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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인생은 순례자 (막 6: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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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박흥석 목사

제가 어릴 때, 유명한 가요가 하나 있었습니다.  최희준씨 부른 노래였는데, 그 제목은 “인생은 나그네 길” 이라고 했고, 내용은 “인생은 나그네 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하는 노래였습니다.

그 노래 가사를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럴듯합니다. 인생의 허무를 노래하기도 하고,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인간의 한계를 노래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교회에서 인생을 말할 때에는 “인생은 나그네 길”이라기 보다는 “인생은 순례자”라고 합니다.  그래서 복음송에도 “순례자의 노래”가 있습니다.  여기서 “순례자”라고 할 때에도 가만히 보면 “피곤한 인생길, 고통의 길, 괴로움의 길”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객관적으로 인생을 조명해보면, 정말 우리 인생은 고통과 괴로움의 길이요, 정말 덧없는 길입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인생은 아침에 있다가 사라지는 “아침 안개와 같기” 때문에 이런 인생을 의지하지 말아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에 예수님이 12 제자들을 불러 두 사람씩 짝을 지어 내어 보내십니다.  제자들에게 임무를 주어 보내면서 주의점까지 세세히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가만히 묵상해 보면, 예수님이 제자들을 세상에 파송하고, 제자들은 명령을 받고 세상에 나아가서 복음을 전하게 되는데, 그 모습이 바로 순례자의 모습입니다.  좀 더 크게 확대하여 말하자면, 이것이 곧 우리 성도들의 모습입니다. 

우리 성도가 이 세상에 살아가는 것은 “나그네 길”과 같아서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돌아가는지 알 수 없는” 그런 인생이 아니며, “구름처럼 떠돌아 다니다가” 사라져 가는 그런 인생이 아닙니다.  우리 성도의 인생은 분명한 시발점이 있습니다.  우리 성도의 인생은 분명히 돌아갈 곳도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우리 성도의 인생이나, 불신자의 인생이나 거의 비슷하지만, 내면적으로는 엄청나게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저들은 “나그네 길”이고, 우리는 “순례자의 길”입니다.  나그네 길은 목적도 없고, 방향도 없이, 그저 구름 흐르듯 흘러가는 인생이고, 우리는 목적을 가지고 한 곳을 향해 걸어가는 인생입니다. 

그런데, 오늘 주님이 제자들을 보내시면서 몇 가지 당부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가 우리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알게 됩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생각하며 어떻게 인생을 살아야 하는가를 배우고자 합니다.


[1] 분명한 인생의 목적을 주십니다.

인생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나그네길 인생에서는 목적이 없습니다.  왜 살아야 하는지 대답을 줄 수 없습니다.  그러니, 목적 없는 인생이 되어, 그저 바람에 밀려가는 인생이 됩니다.  이리저리 흔들리며 살아가는 인생입니다.  망망 대해에 조그마한 배 하나가 목적도 없이 이리 저리 간다면, 그 배는 얼마가지 못하고 파선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예수님은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분명한 목적을 주십니다.  그 목적이 무엇입니까?  복음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이 땅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것이 곧 우리가 받은 사명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 땅에 그냥 어쩌다가, 우연히, 혹은 실수로 온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인생은 구름이 아닙니다. 우리의 인생은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보냄을 받은, 파송을 받은 인생입니다.  이것을 분명히 할 때에 우리의 인생은 보람을 얻게 됩니다.  우리는 그때에 내가 할 일이 무엇인가를 찾게 됩니다. 


[2] 충성하라고 하십니다.

제자들은 이제 각 고을로 다니면서 하나님 나라를 전파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능력을 나타내어야 합니다. 그래서 병으로 고통 당하는 사람을 치료해 주고, 귀신에게 붙잡힌 사람에게 해방을 줘야 합니다.  또 한가지, 세상의 관습에 얽매어 살아가는 사람에게 진리를 주어 자유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이 일이 쉽지 않습니다.  항상 하나님과 동행해야 합니다. 항상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데 병자들이 자기 병을 고칠 욕심으로 무식하게 덤비기도 합니다.  쉴 틈도 주지 않고 기도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귀신들도 반항합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도 틈을 노리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들에게 자유를 준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고통이 옵니다.  힘이 듭니다.  그렇다고 무슨 큰 대접을 받는 것도 아닙니다. 

여러분, 우리가 맡은 일이 순례자의 길을 가면서 우리가 만나는 사람마다 자유를 선포하고, 하나님 사랑을 선포하고, 해방을 주는 것입니다.  이 일이 쉽지 않습니다.  고통스럽습니다. 힘이 듭니다. 그래서 순례자의 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래도 우리는 이 일에 충성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순례자의 길이 곧 우리가 마땅히 가야 할 길이기 때문입니다.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3] 상부상조하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이 12 제자들을 두 사람씩 짝을 지어 보내었습니다. 이렇게 짝을 지어 보내는 것은 서로 도우면서 일을 하라는 의미입니다. 

