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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기철 목사님의 ‘나의 다섯 가지 기도’ (마 5:11-12, 롬 8:3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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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이덕재 목사

많은 사람들이 잘 아시다시피, 이 설교는 주기철 목사님이 신사참배를 거부한다고 이미 세 차례나 옥고를 치루고, 잠시 풀려난 1940년 2월의 첫 주일에 평양 산정현 교회의 주일 예배 중 행해진 설교입니다. 일본경찰에 의해 예배당을 두 겹, 세 겹으로 둘러싸인 가운데, 흰 두루마리에 까만 머리의 주 목사님은 꼿꼿이 선 채, “예배드립시다” 선포한 후, “내 주는 강한 성이요..” 찬송을 부르고 <마5:11-12>과 <롬8:31-39>을 본문으로 삼아 행한 설교입니다.

첫째, 사망의 권세를 이기게 하여 주시옵소서!!

나는 바야흐로 사망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나는 저들의 손에 몇 번째 체포되었다가 나와서 이 강단에 다시 섰으나 나의 목숨을 빼앗으려는 검은 손은 시시각각으로 닥쳐오고 있습니다. 이제 나는 '사망 권세를 이기게 하여 주시옵소서'라고 기도 아니할 수 없습니다. 무릇 생명 있는 만물은 다 죽음 앞에서 탄식하며 무릇 숨쉬는 인생은 다 죽음 앞에서 떨고 슬퍼합니다. 사망 권세는 마귀가 사람을 위협하는 최대의 무기인가 봅니다. 죽음을 두려워 의를 버리며 죽음을 면하려고 믿음을 버린 사람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사도 베드로도 죽음을 두려워 예수를 부인하기를 계집 종 앞에서 세 번씩이나 하였으니 누가 감히 죽음이 무섭지 않다고 장담하겠습니까?

아담의 범죄 후에 사람은 모두 죽습니다. 제왕 장상 재사도 다 죽었고 성현 군자 위인 걸사도 다 북망산에 갔습니다. 죄 없이 억울하게 죽은 약자도 불쌍하지만 아내를 두고 죽는 사람 아이를 두고 가는 어머니 모두가 다 비참한 죽음입니다. 폐결핵 환자로 요양원에 눕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종으로 감옥에 들어가는 것이 그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자동차에 치어 죽는 사람도 있는데 예수의 이름으로 사형장에 나가는 것은 그리스도인 최대의 영광인 줄 압니다. 주님을 위하여 라면 열 백번 죽어도 좋지만 주님을 버리고 백년 천년 산다한들 그 무슨 삶이 되겠습니까.오! 주님이시여! 이 목숨을 아꼈다가 주님을 욕되게 아니하도록 성신이어 붙들어 주시옵소서. 이몸이 부서져 가루가 되어도 주님의 계명을 지키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은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머리에는 가시관 두 손과 두 발에는 쇠못에 찢어져 최후의 피 한방울까지 다 쏟으셨습니다. 주님은 나를 위하여 죽으셨거늘 나 어찌 죽음을 무서워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할 수 있겠습니까. 오직 일사각오 있을 따름입니다.

십자가에 죽으시고 무덤 속에서 사흘 만에 부활하신 주님 예수여, 사망 권세를 이기신 예수님이시여, 나도 부활을 믿사오니 사망 권세를 내 발 아래 짖밟게 능력을 주시옵소서, 죽음아 네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나는 부활하신 예수를 믿습니다. 나도 예수님과 같이 부활하리로다. 할렐루야 아멘!

나의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그리스도인은 살아도 그리스도인답게 살고 죽어도 그리스도인 답게 죽읍시다. 죽음을 무서워 예수를 저버리지 맙시다. 풀의 꽃과 같이 시들어 떨어지는 목숨을 아꼈다가 지옥에 떨어지면 그 아니 두렵습니까? 그러나 한번 죽어 영원한 천국 복락 그 아니 즐겁습니까? 이 주목사가 죽는다고 슬퍼하지 마십시오. 나는 내 주님 외에 다른 신 앞에 무릎을 꿇고는 살 수가 없습니다. 더럽게 사느니 보다는 차라리 죽고 또 죽어서라도 주님 향한 정절을 지키려고 합니다. 오! 주님을 따라서, 나의 주님 뒤를 따라서 죽는다는 것은 나의 평생 소원입니다. 나에게는 일사각오 있을 뿐입니다.

