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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님의 제자들 시리즈 설교 ①> 반석 같은 사람 베드로 (마 16: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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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이하준 목사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

저는 계속해서 주일설교마다 주제를 정해 시리즈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어떤 주제를 정해 때로는 3~4주 정도, 때로는 그 이상 본문을 강해하며 설교하는데 이런 설교 방법을 ‘주제별 강해설교’라고 부릅니다. 제가 참 좋아하는 설교 스타일입니다.

오늘부터 또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 시리즈 설교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바로 예수님의 열두 제자에 대한 시리즈 설교입니다. 그래서 오늘 설교제목에는 부제로 ‘예수님의 제자들’이라는 타이틀이 붙어 있는 것입니다.

제가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주목한 이유는 이것입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예수님에게는 열 두 명의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제자들은 다 남자라는 공통점 하나만 빼고는 참 다양한 직업과 성격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어부도 있고 세리도 있었고 심지어 요즘으로 치면 테러리스트에 해당되는 열심당원도 있었습니다. 또 아주 적극적이고 급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 있는가하면 아주 얌전하고 소극적인 사람도 있고 아주 의심 많은 사람도 있습니다. 아무튼 분명한 것 하나는 이들 모두가 ‘지극히 평범한 보통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이들 가운데 특별한 능력이나 신분을 가진 사람은 별로 없었습니다. 공부를 많이 하거나 사회적 신분이 높은 사람도 없었습니다. 게다가 이들은 한결같이 무지하며 의심이 많고 겁도 많은 사람들, 즉 오늘 우리와 똑같은 보통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주님께서 이런 보통 사람들 열둘을 부르시고 이들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사업과 역사를 이루어가는 데 귀한 일군으로 사용하셨다는 점입니다. 보통 사람들을 말입니다. 게다가 더 놀라운 것은 주님이 이들이 가진 성격과 특성을 충분히 이해하고 그 특성에 맞게 사용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제가 이 열 두 명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어떤 사람들입니까? 다 그냥 평범한 보통 사람들입니다. 그리 특별하게 잘 난 것도 없고, 굉장한 재주나 능력을 가진 것도 없습니다. 게다가 성격들은 얼마나 특별하고 개성들은 강한지, 정말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마 같아서 때로는 이런 사람들을 누가 어디다 쓸까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 일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 지극히 평범한 보통 사람들, 아니 어쩌면 길들여지지 않고 훈련되지 않은 야생마 같은 사람들을 그 특성에 맞게 잘 다듬어 가장 적절하게 사용하셔서 하나님 나라의 놀라운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부터 약 10번에 걸쳐 ‘예수님의 제자들’에 관한 시리즈 설교를 합니다. 제자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살펴보면서, 그들의 성격과 특성과 인생을 살펴보면서 어떻게 우리 주님이 이 보통 사람들을 사용하셨는가 깨닫고 나아가 나 같은 사람을 주님은 어떻게 쓰실까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본명과 별명

그 첫 번째 제자가 바로 오늘 살펴볼 베드로입니다.

신약성경에 열두 제자의 명단이 모두 네 번 나오는데(마 10:2~4, 막 3:16~19, 눅 6:13~16, 행 1:13) 네 번 모두 베드로의 이름이 제일 앞에 나옵니다. 이 이름순서는 단순히 가나다 순서나 나이순서가 아니라 나중에 초대교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순서이기 때문에 우리는 베드로가 초대교회의 가장 중요한 기둥 같은 사도로 쓰임 받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실제로 예수님의 공생에 기간에도 이 베드로는 열두 제자 중 늘 리더 역할과 대변인 역할을 했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 베드로를 그냥 제자들 중 하나가 아닌 ‘수제자’라는 특별한 이름으로 부르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베드로가 본명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성도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베드로는 그의 별명일 뿐, 이 사람의 본명은 ‘바요나 시몬’입니다. 성경에는 그냥 ‘바요나 시몬’이라고 나오기도 하고 ‘요한의 아들 시몬’이라고 나오기도 합니다. ‘바’(Bar)란 아람어로 ‘아들’이라는 뜻이므로 두 가지 다 똑같은 의미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이 본명인 바요나 시몬보다 별명인 베드로가 훨씬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니 이 별명을 우리 주님께서 친히 지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이 별명이 더 유명해지기도 했겠지요. 하지만 이 별명이 진짜 유명해진 이유는 이 별명이 이 바요나 시몬이라는 사람의 성격과 일생을 너무도 잘 표현해주는 별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 예수님은 별명도 참 기가 막히게 잘 짓는 분인 것 같습니다.