사람이 혼자 있으면 대단히 연약한 존재입니다.  혼자 있으면 외로움도 많고, 유혹도 많아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옆에 한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서로 의지하면서 외로움도, 고통도 유혹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왜 하나님이 아담을 혼자 살게 안 하시고 하와를 만들었습니까?  왜냐하면 그에게는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남자가 강한 것 같아도 취약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보충해야 할 것이 바로 하와 였습니다.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하나로 엮어 둘이 하나라고 했습니다.  이 둘이 하나로 엮어질 때에 여성의 부드러움과 남성의 강함이 조화를 이루게 되고, 그래야 튼튼한 가정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튼튼한 가정을 이루어야 이 세상에서 닥치는 모진 세파를 이기며 견디어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남녀가 결혼을 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남자나 여자나 혼자 살면 편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시험이 오거나 힘든 일이 닥칠 때에는 혼자서는 이겨나기 힘이 듭니다.  이때 도움이 필요 합니다. 위로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남자와 여자가 짝을 이루어 가정을 만들어야 합니다. 

칼을 만드는 비결도 여기에 있다고 합니다.  칼을 잘 만드는 장인은 강철만 가지고 칼을 만들지 안습니다. 강철 갖고 만들면, 그 칼은 깨어지기 쉽습니다.  한 두번만 돌을 내리치면 깨어져 버립니다. 훌륭한 장인은 강철과 함께 연철을 배합합니다.  그래서 강하면서도 부드러운 칼, 부러지지 않는 칼을 만든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성도들이 이 세상을 순례자의 삶을 살아가는데, 혼자서 가지 말고 둘이서 손을 잡고 가라고 합니다. 이것을 예수님이 상징적으로 제자들을 두 사람씩 짝을 지어 보내어 줌으로 보여 주었습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도 옆 사람과 손을 잡을 줄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 독불장군은 없다고 합니다.  함께 손을 잡고, 함께 일을 할 때에, 그 일은 쉽고도 보람된 일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길은 순례자의 길입니다.  피곤함과 고통이 함께 합니다. 이런 인생길을 이제 옆 사람과 손을 잡고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제부터는 옆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가족들을 소중해 여기고, 구역 식구들을 소중히 여기고, 사상교회에 함께 신앙 생활하는 성도들을 소중하게 여기면서, 서로 도우면서 순례자의 길을 걸어가야 할 것입니다. 


[4] 최소한의 준비를 하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보내면서 “여행을 위하여 지팡이 외에는 양식이나 주머니나 전대의 돈이나 아무 것도 가지지 말며 신만 신고 두 벌 옷도 입지 말라” 고 했습니다.  이 말씀의 뜻은 여행을 위해 최소한의 준비만하지, 더 이상 과도한 준비를 하지 말아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순례의 길을 간다고 하면, 절대로 짐이 많으면 안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항상 짐을 많이 준비합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양식도, 주머니도, 돈도, 아무 것도 가지지 말라”고 했습니다.  왜 이런 명령을 주셨습니까?  왜 신발을 두 켤레 준비하지 말고, 옷도 두 벌 준비하지 말라”고 하십니까?  그 진정한 의미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순례자의 길을 가는 사람이 길을 갈 때에 많은 짐은 오히려 방해가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1.  순례자가 무엇을 많이 가지면, 유혹이 많습니다.  뭔가 좀 가지고 있으면, 그것에 의지합니다. 돈이라도 좀 있으면 돈을 의지합니다.  이것이 내적 유혹입니다.
2.  많은 짐은 도둑들을 유혹하여 고난을 자초합니다. 
3.  또한 많은 짐은 무겁습니다.  피곤한 일정을 더욱 피곤하게 만들 뿐입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을 최소로 줄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4.  무엇보다도 순례자는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이 제공하는 것을 먹고, 하나님이 제공하는 것을 입고, 하나님이 제공하는 집에서 지내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을 한번 돌아 보시기 바랍니다. 자신의 삶을 돌아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모습이 순례자의 모습입니까? 아니면 거주자의 모습입니까?  거주자는 땅에 집을 짓고, 거기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많은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거주자는 잘 움직이지 못합니다.  기동력이 없습니다.  반면 순례자는 매일 움직여 나가는 사람입니다.  이런 순례자가 짐을 많이 가질 수 없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우리를 순례자로 뽑아서, 복음을 전하라는 사명을 주시고 순례의 길, 전도의 길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모습은 어떤 모습입니까?  너무 많은 짐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고도 항상 “부족하다! 부족하다!”고 외치면서 더 많이 소유 할려고 하지 않습니까? 

주님은 순례자의 길을 가는 사람에게 이 땅의 것을 최소한으로 줄이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성도는 순례자입니다. 우리는 순례자의 길을 가는 사람입니다.  이 순례자의 길을 가는데 무엇이 필요한지 깊이 생각하고, 무엇을 줄여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인생은 순례하는 인생입니다.  오늘은 이곳에, 내일은 저곳에 방문하며, 복음 전하며 저 천국을 향해 나아 갑니다. 저 높음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갑니다.  이런 인생의 길은 한 곳에 머물러 있는 인생이 아닙니다. 역동적이고 항상 움직이는 길입니다.  이제 이 순례자의 길을 이루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그 길을 보여 줍니다.
1] 순례자이면, 분명한 인생의 목표를 가집니다.
2] 순례자이면, 분명한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복음 전하는 일입니다.
3] 순례자이면, 손에 손을 잡고 상부상조하면서 일을 하라고 하십니다.
4] 순례자이면, 세상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의 인도에 맡기며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도 순례자의 길을 가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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