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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복음을 받는 자세 (살전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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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유관지 목사 

데살로니가전서와 후서에는 축복의 말씀들이 유난히 많이 나옵니다.

바울의 다른 편지 성경들도 대개 그렇지만 데살로니가전서는 축복으로 시작합니다.
1장 1절 끝 부분을 보세요.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3장 12절과 13절을 보세요.
바울은, 주님께서 성도들이 서로 사랑이 많아지게 하시고,  마음을 굳건하게 해 주시고, 재림 때에 하나님 앞에서 흠 없는 거룩한 존재로 서게 해 달라고 기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5장 23절에서 같은 내용을 가지고 다시 한 번 더욱 강하고 자세하게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데살로니가후서 2장 16절과 17절은 성경에 있는 축복의 말들 가운데에서도 대표적인 것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사랑하시고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은혜로 주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 너희 마음을 위로하시고 모든 선한 일과 말에 굳건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데살로니가후서 3장 16절과 18절,  성도들이 참 좋아하는 축복의 말씀이지요.

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고 주께서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무리에게 있을지어다

저는 오늘 데살로니가전서에 있는 말씀을 본문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면서, 먼저 데살로니가전서와 후서에 있는 축복의 말씀들이 성도 여러분에게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축원합니다.

성도 여러분에게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합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이 서로 사랑이 많아지게 하시고,  마음을 굳건하게 해 주시고, 재림의 때에 하나님 앞에서 흠 없는 거룩한 존재로 서게 해주시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위로하시고 모든 선한 일과 말에 굳건하게 하시기를 원합니다.주님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여러분에게 평강을 주시고 주님께서 성도 모든 분들과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또 인터넷을 통해서 이 예배에 동참하고 있는 사이버 목양교회의 성도들에게도 동일한 축복이 임하기를 기원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와 후서에는 칭찬이 유난히 많이 나옵니다.

우선 오늘 본문에서 바울 사도는 데살로니가교회의 성도들의 여러 가지 좋은 점들을 들어 그들을 칭찬하고 있습니다.
특히 데살로니가교회의 성도들이 믿는 자들의 본이 된 것을 칭찬하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교회가 믿음의 소문을 각처에 퍼뜨리는 교회가 된 것을 칭찬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교회의 성도들은 우리의 영광과 기쁨이라고 칭찬하고 있습니다.(살전 2: 20)
바울은 데살로니가교회의 성도들을 통해서 위로를 얻었다고 감사하며 칭찬하고 있습니다.(살전 3: 7)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이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것을 감사하며 칭찬하고 있습니다.(살후 2: 13)

목양교회의 성도들도 하나님과 사람들로부터 많은 칭찬을 받는 성도들이 되기를 또한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바울 사도는 데살로니가전서의 시작 부분에서  데살로니가교회의 성도들이 복음을 어떤 자세로 받았는지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가 말씀을 어떻게 받아야 하는지를 가르쳐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말씀을 받는다.’는 말이 좀 추상적으로 여겨지면,
‘성경을 읽을 때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설교를 들을 때 어떻게 들어야 하나?’
‘속회를 드릴 때 어떻게 드려야 하나?’
‘성경 공부를 할 때 어떻게 해야 하나?’
오늘 본문은 이런 문제들의 답을 가르쳐 주고 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것은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 설교자들, 교회학교 교사들, 속회 인도자들에게는 ‘어떤 자세로 말씀을 전해야 하나?’ 하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전도에 더욱 힘써야 하는데 전도할 때 간단하지만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이 때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것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어떻게 받아야합니까?
본문 밖에 있는 말씀까지 참고해서 여섯 가지의 답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설교할 때 많은 경우 전하고 싶은 것을 첫째, 둘째, 셋째, 이렇게 나누어서 전합니다.
첫째, 둘째, 셋째 하는 것을 대지(大旨)라고 하고 이렇게 하는 것을 대지설교라고 부릅니다.
보통 한 설교의 대지는 셋 정도인데 오늘은 여섯입니다. 두 배입니다.
그렇다고 설교시간을 두 배로 길게 하지는 않겠습니다. 안심하세요.
대신 평소보다 두 배 더 긴장해서 들으셔야합니다.