때로는 별명이 그 사람의 특성과 성격을 더 잘 알려줄 때가 많습니다. 여기 학교에서 가르치는 선생님들도 계시니까 조금 조심스럽습니다만 왜 우리 학교 다닐 때 선생님들에게 별명 붙여주지 않습니까? 그런데 가만히 보면 학생들 중에 유난히 선생님 별명을 잘 붙이는 친구들이 있어요. 그 학생이 선생님들마다 장난스럽게 붙인 그 별명이 정말 딱 맞는 경우가 많거든요. 어쩌면 그렇게 딱 맞는지 별명만 들어도 웃음이 절로 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상하고 사랑 많은 선생님에게 붙이는 별명이 있는가 하면, 성격이 특이하고 학생들을 잘 혼내는 선생님에게 붙는 별명이 따로 있습니다. 예수님도 이 학생처럼 정말 시몬이라는 사람의 성격과 특성에 딱 맞는 별명을 기가 막히게 지어주신 것입니다. 그 별명이 바로 ‘베드로,’ 헬라어로 반석, 즉 바위라는 뜻의 별명입니다. 아람어로는 ‘게바’라고 부릅니다.

반석 같은 성격과 삶

그러면 주님은 왜 이 바요나 시몬이라는 제자에게 베드로, 즉 반석이라는 별명을 지어주신 것일까요? 지난 8월 15일 교회창립 58주년 기념주일 때 제가 바로 이 본문을 인용하면서 주님이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은 베드로라는 개인이 아니라 그의 신앙고백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는 고백이라고 말씀 드렸는데 물론 그의 이 반석 같은 고백 때문에 그 별명이 베드로라고 지어진 것이기도 하지만 성경에 나타난 이 사람의 성격과 일생을 살펴보면 정말 이 베드로는 반석, 즉 커다란 바위 같은 사람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한 마디로 굳건하고 변치 않는 성격, 때로는 급하고 불같지만 늘 우직하고 굳건한 자세로 살며 열정적으로 주님의 일을 했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신앙인의 모범으로 우뚝 선 커다란 바위 같은 하나님의 종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신학교 다닐 때 어떤 교수님은 이 베드로의 별명을 ‘반석’이라는 우리말로 번역하지 않고 이렇게 번역하면 좋겠다고 해서 모두들 한 바탕 웃은 적이 있습니다. 순 우리말로 뭘까요? ‘돌쇠’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동네 친구 중에도 이 ‘돌쇠’라는 별명을 가진 아이가 있었습니다. 왜 별명이 ‘돌쇠’였을까요? 그 당시에 그런 헤어스타일이 많았습니다만 머리를 빡빡 깎고 다녔고 행동하는 것을 보면 정말 돌쇠 같았습니다. 공부는 좀 못 하는 정도가 아니라 상당히 못하는 편이었습니다만 친구들 중에 아무도 이 아이를 무시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엄청난 고집과 저돌적인 성격이 있어 한번 마음먹으면 꼭 하고야 마는 친구였기 때문입니다. 덩치도 조그마한 녀석이 마음만 먹으면 덩치 큰 아이에게 달려들어 기어코 패주고야 말았습니다. 의리도 있어서 한 번 친구와 한 약속은 꼭 지키곤 했습니다. 비록 빡빡머리에 콧물은 질질 흘리고 다녔지만 꽤 멋있는 친구로 기억에 남습니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돌쇠’라는 별명은 기억이 나는데 본명은 무엇이었는지, 얼굴 생김새는 어떠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습니다. 세월이 30 여년이나 흘렀으니 이름과 얼굴은 잊어버리는 것이 당연하지만 아마 평생 이 ‘돌쇠’라는 별명과 그 이미지는 제 마음 속에 남아있을 것입니다. 아마 베드로처럼 이 친구의 성격과 모습이 이 별명과 딱 일치가 되어 제 기억에 오래 남은 모양입니다.