둘째, 오랜 고난을 견디게 하여 주시옵소서!!

단번에 받는 고난은 견딜 수 있으나 오래 오래 끄는 장기 고난은 참기 어렵습니다. 칼로 베고 불로 지지는 형벌이라도 한 두번에 죽어진다면 그래도 이길 수 있으나 한달 두달씩 1년 2년 10년이나 계속되는 고난은 도저히 견뎌내기 어렵습니다. 그것도 절대로 변하지 못한다고 하면 모르거니와 한 걸음만 뒤로 물러서면 고통도 면하고 오히려 후한 상을 준다고 하였는데, 그런고로 많은 사람이 넘어집니다. 하물며 나 같은 약졸이 어떻게 오랜 고난을 견딜 수 있겠습니까. 그런고로 다만 주님께만 의지합니다.

주님도 십자가에 직면하시면서 그 받으실 고난으로 게세마네에서 피땀 흘리시며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십자가의 고난을 참음으로 승리하셨습니다. 그런고로 주님의 십자가,십자가만을 바라보고 나아갑니다. 처음에는 우리가 십자가를 지지만 나중에는 주님께서 나의 십자가를 지어줍니다.

나의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이제 받는 고난과 장차 받을 영광을 비교하면 족히 비교할 수 없으리로다'이제 받는 고난은 오래야 70년 80년이지만 장차 받을 영광은 천년 만년 영원 무궁합니다. 이제 받는 고난은 죽을 몸이 죽는 것 뿐이지만 장차 받을 영광은 예수의 부활하신 몸과 같이 영원 무궁 영화의 몸이 됩니다.

주님을 위하여 이제 오는 십자가를 내가 피하였다가 이 다음 주님께서 '너는 내가 준 유일의 유산인 십자가를 어찌하였느냐'물으시면 나는 그 무슨 말로 대답할 수 있겠습니까.그런고로 나에게는 일사각오 있을 따름입니다.

셋째, 어머니와 처자와 교우를 주님께 부탁합니다.

나는 80이넘은 어머님이 계시고 병든 아내가 있고 어린 자식들이 있습니다. 자식을 아끼지 아니하는 부모가 어디 있으며 부모를 생각지 아니하는 자식이 어디 있겠습니까? 나를 금지옥엽으로 길러주신 어머님께서 이 몸이 남의 발길에 채이고 매를 맞아 몸이 상할 때 그 가슴이 얼마나 아프시겠습니까? 어머님 생각하여 불효자식이 눈물 뿌리며 기도를 여러번 올렸습니다. 그러나 어머님을 봉양한다는 구실로 하나님의 계명을 어길 수도 없지 않겠습니까?

주님은 십자가에 달리실 때 사랑하는 어머님을 제자 요한에게 부탁하였습니다. 오! 어머님을 요한에게 부탁하신 예수님께 지금 내 어머님을 부탁합니다. 그리고 나는 주님의 뒤를 따르려고 합니다.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가 남편을 사모함은 인지상정입니다. 내 아내는 병약한 몸으로 일생을 내게 맡겼지마는 나는 남편된 의무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내를 버려두고 잡혀다니는 이 내 마음 괴롭기 그지없습니다. 병약한 내 아내도 주님께 부탁합니다.

세상에 제 자식을 돌보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으며 자기 아버지를 의지하지 않는 자식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나도 네 명의 아들 어린 것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역적으로 죽으면 그 자식들이 어떻게 살 수 있겠습니까? 어린 자식 떼어두고 죽음의 길을 가는 이 내 마음 끝없이 비감합니다. 이미 죽은 어린 것들을 주님께 부탁합니다.