첫째, 우리는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야 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장 13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은 바울과 그의 일행이 전하는 말씀을 사람의 말씀으로 받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에 오래 머물지 않았습니다. 석 주간 머물었습니다.
석 주간을 머물면서 안식일에 회당에서 성경을 강론했는데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귀부인들이 바울과 실라를 따랐습니다.
유대인들이 이를 시기해서 불량배들을 선동해서 난동을 일으켰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밤에 데살로니가를 탈출해서 베뢰아에 가서 거기에서 전도했습니다.
데살로니가의 유대인들이 그곳까지 쫓아와서 소동을 일으켰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베뢰아를 떠나 아덴에 와서 전도했습니다.(행17:1~15) 
아덴은 이번에 올림픽이 열렸던 아테네입니다.
바울 일행은 이렇게 데살로니가에 석 주간 머물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말하자면 단기선교였습니다.
그런데 데살로니가교회의 교인들이 앞에서 말씀드린 것과 같이 탄탄한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바울이 전한 복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바울과 실라가 그 곳에서 전한 복음은 지나가다가 잠깐 머물었던 손님들이 한 색다른 말로 여겨져서 데살로니가의 허공에 흩어지고 말았을 것입니다.

여러분,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물론 그렇게 하고 계시지만, 성경을 읽을 때 하나님의 말씀으로 읽어야 합니다.
성경,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누가 이것을 부정한다고 해서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다.’라고 외치는 사람이 바보가 됩니다.
크게 외치면 크게 외칠 수록 더 바보가 됩니다.
성경의 통일성, 성경에 기록된 일들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점, 성경이 인류 역사에 미친 영향, 지금도 개인, 개인에게 일으키고 있는 변화,  모든 것을 볼 때 성경은 틀림없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설교,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속회 인도자들이 전하는 말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때로는 부족하게 느껴질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원료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전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도하며 준비하고 선포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일 때 그 말씀이 우리 가운데에서 역사합니다.
마지못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렇게 인정하고 경건하게 받아들일 수록 더 크게 역사합니다.

여러분,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둘째, 말씀에는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이 있음을 알아야합니다.

5절 앞부분을 보세요.

  이는 우리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
  으로 된 것이라

그 때 헬라인들은 말 재주를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헬라의 웅변술, 수사학, 얼마나 유명합니까?
거기에 비하면 바울은 말을 잘 하지 못했습니다.
고린도교회의 일부 교인들이 ‘바울의 편지들은 무게가 있고 힘이 있으나 그가 몸으로 대할 때는 약하고 그 말도 시원하지 않다.’고 바울을 비난할 정도였습니다.
그런 바울이 전한 복음이 놀라운 역사를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은 그 말씀에 능력이 있었고, 성령이 함께 했고, 큰 확신을 가지고 전했기 때문입니다.
종교개혁자 칼빈은 5절 앞부분에 나오는 “능력과 성령과”라는 말을 “성령의 능력”이라는 말로 해석했습니다.
복음을 잘 전하게 하는 영적 능력이라는 뜻입니다.

밭에 씨가 떨어졌습니다. 밭이 ‘이 씨, 왜 이렇게 못 생겼어? 나 이 씨, 싹이 트지 않게 할래!’ 한다고 해서 그 씨에서 싹이 트지 않는 일은 없습니다.
그 씨에 생명이 있기 때문에 싹이 트고 줄기가 자라고 잎이 돋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전해지는 말씀은 성령의 능력이 있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 힘을 주고, 그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나가서 역사를 변화시킵니다.