다듬어지지 않은 반석

아마 베드로가 바로 이 친구 같은 성격의 소유자였던 같습니다. 돌쇠 같은 성격 말입니다. 돌쇠 같다는 말은 때로는 칭찬일 수도 있고, 때로는 욕일 수도 있습니다. 조금 모자라고 우직한데다가 고집만 세고 성질도 보통이 아니다 하는 뜻에서 돌쇠라고 부른다면 욕이겠지요. 베드로에게는 이런 성격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바위는 바위인데 마치 다듬어지지 않은 커다란 바위처럼 울퉁불퉁 좌충우돌 하는 성격이었습니다. 그래서 문제도 많았고 바로 이 다듬어지지 않은 돌쇠 같은 성격 때문에 실수도 참 많이 했습니다.

그는 무엇보다 급한 성격의 소유자였습니다. 말보다 항상 행동이 앞서곤 했습니다. 요한복음 18장에 보면 예수님을 잡으러 온 무리들을 보고 베드로가 검을 뽑아 대제사장의 종 말고의 귀를 베어버립니다. 예수님을 잡기 위해 많은 숫자의 사람들과 군대까지 동원되었는데 제자들 숫자로 싸워봐야 승산이나 있겠습니까? 보통사람은 이런 생각을 하고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는데 이 베드로는 행동이 앞서는 급한 사람이라 무조건 칼을 뽑아 제일 앞에 보이는 사람부터 베고 본 것입니다. 아마 목을 치려다가 잘못 휘둘러서 귀만 벤 것이겠지요. 이렇게 앞뒤 생각 안 하고 일부터 저질로 놓고 보는 사람이 바로 베드로입니다. 게다가 이 베드로는 무슨 일이 생기면 늘 앞장서야만 했고 늘 나서는 스타일이었습니다. 요한복음 21장에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이 디베랴 바닷가에서 고기 잡던 제자들에게로 오셨습니다. 바닷가에 서계신 분이 예수님인 줄 제일 먼저 알아본 제자는 바로 주님의 사랑하시는 제자 요한입니다. 나중에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이 요한은 아주 애교 넘치고 예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이기 때문에 성경에 ‘주의 사랑하시는 제자’라고 나오곤 합니다. 사랑을 제일 많이 받은 제자이며, 동시에 그의 성격은 아주 신중하고 조심스럽습니다. 말하자면 여성 호르몬이 많은 제자입니다. 그래서 제일 먼저 예수님을 발견했지만 곧바로 어떤 행동을 취하지 않고 옆에 있던 베드로에게 말합니다. “주님이다!” 아마 베드로가 제자들 중에 우두머리 노릇을 했고 또 그 성격도 늘 앞장 서는 스타일인 것을 알았기 때문에 베드로에게 말했을 것입니다. 과연 베드로는 이 말을 듣자마자 앞뒤 가릴 것도 없이 옷을 입고(이것은 주님에 대한 예의의 표시입니다.) 바다에 뛰어듭니다. 베드로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그 뿐 아니라 오늘 본문에서도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주님 물으셨을 때 베드로가 제일 먼저 대답하지 않습니까? 이 때만 아니라 늘 예수님의 질문에 먼저 대답하고 제일 먼저 행동에 나선 사람이 베드로였는데 실제로 제일 먼저 나서서 말했다가 재미 본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늘 손해만 본 것입니다. 베드로가 그의 바위 돌 같은 성격 우직하고 급한 성격 때문에 실수한 일이 한 두 번이 아니라 이루 다 설명할 수 없을 정도라고 했는데 이 모든 실수가 대개 급하게 생각 없이 말해버리고는 후회한 일들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베드로를 ‘말해 놓고 후회하는 사도’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어떻게 후회할 말들만 했는지 간단하게 짚어만 볼까요?