나는 주님께서 맡기신 내 사랑하는 교우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나는 저들을 뒤에 두고 죽음의 길을 떠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험한 세상 이리 떼 중에 내 양들을 두고 갑니다. 맡깁니다. 이 양들을 대목자장이신 예수님께 부탁합니다. 그리고 나는 산정재 이 강단을 떠나서 주님 뒤를 따라가려 합니다.

나의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나는 내 어머니 내 아내 내 자식들을 여러분에게 짐되게 할 마음은 없습니다. 무소불능하신 하나님께 부탁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사람이 제 몸의 고통을 이기지마는 부모와 처자를 생각하다가 철석같은 마음이 변절한 경우가 허다합니다. 어린 자식의 우는 소리에 순교의 길에서 배교한 자가 많이 있습니다. 인간의 얽힌 인정이 나를 얽어매어서 부모나 처자를 예수보다 더 사랑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넷째, 의에 살고 의에 죽게 하여 주시옵소서.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서 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할 의가 있습니다. 나라의 백성이 되어서는 충절의 의가 있고 여자가 되어서는 정절의 의가 있고 그리스도인 되어서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의가 있습니다. 백이(伯夷) 숙제(叔齊), 두 형제는 은나라의 신민으로서 주(周)에서 살 수가 없어서 수양산에 숨어 서산의 고사리를 뜯어 먹었지마는 그로 인해 백세청풍이 불고 있습니다. 정몽주는 망하는 고려를 위하여 선죽교에서 피를 뿌리고 죽었습니다. 이는 우리 선인들이 나라를 사랑한 충절 대의의 훌륭한 모습니다.

하물며 그리스도인 되어서 그 어떻게 주님 향한 일편 단심을 변할 수 있아오리까? 사드락메삭 아벳느고는 신앙의 대의를 붙잡고 풀무불에 뛰어 들었습니다. 다니엘도 이스라엘의 정신을 가슴에 품고 사자굴 속에 서슴없이 들어갔습니다. 예수를 진정으로 사랑하면 풀무불이나 사자굴이 그 무엇이 두려울 것이 있겠습니까? 예수를 사랑하여 스데반이 돌에 맞아죽고 베드로도 두려움없이 십자가에 꺼꾸로 달려 죽지 아니했습니까? 그리스도의 신부된 우리는 그리스도만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향한 정절을 그 어떻게 변할 수 있겠습니까? 못합니다. 그리스도의 신부는 다른 신에게 정절을 깨트리지 못합니다.

아! 내 주 예수의 이름이 땅에 떨어지는구나, 평양아 평양아 예의 동방 한국의 예루살렘아! 영광이 너에게서 떠났도다. 우뚝 솟은 모란봉아 통곡하여라, 대동강아! 대동강아! 나와 같이 울자 울자, 드리리다 드리리다 이 미천한 목숨이나마 주님 위하여 제물로 드리리다. 칼날이 나를 기다리느냐 '누가 능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다른 아무것도 주님 향한 일편단심을 변하게 못하리로다. 나는 죽고 또 죽어 열 백번 다시 죽어도 주님을 사랑합니다. 십자가! 십자가! 주님 지신 십자가 앞에 이 몸을 드립니다. 인생은 초로와 같이 짧고 의는 영원무궁합니다. 나의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의에 죽고 의에 삽시다. 의를 버리고 예수님을 향한 의를 버리고 산다는 것은 개 짐승만도 못합니다. 예수로 같이 죽고 예수로 같이 삽니다.

다섯째, 내 영혼을 주님께 부탁합니다.

오! 주님 예수여! 내 영혼을 주님께 부탁합니다. 십자가를 붙잡고 쓰러질 때 주님,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옥중에서 혹은 사형장에서 그 어디에서든지 내 목숨 끊어질 때 꼭 내 영혼 받아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집은 나의 집, 하나님의 나라는 나의 영원한 고향집이 됩니다. 더러운 땅을 밟던 내 발을 씻겨서 하늘나라 황금길을 걷게 하옵시고 죄악 세상에서 죄로 물든 내 영혼을 깨끗케 하셔서 하나님 존전에 부끄럼 없이 서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 주님이시어, 내 영혼을 주님께 부탁합니다. 내 영혼, 내 영혼 주님 받아 주시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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