속회 인도자들, 속회를 인도할 때 성령의 능력을 구하면서 말씀을 전하시기 바랍니다.
교회학교 교사들, 교회학교에서  말씀을 전하고 학생들을 가르칠 때 이 말씀이 그 어린이, 그 학생의 일생을 지배한다는 확신을 가지고 전하고 가르치시기 바랍니다.
많은 설교를 해야하는 책임을 맡은 저도 성령의 능력을 구하면서, 큰 확신을 가지고 그 책임을 감당하기 위해 더욱 힘쓰겠습니다.
우리 모두 전도할 때, 내가 전하는 이 복음이 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확신을 가지고 전하시기 바랍니다.

셋째, 말씀을 기쁨으로 받아야합니다.

6절을 보세요.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데살로니가의 성도들은 말씀을 받을 때 기쁨으로 받았습니다.
여기에서 주는 기쁨은 단순히 인간이 주는 감정을 말하지 않습니다.
성령이 주시는 기쁨입니다.
바울 사도는 로마서 14장 17절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말하고 있는데 여기 나오는 희락입니다.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것, 기쁜 일입니다.
여러분, 말씀을 받을 때 기쁨으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짜증내면서 받지 마세요.
마지못해 받지 마세요.
몸을 비비꼬면서 받지 마세요.
그 말씀이 자기를 꾸짖는 것이라도 감사하며 기쁨으로 받으셔야 합니다.
꾸지람 받을 일을 했는데 꾸짖어줄 사람이 없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사도행전 8장에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말씀을 전한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버림 받은 땅 사마리아 성에 말씀이 전해질 때 여러 가지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사도행전 8장은 이런 사실을 전하면서 8절에서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라고 적고 있습니다.
말씀이 전해지는 곳은 기쁜 곳이 되어야 합니다.
말씀을 받는 개인, 가정, 속회, 교회학교, 교회에 기쁨이 있어야합니다.

여러분, 말씀을 기쁨으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넷째, 들은 말씀을 잘 전해야 합니다.

8절을 보세요.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졌으므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

여기 나오는 마게도냐와 아가야는 지금의 그리스와 대개 일치합니다.
당시로서는 넓은 지역이었습니다.
데살로니가교회는 바울을 통해서 주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 다음에 그 말씀을 마게도냐와 아가야 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도 퍼지게 했습니다.
8절에 “들릴 뿐 아니라”라는 말씀이 나오지요.
‘들린다’는 말은 ‘울려냈다’ ‘공명판(共鳴板) 역할을 했다’ 이런 뜻입니다.
바이올린 같은 현악기의 통은 현이 내는 소리를 아름답게, 또 크게 울려내는 역할을 합니다.
이 소리를 잘 울려내는 현악기가 좋은 악기라고 합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는 복음을 확대해서 여러 방향으로 멀리, 넓게 보내는 공명판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복음의 공명판 역할을 해야합니다.

제가 여기에서 설교를 하면 성도들은 자기가 앉아 있는 자리 가까운 곳에 있는 스피커를 통해서 나오는 소리를 듣습니다.

이제 대 성전의 음향 설비를 설치해야 할 단계에 왔습니다. 교회에 음향 전문 권사님이 계셔서 설계를 할 때 보니까 얼마나 애를 써서 세심하게 하는지 모릅니다.
대 성전 음향, 아주 잘 될 것입니다. 더 잘 되도록 여러분, 기도를 많이 하시기 바랍니다.

자모실과 로비와 식당에 있는 성도들은 폐쇄회로 텔레비전 모니터의 스피커를 통해서 나오는 소리를 듣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이 설교를 듣는 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은 이 스피커와 같은 역할을 잘 해야합니다.

데살로니가후서 3장 1절을 보면 “주의 말씀이 너희 가운데서와 같이 퍼져 나가 영광스럽게 되고”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스피커가 나빠서 ‘직직-’ 소리나는 것, 원래의 소리를 잘 알아들을 수 없게 하는 것, 주의 말씀을 영광스럽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주의 말씀을 영광스럽게 잘 전달하는 전달자들, 공명판들, 스피커들 되시기 바랍니다.