1) 누가복음 9장에서 베드로는 변화산에 올라가 너무도 황홀한 경험을 하고는 “여기가 좋사오니 장막 짓고 여기서 삽시다.”고 말했다가 주님에게 핀잔만 듣습니다. 참 단순한 성격임을 알 수 있습니다.

2) 마태복음 14장에서 예수님이 폭풍 이는 바다 위를 걸어오시자 베드로도 따라 하고 싶어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라고 말하고 자기도 바다 위를 걷습니다. 하지만 곧 무서워 물에 빠지고 말지요. 그래서 예수님께 ‘믿음이 적은 자’라고 책망 받습니다. 대범한 듯 보이지만 실은 겁이 많습니다.

3) 요한복음 13장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길 때 베드로는 “제 발은 절대 못 씻깁니다. 차라리 하시려면 목욕도 시켜주세요.”하고 버텼다가 예수님께 “이미 목욕한 자는 발만 씻으면 된다.”고 한 소리 듣습니다.

4) 마태복음 26장에 예수님이 “오늘밤에 너희가 나를 다 버리리라.”고 예언하시자 괜히 나서서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안 버립니다.”고 호언장담 합니다. “다른 제자들은 다 버려도 저만은 아닙니다.” 하고 공명심에 우쭐거리며 큰 소리 친 것이지요. 하지만 곧이어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래? 다 버려도 나만은 안 버립니다 하는 네가 바로 오늘밤(내일도 아니고) 닭 울기 전 나를 세 번 부인할 텐데?” 정말 이 말씀대로 되어 버립니다. 정말 대책 안 서는 사람이고 참담한 실패를 경험한 것입니다.

5) 이외에도 수없이 많은 베드로의 실패담이 있지만 마지막으로 오늘 본문에 나온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베드로는 예수님의 질문에 대해 제일 먼저 나서서 대답합니다. 다행히 100점짜리 대답을 해서 엄청나게 큰 칭찬은 받았지요? 늘 야단만 맞고 덜 떨어진 베드로가 웬 일인가 했을 것입니다. 예수님도 “이 녀석이 웬 일인가?” 놀라셨겠지요. 그러나 아니나 다를까 곧이어 베드로는 우쭐한 마음에 주님께 한 소리 합니다. “주님이 고난당하고 죽임을 당하신다고 말씀했는데 절대 안 될 일입니다.” 본문 22절에는 이런 말을 하며 베드로가 예수님께 ‘간했다’고 하는데 이는 원어 상의 의미로 ‘꾸짖었다’는 뜻입니다. 하도 오랜만에 인정받고 칭찬 받으니까 기분이 너무 좋아 요즘 애들 말로 ‘오버’한 모양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꾸짖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순식간에 베드로는 주님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소리를 듣습니다. 순식간에 천국과 지옥을 오간 사람이 되고 만 것입니다.

