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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 (시 9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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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이익로 목사

성공하는 사람은 몇 가지 특징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첫째, 성공하는 사람은 언제나 자기를 성공하는 사람으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실패자로 보는 자가 성공하는 경우는 없다고 합니다. 실패자는 언제나 자기를 실패자로 보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꿈대로 되고, 말한 대로 되기 때문입니다. 누에가 입에서 뿜어내는 실로 집을 짓듯, 사람은 생각과 말로 자신의 삶의 집을 짓기 때문입니다. 둘째, 진정한 자기의 모습을 발견할 때 그 사람은 강해진다고 합니다. 즉“내가 누구인가?”라는 존재에 대한 분명한 깨달음입니다. 셋째, 내가 왜 이일을 해야 하는가 하는 의미와 목적을 깨닫는 사람이 성공한다는 것입니다. 분명한 목적 의식입니다. 넷째,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깨닫는 자가 성공한다는 것입니다. 삶의 방향에 대한 확신입니다. 다섯째,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방법을 깨닫는 사람이 성공한다는 것입니다.

몇 일전 뉴스에“경마와 경륜 등으로 재산을 탕진한 후 생활고에 시달리던 40대 부부가 자녀들과 함께 승합차 안에서 독극물을 마시고 목숨을 끊었다.”라는 뉴스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유서에“경마. 경륜. 경정에 미쳐 나쁜 짓을 너무 많이 하고 간다. 잘못된 제 인생 제가 책임지고 자식들을 데리고 간다. 죽음으로 사죄한다.”라는 글을 남겼다고 합니다.

조금 전 말씀드린 성공하는 사람들의 특징에 비춰볼 때, 이 사람의 경우는 어느 것 하나 맞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요행만 바라다가 뜻대로 되지 않자 가족과 함께 동반 자살하는 어처구니없는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습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은 우리들이 누구이며,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밝히고 있습니다.


Ⅰ. 우리는 누구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물이며 하나님으로부터 부름 받은 사람들입니다. 본문 3절~5절 말씀에“대저 여호와는 크신 하나님이시요 모든 신위에 크신 왕이시로다 땅의 깊은 곳이 그 위에 있으며 산들의 높은 것도 그의 것이로다. 바다가 그의 것이라 그가 만드셨고 육지도 그의 손이 지으셨도다.”라고 하셨습니다. 만물이 하나님의 창조물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본문 6절에“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산과 바다와 육지와 인간을 창조하신 크신 왕이라 하셨습니다.

또한 6절 서두에“오라”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들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초청입니다. 우리들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만물의 영장으로 지음 받은 우리 인간의 모습은 어떻습니까?“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렘 17:9)라고 하셨습니다. 만물보다 가장 부패한 것이 사람이라 하셨습니다. 썩어진 쓰레기와 같은 존재가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우리들을 사랑하셔서 부르셨습니다. 쓰레기는 쓰레기장에 버리는 법입니다. 부패한 인간쓰레기도 이처럼 버려지게 되어 있습니다. 인간쓰레기를 버리는 소각장이 곧 지옥입니다. 인간은 모두가 이 지옥에 버려질 운명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러한 인간들을 다시 부르셨습니다. 이사야 1장 18절에“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 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하셨습니다. 만물보다 부패한 우리들을 부르셨습니다. 주홍처럼, 진홍처럼 붉은 죄로 얼룩진 우리들을 부르셨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와 회개하는 사람은 주홍처럼, 진홍처럼 붉은 죄라 할지라도 흰눈처럼, 흰 양털처럼 깨끗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무엇으로 깨끗케 하십니까?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하셨습니다. 이 피가 우리들의 죄를 없이 하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1장 7절에“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가치 없고, 쓸모없는 우리들을 부르셨습니다. 남달리 자격이 있어서 부름을 받았다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아무 자격 없는 우리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이름이 하나님나라 생명록에 기록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지켜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입니다.

19세기 미국의 위대한 부흥사 무디가 어느 주일, 교회 입구에서 실랑이가 벌어진 것을 보았습니다. 한 거지 소년이 교회에 들어가겠다고 떼를 쓰고 있었고 안내를 맡은 직분자들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무디가 그 소년에게 다가서자 직분자들이 만류하며 말했습니다.
“목사님, 얘는 안됩니다. 예배분위기가 훼손돼요. 들여보낼 수 없어요.”
그러나 무디는 그 거지 소년의 어깨를 감싸 안고 교회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의아해하는 성도들을 바라보며 무디는 강대상 위에까지 그 소년을 데리고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설교시간 무디는 그 소년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이 소년은 입장불가였습니다. 그러나 저와 함께 오니까 성전안만 아니라 이 강대상 위에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죄인인 모든 인간은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는 남루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런 우리들을 안고 하나님의 보좌 앞까지 가셨습니다. 이 소년이 입은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날 성도들은 평생 동안 잊을 수 없는 구원에 대한 감동과 감격을 받았습니다.