다섯째, 말씀을 듣고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거슬러 올라가서 3절을 보세요.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라는 말이 있는 데요, 여러분 믿음, 소망, 사랑이라고 하면 고린도전서
13장 13절,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이 말씀을 먼저 생각할 것입니다.
신약성경에서 믿음, 소망, 사랑이 제일 먼저 나오는 곳은 여기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는 신약성경 가운데에서 제일 먼저 기록된 성경입니다.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은 말씀을 받아 그것으로 믿음의 역사라는 열매를 맺었습니다.
믿음의 역사는 믿음의 행동이라는 뜻입니다.

또 사랑의 수고라는 열매를 맺게 했습니다.
사랑에는 수고가 따라야합니다.
사랑한다고 하면서 사랑하는 대상을 위해 수고하지 않으면 그것은 추상적인 사랑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면 주님을 위한 수고를 해야합니다.
두 달 전에 태어난 제 외손녀가 처음으로 며칠동안 저희 집에 와 있었습니다. 외손녀를 안고 귀여워 해 주다가도 기저귀 갈아줄 일이 생기면 얼른 ‘아무개 에미야!’ 했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이 아이를 그저 귀여워만 하는 것은 아닌가? 정말 사랑하는 것인가?’ 생각하게 되더군요.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은 말씀을 받아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라는 열매라는 열매를 맺었습니다.

데살로니가교회는 탄생 당시부터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데살로니가교회는 야손이라는 사람의 집에서 출발했는데 불량배들이 그곳을 습격했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데살로니가교회의 성도들은 예수님께 소망을 두고 그 어려운 것들을 잘 참았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받았으면 열매를 맺어야합니다.
요즘 천안이나 안성 부근의 도로를 달리다보면 도로 주변의 포도밭에 포도들이 탐스럽게 달려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왕 포도, 거봉 포도, 꿀 포도, 여러 종류의 포도들이 보기에 참 좋습니다.
만일 그 포도밭의 포도나무들이 포도열매가 없이 줄기와 가지와 잎만 무성하다면 얼마나 보기 흉하겠습니까?
여러분, 말씀을 듣고서 믿음의 행동,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라는 열매를 맺으시기 바랍니다.
목양교회는 말씀을 듣고서 믿음의 행동,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라는 열매가 주렁주렁 달려 있는 포도나무들이 가득 서 있는 포도원이 되어야합니다.

여섯째,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에게 감사의 제목이 되어야합니다.

2절을 보세요. 바울은 데살로니가교회의 성도들로 말미암아 항상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하였습니다.
데살로니가교회의 성도들이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말씀에  성령의 능력과 확신이 있는 것을 알았고, 기쁨으로 받았고, 말씀을 널리 전했고, 열매를 맺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말씀을 전하는 이들, 교역자와 교사와 속회 인도자들이 ‘하나님, 이렇게 말씀을 잘 받아들이는 분들이 있는 것을 감사합니다.’ 기도하게 하는 존재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기독교 교육기관에는 성경 과목이 있습니다. 그리고 채플이 있고 학생들이 그것을 이수해야 졸업을 할 수 있도록 되어있습니다.
학생들이 그런 시간들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저는 어느 기독교대학교의 공과대학 기독교개론 강의를 하나 담당하고 있는데 학생들이 떠들고 산만해서고 매우 힘이 듭니다. 이 과목 강의를 맡은 교수나 강사들끼리 공통으로 겪는 일인데 ‘우리 선교사의 심정으로 이 일을 합시다.’ 라고 서로 격려합니다.
그래도 학기말 시험에 마지막 문제로 ‘이번 학기 수업의 소감을 쓰시오.’ 하면 유익했다는 이야기, 고맙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점수 잘 받으려고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고 진솔한 마음으로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즘은 학생들도 교수를 평가하게 되어 있습니다. 학교 홈페이지에 각 교수들의 방이 각각있는데 거기 들어가 보면 ‘학생들이 나에게 몇 점을 주었나?’ 볼 수 있습니다. 
잘 아는 교수와 이야기하다가 ‘지난 학기에 어떤 평가를 받았습니까?’ 하기에 ‘몇 점 나왔더군요.’ 하니까 다른 과목 교수들은 받기 어려운 점수라고 합니다.
잘 가르쳐서 좋은 평가가 나오는 것이 아니고 과목이 좋아서 좋은 점수가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삶의 목표, 보람있게 사는 길을 배우는 것을 학생들이 좋아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것을 보면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보람을 느끼며 감사하게 됩니다.