예수님이 다듬어 주신 반석

이렇게 다듬어지지 않은 반석인 베드로는 그 성격 때문에 수많은 실수를 합니다. 그래서 항상 예수님께 핀잔 받고 야단맞는 그야말로 문제아요 정말 약점과 문제가 많았던 사람입니다. 어떻게 이런 사람을 하나님의 귀한 일에 사용할 수 있겠습니까? 한 마디로 자격이 안 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다시 한 번만 생각해 봅시다. 물론 베드로의 이 우직하고 급한 성격이 때로는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약점만 보려고 들면 오직 약점만 보입니다. 약점만 보면 그 사람 절대 못 씁니다. 하지만 장점을 보려고 하면 장점만 보입니다. 같은 성격도 경우에 따라, 또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약점이 되기도, 장점이 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조각가가 친구들과 함께 산길을 가다가 커다랗고 울퉁불퉁한 화강암 덩어리를 만났습니다. 친구들은 길을 가로막고 있는 그 바위를 귀찮은 듯 바라보았지만 이 조각가의 눈에는 그 바위가 남다르게 보였습니다. “저 바위를 잘만 다듬으면 훌륭한 조각상이 나오겠다.” 다른 친구들의 눈에 귀찮고 쓸데없어 보이던 바위덩어리가 이 조각가에게는 훌륭한 조각품으로 보인 것입니다. 단 저 울퉁불퉁한 부분을 정과 망치로 잘 다듬기만 해주면 말입니다.

주님도 이 조각가와 같은 마음으로 베드로를 바로 보신 것입니다. 위에서 살펴 본 것처럼 베드로는 반석 같은 성격, 성급하고 우직한 성격의 소유자였습니다. 주님 눈에는 이런 성격이 단점으로 보이지 않고 오히려 주님의 큰일을 해낼 능력으로, 장점으로 보인 것입니다. 단 아직도 다듬어지지 않은 저 울퉁불퉁함이 수많은 실수도 생기게 하고 다른 사람들과 충돌하게도 하니 내가 정으로 망치로 조금 다듬기만 하면 정말 작품이 되겠다고 보신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베드로가 실수할 때마다, 헛소리를 할 때마다 핀잔과 야단을 통해 그를 다듬으신 것입니다. 말하자면 예수님의 그 한 마디 야단이, 그 한 마디 핀잔이 정처럼 망치처럼 베드로를 쳐서 다듬어주었던 것입니다.

주님은 그의 불같이 급한 성격을 강력한 추진력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이름은 다르지만 똑같은 성격입니다. 다만 전자는 부정적인 의미고 후자는 긍정적인 의미입니다. 또한 그의 끼어들기 좋아하고 나서기 좋아하는 성격을 주도적인 성격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역시 같은 성격을 부정적인 면에서 긍정적인 면으로 다듬으신 것입니다. 남들보다 먼저 나서 말했다가 후회하곤 했던 성격을 남들 앞에서 담대히 설교하여 하루에 삼천 명을 회개시키고 예수 믿게 한 위대한 설교가로 바꾸어 놓으셨습니다. 다 주님이 다듬어서 하신 일입니다.