아무나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이끌림을 받은 사람들만 주님 앞에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요한복음6:44). 하셨습니다.
또한 사도행전 13장 48절 말씀에“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하셨습니다. 이 큰 은혜를 우리들이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이 은혜에 늘 감사하며, 은혜에 빚진 마음으로 순종하고 헌신하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은혜 입은 사람의 마땅한 도리이기 때문입니다.


Ⅱ.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창조물인 우리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우리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의 공로로 죄 씻음 받고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1. 하나님께 경배해야 합니다.

본문 6절에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하셨습니다. 경배란 예배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영어로 예배를 worship이라고 합니다. 이 단어의 원뜻은 “어떤 사물이나 사람에게 가치를 돌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단어가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사용될 때는 “최상의 가치를, 최상의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최상의 행위”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은 하나님께 최상의 가치를 드리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란,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행하는 가장 성스러운 모습입니다. 교회의 최대 사명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교회의 최대 사명이 예배라면,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지체인 우리들이 해야 할 최대 사명은 예배인 것입니다. 이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며, 가장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예배를 존귀하게 여기는 사람은 하나님께 존귀하게 여김을 받게 됩니다.

종교개혁자 루터는 말하기를“종교적 엘리트들이 바쁘다는 것 때문에 예배드리는 것을 소홀히 한다면 그는 도덕적으로 진흙탕에 빠지게 된다.”고 경고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모이기를 게을리 하는 사람들의 습관을 본받지 말라 하셨습니다.“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 10:25)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은 사람은 모이기를 힘썼습니다. 사도행전 2장 46절에 성령 충만했던 초대교회 성도들의 모습을 기록하시기를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하셨습니다.

예배의 의미와 가치를 깨달은 사람은 예나 지금이나 예배를 더 없이 소중히 여깁니다. 영국의 명재상이었던 글래드스턴은“나에게는 예배석이 대영제국의 수상석보다 더 존귀하다.”고 말했습니다.
“예배의 승리자가 신앙생활의 승리자이며, 신앙생활의 승리자가 곧 인생의 승리자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예배를 존중히 여기는 사람은 그의 영혼이 하나님 앞에 바로 서게 됩니다. 영혼이 하나님 앞에 올바로 선 사람은 범사가 잘되며 강건케 되리라 하셨습니다(요한삼서 1:2).


2.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본문 6절에“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라고 하셨습니다.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존경과 복종의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자이시며 우리는 피조물이기에 마땅히 존경하며 복종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말씀하시기를“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말씀을 순종하며 또 그에게 복종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시니 여호와께서 네 열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하리라”(신 30:20)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순종해야 합니다. 순종이 되지 않으면 복종하라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의 땅에 거하는 비결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순종하고 복종하라 하심은 하나님의 백성 된 우리들의 행복을 위한 것입니다. 신명기 10:12 말씀에“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라고 하셨습니다.
부모들의 공통된 심정은 자식들에게 좋은 것을 주려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심정도 이와 같습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값 주고 사신 그의 자녀들이 복을 받아 누리며 살기를 바라십니다. 행복하게 살기를 소망하십니다. 그래서 행복의 비결을 기록으로 남겨 우리에게 주셨는데 그것이 성경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종종 방종을 자유로 착각합니다. 이는 사탄의 미혹입니다. 인류의 시조인 아담과 하와의 경우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먹으면 더 행복할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행복이 아니라 저주의 길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자신만이 아니라 천추만대에 저주를 물려주는 못난 조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신약성경 누가복음에 탕자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집안의 둘째아들이 아버지 슬하에서 살아가는 것을 늘 부자유스럽게 여겼습니다. 그는 끝내 아버지께 떼를 써서 자기에 돌아올 유산을 받아 먼 곳으로 갔습니다. 자유를 찾아 마음껏 즐기며 살았습니다. 그가 추구한 자유란 육체의 욕망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었습니다. 곧 방탕함이었습니다. 얼마 후 가진 재산을 다 탕진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거지 신세가 되어 남의 집 돼지를 치면서 돼지 먹이인 쥐엄 열매를 먹고 살았습니다. 그나마 흉년이 들어 돼지 쥐엄 열매조차 먹을 수 없었습니다. 굶어 죽을 수밖에 없는 딱한 처지가 되었습니다. 이 아들은 이때 비로소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며 지난날 아버지 슬하에서 살 때가 가장 행복했던 때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는 부끄러움을 무릎 쓰고 다시 아버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버지는 돌아온 아들을 사랑으로 맞이했습니다. 목욕을 시키고, 비단 옷을 입히며, 손에 금가락지를 끼우고, 돌아온 아들을 위해 전치를 베풀었습니다.