요즘 추진되고 있는 사립학교 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사립학교들이 어려움을 겪는다고 반대가 심하지요.
특히 기독교연합기관들이 앞장서서 일제히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그 법이 통과되면 기독교학교에서는 이런 과목들을 가르치는 것이 실제적으로 어렵게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그 학생들처럼 억지로 이 자리에 나와 있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들으려고 일부러 왔습니다.
더욱 더 잘 들어서 말씀을 전하는 이들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릴 수 있어야합니다.

그럴 때 어떻게 되는 줄 아십니까?
2절 뒷부분을 보세요. “기도할 때마다 너희를 기억함은” 하였습니다.
교역자나 교사나 속회 지도자들이 기도할 때 여러분을 위해서 더 열심히 기도하게 됩니다. 
2절 시작 부분을 다시 보세요. “우리가 너희 모두로 말미암아”
여기 중요한 말이 있습니다. “모두”라는 말입니다.
데살로니가교회의 성도들은 모두 알곡이었다는 말입니다.
쭉정이가 하나도 없었다는 말이었습니다.
만일 쭉정이가 있었다면 바울의 성격에 우리가 너희로 말미암아‘ 했지 “우리가 너희 모두로  말미암아”라고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여러분,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 알곡 신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요즘 한국교회의 힘이 많이 약해졌다고 합니다.
그렇게 된 이유 가운데 하나가 말씀을 듣는데 바로 듣지 않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듣는 것을 너무 쉽게 생각합니다.
말씀을 들을 수 있는 통로가 다양하니까 자기 입맛에 맞춰 골라 듣습니다.
이 지역사회에도 기독교 케이블 TV가 둘이 있는데 같은 시간에 설교가 두 군데에서 모두 설교가 나오면 자기 마음에 드는 쪽에 채널을 고정시킵니다.
비판하면서 듣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듣기만 하지 열매를 맺는 수고를 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바로 듣기 위해 힘쓰시기 바랍니다.
복음을 바른 자세로 받은 데살로니가교회는 많은 어려움 가운데에서도 굳건하게 설 수 있었습니다.
데살로니가교회의 성도들이 축복의 말을 많이 듣고 칭찬을 많이 받은 이유 가운데 하나는 복음을 바른 자세로 받은 것입니다.

말씀을 바로 들을 때 한국교회는 이 민족의 한 가운데에 우뚝 서서 빛을 발하며 이 민족을 이끌어 나가게될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제일 중요하게 여기는 말씀이 있습니다.
신명기 6장 4절에서 9절까지입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이 말씀은 “들으라”라는 말로 시작이 됩니다.
신명기 6장 4절에서 9절까지를 쉐마 교리라고 하는데 ‘쉐마’는 ‘들으라’라는 뜻입니다.

‘들으라’ 여기에는 물론 ‘바로 들어라!’ 하는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말씀을 바로 듣는 것이 이스라엘의 힘이 되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말씀을 잘 받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말씀에는 성령의 능력과 확신이 있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기쁨으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받은 말씀을 전하시기 바랍니다.
열매를 맺으시기 바랍니다.
전하는 이에게 감사를 드리고 보람을 느끼게 하시기 바랍니다.

그와 같이 하여 더욱 더 복을 받고 칭찬을 받는 여러분이 되고 제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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