물론 이렇게 다듬어진 후에도 베드로는 예수님을 배반하고 세 번이나 부인합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이 일이 너무도 부끄러워 주님의 복음사업에 헌신한 후에도 잊지 못했습니다. “까짓 것 그 정도 실수야 내가 열심히 일해서 만회하면 되지.” 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자기의 실수를 잘 잊어버리는 사람과는 달리 베드로는 꾸준하고 우직한 바위 같은 성격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끝내 그 실수를 잊지 않고 부끄러워 하다가 끝내 전설에 의하면 로마에서 순교를 당했다고 합니다. 폴란드의 소설가 셍케비치가 쓴 소설 중에 ‘쿠오바디스’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로버트 테일러와 데보라 카가 주연한 영화로도 유명합니다만 이 소설과 영화 중 가장 유명한 장면은 마지막에 베드로가 로마를 빠져나가는 장면입니다. 이 내용은 베드로행전이라는 외경의 내용을 인용한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가 로마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주후 61년 네로황제의 박해가 극심해지자 박해를 피해 로마를 빠져 나갑니다. 한창 길을 걷고 있는데 저기서 부활하신 주님이 이쪽으로, 로마시를 향해 오고 계십니다. 베드로는 묻습니다. “Domine, Quo Vadis?” 라틴어로 “주여 어디로 가십니까?”라는 말로 여기서 “쿠오바디스”라는 제목이 나온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Venio Romana iterum crucifigi.” 이 말은 “내가 다시 십자가에 달리기 위해 로마에 간다.”는 뜻입니다. 이 말씀을 듣고 베드로는 “그리 마옵소서. 제가 가겠나이다.” 하며 다시 로마로 돌아와 끝내 순교를 당합니다. 베드로의 부인이 먼저 순교를 당했는데 부인에게 “주님을 기억하십시오.” 하고 위로했고 자신도 순교 당하면서 집행관에게 이렇게 부탁했다고 합니다. “나를 십자가에 거꾸로 매다시오. 우리 주님께서 나를 위해 바로 못 박히셨는데 나는 그분처럼 죽을 가치가 없는 사람이오.”며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 했다는 것입니다. 순교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반석 같은 믿음과 굳건하여 흔들리지 않는 우직한 자세가 있는 사람만이 가능합니다. 이 순교 이야기는 우리와 똑같이 겁도 많고 두려움도 많았던 보통사람 베드로가 어떻게 주님에 의해 다듬어져 그 특유의 우직하고 변함없는 성격을 통해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임 받다가 죽게 되었는지를 잘 알려 줍니다. 베드로는 오늘 본문에 나온 대로 주님께 크게 책망 받은 후 주님이 하신 말씀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24~26절에 나온 대로 주님은 사람의 목숨이 천하보다 소중하지만 이 소중한 목숨을 버리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는 사람이 참 나의 제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자기의 실패 경험을 통해 이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고 결국 천하보다 소중한 자기 목숨을 버려 십자가를 지고 죽음으로 진정 목숨을 찾은 사람이 된 것입니다.

주님은 베드로를 너무도 잘 알고 계셨습니다. 고기 잡는 데 명수였던 베드로를 보고 그의 고기 잡는 기술을 사람 낚는 기술로 사용하기 원하셨기에 그를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의 반석 같은 성격을 주의 일을 위해 사용하기 원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초대교회의 기둥 같은 사도로, 또 세계선교의 사명자로 사용되었고 끝내 영광스러운 순교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이 베드로처럼 오늘 우리의 성격, 나의 특성을 너무도 잘 알고 계십니다.

우리를 다듬어 사용하시는 주님

이제 베드로라는 거울을 통해 우리의 모습을 볼 차례입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들입니까? 우리도 베드로처럼 지극히 보통 사람이면서도 때로는 우직하며 고집이 세고 자기주장을 굽힐 줄 모르는 사람들 아닌가요? 때로는 나서기 좋아하며 이런 성격 때문에 실수도 많고 약점도 많은 사람들 아닌가요? 하지만 이런 사람이 주님을 만나면 놀라운 일이 생깁니다. 주님께 정을 맞고 망치에 맞아 다듬어지면 우리의 이 반석 같은 성격과 태도가 놀라운 능력으로 쓰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은 들판에 아무렇게나 뒹굴며 사람들의 길을 막고 넘어뜨리던 ‘걸림돌’을 가져다가 잘 다듬어 ‘디딤돌’로 삼아 주십니다. 울퉁불퉁하여 아무짝에도 쓸모없고 남이나 상하게 하던 우리를 다듬어 교회의 ‘주춧돌’로 하나님 나라의 ‘기둥’으로 세워주십니다. 그래서 이런 성격의 사람들은 반드시 주님을 만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가 이렇게 기도하게 되기 바랍니다. “주님, 이 울퉁불퉁하고 거친 나의 모습을 끊임없이 쪼고 다듬어 주님 나라와 교회의 주춧돌로 써주시옵소서!” 이 기도가 바로 저와 여러분의 기도가 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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