 사람들은 구원을 전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사람이 자기에게 주어진 책임을 감당하지 못하면 능력이 없는 사람이 됩니다.
학생이 공부하지 않는다면 학생입니까?
직장인이 일은 안하고 농땡이를 친다면 . . .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이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하고 전하지 않는다면 참 그리스도인이겠습니까?
전도는 환경이 주어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환경에서 하는 것이다.
바울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고 강조합니다.
최근 미국의 기독교 조사기관인 바나리서치센터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도하는 사람들 중 ‘자신의 삶이 매우 행복하다’고 응답한 사람들은 74%라고 합니다.
사실 미국의 크리스천들은 전도에 충실하지 않을 것으로 오해되고 있으나 사실은 정반대입니다. 미국내 크리스천들 전체 성인의 38%가 전도하고 있다고 합니다.
중요한 것은 전도자들이 비전도자들보다 훨씬 더 신앙과 생활면에서 훨씬더 만족감을 누리고 있다는 점입니다.
성도들은 전도를 어렵게 생각한다. 무거운 짐으로 여깁니다.
전도는 내 일이 아니라 교회 행사로만 생각하고, 은사자만이 할 일이라고 미룹니다.
그러나 전도는 은사이기 이전에, 예수님의 명령이요 유언입니다.
전도는 무거운 짐이 아니라, 축복입니다. 전도는 신앙이 온전해 지는 길입니다.
전도하는 성도는 복음에 굳게 서게 되고, 세상의 유혹에 빠지지 않으며, 쉬지 않고 기도하기 때문에 사탄이 틈타지 못합니다.
전도하면 산 신앙이 됩시다.
예레미야는 20장 9절에서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중심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영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전도의 불이 붙는 사람입니다.
어떤 믿음 좋은 청년이 친구들과 등산을 가서 절에서 물을 먹다가 갑자기 스님에게 전도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답니다. 스님한테 가서 종교에 대해 관심이 얘기하고 싶다고 하니까 스님이 불교신자 하나 생기는 줄 알고 좋아하면서 응해 주었습니다. 한참 질문하다 이 청년이 말했습니다. "스님! 아무리 봐도 문제가 있네요. 스님은 훌륭하신 것 같은데 종교는 잘못 택하신 것 같아요. 교회 다녀 보세요." 그러니까 스님이 얼마나 화가 납니까? 그래서 고얀 놈이라고 욕하고 싶어도 할 수 없으니까 이 청년이 말할 때마다 "나무 관세음보살. . ."하더랍니다.
대화가 끝나고 이 청년은 떠나면서 "스님, 꼭 예수 믿으세요"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돌아가서 일주일만에 이 청년이 그 스님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스님! 예수 믿으세요. 제가 기도할께요." 스님은 그 편지를 찢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일주일 뒤에 또 똑같은 편지가 왔습니다. 또 찢었습니다. 그렇게 계속해서 매 주간, 몇 달 오니까 찢어버리긴 해도 편지 오는 날만 되면 "오늘 또 오나"하고 편지를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영락없이 또 왔습니다.
그렇게 2년 동안 편지를 받던 중 이 스님의 마음에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아무래도 이상하다. 이건 장난이 아니다. 이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다." 그래서 2년 만에 스님이 답장을 했습니다. "한번 만나고 싶구나!" 그래서 며칠 후에 빵집에서 만나 청년은 그 날 저녁 부흥회에 한번 가자고 했습니다. 스님은 옷 때문에 사양했지만 청년은 괜찮다고 하며 스님을 모시고 부흥회에 갔습니다.
부흥회가 시작되었습니다. 부흥강사가 승복을 입은 스님을 보게 되었습니다. 모른 척 하고 설교하는데 자꾸만 스님 때문에 신경이 거슬렸습니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 말씀을 전하고 나서 담대하게 선포했습니다. "지금 이 시간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영접하길 원하면 앞으로 나오십시오." 그러자 스님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 강단 앞으로 걸어 나왔습니다.
결국 그 날 스님은 예수님을 영접하고 나중에 신학교 가서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가 지금은 불교권을 집중으로 선교하는 목사가 되었고, 그분을 통해 많은 스님이 예수를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복음을 전하라"

여러분 웰빙시대에 영적으로 건강하십시오.
예배가 즐거운 사람,
하나님의 말씀이 단사람,
무시로 기도하는 삶,
즐거운 마음으로 봉사하는 사람,
수를 자랑하는 사람.

영적으로 웰빙의 삶을 사십시오.
 
2004-09-05 10:5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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