이 이야기의 아버지는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집나간 탕자는 순종하지 않고 세상길로 나가는 어리석은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밖의 삶은 자유가 아니라 방종입니다. 성공 같아 보이나 끝내 실패하고 맙니다. 행복한 것 같으나 불행의 늪에서 한숨쉬게 되고 맙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참자유의 길이 여기에 있습니다. 승리의 길이 여기에 있습니다. 행복의 길이 여기에 있습니다.“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 대저 저는 우리 하나님이시요 우리는 그의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 손의 양이라”(시 95:6-7)

영국을 세계 최강국으로 만들었던 사람은 빅토리아 여왕입니다. 그는 하나님 사랑, 국민 사랑, 나라 사랑으로 일생을 살면서 늘 어려운 사람들을 살폈습니다. 어느 날 여왕이 가난한 과부의 집을 방문했습니다. 과부는 여왕이 친히 왕림하니 너무 황송해서 고개도 들지 못하고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그런 과부에게 여왕이 물었습니다.“아주머니, 이제까지 이집을 찾았던 손님 중에서 가장 귀한 손님이 누구입니까?”과부는 대답을 했습니다.“저에게 가장 소중한 손님은 여왕 폐하시옵니다. ”여왕은 실망한 눈빛으로“예수님이 아주머니를 찾은 가장 귀한 손님이시겠죠.”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그 여인은 빙그레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폐하, 예수님은 손님이 아니십니다. 그는 저의 주인이십니다.”여왕은 과부의 훌륭한 신앙에 감탄하며 돌아갔습니다. 그는 궁궐로 돌아가 이렇게 기도를 드렸습니다.“주님, 나는 오늘 과부를 위로하러 간 것이 아니옵고 하나님께서 세우신 천사를 만나러 갔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신 천사였습니다. 나의 주! 나의 왕! 예수여! 이 나라에 세세토록 주인이 되시고 이 궁실의 주인이 되소서. 그리고 제 생전에 이 왕관을 주의 발 앞에 드리게 하소서.”

나의 생명은 주님의 것입니다. 나의 자녀도 주님의 것입니다. 나의 사업, 나의 재산도 주님의 것입니다. 오늘 내게 있는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신앙고백이 우리 모두의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사람위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사랑이 머물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본문 7절에 말씀하시기를“너희가 오늘날 그의 음성 듣기를 원하노라”하셨습니다. 예배는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배에는 두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한 가지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회개와 간구의 기도를 드립니다. 찬양을 드립니다. 정성된 예물을 드립니다. 그 다음 또 한 가지는 하나님께서 예배드리는 자녀들에게 주시는 것이 있습니다. 기도에 대한 응답이 있습니다. 찬양을 통한 감사와 기쁨이 있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통해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을 주시며, 험한 세파를 해쳐나갈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주시는 것입니다. 말씀을 통해 우리들이 나아가야할 삶의 길을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영혼의 양식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 4:4)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서 해방되어 가나안 까지 가는 동안 광야에서 40년 세월을 보냈습니다. 광야는 물이 없는 메마른 곳이므로 농사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굶어 죽지 않았습니다. 무엇을 먹고 살았습니까? 하나님이 하늘로부터 내려주신 만나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살아가면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아 육신의 삶이 넉넉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1-33)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도록 노력하는 사람에게 육신의 필요한 것들은 하나님께서 채워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시편 1:1-3말씀에“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것은 곧 냇가에 심긴 나무가 가뭄을 모르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 생명의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 승리의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 행복의 길이 있습니다. 이러한 복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는 시간이 곧 예배시간입니다.

말씀을 들음은 깨닫기 위함입니다. 깨달음은 실천하기 위함입니다. 말씀의 실천 즉 순종할 때 하나님의 약속이 우리들의 삶 속에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1:3에“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라고 하셨습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멕시코의 쿠이캐택 홍인종이 쓰는 예배라는 말은 개가 주인을 알아보고 꼬리를 젓는다는 말과 어근이 같다고 합니다. 한 가지 차이점은 예배의 경우는 꼬리를 젓는 것이 개가 아니라 사람인 것입니다. 개가 주인을 알아보고 기뻐하며, 주인을 위해 충성을 다하듯, 하나님께서 나를 비롯한 만물의 주인임을 알고 하나님을 기뻐하며 영광을 돌려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 따라 살고자 다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탄식하셨습니다.“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사 1:2-3) 그러나 하나님이 나를 창조하셨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나를 사신 주인임을 깨달은 사람은 하나님께 정성을 다해 예배를 드립니다. 예배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만 할 수 있는 특징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들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창조물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마땅히 하나님을 공경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공경하는 성도들의 가장 소중한 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입니다. 예배는 우리 인간이 하나님께 보여드리는 가장 아름답고 성스러운 모습니다. 이 예배를 통해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실 뿐만 아니라, 예배를 통해 생명의 양식을 내려주시는 것입니다. 이 생명양식으로 새 힘을 얻어 세상을 이기게 됩니다. 그러므로 예배를 더없이 소중히 여기며, 예배를 위해 온 몸과 마음과 정성을 다하는 지혜롭고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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